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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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농업지도체계를 내올데 대한 결정이 채택된 후 김일성동지께서는 년중으로 먼저 숙천군에 군협동조합경영위원회를 조직하기로 하시였으며 그곳으로 떠나기 전날 농민들의 의견을 들어보시려고 원화협동조합을 찾아가시였다.

농촌에서의 사회주의적협동화와 협동경리의 강화발전을 위한 김일성동지의 령도에서 원화마을은 뚜렷한 자취를 남긴 력사적고장의 하나였다.

전쟁으로 인하여 무참하게 파괴되고 령락되여 로력, 축력, 농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전후농촌경리의 복구발전을 위한 방도로 서로 힘을 합쳐 일하는 농업협동화의 길을 구상하신 수령님께서는 이 원화마을에 가시여 그 구상을 처음으로 펼치시였으며 전후에 조직된 원화협동조합을 해마다 찾으시여 그 강화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시고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향상시키기 위해 크나큰 은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렇기때문에 협동조합의 첫 관리위원장이였던 김덕준아바이가 말한것처럼 이곳 농민들은 수령님을 위대한 은인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고 오늘도 알곡증산에 모든 힘을 다 바쳐 일하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업협동화가 완성되고 사회주의농촌건설의 새로운 대로에 들어선 오늘 그에 맞게 농업지도체계를 개편할 방도를 밝히시고 이 력사의 땅 원화협동조합에 다시 가시여 농민들의 의견을 들으시려는것이였다.

관리위원회마당에서 수령님께서는 평범한 농가나 다름없는 관리위원회 사무실을 이윽히 바라보시며 깊은 감회에 잠기시였다.

1959년에 다녀가신 후 두해가 지나 다시 와보시는 조합의 모습은 그간 많이 달라졌다.

관리위원회에서 누군가 달려나와 승용차에서 내리시는 수령님께 인사를 드리였다.

《동무는 관리위원회에서 무슨 일을 보오?》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부기장(당시)입니다.》

《관리위원장동무는 없소?》

《예, 리당위원장동무하고 같이 군당에서 하는 회의에 갔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마을을 돌아보시였다. 경우재언덕에 과수원을 확장했고 단층문화주택들을 여러채 지었다.

관리위원회앞에 조합원들의 로력공수를 전시한것도 볼만했다. 리소재지인 본촌을 깨끗하게 꾸리고 마당에 석비레를 깔았다.

재작년 11월에 이곳에 오시여 축산반에서 돼지를 비롯한 집짐승들을 기르는 정형을 알아보시고 대용먹이를 먹여 원가를 낮추며 매 농가에서 한해에 돼지 두마리, 토끼 30마리를 기르며 수의방역사업을 잘하고 기계화를 하여 원화협동조합이 고기생산에서도 전국의 모범이 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회계장에게 지금 축산을 어떻게 하고있는가, 사과와 배는 얼마나 따는가 하는것들을 알아보시였다.

《내가 그날도 말했지만 알곡생산을 늘이는것과 함께 축산을 잘해서 고기를 많이 생산해야 조합원들이 잘살수 있소.》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때 탈곡장에서 벼탈곡을 하던 작업반장 전창옥이와 작업반세포위원장이 숨차게 달려와 인사를 드리였다. 볕에 그슬고 추위에 언 얼굴들에 낟알먼지가 마치 분으로 화장을 한듯 뽀얗게 올라있었다.

그이께서 전창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시였다. 이 부락의 첫 세포위원장이였던 남편을 잃고 고생스럽게 살아온 녀인이였다.

그이께서 원화협동조합에 오실적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만나주신다. 전창옥의 집에 가시여 농사를 의논하기도 하셨고 두해전에 2층문화주택을 완공했을 때 거기에 입사한 녀인의 집을 택하여 가보시였었다.

