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5 장
2
(3)
《그래 어떻소. 계천동무가 정말 용감하게 땅크를 몰아내려갔다던데… 남들이 주저할 때 선참으로 나섰댔다니 무슨 타산이 있었겠지?》
한계천은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머밋머밋 했다.
이렇게 문화부려단장앞에까지 서니 아예 주눅이 들어버렸다. 혀가 토막이라도 난듯 떠듬떠듬거렸다.
《사실… 특별한 타산은 없었습니다. 다만… 어쨌든 그 경사지를 극복해야 한다는… 우리는 정치상학때 항상 앞에 적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걸 배웠습니다.… 전투로 생각하고 훈련해야 한다고… 실지 앞에 적이 있다면… 반드시 그 경사지를 극복해야 적과 싸울수 있다면… 돌아설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동수는 한계천을 정겨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안아주고싶도록 정이 갔다.
《옳소, 동무의 생각은 천만번 옳았소, 각오도 좋았고… 그런데 왜 그렇게 되였을가?》
한계천은 기여들어가는 소리를 했다.
《저의 운전기술이 따라서지 못했습니다. 》
《물론 운전기술이겠지. 그런데… 계천인 그 경사지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려고 생각했댔소?》
《전 사실 경사가 급한것만큼 사선으로 제동을 쓰며 내려가면 될것만 같아서…》
《사선이라… 그래서 땅크가 굴지 않았을가. 땅크가 경사가 급한 곳에서 모로 서게 되였으니 이렇게 지쳐내리다가… 무엇에 걸리면…》
안동수가 한계천이 긁적이던 나무막대기를 들고 땅크의 모형을 그렸다. 급경사지에 선 땅크가 미끄러져내리는 그림이였다.
《보오. 땅크가 경사지에서 이렇게 지치면서 내려가댔겠지?》
《그런것 같습니다. 아니, 그랬습니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렸는데…》
《대담하게 직선으로 내려갔으면 어떨번 했소. 바께쯔에 물을 담고 냅다 휘돌리면 관성의 법칙에 의해 물이 안 쏟아지지.…》
《글쎄, 땅크의 속도를 가지고 어떨는지… 더 연구해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
《음, 연구를 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오.
계천동무가 시도는 용감했소. 그래야 하오. 하지만 그와 함께 운전기술을 따라세워야 하오. 그렇지 못하면 귀중한 땅크를 못쓰게 만들수 있소.》
《정말 죄스럽습니다. 저같은 화전농사군에게 그처럼 귀한 땅크를 맡겨주었는데…》
《화전농사를 했소?》
《예.》
안동수는 머리를 끄덕이며 새삼스러운 눈길로 한계천을 쳐다보았다.
《고향은 어디요?》
《함남도 정평입니다. 장원면 서성리라구… 산골입니다. 해방전까지만 해두 저희들은… 너무 못살아서… 겨울두 베옷 한벌로 나군 했습니다.》
《음, 그래서 동무가 그렇게 모든걸 다 아끼구 귀중히 여기고있구만. 내 문화부중대장동무에게서 들었소. 정치상학학습장얘기랑 담배갑얘기랑…》
한계천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불쑥 언제인가 문화부중대장이 정치상학 뒤끝에 한계천 자기의 정치상학학습장을 들고 한장한장 번져보이며 중대군인들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던것이다.
《동무들, 이 정치상학학습장을 좀 보시오. 첫장 첫줄부터… 자, 자… 마지막장, 마지막줄까지… 얼마나 깨끗이 썼소. 빈공간이 없이 빼곡이 인쇄한것처럼 정히 쓰면서도… 다 쓰도록 표지도 새것처럼 깨끗하지 않소. 다 이 계천동무를 따라배워야겠소.》
그러더니 그 이야기를 이 문화부려단장에게까지 한 모양이다. 담배갑이야기도 그랬다. 한계천은 담배를 다 피운 다음 빈 담배갑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파지로 바치군하였다. 목달개를 달았던 실도 버리기 아까와 정히 빨아서 다시 쓰군하였다.
《집에는 지금 누가 있소?》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님과 누이, 동생들이 있습니다. 6형제인데… 제가 셋째입니다.》
《음, 대식구로구만.》
《해방전엔 온 식구가 다 달라붙어서 일을 해도 풀죽도 먹기 힘들었습니다.》
한계천은 담담한 어조로 문화부려단장이 묻는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계천이네는 해방전에 고원군 수동산골에서 화전을 일구고 소작살이를 하며 근근히 살아왔었다.
한계천은 세상에 태여난지 두달도 안되여 아버지, 어머니가 부역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젖도 변변히 먹지 못하고 자랐다. 왜놈들이 공사장에 끌고가 3년동안 마소처럼 부려먹으면서 집에도 보내지 않았던것이다.
어머니는 퉁퉁 불어오른 젖을 남몰래 숲속에 들어가 울면서 짜버려야 했고 한계천은 감자를 갈아서 쑨 죽을 먹어야 했다. 그러다나니 영양실조로 몇번이나 죽는다 산다 하며 어른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면 안되였다.
풀죽도 변변히 먹지 못하다나니 나이가 들면서 키는 좀 커갔지만 팔다리는 여전히 나무꼬챙이같은것이 그 다리로 걸어다니는것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몸은 그렇게 약했지만 배움에 대한 꿈만은 누구 못지 않게 컸다. 한계천은 학교에 보내달라고 매일처럼 아버지, 어머니에게 졸라댔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산속깊이 들어가 숯구이를 하여 판 돈까지 깡그리 보태여야 풀죽이나마 겨우 연명하며 살아가는 형편이라 아버지도 어머니도 한숨만 내쉴뿐이였다. 하지만 불길처럼 타오르는 배우고싶은 열망만은 좀처럼 끌수가 없었다. 하도 졸라대자 어머니는 너무도 안타까와 울면서 부지깽이로 엉뎅이를 때렸다.
《너 정말 애를 먹이겠니. 응, 이녀석아. 그렇게 속을 태울바엔 콱 나가 죽기나 해라.》
한계천은 울면서 대들었다.
《공부를 시켜달라는데 왜 때려요. 좋아요, 내 나가 죽겠어요. 공부도 못할바엔 죽고말겠어요.》
한계천은 집을 뛰쳐나갔다. 정말 그날 저녁에 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날도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숯구이막에 있던 할아버지까지 내려와 그를 찾아 헤메이였다. 어디인들 찾아보지 않았으랴. 나흘째되는 날 저녁 김치독을 가시려고 뒤울안으로 갔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