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5 장

5

(1)

 

…안동수는 비지땀을 흘리며 들판 한가운데로 가리마처럼 곧게 난 길을 따라 힘겹게 걷고있었다.

들판에서는 한창 모내기를 하고있었다.

한 논판에서는 이랴 낄낄 소를 몰며 물써레를 치고있었고 옆의 논에서는 대여섯명의 농민들이 허리를 굽힌채 모를 내고있었다.

어디선가 청아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백두산말기에 백학이 너울너울

 

그러자 모를 내던 사람들이 허리를 펴고 노래가 들려오는 논판쪽을 넘겨다보더니 빙긋 웃으며 제나름의 목소리로 따라불렀다. 그러면서도 손은 재봉기바늘 움직이듯 벼모를 꽂아댄다.

 

해방된 강산에 뻐꾸기 뻐꾹뻐꾹

장군님 주신 땅

 

안동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시간만 있으면 자기도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논판에 뛰여들어 그들과 함께 모를 내고싶었다. 발이 아프고 어깨가 쿡쿡 쏘아댔지만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노래를 따라불렀다.

 

에루화 데루화 모두다 떨쳐나

 

얼마나 좋은가, 내 조국의 봄은…

따슈껜뜨에 이주해갔을 때 안동수네는 갈밭을 개간하고 논을 풀었었다. 해묵은 갈대들을 베여내고 팔뚝같이 굵은 하얀 갈뿌리들을 뽑으며 안동수는 왜서인지 리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읊었었다.

나라를 빼앗긴탓에 멀고먼 이국땅까지 가서 갈뿌리를 캐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인민.

나라를 빼앗겨 봄마저 빼앗기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인민이 오늘은 장군님께서 주신 제땅에 제손으로 모를 내고있는것이다.

 

주인된 새땅엔 기쁨도 넘실넘실

새로 푼 논에는 봄물결 출렁출렁

장군님 주신 땅

에루화 데루화 한친들 묵이랴 밭갈이가세

 

갑자기 습기찬 바람이 불어오면서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시꺼먼 비구름이 몰려오고있었던것이다.

한소나기 퍼부으려는듯싶었다. 아닌게아니라 벌써 후둑후둑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황황히 논판에서 나와 가까이에 있는 크지 않은 집을 향해 냅다 뛰여간다. 소나기가 분명하니 비를 긋고 모를 계속 내려는 모양이였다.

하지만 안동수는 비를 그으려 뛰여갈수도 없었다. 부상을 당했던 어깨가 칼로 쿡쿡 쑤셔대는것처럼 동통이 와서 좀처럼 걸음을 빨리 할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 안동수는 료양소에 가있어야 할 몸이였다. 닷새전에 예방주사를 놓으러 지휘부에 왔던 려단군의소 군의가 안동수의 몸에 열이 있다는것을 알고 깜짝 놀라 강짜를 써서 검진을 했는데 열의 원인이 부상자리가 도지고있는데 있다는것을 알아내였던것이다. 안동수가 아무리 일없다고, 이러다가 인차 동통이 멎고 열도 내린다고 설복을 해도 군의는 마이동풍이였다. 그 사실은 즉시 려단장에게 보고되고 다시 문화훈련국과 보위성에 반영되여 그제 저녁에 료양을 갈데 대한 명령이 떨어졌던것이다.

하지만 인차 종합훈련을 하겠는데 한가하게 료양소에나 가서 누워있을수 없었다. 총참모부에서도 문화훈련국에서도 큰 의의를 부여하는 훈련인데 문화부려단장이 빠진다는게 무엇인가. 그렇다고 못가겠다고 무작정 강짜를 부릴수도 없었다.

안동수는 이렇게 된바엔 류경수려단장이나 김일문화훈련국장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게 료양소로 가는척 하면서 전기련이와 서용숙이네가 살던 치마리에 다녀오기로 결심했던것이다. 빨리 갔다오면 종합훈련에 참가할수 있었다. 갔다와서 료양소에 가니 어찌어찌해서 도로 왔다고 적당히 구실을 대면 어쩌지 못할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곧장 함흥으로 왔는데 하늘에서는 이 자유주의분자 어디 한번 혼나보라는듯 낯을 잔뜩 찌프리고 꽈르릉거리는것이다. 동통은 점점 더 심해지고…

불쑥 누이동생의 울먹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누가 알려주었는지 잔뜩 겁에 질려 평양역까지 뛰여나왔던 금덕이였다. 손목도 잡아보고 이마도 짚어보며 울먹울먹했다.

《오빠, 왜 몸이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있었나요. 나한텐 왜 아무말도 안하고…》

누이동생은 그러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안동수는 오히려 그에게 정말 미안했었다.

금덕이는 나이 열다섯이 되도록 자기 생일도 모르고있었다. 평양학원에 있을 때 안동수는 생일기념으로 치마저고리와 학습장, 필기도구들을 사주고 생일상도 간소하게나마 자기 손으로 직접 차려주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하는 금덕에게 안동수는 《오늘이 바로 너의 생일이란다. 너의 생일은 1932년 12월 12일이야. 지금껏 아버지, 어머니, 이 오빠와 헤여져 살았으니… 너에게 생일상 한번 차려주지 못했구나.》하며 어서 많이 들라고 저가락으로 찰떡을 꿰여 손에 들려주었었다. 난생처음 생일날을 알고 생일상을, 그것도 혈육인 오빠가 차려준 생일상을 받은 금덕이는 음식을 들념을 못하고 눈물만 흘렸었다.

그때 외국어를 배우러 왔다가 그 광경을 목격한 송억만이라는 평양학원 학생은 눈을 슴벅이며 말했었다.

《정말 동생이 불쌍하게 자랐구만요.》

그때부터 그 송억만이는 금덕에게 남다른 관심을 돌리는것 같다.

그후에도 안동수는 이리저리 바쁘게 뛰여다니느라 금덕이에게 생일다운 생일을 한번도 쇠여주지 못했다.

두달전에는 전문학교에서 새로 입학한 학생들의 학부형회의가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가지 못했다. 35련대 1대대 포장인 고현빈이 훈련하다 부상을 입어 군의소에 가서 수술립회를 섰던것이다. 수술이 인차 끝나면 늦게라도 가려 했으나 수술이 예상외로 길어져 갈수가 없었다. 안동수는 속으로 금덕이에게 용서를 빌었다.

《금덕아, 이 오빠를 용서해라. 이 대원들은 우리 장군님께서 나에게 직접 맡겨주신 귀중한 혁명동지들이란다. 부모처자를 멀리 떠나 군대에 나온 이들의 부모구실을 가까이 데리고있는 내가 해야 할게 아니냐. 이 고현빈은 저기 함남도 홍원태생이야. 집은 신포에 있구. 집에 어머니와 처와 귀여운 딸이 있지만… 언제 여기 와서 수술립회를 서겠니. 그러니 이 문화부려단장이 서야 할게 아니냐.》

수술을 립회하고나니 온몸이 땀으로 푹 젖었었다. 고현빈은 안동수의 손을 잡고 고마와 울었다.

문화부려단장이 남들의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 평범한 병사인 자기의 수술립회까지 서주었으니 저으기 감동되였던것이다.

《현빈이, 수술이 잘되였어. 신심을 가지구 치료를 잘하라구.》

안동수는 그의 손을 꽉 잡아주고나서 군의소에 입원한 환자들을 다 만나보며 힘들을 주었다.

그러다나니 결국 금덕이는 그날 눈이 빠지게 기다리기만 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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