《아주머니, 그새 건강했습니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예, 수상님을 다시 뵈옵게 되여 정말 반갑습니다.》

녀인은 벗어든 흰 수건을 가슴에 눌러대며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만경대혁명학원에 간 아들이 이제는 키도 크고 몸도 퍽 좋아졌겠다고 하시였다. 전창옥은 그 애가 이제는 다 컸다고 말씀드리였다.

《지금 작업반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벼탈곡을 합니다.》

《그래서 얼굴에 먼지가 뽀얗댔구만. 금년에 몇공수 벌었습니까?》

《540공수를 벌었습니다.》

몸이 별로 건강치도 못한 녀인이 일을 많이 했다. 540공수면 알곡이 2. 5t 차례진다고 하시며 이것을 다 소비할수 있는가 하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피창린도당위원장이 리당위원장과 관리위원장을 데려오라고 승용차를 보내고 필요한 사람들을 구락부의 휴계실에 모이도록 하는 사이에 김일성동지께서는 2층문화주택을 돌아보시려고 그쪽으로 걸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부락의 작업반장이 누군가고 물으시였다.

세포위원장이 전창옥을 가리켜드리였다.

《전창옥아주머니입니다.》

《아, 그렇소?》

그이께서는 부끄러워하는 녀인을 대견하게 바라보시였다. 피살자가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있는것이 기쁘시였다.

《힘들지 않습니까?》

《작업반원들이 다 열성들이니 힘들지 않습니다.》

《왜 힘들지 않겠습니까? 작업반장을 하면서도 공수를 많이 벌었으니 대단합니다. 이제는 생활이 좀 개선되였습니까?》

전창옥이 작업반원들의 분배받은 정형을 말씀드리였다. 분배들을 많이 받았다.

2층문화주택의 아래층에 있는 첫 집문을 열고 들어가신 수령님께서는 부엌에 내려서시여 가마뚜껑을 열어보시였다. 밥사발에 흰쌀밥이 소복이 담겨져있었다.

전쟁시기 이 부락에 오시여 한 농민의 집 부엌에 들어가서 가마안에 담겨져있는 나물죽을 보시고 그렇게도 가슴아파하시였던 일이 피뜩 스치였다.

《이제는 생활수준이 괜찮구만!》

그이께서 만족하시여 환하게 웃으시였다.

마루우로 다시 올라오시여 방문을 열어보시였다. 형제간처럼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서 둥근상을 펴놓고 공부를 하고있다가 부엌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급히 일어서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애들의 인사를 받아주시며 먼저 허리를 굽혀 방바닥을 짚어보시였다. 아침밥을 한지 퍽 오래되였겠는데 구들이 아직 따스했다.

《이만하면 춥지 않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큰아이에게 아버지, 어머니는 일나가셨는가고 물으시였다.

《전쟁때 〈치안대〉놈들이 목매달았습니다. 당원이라고.》

큰아이가 머리를 숙이고 울먹이였다.

《그래 너희들끼리 사니?》 수령님께서 나직이 물으시였다.

《누나하고 같이 삽니다.》

《누나는 왜 보이지 않니?》

《조합에 일나갔습니다.》

그이께서는 측은한 눈길로 풀이 죽어 서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시였다. 전쟁시기에 만나보신 고아소녀를 비롯하여 원화마을에 피살자유자녀들이 적지 않게 있는것같다.

전창옥의 아들을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냈는데 이 아이들도 보내야 할것같았다.

《너 학원에 가고싶지 않니?》

《가고싶습니다.》

용기를 내며 큰아이가 머리를 번쩍 들고 대답하는데 머루알같은 검은 눈동자에서 불이 뿜어나오는듯 했다.

(만만치 않은 녀석이군. 동생도 똑똑해보여.

누나 혼자 벌어 두 동생을 먹이고 입히고 키우자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학원에 보내자.)

《그래, 너희들형제를 다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주겠다. 그렇게 합시다.》

그이께서 동행한 피창린에게 말씀하시였다.

좋아라 환성을 올리는 아이들에게 공부 잘하라고 이르시고 밖으로 나오시니 그사이에 몇명의 녀성조합원들과 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이 마당에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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