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5 장

5

(2)

 

안동수는 지금도 그때 일이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금덕의 어깨를 어루쓸며 이렇게 흔연히 말했다.

《금덕아, 내 료양을 하고온 다음에… 그때 밤새 이야기를 하자꾸나. 어머니가 있는 따슈껜뜨에 편지를 보냈으니 6월말이나 7월초쯤엔 오실게다. 이제 조금만 더 참자. 그새 앓지 말고 공부를 잘하거라.》…

이렇게 하고 떠나온 안동수였다. 금덕이만은 정말 세상에 부러운것이 없도록, 늘 웃으며 기쁨과 행복속에 살도록 온갖 사랑을 다 주고싶다. 하지만.…

안동수는 괴롭게 입술을 깨물었다.

금덕아, 너는 내가 왜 이럴수밖에 없는지 앞으로 꼭 알게 될게다. 왜 너에겐 못가면서도 이 길을 걷고있는지도…

비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급기야 바께쯔로 물을 부어대듯 억수로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삽시에 온몸이 홀딱 젖어버렸다.

안동수는 아래입술을 꽉 깨문채 힘겹게 비내리는 들길을 걸어갔다. 군모와 어깨를 밤알같은 비방울이 마구 두드려댔다. 목덜미로 량볼로 비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등골로 가슴팍으로 사정없이 흘러내린다. 번쩍- 눈부신 섬광이 하늘을 가로세로 마구 찢어대더니 꽈르릉 땅땅 천둥이 울었다. 별안간 저앞에서 불덩이같은것이 땅으로 내리꼰지는것과 함께 하늘땅을 들부시는듯한 요란한 굉음이 귀를 멍멍하게 때렸다.

저앞에 서있던 뽀뿌라나무의 중둥이가 허양 부러져나갔다.

안동수는 어느 집에 들어가 좀 쉬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턱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비물을 훔치며 그런대로 걸었다. 시간이 없었다. 훈련시작전에 려단에 돌아가야 하는것이다.

이번에는 전기련의 모습이 눈앞에 밟혀왔다.

전기련은 지금도 서용숙에 대하여 생각하고있는지 모른다. 아무리 훈련에 열중해야 한다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해도 때없이 번개처럼 뇌리를 지져대군 하는 그에 대한 죄의식은 어찌할 방도가 없는것이다.

급선무는 금실이가 서용숙이 옳은가를 알아내는것이였다.

금실은 속으로 분명 감추고있는것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좀처럼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

안동수는 괴로왔다. 아직도 자기가 제구실을 하려면 멀었다고 생각했다.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땅크려단이라 하면 군인들뿐아니라 그에 종사하는 로동자들과 군관가족들도 속하는것이다.

항일유격대지휘관들은 대원들과 늘 고락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속마음을 샅샅이 다 알고 풀어주군 했다고 하였었다. 그래서 대원들은 지휘관들을 친형처럼 따르고…

하지만 나는 아직 사람들의 마음을 다 모르고있다. 제일 가깝다고 하는 참모장의 마음도 모르고 그의 아주머니에 대해서도 모르고 리금실에 대해서도 모르고있다.

내가 얼마나 미덥지 못하고 제구실을 못하면 이렇게 속을 꿍치고 좀처럼 헤쳐보이려 하지 않을가.

안동수는 또다시 턱으로 흘러내리는 비물을 쥐여뿌렸다.

앞에 시뻘건 흙탕물이 길을 가로지르며 콸콸 흘러간다. 개울인데 이 비에 급기야 물이 불어난것이다.

안동수는 주저없이 개울물에 들어섰다. 지체할수가 없었다. 물은 허리에까지 올라왔다. 사정없이 아래쪽으로 떠밀어댄다.

안동수는 두손으로 휘적휘적 물을 헤가르며 개울물을 건넜다. 무슨 죽을 일을 당한다 해도 전사의 가슴에 생긴 상처를 아물궈주는게 바로 정치일군이 할일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산을 넘고… 치마리에 들어섰다. 서용숙이네가 살았다는 고장이였다.

서용숙이네 집은 쉽게 찾을수 있었다.

《아니, 이게 우리 용숙이구나. 이 애가 어디에 있수, 예?》

리금실의 사진을 본 안주인은 너무 놀라서 한길이나 뛸번 했다. 그간 할아버지는 사망했다고 한다. 손녀를 잃은 후 그 심화병으로 병이 도져 앓다가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는것이다.

