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5 장

7

(2)

 

처음 한두번은 마지못해 알콜을 찌워왔으나 다음부터는 아예 도리머리를 했다. 하여 하루가 멀다하게 싸움이 일어나고… 마침내는 갈라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송려애는 그가 서울에 와서 맞아들인 세번째 녀자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드디여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선을 해방하였다는 소식은 황대걸을 한길이나 뛰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운명이, 땅이, 재산이 걱정스러웠다.

황대걸은 어느날 밤 꼴호즈창고에 불을 지르고 도망을 쳤다. 간난신고를 해서 안주에 돌아와보니 다행하게도 아버지는 부동산들을 대충 정리해가지고 집과 늙은 어머니를 남겨놓은채 서울로 나간 뒤였다. 황대걸의 본처는 자기가 쏘련으로 떠난 후 1년반도 못되여 어느 광주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다. 마름네 집에 가 누워 앓고있는 어머니를 만나본 황대걸은 죽음을 무릅쓰고 38°선을 넘었다.

남조선에서는 미군이 판을 치고있었다. 원자탄을 가지고있는 막강한 미국은 그가 일본대신 믿고 의지해야 할 우상이였다.

아버지의 애첩인 서울댁의 소개로 피아니스트인 송려애를 응접실에서 만나던 그날 아래우에 검은 양복을 입은 키가 늘씬한 한 미국인이 찾아왔었다. 이전 관동군사령부 정보과장으로부터 소개를 받고왔다는것이였다. 그가 바로 마이클이였다.…

《형님, 형님은 왜 적적하게 홀로 앉아있소? 내 술동무를 해달라우?》

파란 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은 계집을 껴안고 춤을 추던 동생 황영걸이 다가와 술내를 풍기며 하는 말이였다.

그는 엊그제야 병원에서 퇴원하였다. 분별없이 날뛰는 그를 1선에 내보내는것이 안심치 않아 수도사단에 넣었는데 오늘 이처럼 1선장교로 둔갑하여 먹자판에 추천된것이다.

술독에 빠졌다나온듯 그의 온몸에서는 술내가 확확 내풍겼다.

《됐다. 가서 춤이나 실컷 추어라. 술은 작작 마시구…》

《왜요. 오늘에야 마음껏 마셔야지요. 준비상계엄령도 해제되였는데…》

영걸은 앞에 놓인 술잔에 제손으로 술을 철철 부어 쭈욱 들이켰다.

《집에선 아버지란 령감이 못마시게 하지, 여기선 형님이란 사람이 통제하지… 하, 다 필요없수다. 통제할수록 난 더 마신단 말이우다. 술만 마시면 난 장군이 된 기분이란 말이요.》

황대걸은 어이가 없어 허- 하고 김빠진 소리를 내고말았다.

그제 즉 6월 22일이 아버지 황병태의 예순네돐생일이였다.

그래서 아버지집에 갔었는데 황병태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 화술만 마시고있었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말끝마다 신세를 한탄하고있었다.

《미국이 우릴 버렸어. 우린 이젠 끝장이야.》 하면서…

《도지사어른, 어르신은 왜 자꾸 그런 말만 하시오?》

앞에 둘러앉았던 령감들중 제일 키가 꺽두룩한자가 주제에도 황병태를 달래느라 혀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황병태네 령감들은 모두 그를 《도지사》로 부르고있었다.

황병태는 한손은 술잔을 그러잡고 한손은 파리를 쫓듯 휘휘 내저으며 울분을 토했다.

《글쎄, 저 미국무장관이라는 량반이 한 말을 보게나.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이 남조선만은 꽂감 빼여먹듯 쏙 뽑아버렸단 말일세.… 그 덜레스란 량반도 기자회견에서 뭐라 말한줄 아나?

