(제 56 회)

제 2 장

29

(3)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또 하나 내가 국가적책임감을 강하게 느낀것은 농민들의 겨울솜옷문제입니다. 아까 아주머니들중에서 기운 헌 덧옷을 입은 녀성이 리상점에 솜옷이 나오지 않아 사입지 못한다고 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전야에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이는 겨울철인데 공장에서 일하는 로동자들과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는 사무원들에게는 솜옷을 공급해주고 왜 전야에서 일하는 농민들에게는 공급하지 못하겠습니까? 농민에 대한 관점상의 문제인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던지 무슨 리유가 있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군당위원장동무?》

군당위원장이 바삐 일어섰다.

《솜옷이 자기 수량대로 내려오지 않아서 로동자, 사무원들부터 공급했습니다.》

그러니까 경공업성에서 솜옷을 채 만들지 못했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지금 12월달도 보름이 지났는데 군당에서 속수무책으로 있어야 하는가.

《군당위원장동무, 농촌에 좀 나와보오?》

그 말씀이 뜻하는바를 알고있기때문에 군당위원장은 고개를 떨구고있을뿐이였다. 그가 왜 농촌에 나와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솜옷을 입지 못하고 일하는 농민들을 목격하면서도 그들에게 두툼하고 따뜻한 새 솜옷을 입혀야 하겠다는 생각만은 못했다.

방금 수상님께서 농민에 대한 관점상의 문제가 아닌가 하고 말씀하시였는데 군당위원장도 매일이다싶이 헌 옷차림의 농민들을 보면서 아무렴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의 차림새란게 그렇지 하고 범상히 여겨왔던것이다.

드디여 머리를 쳐든 군당위원장이 결심을 하고 말씀드리였다.

수상님, 제가 농민들에 대한 관점이 바로서있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 당장 군에 있는 피복공장, 양복점 같은 기관들과 가두녀맹까지 총동원하여 군내 농민들에게 설전으로 새 솜옷을 다 만들어입히겠습니다.》

《좋소! 그래야 하오. 군당위원장동무의 결의를 지지하오.

그와 같이 군이 발동하면 군의 체면도 서고 중앙에서도 한숨 돌릴수 있습니다. 경공업성에서 좀 힘들어하는것 같습니다. 군에서 군내 농업협동조합들의 알곡생산과 군내 농민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나가야 합니다.

군당위원장동무, 앉으시오.

오늘 우리가 원화협동조합에 나와 여러분들과 의논해보려 하는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올해에 알곡을 많이 생산하였고 생활수준도 높아졌지만 여기에 만족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농촌에서는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을 계속 다그쳐 현대적인 기술을 갖춘 문명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농촌을 하루속히 건설하여야 합니다.

이번에 당중앙위원회와 내각은 사회주의농촌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방도의 하나로서 현재 군인민위원회기구를 개편하여 군농업협동조합경영위원회를 따로 내오기로 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이어 군경영위원회의 기능과 역할, 그가 갖추어야 할 부서들에 대하여 일일이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물으시였다.

《관리위원장동무부터 말해보시오.》

리규성이 일어서는데 매우 엄숙한 표정이였다.

수상님, 저는 군경영위원회가 하게 될 계획사업에 대하여 우선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마다, 절기마다 그 계획때문에 늘 군인민위원회와 다투군 했는데 수상님의 설명을 듣는 순간 아프던 머리가 막 시원해지면서 이제는 됐다! 하고 속으로 환성을 올렸습니다.

저도 그렇거니와 여기 3작업반장 박영준동무는 더 좋을겁니다. 그는 언제한번 군인민위원회에서 내려보내는 날자를 인정한적도 없고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모임참가자들이 가볍게 웃었다.

《3작업반장이 누구요?》

뒤쪽에서 반고수머리 영준반장이 일어서며 《예, 접니다.》하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웃음소리가 커졌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미소를 머금으시였다.

《관리위원장동무의 말이 맞소?》

영준반장은 뒤머리를 긁을뿐이였다.

《동무가 보아하니 경험을 내세우며 창발성을 발휘해서 농사짓는것 같은데 창발성도 국가계획을 수행하기 위한것이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수상님.》

박영준이 용기를 냈다.

《저는 국가가 주는 알곡생산계획을 수행하려는것입니다. 그런데… 그 군에서 찍어주는 날자가…》

또 뒤머리를 긁는다.

김일성동지께서 허허 웃으시였다.

《앉으시오. 새 농업지도체계도 오늘의 낡고 뒤떨어진 농업지도에서 경험은 무엇이고 어떤 교훈을 찾겠는가 하는것을 연구한 기초우에서 나온것이요.

현재를 너무 허무주의적으로 대하지 맙시다. 여기 앉아있는 군당위원장이 서운하지 않겠소?