안동수는 전기련이가 옳게 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이렇게 되물었다.

《분명 댁의 따님이 옳습니까?》

안주인은 무슨 소리냐는듯 급한 소리를 했다.

《아니, 에미가 제 딸도 모르겠습니까. 이 애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장이라도 찾아 떠날 자세였다.

안동수는 약간 갈린 어조로 말했다.

《이 처녀의 이름은 리금실이라고 합니다.》

《예?》

안주인은 눈이 둥그래서 안동수를 쳐다보더니 다시 사진에 시선을 떨구었다.

《잘 보십시오. 혹시… 다른 녀자가 아닌지…》

《그럴리가 없는데…》

안주인은 사진을 보고 또 보며 고개를 기웃기웃했다.

《딸애와 헤여진지 몇년되였습니까?》

《이젠 6년이 되여옵니다. 》

《그때와 모색이 좀 변하지 않았습니까?》

《글쎄 좀 변하긴 했지만… 이 앤 틀림없이 우리 용숙이입니다.》

안주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장담했다.

《그런데 자기는 리금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전기련이를 전혀 모른다고 하고… 혹시 딸애에게 다른 특징은 없습니까?》

《글쎄요.》

녀인은 눈을 내리깔고 몇번 삼박거리다가 인차 말을 이었다.

《잔등에 콩알만한 기미가 있었습니다. 요쪽 오른쪽어깨박죽밑에…》

《알겠습니다. 》

안동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리금실이가 서용숙이가 아닌가 하는것을 알수가 있다. 그것은 간단하다. 군의소에 검진을 하면서 확인해보라고 하든지 로복실에게 목욕을 할 때 알아보라고 하면 제꺽 알수 있다.

그렇다면… 서용숙이가 분명하다면…

안동수는 여기에 피치 못할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안주인이 급한 어조로 물었다.

《우리 애를 어데 가야 만날수 있습니까?》

안동수는 도리머리를 하며 나직이 한숨을 내그었다.

《아직은… 제가 더 알아보겠습니다. 》

안주인은 와락 안동수의 손을 부여잡았다.

《제발 우리 애를 좀 찾아주시우. 예? 군대어른, 내 무릎을 꿇고 빌리다. 제발 용숙이를…》하며 그는 급기야 무릎을 꿇었다. 안동수는 당황하여 그의 팔을 잡아일으켰다.

《용숙이 어머니, 이러지 마십시오. 예?》

용숙이 어머니는 얼굴을 들었다. 그러는 그의 량볼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그대로 자기 가슴속으로 흘러드는것 같아 안동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우리 용숙이를 좀 찾아주시우. 우리 용숙이가 살아있다는걸 알면 그 애 할아버님도 마음놓고 눈을 감으실거우다. 앓는 몸으로 용숙이를 찾겠다고 왜놈군대들이 있는 곳에 갔다가 그만 그놈들에게 매를 맞고… 쓰러져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수다. 돌아가실 때에두 그냥 용숙아, 용숙아 하고 그 애만 부르다가 눈도 감지 못하고…》

용숙의 어머니는 눈물에 꽉 잠겨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안동수는 용숙이를 꼭 찾아보겠노라 약속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흥역에 나가 평양으로 가는 렬차에 올라서도 생각은 줄곧 금실이에게 가있었다.

리금실은 서용숙이가 분명했다.

하다면 그는 왜 굳이 자기를 숨기려고 하는가.

그는 왜 부모님들이 그리도 안타까이 기다리는 고향에도 가지 않는가. 전기련이를 왜 모르는척 하고…

안동수는 부대에 도착하는 길로 식당에 들려보았다. 입술을 감쳐물고 잽싸게 동자질을 하는 리금실을 이윽토록 쳐다보다가 그대로 일어서고말았다.

처녀가 그런 모진 마음을 먹었다면 그럴만한 사연이 있을것이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수 없는 그런 사연이…

하지만 정녕 이 문화부려단장에게도 털어놓을수 없는 그런 사연인가, 나는 정녕 그의 마음속 의지가 되여줄수 없는 그런 일군인가?

그의 눈에 그렇게 이 문화부려단장이 비쳤다면…

내가 아직 멀었구나…

안동수는 그날밤 자정이 넘도록 괴로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