우리 <남조선이 만일 침략을 받게 되였을 때 미국이 전쟁에 뛰여드는것에 대해서는 서약할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일이다.> - 하 이렇게 말했단 말일세.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에 있나. 우리가 지금 어떤 막바지에 이르렀다구 이제 와서 그렇게 자반 뒤집듯이 발칵 뒤집어놓으면 우린 어떻게 하는가 말일세.…》

황대걸은 입이 쓰거웠다. 아버지가 왜 이러는지 잘 알고있었다.

지금 온 남조선땅이 화산이라도 터져오를것처럼 무섭게 움씰움씰거리고있었다.

숨막힐듯 구름이 낮게 드리운 음침한 하늘아래 영양실조라도 걸린듯 맥없이 비죽비죽 서있는 공장굴뚝들에서는 뱀꼬리만한 연기 한오리 찾아보기 힘들게 되였고 원료, 자재, 자금난에 걸려 수십만의 실업자들을 거리에 토해놓은 공장들은 다시는 문을 열지 못한다는듯 빗장들만 억척같이 질러놓았다.

화페를 찍는 기계만 만부하로 돌리다나니 통화팽창이 극도에 이르러 고등어 한손값이 눈 한번씩 껌벅껌벅 하는 사이에 1만원, 2만원… 5만원으로 높이뛰기경주라도 하듯 껑충껑충 뛰여올랐다.

맥아더가 리승만에게 강요한 11개조 훈령에 따라 남조선에서 100만석이나 되는 쌀을 일본에 실어내갔기때문에 시장들에는 쥐가 볼가심할것도 없이 쌀들이 깨끗이 사라지고 하루밤만 자고나면 공원과 역기다림칸, 골목골목들에서 굶어쓰러져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나타나군 했다. 사회의 맨 밑바닥에서부터 아우성치며 한탄하며 원망하며 저주하며 부글부글 끓어올라온 그 무엇이 압축되고압축되면서 이제는 그 어데 슬쩍 다치기라도 하면 쾅하고 폭발할듯 극한점에 이르렀다. 극도에 달한 민생고는 자연히 《5. 30선거》에도 미쳐 리승만은 여지없이 패하고 더는 잔명을 부지할수 없게 되였다. 리승만의 붕괴는 기정사실로, 시간문제로 되였다.

리승만은 부랴부랴 유엔에 《대사》로 나가있는 장면을 워싱톤에 보내여 이 붕괴위기를 보고하고 미국의 신속한 원조를 요청하였다. 리승만이로서 살아남을 최후의 희망은 오직 전쟁 하나뿐이였던것이다. 장면이 워싱톤에 가 애걸복걸한것이 6월 12일에 있은 일인데 다음날인 6월 13일 미국무성고문이라는 덜레스가 기자회견장에 점잖게 나타나 미국은 남조선과 상관이 없다는듯 아닌보살을 하였다. 황병태로서는 정말 억이 막힌 일이 아닐수 없었다. 더구나 그처럼 북벌을 입버릇처럼 외우며 독을 쓰던 로버트마저 본국에 소환된다고 하니 황병태는 미칠듯한 절망에 빠져버린것이다.

《아버지, 됐수다. 그게 운다고 될일이요? 그까짓 미국어른들 아니면 우리가 북벌을 못하갔소? 이 황영걸이가 시퍼렇게 살아있는한 그렇겐 안돼요.》

영걸은 희떠운 소리를 하더니 술병을 들고 입에 통채로 쏟아넣었다.

그것이 그만 아버지의 부아통을 터뜨리고말았다.

《이녀석아, 빼앗긴 땅을 되찾겠다는 녀석이 그렇게 술과 계집에 미쳐가지고 무엇에 쓰겠니, 술을 작작 마시지 못할가?》

《이거 왜 자꾸 이러시우? 예로부터 주량은 도량이라 했수다.》

《도랑이구 개울창이구 싹 걷어치우지 못하겠니?》

황병태가 시에미 역증에 개배때기 차는 격으로 부아통을 아들에게 터뜨리며 개화장을 들고 펄펄 뛰는 바람에 황영걸은 할수없이 쫓겨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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