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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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순이는 자연군중의 원무에 들어가 자기 동무와 짝을 뭇고 손목과 팔을 맵시있게 놀리며 어깨도 으쓱으쓱 손벽도 치면서 원을 따라 빙빙 돌았다.

그렇게 춤을 추는데 불시에 두 청년이 원을 뚫고 들어오더니 《같이 춥시다.》하며 승인도 없이 처녀들을 가르면서 한명씩 차지했다. 미순이와 짝을 무은 청년은 키가 크고 잘생긴 미남자였다.

미순이가 느껴지건대 그가 주동적으로 자기 동무와 함께 원을 뚫고 들어왔으며 역시 주동적으로 미순이를 선택한것 같았다.

《우리들이 무례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는가요?》

춤을 추며 청년이 매우 례절있게 물었다.

《글쎄요. 하긴 우리도 그렇게 되길 기다렸는지도 모르지요.》

미순이의 그 어떤 의미가 느껴지는 미묘한 대답에 청년은 미소를 지어보이였다.

《대학생입니까?》

청년이 물었다.

《아닙니다. 전문학교 학생입니다.》

미순이가 대답했다.

《대동강유보도에 자주 나옵니까?》

《한가한 때는 나옵니다.》

《그것이 어떤 때인지? 한가한 시기가 말입니다.》

미순이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건 제가 머리를 좀 쉬여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때입니다.》

《유감인데요.》

《왜요?》

《머리를 쉬여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수 없으니까요.》

미순이는 소리내여 웃었다.

《그건 알아서 뭘합니까?》

《그 시기를 맞추어 나도 여기로 나오려구 그러지요.

나는 동무와 사귀고싶습니다. 동무한테서는 순진하고 부드러운것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얼굴과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맑은 목소리가 매력적입니다.》

미순이는 새침해졌다.

《왜 말이 없습니까?》

《동무는 춤을 아주 잘 추누만요.》

《예, 대학시절에 춤을 좀 배웠지요.》

《어느 대학을 다녔는가요?》

《김책공대를 다녔습니다.》

《글쎄 어쩐지, 소설에서 읽은것처럼 말한다고 생각했지요. 지금 어디서 일합니까?》

《기계공업성입니다.》

《저는 좀 피곤해요.》

미순이는 이 청년과 오래 춤추고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아름답다느니,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느니, 매력적이라느니 하는 로골적이고 허공에 뜬것 같은 미사려구가 싫었던것이다.

《저는 실례하겠습니다.》

미순이는 자기 짝패였던 녀동무를 눈으로 찾았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동무의 동무는 나의 동무와 같이 휴식하려고 갔습니다. 피곤하다니 우리도 좀 쉴가요? 우린 아직 통성도 못했지요.》하며 청년은 벌써 미순이를 원밖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대동강물결이 출렁이는 유보도의 돌층계 아래단에 내려가 가지런히 앉았다.

지금 미순이는 무엇이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마술에 빠진듯 혼이 떴다. 기숙사의 녀동무를 찾아 같이 돌아가려 했는데 그 동무는 보이지 않았다.

강가에 앉아 휴식한다고 한다. 그럴수 있을가? 처음 만난 청년과 같이?…

이렇게 어리둥절해있는데 청년이 그의 손을 꽉 잡고 원밖으로 끌었다. 미순이는 몸에서 기운이 빠지고 나른해지면서 어쩔수없이 끌려갔고 돌층계의 아래단에 그와 같이 그가 펴주는 손수건을 깔고앉았다.

가슴이 울렁이였다. 심장이 세차게 뛰였다.

련애경험이 없는 미순이는 초면의 남자와 불시에 나란히 앉으니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수 없어 얼굴만 홧홧 달아올랐다.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내 이름은 강철수요. 동무는?》

《미순입니다.》

목소리가 심히 떨리였다.

《나를 나쁘게 생각지 마시오. 미순동무!

물론 나는 대학도 다녔고 평양에서 살면서 벗들이 적지 않고 녀동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서인지 내가 알고있는 녀동무들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던중 우연히 무도장에서 동무를 보았고 같이 춤을 추었는데, 내가 아까 말했듯이 나는 동무에게서 깨끗하고 순진하고 부드러운 녀성의 미를 보았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내가 동무를 꾀이자고 추어주는것이 아닙니다.

내가 미순동무에게 아름다운 얼굴이며 맑은 목소리며 하는 찬사를 했는데 그것도 진심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로 동무에게 감동된것은 나의 찬사를 듣고 새침해지는 동무의 얼굴을 보았을 때입니다. 그리고 피곤하다면서 실례하겠다고 말했을 때입니다.

처녀들은 보통 추어주면 좋아하는데 미순동무는 그렇지 않더란 말입니다.

나는 좀 창피한 감이 들었으나 이 처녀를 놓치면 안되겠다고 마음먹고 여기까지 끌고왔습니다. 나의 무례한 행위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자기의 속심을 털어놓은 지금 나를 뿌리치고 가버린다고 해도 나는 탓하지 않겠습니다.

나로서는 귀중한것이 나에게서 날아가버리는것처럼 아쉽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철수는 시원하게 한바탕 웃었다.

미순이는 철수가 하는 말을 들으며 청년의 진심을 엿볼수 있었다. 허황한 미사려구로 처녀들을 들뜨게 하고 환심을 사려하는 허풍쟁이는 아니라고 미순이는 확신할수 있었다.

잘생기고 말이 류창하고 세련된 청년이지만 솔직하고 평민적인것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격이 있는 도시청년이고 성기관 일군이였다.

미순이는 철수가 믿음직해보여지면서 차츰 마음이 안정되여갔다. 그는 용기를 내여 말했다.

《저는 보잘것 없는 농촌녀자입니다. 저도 저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땅김을 쏘이면서 자랐고 땅을 가꾸었고 지금도 아버지는 농사를 짓고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 왕이 학자들에게 지시하기를 세상리치에 대하여 해박하게 서술한 책들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이 열달구지나 되는 책을 실어오자 왕은 내가 언제 저것들을 읽을새 있느냐, 줄여서 가져오너라 하고 다시 분부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달구지 되게 실어왔는데 왕이 다시 줄이라고 하여 한궤짝으로 줄이고 또 책 한권으로 줄이였는데 왕이 그것도 읽을 짬이 없으니 한마디로 말해보아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학자는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은 땅에서 태여나 땅으로 돌아간다는것입니다.〉하였다고 합니다.

미순동무네 가정은 참 훌륭한 가정입니다. 농민이 없으면 누가 우리한테 하루 세끼 먹을 밥을 주겠습니까!》

미순이와 철수는 그러루한 이야기를 좀더 하다가 다시 원무속에 들어갔다. 제사공장 로동자처녀들이 춤을 다 추고 들어가자 유보도의 군중무용은 끝났다.

그후 미순이는 철수를 더 만나지 못했다. 서로 찾아가지 않았고 공공장소에서 우연하게 상봉하지도 못했던것이다. 미순이는 이날 철수와 사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직 인연이 깊어지지는 않았지만 녀성으로서, 더우기 처녀로서 남성에 대한 인식이 한걸음 크게 전진했다.

미순이는 때없이 떠오르는 미소짓는 미남자 철수의 얼굴이며 부드럽고 류창하게 울리는 목소리들을 무엇때문인지 가끔 돌이켜보면서 그때마다 얼굴을 붉히군 했다. 그리고 가끔 이것이 진짜 도시생활이구나 하는 환희로운 감정에 휩싸이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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