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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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원이가 자기 집으로 가버린 후에 동익이네 뜨락또르작업분조 운전수들은 이 크지 않는 집단의 생활에서 그가 차지하는 몫이 컸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창원이는 공상에 잘 잠기군 하는 리상주의자이지만 락천가였다. 그는 이따금 저녁이면 마을청년들과 오락회를 벌리군 하여 조합의 처녀들뿐만아니라 총각들속에서도 인기가 컸다.

운전수들속에서도 그의 유모아와 웃음이 기계에 치는 윤활유처럼 생활을 유쾌하게 하고 윤택이 나게 하는데 기여했었다.

재식이가 《창원이 녀석이 없으니 심심하고 따분하군.》하고 투덜댄것이 우연하지 않았다.

최동익은 바쁜 농사철이 지나가고 겨울이 닥쳐오는 때에 시간이 좀 나게 되자 창원이네 집을 찾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주소는 농기계작업소의 로동과를 통해 알아냈다.

《가지 말라구.》

작업소지배인이 만류했다.

《무엇때문에 뜨락또르를 버리고간 녀석을 찾아간단 말인가. 설복시켜서 데려오려구? 아니, 가버린 놈이 돌아올리 만무하지.

지금쯤 아마 아버지의 주선으로 좋은 일자리를 얻어가지고 흥얼흥얼 휘파람이나 불고있겠는데 이전 책임운전수가 찾아간다 해서 마음이 돌아설것 같소? 헛걸음할건 뻔해. 그간 동익동무가 너무 자기를 혹사했소.

창원이한테 갔다오는 품이면 잠이나 실컷 자오.》

《창원이를 꼭 데려오자는건 아닙니다.》 동익이가 대답했다.

《창원이가 그러는데 아버지가 1년간 로동단련을 하고 상급학교에 가라고 했답니다. 그러고보면 창원이는 우리한테서 1년간 일했습니다.

그렇다면 떳떳하게 제기해서 갈것이고 우리와도 작별인사를 했어야지요. 왜 도망치듯 했는가 하는겁니다.

나는 창원이를 내 동생처럼 생각했고 내 힘껏 도와주려 했습니다.

창원이도 나를 형처럼 따랐구요. 우린 정이 통했습니다. 요새는 꿈에 그 애가 자주 보입니다.

지배인동지, 나는 어쩐지 창원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것만 같습니다. 그렇지 않구야 편지 한장 없겠습니까? 꼭 무슨 일이 생긴것 같습니다.》

지배인은 동익이의 인간미에 감동되여 더 말리지 못했다.

《정 그렇다면 가봐야지. 뭐 필요한게 없겠소? 빈손으로야 갈수 없지 않겠소.》

지배인은 그러면서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이렇게 되여 동익은 지배인이 꾸려주는것들을 가지고 창원이네 집으로 떠났던것이다.

오후 늦게 남포에 도착했다.

남포는 평양에 대면 어방없이 작은 도시였으나 농촌에 비하면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큰 도회지였다.

항구안에 큰 짐배들이 둥실 떠있고 항구로 들어오는 려객선이 내는 붕- 하는 고동소리가 이채로웠다. 바다와 그우를 날고있는 갈매기들은 아름다운 그림같았다.

남포에는 우리 나라 굴지의 제련소와 유리공장이 있다.

제련소의 굴뚝은 동양에서 제일 높다고 했다.

창원이네 집은 단층독립가옥이였다. 공장지배인의 집이니 아담하고 깨끗했으며 울타리를 따라 꽃나무를 많이 심은것이 유표했다.

(여기서 창원이가 사는구나. 농촌마을과 대비도 되지 않는 큰 거리가 뻗어있고 유리창이 번쩍이는 아빠트들이 줄지어있으며 공장들이 연기를 뿜고있는 이 큰 도시에서 창원이가 살고있구나.)

남포에 처음 오는 동익은 보는 곳마다에서 감동을 금치 못했다.

거리에는 자동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데 다 좋은 옷들을 입었다.

농촌마을에서는 농민들이 늘 작업복을 입고다니고 선거날이나 설날같은 명절에만 어쩌다 외출복을 입고 나선다.

(농촌도 언제면 이처럼 사람들이 기계를 돌리며 문명한 생활을 누리게 될가?)

농촌에서 현재 기계를 다루고있는 로동계급의 한 사람으로서 동익은 농민들에 대한 동정으로 가슴이 뻐근해왔고 농촌기술혁명의 담당자로서의 사명감을 깊이 느끼는것이였다.

창원이의 어머니가 동익을 맞이했다.

동익이가 자기 소개를 하자 녀인은 몹시 반기면서도 미안해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동익은 《창원이가 보구싶어서 잠간 들렸습니다.》 이렇게 말하는것으로 녀인의 그 마음을 안심시키려 했다.

창원이는 캄캄해져서야 작업소지배인이 말한 그대로 휘파람을 불며 나타났다.

《창원아, 누가 왔나 봐라. 너의 이전 책임운전수가 왔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던 어머니가 창원이를 붙잡고 소곤거리였다.

창원이는 점심곽을 넣어 어깨에 걸치고있던 가방을 벗어 팽개치다싶이 하고 방안으로 달려들어왔다. 그는 동익의 두팔을 붙잡고 빙빙 돌았다.

《아, 동익형님!》

역시 감상적이고 랑만적인 청년이였다.

