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5 장
2
(4)
그처럼 안타까이 찾는 셋째아들이 그 독속에 들어가 쪼그리고앉아있었던것이다. 나흘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않은 계천은 거의 실신상태에 있었다.
《허, 그녀석, 다 굶어도 그 애만은 공부시켜야 할가부다. 손자, 손녀 여섯중에 그래도 셋째가 그중 나은것 같다.》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하는 말이였다. 하여 소학교에는 입학하였지만 입학한 첫날에 벌금부터 물어야 했다. 소학교 마당에서 체육수업을 받고 목이 말라 박우물가에 갔다가 물을 마시는 애에게 《야, 그 바가지 좀 달라.》라고 말했는데 왜놈교장이 조선말을 했다고 죽도록 때리더니 당장 벌금 10전을 내라고 하는것이였다.
한달 월사금 20전을 내는것도 엄청나서 지금껏 학교에 못 다녔는데 《바가지》라는 조선말 한마디에 10전이라니… 이런 날강도가 어디 있단 말인가. 차마 집에 돌아와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다음날은 학교에 갔다가 왜놈교장에게서 벌금을 안냈다고 또 매를 맞고 쫓겨났다. 그렇다고 할아버지에게 사연을 말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는 그날부터 학교에 간다고 하고는 산에 올라 광주리감인 싸리나무를 해다가 장에 내다팔았다. 며칠동안 악을 쓰고 돈을 벌어 벌금을 물고서야 학교에 다시 다닐수 있었다.
그렇게 학교에 다니게 된 그는 학교에 가면 곁눈 한번 안팔고 공부에 전념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버지, 어머니 일손을 도와 농사일을 하였다.
새벽이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지주집 조밭에 가서 김을 매주군 하였다. 그래야 점심때 풀죽을 쑬 좁쌀 한줌이라도 얻어올수 있기때문이였다.
김을 매고 돌아와서도 그냥 집안에 들어와 앉게 되지 않았다. 형제들가운데서 유독 혼자 공부할 특전을 지녔는데 무엇인가 하나라도 일을 더 하고싶었다. 그래서 집안팎을 돌아보며 뒤울안의 호박넝쿨을 올려주고 마당귀퉁이에 놓은 오이손도 바로잡아주고 닭이 파헤친 울바자밑의 흙도 덮어주고 발로 꽁꽁 밟다가 빨리 들어와 밥먹고 학교에 가라는 어머니의 재촉을 받고서야 집안에 들어가 차려놓은 밥상의 수저를 들군하였다. 학교갈 때에는 어린 아이들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네워주기도 했다.
일요일만 되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서 30리가 넘는 읍거리에 내다 팔아 월사금을 보태군 하였다.
갈음옷이 없어 한겨울에도 찬바람이 윙윙 나드는 베옷 한벌을 걸치고 다녔다.
이렇게 아글타글하여 소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에는 갈 엄두도 못내고 산골에 그냥 눌러앉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화전농사를 지었다. 산짐승도 잡고 강가에 나가 반두로 물고기도 잡아다 팔아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해방은 궁벽한 산골마을에도 찾아와 계천은 어느덧 민청원이 되고 문맹퇴치사업에도 동원되게 되였다.
달밝은 저녁, 언덕을 넘어 이웃마을 성인학교로 책을 끼고 글을 배워주러 가던 길은 얼마나 즐겁고 보람찼던가.
산기슭을 일구고 배나무, 사과나무도 심었다.
그러나 그때도 베옷만은 벗지 못했다. 너무도 궁벽한 산골이였던것이다.
그는 군대에 나와서야 흰쌀밥을 맛보았다. 식탁에 놓인 밥그릇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야, 흰쌀밥!》하고 환성을 올려 사람들을 웃기였다. 그는 그 귀중한 흰쌀밥을 밥알 한알이라도 흘릴세라 깨끗이 먹었다.
