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5 장
3
(1)
운전이란 부단한 숙련이 필요하다. 눈을 감고도 조종간과 변속간, 연료공급답판과 제동답판… 등 운전부안의 모든 설비들을 자유자재로 다룰수 있게 정통하고 숙련되여야 하는것이다. 제 몸에 달린 손과 발처럼…
(다시는 그런 사고가 없으리라, 다시는…)
다시 중대로 돌아온 전기련은 짬만 있으면 강실로 가서 모형훈련기재에 앉군 했다.
오늘도 저녁밥을 먹고 짬이 좀 생기자 강실로 들어가 모형기재우에 올라앉았다.
전진, 후진, 정지, 출발, 변속, 2단, 3단, 우로, 좌로… 각이한 속도에서 연료조절…
입속으로 각이한 정황을 내려보며 부단히 반복동작을 했다.
《다시, 순간정지! 좋다. 출발!》
땅크는 다시 전진한다.
《2단, 3단… 좌측에 물웅뎅이… 급선회…》
땅크는 다시 산굽이를 돌아간다. 그러자 피뜩 저앞에서 보따리를 옆에 끼고 한 처녀가 땅크를 맞받아 걸어온다. 겁도 없다. 까만 치마에 하얀 저고리… 아니, 그것은 자동차적재함우에서 무엇인가 담아 쌓아놓은 마대무지에 등을 기대고 서서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모습이다.… 그게 리금실이라 했지. 아니, 틀림없는 서용숙의 모습이다. 그 서용숙이가 또다시 나타나 마음을 든장질하는것이다.
(어쨌든 속시원히 한번 만나보아야겠어.)
문득 전기련은 자기가 허튼 생각을 하며 조종간을 잡은채 멍청히 훈련기재에 앉아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순간 가슴이 섬찍했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무슨 그런 생각을… 이러다간 또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겠구나.)
기련은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아니, 안돼. 내 다시는 용숙이 생각을 안할테다.)
기련은 입술을 깨물며 심호흡을 했다.
《자, 또 전진! 전속으로!》
그러나 서용숙은 그날밤 꿈에 또 나타났다.
꿈에서의 서용숙은 소꿉시절 머리를 뒤로 꽁지고 나풀나풀 줄넘기를 하던 모습이다. 아니, 사방이 돌담벽으로 둘러싸인 함정같은 구뎅이 밑바닥에 앉아 외롭게 홀로 울고있는 모습이다. 무인지경산속에서 우물같은 함정에 빠져 울고있다.
《오빠, 오빠가 그러고있으면 난 어떻게 해요?》
《조금만 참아. 내 인차 장대기를 얻어올게. 그걸 잡고 나오면 돼.》
전기련은 황황히 장대기를 얻으러 여기저기 헤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장대기가 아니라 단너삼을 넣고 고은 토끼곰을 안고 용숙이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 용숙이가 할아버지께 해드리려던 토끼곰입니다. 용숙의 정성으로 생각하시구…》
할아버지는 장죽으로 문턱을 두드리며 꺼이꺼이 울었다.
《난 토끼곰이 아니라 내 손녀를 봐야겠어. 내 손녀를 데려다달라구. 우리 용숙이야 기련이 네가 꼬여내질 않았나. 중학교에 갈 준비를 하던 애를 네가 단너삼이요 뭐요 하면서… 찾아오게, 그 앨 데리고오는게 진짜병문안이야. 어서.》
할아버지가 장죽을 쭉 내뻗친다. 대문밖을 가리키던 그 장죽이 별안간 길어지더니 장대기로 변했다. 기련은 환성을 올렸다.
《아, 장대기… 됐어요. 이걸 좀 주세요. 내 용숙일 구원해올게요.》
기련이는 장대기를 들고 함정이 있던 곳으로 뛰여갔다. 그러나 아무리 가고가도 함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긴 장대기를 들고 정신없이 용숙이를 찾아다니던 기련은 그만 벼랑에서 굴러떨어지고말았다.
《앗!》
기련은 와닥닥 뛰쳐일어났다. 깨나보니 꿈이였다.
기련은 온몸이 땀에 화락하니 젖은것을 느끼며 후- 한숨을 내쉬였다.
한동안 그대로 앉아있다가 마음이 좀 가라앉자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번엔 문화부려단장의 진지한 얼굴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사연이 있었구만. 참 기막힌 일이요. 그런데 말이요. 그 금실동무가 서용숙이 분명하다면 왜 지금껏 아버지, 어머니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고향에 안갔겠소. 이름은 왜 바꾸고… 혹시 꼭같이 생긴 녀자들이 아닐가?》
문화부려단장이 화목장에 찾아왔다가 밤에 초막에 함께 누워 같이 생각을 굴려보며 하던 말이였다.
그때 화목을 하러 왔던 련대의 기본인원들은 철수하고 전기련이만 남게 되였는데 뜻밖에도 화목장을 돌아보러왔던 문화부려단장이 하루밤 함께 자고 가겠다면서 초막으로 왔던것이다.
《려단에 가야 빈방에서 또 혼자 자겠는데 저리 여기서 동무해서 함께 자자구.》 하면서…
문화부려단장은 구분대들에 나가면 자주 병사들과 한잠자리에 들어 귀속말도 잘 들어주군 한다고 했다.
《금실이가 서용숙이라면 고향에 소식이라도 보냈을것이 아닌가. 소식도 전할 처지가 못되여 그런다면… 어쨌든 정말 그렇다면 무슨 깊은 사연이 있을것이고…》
전기련은 자기의 일을 두고 문화부려단장이 너무 마음을 쓰는것 같아 미안한 어조로 말했다.
《부려단장동지, 고맙습니다. 앞으론 꼭 제구실을 하겠습니다.》
문화부려단장은 전기련의 손을 더듬어잡았다.
《나도 동무의 결심을 믿소. 그런데말이요. 그 덤비는 성미는 꼭 고쳐야 돼. 운전수가 그러면 무슨 실수를 할지 모른다니까.…》
전기련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왜 자꾸 덤비게 되는지 정말 속이 탑니다.》
《기련동무, 내 과업을 하나 주겠는데 무조건 해내야 해.》
전기련은 과업이라는 말에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문화부려단장은 웃으며 가슴을 눌러눕혔다.
《누우라구. 누워서 말하자는데…》
《무슨 과업이든 맡겨주십시오. 제 몸이 열쪼각이 나도 기어이 수행하겠습니다.》
기련은 가슴을 부풀리며 숨을 크게 몰아쉬였다. 형님같은, 어쩌면 누이같기도 한 이 문화부려단장이 직접 주는 과업인데… 당장이라도 일어나 맡겨주는 과업을 밤을 밝히면서라도 해내고싶었다.
《좋아. 기련동무로서는 좀 힘든 과업인데… 각오가 좋단 말이요.》
문화부려단장은 웃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주는 과업이란 다른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거요.》
《예?》
전기련은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는가 해서 문화부려단장을 돌아보며 몸을 또 일으키려 했다.
《누워서 말하자는데…》
《저… 그럼 과업이…》
《그렇소. 그림을 그리는거요. 연필로… 전동무가 운전하는 땅크의 운전부와 발동기를 비롯해서… 각종 부속들까지 잘 그려야겠소. 형태만 대충대충 막 그리지 말고 화가들이 속사하는것처럼 구체적으로 명암이 뚜렷하게… 실물처럼… 정성을 다해서… 섬세하게…》
전기련은 그만 락심하고말았다. 뚝심이 드는 일이나 군사훈련과업이라면 몰라도 그림을 그리는 일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