《안녕했어요? 보고싶었습니다!》

그의 맑고 깨끗한 눈에 금시 눈물이 핑- 돌았다.

《재식아바이랑 동무들이 다 잘 있습니까?

야! 정말 같이 고생하던 동무들을 잊을수 없어요. 추억은 아름다운것이지요.

그때는 힘들고 졸음에 시달리며 이 고생스러운 뜨락또르운전수를 걷어치워야 하겠다고 몇번이나 생각했고 끝내는 도망했지만, 형님! 그때가 좋았어요.

종일 들에서 일하느라 지치고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식모아주머니가 퍼주는 된장을 두고 끓인 배추국을 훌훌 불어 마실 때의 그 행복한 순간이야말로…》

《됐어, 그만 말하고 좀 앉자.》

동익은 창원이와 같이 방바닥에 앉았다.

《이 랑만가! 그렇게 훌쩍 떠나는 법이 어디 있는가. 응?》

동익이가 성을 내자 창원이는 쩔쩔매다가 대답하였다.

《그건 저… 일은 이렇게 된겁니다. 나는 정말 철이 없고 의리도 없고 례의도덕도 지킬줄 모르는 놈입니다.

충수염수술후 퇴원해도 한달동안은 차를 타지 말아야 한다기에 마침 병문안온 누이와 같이 아버지가 보낸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이런 사정을 동무들에게 찾아가 알리고 떠나야 했으나 병원에다가 김덕준아바이나 최동익동지가 오면 그렇게 말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냥 떠났습니다.

한달후에 원화마을의 우리 작업조에 다시 가려했으니까요. 그러나 집에 와보니 어머니는 앓지 그리고 아버지는 밤낮 나가사는데 외아들인 나까지 없으니 집안꼴이 말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미루던차에 유리공장에서 누군가가 손풍금타는 솜씨가 있다는데 우리 공장에 취직해서 일도 하고 선전대에서 솜씨를 보이는것이 어떤가, 천리마작업반이 되자면 일도 잘해야 하지만 예술소조활동도 잘해야 하는데 동무같은 청년이 필요하다고 권고했고 아버지도 그렇게 하라고 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여기 눌러앉고말았습니다.

그렇다고 형님을 한번도 잊은적은 없어요.

사실 농촌은 나에게 맞지 않아요. 나처럼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일을 해도 도시에서 일해야지 농촌에 가져다놓으면 바다고기가 시내물에 들어간것처럼 살아가기가 힘든 법이예요.》

동익은 창원이의 말이 충분히 리해되였다. 도시에서 자란 그가 농촌에서 살자니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동익은 언젠가는 창원이가 도시로 다시 갈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기에 더 다른 말은 하고싶지 않았다. 허나 정작 만나니 전에 생각과는 달리 창원이를 다시 데리고가고싶었다.

《창원아, 조합에서도 사람들이 널 기다린다.

물론 넌 그곳에서 자기 의무를 할수 있는껏 했다. 하지만 네가 없으니 다들 생활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허전해하누나.》

《동익형님.》

창원이는 흥분을 억제하며 진심을 솔직히 말했다.

《차츰 저는 동익형님이랑 동무들이 모두 바삐 뛰는데 내 혼자 집에서 노는것이 어쩐지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깊은 생각없이 훌쩍 떠나온 걸음이라 내처 한달을 고향도시의 정든 이 따뜻한 집에서 즐겁게 보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한달이 지났고 뜨락또르를 탈수 있게 되였으니 응당 작업조동무들에게로 가야 할것이였지만 가고싶지 않았습니다. 편안해지니까 이전에 뜨락또르를 타고 논밭갈이하고 물동을 운반하고 새땅찾기를 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보낸 나날들이 막 끔찍하고 고생스럽게만 돌이켜졌습니다.

물론 아까도 말했지만 어머니가 앓는 가정사정도 있었지만 그보다 다시 농촌으로 가고싶지 않은 감정이 더 큰 원인이였습니다.

매일 퉁탕거리는 소리와 흔들림에 부대끼고 기름에 절고 연기에 끄슬리는 그 뜨락또르운전수생활의 지긋지긋한 추억이 다른 모든 감정, 동무들에 대한 그리움, 미안한 생각, 나를 동생처럼 사랑해주던 동익형님에 대한 배신감 등을 압도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정해준 1년간의 로동체험을 했다는 위안과 내 앞길에 대학이라는 희망이 불타고있는것이 나를 고무했습니다.

그래서 남포유리공장에서 오라고 하자 거기에 취직해서 선전대활동도 하며 대학입학준비를 하고있었습니다.》

창원이는 순진하고 단순했으며 솔직했다. 동익은 이 장점때문에 창원이를 리해하게 되였고 더 욕하고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동익은 입술을 소리없이 깨물었다.

《그러니 그 지긋지긋한 운전수생활을 다시는 안하겠다는 말이지.》

창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러나 어쨌든 나는 동익동지를 존경하며 평생 잊지 못할것입니다. 동생처럼 나를 대해주었지요.》

《창원이는 어쩔수 없는 사람이군.》

창원이는 불시에 심각해졌다

《나를 데리려 오지는 않았겠지요? 아버지한테 얘기하렵니까?》

《창원이, 나는 너를 훌륭한 운전수로 이끌지 못한 자신을 탓할뿐이다.》

한동안 더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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