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5 장

2

(2)

 

어이가 없어 서창득을 쳐다보던 1중대 병사들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서창득은 계속 《노들강변》을 불러댔다.

병사들은 너무도 우스워 눈물까지 찔금찔금 흘리며 대굴대굴 굴었다.

그러자 서창득은 우뚝 서버리더니 뒤짐을 지고 눈을 딱 감았다. 그리고는 목에 피대줄이 서도록 《노들- 강변이 좋다. 노들강변이 좋지.》하고 냅다 뽑아댔다.

1중대 응원대장이 이러다간 정말 허리가 끊어지겠다면서 제발 그만하라고 사정을 해서야 서창득은 허허허 웃으면서 들어오고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서창득의 《대담성》의 시위와 웃음으로만 끝난것이 아니라 이렇게 분공으로 이어진것이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이 소문이 려단안에 쫙 퍼졌는데 문화부려단장이 문화부중대장에게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는것이였다. 문화부려단장이 그런 분공을 주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분공을 수행하면 자기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했다던지…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서창득이로서는 이만저만 어려운 분공이 아니였다. 분공수행정형을 문화부려단장이 직접 불러올려다 숱한 사람들앞에서 검열해볼지 누가 알겠는가.

서창득은 대번에 주눅이 들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을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악보책을 들고다니며 열성을 내지만 아직 묘리를 몰라 땀을 빼고있는것이다. 악보를 잘 보는 문화부중대장이나 대대선전원에게 가서 배울 때는 그런대로 할것 같았으나 혼자 해볼 때는 아직 음감이 부족해서인지 도음이 불안스레 씨가 될 때도 있고 레로 될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서창득자신은 그런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듯 쏠이 되든 씨가 되든 하면 된다는 식으로 열성스레 쏠쏠도쏠 하고있는것이다.

한계천은 또다시 후 하고 한숨을 내뿜었다. 그래도 저 창득인 희망이라도 있지 않는가.

한계천은 입을 쩝쩝 다셨다.

《전번에 문화부중대장동지가 말하지 않았나. 악보는 하루이틀사이에 어떤 개별적사람에 의하여 발명된것이 아니라 인류공동의 지혜로 수세기동안에 이룩된 귀중한 음악적재보이라고 말이네.》

《그래도 구체적으로 처음 시작을 뗀 사람이야 있겠지?》

《글쎄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 온 세상 사람들에게 노래를 표기하고 부르는 법을 만들어주었으니… 고마운 사람이라고 해야지.》

《후유-》 멍하니 한계천을 바라보던 서창득은 대단한 난관에라도 봉착한듯 휘파람소리같은 긴 한숨을 내뿜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또 쉼터의자를 투덕투덕 두드리며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쏠쏠미쏠 라쏠…》

한참 웅얼대던 서창득은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듯 《참!》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한계천이가 땅바닥에 무엇인가 그리며 생각에 골똘한것을 보고는 방해된다고 생각했는지 슬그머니 일어나서 병실뒤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도 《쏠쏠미쏠》하고 웅얼거렸다.

한계천은 뒤가 별로 허전한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서창득이가 저 병실뒤로 멀어져가고있었다. 한계천은 이윽토록 그를 쳐다보았다.

저 서창득이도 끝내는 시창을 능숙히 할줄 알게 될것이다. 입대하였을 때만도 제 이름글이나 겨우 쓸줄 알던 그가 지금은 얼마나 발전했는가. 《로동신문》도 좔좔 읽고 정치상학시간에 토론도 곧잘 했다. 상식수준도 얼마나 높아졌는지 모른다.

머슴살 때 너무도 배가 고파 소구유밑창에 깔린 콩 댓알 주어먹는것을 본 지주놈은 《네놈이 이렇게 알자는 다 골라먹는데 소가 어떻게 살이 지겠는가.》고 하면서 다짜고짜로 머리를 소구유에 막 짓쪼아주었다고 한다. 이때 지주놈과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던 왜놈순사놈은 머슴놈이 배가 고파하는데 배불리 먹여주어야 하지 않는가고 하면서 어린 서창득이를 끌고가 소배설물이 있는 시궁창에 머리를 구겨박고 《먹어라, 실컷 먹어라. 조선머슴이나 이것도 상등밥이다.》하며 너털웃음을 쳤다. 서창득은 너무도 분해 두손으로 소배설물을 쥐여 그놈의 면상에 콱 뿌렸다. 그러자 그놈은 불맞은 승냥이처럼 펄펄 뛰며 창득이가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마구 차고 때렸다. 그것이 항상 가슴에 맺혀있는 서창득은 해방후 장군님은덕으로 땅을 분여받고 농사를 짓다가 다시는 노예살이를 할수 없다면서 총을 잡았다. 그 무엇을 해도 아글타글 모든 정력을 다 쏟아붓는다. 그래서 이렇게 발전도 빠른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게 뭔가.

한계천은 슬며시 눈길을 돌렸다.

심장 한끝이 무엇에 깨물리운듯 뜨끔해왔다.

나야 그래도 해방후엔 앞마을, 뒤마을로 밤깊은줄 모르고 찾아다니며 서창득이같은 까막눈들에게 글을 배워주던 성인학교선생이 아니였던가.

내가 글을 배워주던 그 사람들이 이 선생이 땅크를 굴려먹고 제대되여온다는것을 알면 뭐라고 할가. 그 수치를 어떻게 한단말인가.

한계천은 벌써부터 얼굴이 홧홧 달아오르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무얼 그렇게 생각하오?》

갑자기 머리우에서 울리는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한계천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순간 그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뜻밖에도 앞에는 문화부려단장이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서며 손을 번쩍 올려 거수경례를 했다.

《문화부려단장동지, 중사 한계천 지금…》

한계천은 말꼬리를 어물어물 끌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눈길을 슬며시 떨구었다. 발앞에는 나무꼬챙이로 긁적거린 자리가 있었다. 안동수 문화부려단장은 빙긋 웃으며 그의 손을 내리워주었다.

《아, 앉소. 앉으라구… 그런데 이건 뭐요. 무슨 그림이요?》

《저… 경사지… 땅크극복방도때문에…》

한계천은 말을 얼버무리며 문화부려단장의 뒤에 서있는 문화부중대장을 얼핏 보았다. 그의 얼굴이 무척 심각해보였다.

문화부려단장이 땅크를 굴려먹고 처벌제대되게 된 이 한계천이를 마지막으로 만나보겠다고 해서 안내해온 모양이였다.

한계천은 좋은 일이 아니라 불명예스럽게도 사고를 치고 제대때문에 문화부려단장이라는 까마득히 높은 지휘관을 만나게 된것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허허허. 경사지극복방도겠지, 땅크극복방도가 아니구…》

안동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한계천의 어깨를 눌러앉히고 자기도 옆에 앉았다.

《문화부중대장동무는 가서 자기 일을 보오.》

문화부중대장이 경례를 하고 돌아서자 안동수는 민망한 눈길로 한계천을 돌아보았다. 서리맞은 배추떡잎처럼 어깨가 후줄근해진 그를 보니 가슴속에서 련민의 정이 불쑥 치밀어올랐다. 안동수는 바람에 날려와앉은 마른 버들잎을 그의 어깨에서 집어던지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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