모든것이 다 귀중했다. 더구나 인민들이 한푼두푼 모아바친 군자금으로 마련된 땅크가 웬만한 한개 공장과 맞먹는다는것을 알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계천은 그 하늘같은 믿음과 기대에 보답 못할가봐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을 아껴가면서 땅크구조학과 운전기술에 정통하고 땅크를 눈동자와 같이 아끼고 사랑하였다. 하지만 이젠 모든것이 다 끝났다.
그 귀중한 땅크를 굴려 상처까지 입혔으니…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원쑤놈들은 벌써 전쟁준비를 끝내가고있다는데 전 오히려…》
안동수는 가슴이 쩌릿해오는것을 느끼며 한계천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려주었다. 사고를 치고 괴로움에 모대기는 전사의 마음이 그대로 안겨왔던것이다.
《계천이, 너무 락심마오. 부대에서는 심중히 토의해보고 계천동무를 교육용땅크에 태우기로 했소.》
《예?》
한계천은 깜짝 놀라며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그게 정말입니까?》
안동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하지만 교육용땅크에 옮겨탔다고 해서 신심을 잃어서는 안돼. 계속 앞으로 전진해야 돼.》
한계천은 큰숨을 몰아쉬였다. 울대뼈가 턱밑까지 꿀꺽하며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그러니 제대도 아니고… 후방부대도 아니고…
갑자기 눈앞이 탁 흐려졌다.
《교육용땅크도 잘 관리하면 얼마든지 전투에 참가할수 있을게요. 계천동무, 우린 어떻게 하나 하루빨리 싸움준비를 완성해야 하오. 진펄이든
날벼랑이든 우리
이것만이 지난날 천덕꾸러기였던 화전농사군에게 땅을 주시고 오늘은 귀중한 땅크까지 맡겨주신
한계천은 목메인 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믿음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안동수는 한계천의 손을 꽉 잡아쥐였다.
《우리 약속하자구. 교육용땅크를 잘 관리해서 전투용땅크처럼 어느 순간에도 자기 임무를 수행할수 있게 해놓겠다는것, 그 어떤 급경사도 능히
극복할수 있게
한계천은 자꾸만 솟구쳐오르는 뜨거운것을 애써 삼켰다. 그러자 이번에는 심장이 쿵 하고 뒤채이며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교육용땅크를 전투용땅크처럼 만들고 그것으로 급경사를 극복하는 시범방식상학을 하다니…
수치스러운 처벌제대가 아니라 훈련시범방식상학을 하다니…
한계천은 으드득소리가 나게 두주먹을 부르쥐였다. 힘이 생겼다. 온몸으로 쭉쭉 퍼져나간다.
한계천은 별안간 코등이 찡해져 눈을 슴벅거리였다. 사고를 치고 처벌을 받고… 이렇게 주눅이 들어있는 구실도 못하는 전사를 찾아와 힘을 주고 신심을 주고 약속까지 해주는 문화부려단장이 눈물나게 고마왔다.
《알았습니다. 제 그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
그길로 문화부중대장을 만난 안동수는 한계천을 잘 도와줄데 대한 문제, 모든 땅크병들이 이번 사고에서 교훈을 찾고 주저하고 동요할것이 아니라 신심과 배짱을 가지고 더 높은 훈련목표를 제기하고 훈련을 내밀데 대한 문제, 이런 때일수록 생활을 더욱 락천적으로 조직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해주었다.
《참, 동무네 그 서창득이란 동무 말이요. 어때, 좀 발전했나?》
문화부중대장이 어줍게 웃었다.
《발전은 좀 했지만 아직은… 만나보시겠습니까?》
안동수는 도리머리를 했다.
《후에… 분공을 다 수행한 다음에 만납시다. 그렇게 전해주시오. 분공을 수행한 다음에 려단이 다 모인 앞에서 검열하겠단다고 말이요.》
한계천이와 서창득의 문제는 서로 성격이 달랐다.
서창득이를 이제 만난댔자 이 이상 더 계발시킬 방법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그럼 난 가겠소. 수고하오.》
안동수는 한손을 들어보이며 한마디 하고는 다음 중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