지금껏 농사일을 지도하느라 애써왔는데!…》

군중이 웃는데 군당위원장이 일어서며 《저는 오히려 새힘이 솟구칩니다.》 하여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마치 온 가정이 모여앉아 집안일을 의논하는듯싶었다. 그들은 지금 수령님께서 자기들을 상대로 당과 국가의 로선과 정책에 대하여 하나하나 따져보고 시정하고계시는줄 알수 없었다.

단지 그이를 한자리에 모시면 그 자리는 늘 흥겹고 화기애애하기때문에 좋아할뿐이였다.

《이번에는 누가 말하겠습니까?》

김덕준이 일어섰다.

《농기계작업소를 비롯한 기술수단들을 다 망라하여 기술적으로 농사짓도록 지도하고 통제하며 연유, 부속품들을 직접 해결해준다니 더 말할것없이 좋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영농자재공급체계가 똑바로 서있지 못하기때문에 조합에서 자체로 구하느라 숱한 사람들이 떠돌아다니고있다고 하시며 바로 덕준아바이를 로상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실례로 드시였다.

끝으로 수령님께서는 군경영위원회가 아래실정을 꿰뚫어보고 기술적지도를 하면 관료주의가 없는 실속있는 지도로 된다, 종자만 똑똑히 개량해도 알곡 10~15%를 더 얻을수 있으며 기계화를 잘하여 논밭을 깊이 갈고 거름주기체계만 옳게 세워도 그리고 김만 잘 매도 또 10~20%의 수확을 더 얻을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오랜 시간에 걸친 담화를 마치신 수령님께서는 구락부를 나오시며 리규성이에게 물으시였다.

《조합에 뜨락또르가 몇대요?》

《〈천리마〉호가 다섯대 있습니다.》

《그러니 운전수들이 몇명이요?》

《열명입니다. 수상님께서 만나보시였던 최동익동무가 그 작업분조의 분조장입니다.》

수령님께서는 그 운전수를 기억하고계시였다.

《나사가 빠져서 뜨락또르를 세웠던 동무 말이지? 뜨락또르운전수 열명이면 무시할수 없는 기술집단이요.》

리규성은 뜨락또르운전수들이 포전정리와 새땅개간작업을 하고있는 정형과 탈곡작업을 기계화하여 은을 내고있는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뜨락또르운전수들은 농촌기술혁명의 선구자들이라고 하시면서 운전수 열명이 사상적으로 발동되여 힘과 지혜를 합치면 논농사의 기계화에 적극 이바지할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렇게 하자면 집단을 농촌기술혁명의 선구자들의 집단답게 잘 꾸리는것이 중요하오. 그러한 기술집단은 무엇이든지 다 해낼수 있소.》

리규성은 이 기회에 최동익이를 적극 내세우고 자랑하려는듯 초기에 운전수들속에서 이러저러한 결함들이 나타났는데 그중에는 뜨락또르작업이 힘들어 집으로 도망쳐간 애어린 운전수도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그 운전수때문에 걱정도 하고 마음쓰던 최동익이 그의 집이 있는 남포에까지 갔다왔다는것도 말씀드리였다.

《대학시험칠 준비를 하고있는 그 운전수를 데려오지는 않았지만 최동익동무의 수고와 동무를 위하는 마음에 작업분조내 운전수들이 크게 감동되였습니다. 지금은 집단이 하나로 뭉쳐 일하고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리규성에게 대오안에는 선진분자도 있고 뒤떨어진 사람도 있기마련이다, 어떤 운전수처럼 대오에서 떨어져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종당에는 천리마의 속도로 내달리는 우리 시대의 로동과 생활의 세찬 흐름에 합류하게 될것이다, 이렇게 하여 집단이 공고해지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될것이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원화마을 농민들과의 상봉을 통하여 농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시고 새로 내오려는 농업지도체계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히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이튿날 아침 일찌기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장, 내각사무국국장, 평남도당위원장 등과 함께 숙천읍에 도착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진종일 군내 농업부문 기관, 기업소지도일군들과의 담화, 협동조합관리일군들과의 담화, 군지도일군들과의 협의회로 긴장한 시간을 보내시였다.

협동조합관리위원장들을 만나주실 때 창동리 열두삼천협동조합의 박기석을 알아보시고 《올해에 1만t 했나?》하고 물으시였다.

수상님, 래년에는 꼭 1만t을 내겠습니다.》

박기석이 쑥스러워하며 결의를 다지였다.

《래년에 꼭 1만t을 할 담보가 있소?》

《이 몸이 열쪼각이 나더라도 해내겠습니다.》

수령님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관리위원장의 몸이 쪼각나지 않아도 해낼수 있는 방도를 내가 가지고왔소.》

박기석의 눈이 둥그래졌다. …

이렇게 농업협동조합경영위원회가 숙천군에서 처음 나왔고 이듬해초부터 모든 군들에 경영위원회들이 조직되였다.

군협동조합경영위원회를 내오는 사업이 처음부터 곡절없이 진행된것은 아니였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