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5 장

4

(1)

 

로복실은 두주먹을 부르쥐고 사동으로 가는 교외길에 들어섰다. 바람한점 없는 푸근한 날씨여서 그런지 온몸이 땀으로 화락하니 젖었지만 걸음을 늦출수가 없었다. 하늘에서는 뭇별들이 잠에 취해 깜박깜박 조을고있었지만 복실은 졸기는커녕 잠간 앉았다갈새도 없었다.

이제는 자정이 넘었겠는데… 콩 담그어놓은것이 걱정스러웠다. 아침에 열키로나마 담그어놓고 떠났댔으니 불궈진 콩이 세버치가 썩 넘을것이다.

래일 아침 지휘부식당 식탁에 순두부를 한그릇씩 올려놓자면 지금쯤은 콩을 거의다 갈았어야 한다.

로복실은 길바닥의 돌부리에 걸채여 몇번씩이나 넘어질번 하면서도 허둥지둥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고 이악쟁이같은 금실이가 지금 혼자서 콩망질을 하고있을것이다. 키도 얼마 크지 않고 몸도 버들가지처럼 회친회친한게 물찬 제비같지만 얼마나 이악하고 일솜씨가 여물었는지 제노라 하던 로복실이도 번마다 혀를 차군 한다. 전에는 밤중에 실어온 쌀마대 한차를 운전사와 함께 둘이 다 날라 창고에 넣었는데 그가 일하는것을 보고 운전사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무슨 일이나 다 걸싸게 해제낀다. 지어 일부 남자들까지 도리머리질하는 닭의 모가지를 비트는 험한 일도 이를 사려물고 해대는 금실이다.

아버지, 어머니를 너무 일찍 여의여서 얼굴조차 모른다고 한다. 떠돌이생활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다는데… 어찌어찌하여 여기 지휘부식당에까지 들어왔다.

언제인가 금실이가 찬비를 맞으며 남새절임을 하다가 독감에 걸린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고열에 들떠 헛소리를 치며 앓았는데 이상하게도 자기 이름을 계속 부르는것이였다.

《금실이… 금실이… 금실아, 정신차려라.》

로복실은 금실이가 헛소리로 자기 이름을 부르는것을 그때는 환각속이여서 자기가 자기를 찾는것으로 생각했었다. 자기가 남이 되여 자기를 찾는 경우도 있을수 있는것이다.

혹 이름이 같은 친한 동무가 있을수도 있는것이다.

하지만 어제 문화부려단장이 찾기에 그의 방으로 갔다가 이상한 감촉을 받았었다.

문화부려단장이 리금실에 대해 자상히 물어보았기때문이였다.

《금실동무가 고향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합니까?》

《금실동무와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동무는 없습니까?》

《친한 남자도 없습니까?》

로복실은 모두 도리질밖에 할 대답이 없었다.

신통히도 자기가 모르는것만 물었기때문이였다.

《금실동무가 이따금 함경도사투리를 쓰지 않습니까?》

《금실동무가 무엇을 특별히 좋아합니까?》

순간 로복실은 무엇인가 번쩍 뇌리를 치는것을 느꼈다.

(문화부려단장동지가 혹시?…)

물어보는 뜻은 여러가지일수가 있었다.

금실이가 자기 이름을 꿈에서 부른다는것이 어쩐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혹시 금실이가 자기를 속이고 사는 처녀는 아닐가?

아니, 아무리 눈밝혀 보아도 금실은 모든 일이 진심이였다.

복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 총각녀석이 사람좋은 문화부려단장이니 엉뚱한 부탁을 했을수 있다. 친형같이 허물없는 사람이니 중매를 서달라고 했을수도 있다.

로복실은 오늘 아침 일찍 삼석으로 떠났다. 거기에 리인민위원장으로 일하는 조카를 만나러 간것이였다. 문화부려단장이 친한 남자가 없는가고 묻는것이 심상치 않은데 빨리 손을 써야 했다.

《글쎄요. 삼촌어머니가 그렇게 좋다면야…》

금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나서 조카가 어줍게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그게 좋을것 같수다.》

시형도 형님도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그런 처녀라면야 저 사람한테 천상배필이지요.》

그래서 로복실은 이렇게 기분이 좋아 돌아오는 길이였다.

식당취사장에는 아닌게아니라 불이 켜져있었다.

로복실이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금실은 벌써 버치에 대고 콩물을 한창 짜고있는중이였다. 버치 세개에 하얀 콩비지물이 가득가득한데 콩물이든 베주머니를 암팡지게 주물러 짜대는 금실의 이마며 코등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전등빛에 구슬처럼 반짝이고있었다.

《아니, 벌써 다 갈았니? 애두 참… 밤새 조금도 쉬지 못했겠구나.》

로복실은 서둘러 목도리를 풀고 팔소매를 걷었다.

《먼길을 다녀왔는데 좀 쉬세요. 좀 있다 아궁에 불이나 지펴주고…》

《너두 참… 그 많은 콩을 혼자 다 갈다니. 좀 기다릴게지… 쯧쯧쯧.》

로복실이 혀를 차자 금실은 손등으로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방긋 웃었다. 그러는 그의 땀흘린 얼굴은 발가우리 상혈되여 무척 아름다왔다.

《언니가 그 먼길을 갔다가도 이렇게 밤새워 오는데 나야 방안에서 뭐래요. 콩망질이나 하구 두부나 앗는게 무슨 큰일이라구… 날씨가 밤엔 아직 선선하지요?》

《한참 걸었더니 땀이 나더라. 이젠 봄이 다 됐어.》

로복실은 아궁에 불을 살구고 금실이가 짜낸 콩물을 가마에 부었다. 불은 인차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로복실은 장작가치를 옮겨 불을 조절하고는 부지깽이를 든채 자기도 모르게 금실을 쳐다보았다. 불빛이 얼른거리는 금실의 땀흐르는 얼굴은 볼수록 고왔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리 고와보이지 않아도 지내볼수록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되고 아름다와보이는 그런 사람이 있다. 아마 그의 일솜씨나 마음씨가 아름다움을 다시 빚어내는것인지…

금실이가 그랬다. 오목한 눈에 갸름한 얼굴에 회친회친한 가는 몸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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