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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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또 하나 내가 국가적책임감을 강하게 느낀것은 농민들의 겨울솜옷문제입니다. 아까 아주머니들중에서 기운 헌 덧옷을 입은 녀성이 리상점에 솜옷이 나오지 않아 사입지 못한다고 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전야에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이는 겨울철인데 공장에서 일하는 로동자들과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는 사무원들에게는 솜옷을 공급해주고 왜
전야에서 일하는 농민들에게는 공급하지 못하겠습니까? 농민에 대한 관점상의 문제인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던지 무슨 리유가 있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군당
군당
《솜옷이 자기 수량대로 내려오지 않아서 로동자, 사무원들부터 공급했습니다.》
그러니까 경공업성에서 솜옷을 채 만들지 못했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지금 12월달도 보름이 지났는데 군당에서 속수무책으로 있어야 하는가.
《군당
그 말씀이 뜻하는바를 알고있기때문에 군당
그러나 솜옷을 입지 못하고 일하는 농민들을 목격하면서도 그들에게 두툼하고 따뜻한 새 솜옷을 입혀야 하겠다는 생각만은 못했다.
방금
드디여 머리를 쳐든 군당
《
이제부터 당장 군에 있는 피복공장, 양복점 같은 기관들과 가두녀맹까지 총동원하여 군내 농민들에게 설전으로 새 솜옷을 다 만들어입히겠습니다.》
《좋소! 그래야 하오. 군당
그와 같이 군이 발동하면 군의 체면도 서고 중앙에서도 한숨 돌릴수 있습니다. 경공업성에서 좀 힘들어하는것 같습니다. 군에서 군내 농업협동조합들의 알곡생산과 군내 농민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나가야 합니다.
군당
오늘 우리가 원화협동조합에 나와 여러분들과 의논해보려 하는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올해에 알곡을 많이 생산하였고 생활수준도 높아졌지만 여기에 만족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농촌에서는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을 계속 다그쳐 현대적인 기술을 갖춘 문명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농촌을 하루속히 건설하여야 합니다.
이번에 당중앙위원회와 내각은 사회주의농촌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방도의 하나로서 현재 군인민위원회기구를 개편하여 군농업협동조합경영위원회를 따로 내오기로 하였습니다.》
《관리
리규성이 일어서는데 매우 엄숙한 표정이였다.
《
해마다, 절기마다 그 계획때문에 늘 군인민위원회와 다투군 했는데
저도 그렇거니와 여기 3작업반장 박영준동무는 더 좋을겁니다. 그는 언제한번 군인민위원회에서 내려보내는 날자를 인정한적도 없고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모임참가자들이 가볍게 웃었다.
《3작업반장이 누구요?》
뒤쪽에서 반고수머리 영준반장이 일어서며 《예, 접니다.》하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웃음소리가 커졌다.
《관리
영준반장은 뒤머리를 긁을뿐이였다.
《동무가 보아하니 경험을 내세우며 창발성을 발휘해서 농사짓는것 같은데 창발성도 국가계획을 수행하기 위한것이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박영준이 용기를 냈다.
《저는 국가가 주는 알곡생산계획을 수행하려는것입니다. 그런데… 그 군에서 찍어주는 날자가…》
또 뒤머리를 긁는다.
《앉으시오. 새 농업지도체계도 오늘의 낡고 뒤떨어진 농업지도에서 경험은 무엇이고 어떤 교훈을 찾겠는가 하는것을 연구한 기초우에서 나온것이요.
현재를 너무 허무주의적으로 대하지 맙시다. 여기 앉아있는 군당
지금껏 농사일을 지도하느라 애써왔는데!…》
군중이 웃는데 군당
마치 온 가정이 모여앉아 집안일을 의논하는듯싶었다. 그들은 지금
단지
《이번에는 누가 말하겠습니까?》
김덕준이 일어섰다.
《농기계작업소를 비롯한 기술수단들을 다 망라하여 기술적으로 농사짓도록 지도하고 통제하며 연유, 부속품들을 직접 해결해준다니 더 말할것없이 좋습니다.》
끝으로
오랜 시간에 걸친 담화를 마치신
《조합에 뜨락또르가 몇대요?》
《〈천리마〉호가 다섯대 있습니다.》
《그러니 운전수들이 몇명이요?》
《열명입니다.
《나사가 빠져서 뜨락또르를 세웠던 동무 말이지? 뜨락또르운전수 열명이면 무시할수 없는 기술집단이요.》
리규성은 뜨락또르운전수들이 포전정리와 새땅개간작업을 하고있는 정형과 탈곡작업을 기계화하여 은을 내고있는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그렇게 하자면 집단을 농촌기술혁명의 선구자들의 집단답게 잘 꾸리는것이 중요하오. 그러한 기술집단은 무엇이든지 다 해낼수 있소.》
리규성은 이 기회에 최동익이를 적극 내세우고 자랑하려는듯 초기에 운전수들속에서 이러저러한 결함들이 나타났는데 그중에는 뜨락또르작업이 힘들어 집으로 도망쳐간 애어린 운전수도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그 운전수때문에 걱정도 하고 마음쓰던 최동익이 그의 집이 있는 남포에까지 갔다왔다는것도 말씀드리였다.
《대학시험칠 준비를 하고있는 그 운전수를 데려오지는 않았지만 최동익동무의 수고와 동무를 위하는 마음에 작업분조내 운전수들이 크게 감동되였습니다. 지금은 집단이 하나로 뭉쳐 일하고있습니다.》
이날 원화마을 농민들과의 상봉을 통하여 농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시고 새로 내오려는 농업지도체계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히신
협동조합관리
《
박기석이 쑥스러워하며 결의를 다지였다.
《래년에 꼭 1만t을 할 담보가 있소?》
《이 몸이 열쪼각이 나더라도 해내겠습니다.》
《관리
박기석의 눈이 둥그래졌다. …
이렇게 농업협동조합경영위원회가 숙천군에서 처음 나왔고 이듬해초부터 모든 군들에 경영위원회들이 조직되였다.
군협동조합경영위원회를 내오는 사업이 처음부터 곡절없이 진행된것은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