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5 장

7

(1)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

이제 이 무도회만 끝나면…

(그런데 마음은 왜 이렇게 요강뚜껑으로 물을 퍼마신것처럼 께름한가.)

황대걸은 창문쪽식탁에 앉아 술잔을 들었다놓았다 하면서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광란적인 음악에 맞추어 쌍쌍이 붙잡고 몸과 다리를 비꼬며 돌아가는 1선장교들과 울긋불긋 요란스레 차려입은 계집들을 불안스레 살피군했다.

누구인가 자기를 쏘아보는듯한 아니, 자기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고있는듯한 느낌이 자꾸 드는것이 이상했다.

이것이 무엇으로부터 오는 불안인가.

황대걸이 그처럼 두려워하던 로버트가 드디여 본국의 소환장을 받고 서울을 떠나갔다. 마이클이 그를 바래주러 비행장으로 나가면서 황대걸에게 한눈을 찡긋했었다.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내렸소. 오늘은 이 무도회에서 마음껏 취하시오. 무도회가 끝날 때까지는 누구도 당신을 찾지 않을것이요.》

이 무도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마이클 자기는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겠으니 그때까지 여기를 지키라는 소리였다.

그 시간에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수가 없다. 혹시 알게 뭔가. 그 시간을 그 로출증에 걸린 송려애와 히히닥닥거리며 한침대에서 즐길지…

마이클과 송려애가 이미 범상치 않은 관계가 되였다는것은 불보듯 명백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다. 이제 집에 전화를 걸어보면 분명 그가 없을것이다. 래일 그를 불러앉히고 어제밤 어디에 갔댔는가 따져물으면 오히려 제편에서 얼굴이 새파래서 대들것이다.

《내가 어딜 가든 거기서 무슨 상관이예요? 왜 그렇게 자유를 구속하면서 그래요? 좋아요. 그렇게 알고싶다면 대주겠어요. 난 어제밤 피아노전습때문에 갔댔어요.

왜? 그 집까지도 대달라요?》

하긴 증거를 쥔다고 한들 용빼는 수가 없다.

마이클과 맞서기에는 상대가 너무도 컸다.

황대걸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자기는 왜 이리도 녀자복이 없는지 알수가 없다.

처음 만난 녀자는 랑림산줄기를 타고앉은 이름난 목재상의 딸이였다. 동경으로 류학갈 때 배우에서 사귄 녀자였다. 도꾜의학전문을 다닌 그와 결혼이라는것은 하였지만 1년도 함께 살지 못하고 헤여져야 했다. 황대걸은 제국대학에 다닐 때부터 일본군 첩보계에 발을 붙이고있었는데 관동군사령부에 배치된 후 한달도 안되여 쏘련원동으로 침투할데 대한 명령을 받은것이였다.

일본군이 장고봉이라는 쏘련국경초소가 있는 고지를 타고앉으려다 참패를 당하고 새로운 군사작전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일본정계와 군부에 북진론과 남진론이 대두하여 전략문제를 가지고 맹렬한 론전을 벌리고있던 때라 쏘련이 일본의 군사행동을 어떤 자세로 대하고 쏘련의 대일전략은 무엇이며 군사력은 어느 정도인가를 구체적으로 탐지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중대한 임무가 관동군사령부 정보과에 떨어졌던것이다. 1939년 초여름이였다.

긴급임무를 받고 정보과요원들이 속속 원동으로 들어갔다.

밀로를 따라 쏘만국경을 넘은 황대걸은 관동군사령부 정보과장이 임무를 준대로 첫번째 접선장소인 하바롭스크역전공원으로 갔다. 그러나 그 접선장소에서는 뜻밖에도 체까가 진을 치고 기다리고있었다. 어쩔수없이 격투가 벌어졌지만 혼자서는 다섯명이나 되는 체까대원들을 당해낼수가 없었다. 체포, 심문, 재판, 감방… 그가 감옥에 들어가있을 때 일본군은 대병력으로 할힌골일대로 쳐들어갔으나 여지없이 패하고말았다. 황대걸이 5년만인 1944년 9월 감옥문을 나서자 이번엔 멀고먼 중앙아시아로 실어갔다. 따슈껜뜨주의 늬쥬네 치르치크구역에 있는 부죤늬명칭 꼴호즈였다. 어이없게도 그곳에서 농사일을 하여야 했다. 복통이 터질노릇이였다.

대지주의 아들이, 제국대학졸업생이, 관동군사령부 정보과 요원이 하루종일 땡볕을 받으며 논판에 엎드려 김을 매자니 억이 막혔다. 한시간도 일을 하나마나 했는데 벌써 허리가 끊어져나가는것만 같았다.

저녁에 합숙에 돌아와 팔베개를 하고누워 머룽머룽 천정을 올려다보며 이젠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을 굴려보았다.

일본은 자기가 감방에 들어가있는 사이에 대쏘전쟁이 아니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필리핀쪽으로 진공하고있었다. 북진론이 아니라 남진론이 우세를 차지했던 모양이였다. 그러니 이 우즈베끼스딴에서는 더더욱 자기가 할일이 없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이제 기회를 보다가 자기에게 임무를 준 관동군사령부 정보과장이 지금 어디에 가 엎디여있는지 그를 찾아가든 조선에 있는 집으로 가든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다음날 그는 아프다면서 일하러 나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시간도 못되여 합숙으로 의사가 찾아왔다.

따냐라는 로씨야녀자인데 과부였다. 오래동안 이성에 굶주렸던 황대걸은 그를 그냥 보낼수가 없었다.

이 따냐가 그의 두번째 안해로 되였다. 황대걸이 그의 집으로 가 동거살림을 시작하였지만 하루도 오손도손 살아본적이 없었다. 따냐에게는 라지오가 있었는데 거기서 울려나오는건 도이췰란드와 이딸리아와 함께 남방전선에서 일본군대가 녹아난다는 소식뿐이여서 안정된 생활을 할수가 없었던것이다.

일본군은 어렸을 때부터 그의 우상이였다.

비행기와 대포와 함선과 땅크로 무장한 《황군》과 맞설 상대가 세상에 있을것 같지 않았었다. 그가 어렸을 때인데 어느날 집에 들린 마른 명태처럼 빼빼 마르고 어깨에 새똥만한 별을 얹은 일본군 소장놈에게 몸이 절구통같고 안주 100리벌 아근의 백성들이 설설 기는 배가 남산만한 아버지가 갑삭갑삭 허리를 굽히며 같잖은 그를 나리님으로 개여올리는것을 보고 황대걸은 벌써 자기의 앞길을 결정했었다. 바로 그 나리님도 갑삭갑삭하는 권력자가 되리라 결심한것이다.

그러자면… 어쨌든 당장은 일본에 붙어야 했다.

그런데 그 일본이 지금 태평양전쟁에서 곤죽이 되도록 막 두드려맞고있다는것이였다.

속이 뒤틀릴대로 뒤틀린 황대걸은 취하기라도 해보려고 따냐에게 매일처럼 병원에서 쓰는 알콜을 가져오라고 강박하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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