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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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피창린의 지시로 관리위원장과 김덕준아바이를 관리위원회에서 대기하게 했다.

논벌에 나가있다가 관리위원회마당에 들어온 피창린은 먼저 김덕준아바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전번 초봄에 보내준 고압뽐프를 고맙게 받았습니다.

그 뜨락또르가 협동화가 끝난 후에 수상님께서 보내주신 첫 뜨락또르인데 책임성있는 운전수가 정하게 다루고있지만 오래된것이여서 고장이 좀 생기군 합니다. 고압뽐프를 갈아댔더니 지금 인삼먹은 놈 힘쓰듯 씽씽 달리고있습니다.》

덕준이가 이렇게 말하자 피창린은 껄껄 웃으며 잡고있던 그의 손을 다시 흔들어주었다.

리규성이와 김덕준아바이는 피창린의 요구에 따라 그에게 모내기진척정형과 애로 그리고 이 기간에 나타난 비정상적이라고 보아지는 현상들에 대하여 통보했다.

《며칠전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였습니다.》

리규성이가 말했다.

《모내기를 시작하자 바람이 터졌는데 방금 꽂은 벼포기들이 모조리 뽑히고 떠서 밀려갔습니다.

군인민위원회에 전화를 했습니다. 모내기를 중지하겠다고 말입니다. 부위원장이 펄쩍 뜁니다.

〈모내기를 중지한다? 동무 제정신이요.〉 이렇게 송수화기가 터져나가게 소리칩니다. 물론 모내기를 중지한다는것은 엄중한 일이지요. 그렇기때문에 군에서도 도에서도 〈하라〉는 소리는 해도 〈중지하라〉고 대답을 줄 사람은 없지요.

그러나 나는 중지하겠다고, 〈바람이 부는 속에서도 계속 전투를 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애써 기른 숱한 벼모를 랑비하고 그것들을 주어다가 바람이 잦은 뒤에 다시 모를 꽂으면서 숱한 로력을 랑비하는 그런 죄되는 일을 할수 없다고 대답하고 송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논판에 들어선 인원을 다 밭에 돌렸다가 바람이 잦아든 오후에 모내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동무가 그 자유주의때문에 비판을 받았다는거요?》

피창린이 수첩에 적으며 물었다.

《그날 군에 보고한 모내기실적이 다른 날에 비해 훨씬 떨어졌지요. 그러자 엄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홰불을 켜들고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실적을 보충하라는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지시를 거부했습니다. 밤을 새우면 다음날은 어떻게 일을 합니까?》

김덕준이 보충했다.

《군에서는 도에다가 실적이 떨어진 모내기전투를 보고하기가 쉽지 않았을겁니다. 결국 모내기실적이 떨어진 모든 책임은 우리 관리위원장이 져야 했습니다.》

피창린이 다 듣고나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농사일이 곡절을 겪지요. 봄에 칭찬받은 사람이 가을에 가서 비판을 받고 봄에 비판받은 사람이 가을에 칭찬받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농사를 직접하는 농민들의 책임감, 창발성, 결심이 중요합니다. 리규성관리위원장이 옳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의 딱한 처지도 리해하여줍시다. 그도 중지하라는 대답을 어떻게 주겠소. 조합에서 자체로 결심하기를 바랐었지.

지금 농업성에서 여간 조이고있지 않습니다.》

그는 이쯤 자기의 견해를 내비치고 《또 무엇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런건 어떻게 해결 못합니까?》

김덕준아바이가 이마살부터 찡그리였다.

《우에서 조이고있는것은 좋습니다. 중앙에서 내려오고 도에서 내려오고 군에서도 내려와 통제합니다. 우리 조합에 도인민위원회 지도원, 군당지도원(군당지도원이 아니면 군인민위원회 지도원입니다.) 그리고 관개관리소사람, 농기계작업소사람…

하여튼 농촌총동원바람이 부니까 그걸 이름 걸고 숱한 사람들이 〈지도〉한다고 내려오군 하는데 제 생각에는 도시에서 지원나오느라고 오는게 아니라 〈피신〉하느라 오는것 같습니다.

물론 진짜 지도하는분들이 있습니다. 도, 군에서 오는 지도원들, 부장들, 별을 단 내무원들이 다 우리를 지도하는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에 의견이 있습니다.

한 논배미에 도사람이 와서 논머리에 서서 〈동무, 평당 포기수와 포기당 대수를 정확히 지켜야 하오.〉하고 모내기하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줍니다. 그리고 한동안 지켜서있다가 갑니다. 조금후에 군사람이 바로 그 논머리에 와서 가르침을 줍니다. 〈모를 지내 깊이 꽂누만.〉 농민들은 대답합니다, 〈알았습니다.〉 한동안 지나서는 어깨에 별을 단 사람이 와서 〈당신네 아침 5시에 나온다는데 아침밥을 언제 해먹었소? 내가 들으니 5시에 나와서 모판에서 모를 뜨고 그 다음에 집에 들어가서 밥먹고 허리도 좀 편다는데 그게 맞소?〉하고 따집니다. 농민들이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간혹 그렇게 모를 뜬 다음에 집에 들어가 허리펴는 사람이 있긴 하겠지만 우리는 모두 새별을 보며 논에 나가서 달이 뜰 때 들어옵니다. 래일 우리와 같이 하루 지내보면 알게 될겁니다, 새벽 5시에 모판에 나오시겠습니까?〉 그 사람이 그 시간에 모판에 나왔을가요, 나오지 않았을가요?

도당위원장동지, 저는 그가 5시에 어김없이 모판에 나왔고 종일 농민들과 같이 일했을것이라고 믿고싶습니다.

제가 제기하고싶은것은 종일 그렇게 조합의 논벌을 다리아프게 돌아니며 조합식당의 쌀과 부식물, 술을 축내는 사람들에게 한개 작업반씩 맡겨주고 같이 논에 들어가 일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주면 좋겠다는겁니다. 너무 길게 말해서 죄송합니다.》

피창린이 떠나간 후 며칠 지나 중앙에서 조합들에 나가있는 무슨 소조요, 뭐요 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도, 군들에서 지도나와있는 인원들이 모두 작업반에 소속되여 같이 일하면서 그 작업반의 농사를 책임지도록 하라는 강한 지시가 내려왔다.

병원에 입원한 창원이는 열흘이 되여오도록 조합에 나타나지 않았다. 몹시 바삐 지내는 조장 최동익을 대신하여 김덕준아바이가 병원에 가보았다. 병원에서는 창원이가 어디서 온 승용차인지 그것을 타고 3일전에 집으로 갔다고 알려주었다.

그후에도 창원이는 더는 최동익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에 가본 김덕준아바이는 배신을 당한것만 같아 눈살을 잔뜩 찌프리고 《음- 음-》 소리를 련발했다. 나이가 어리고 단련이 부족한 녀석이라 해서 특별히 보살펴주었으며 병원에 입원한 기간에도 성의를 다했는데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필경 도망쳤으리라. 나이가 어리다고 어자어자 했더니 버릇을 궂혔는가.

(내가 좀 세게 다루고 교양사업을 원칙적으로 했어야 했을걸. 괘씸한 녀석!)

그는 침을 탁 뱉았다.

그런데 화는 쌍으로 온다고 모내기가 막판에 이를무렵 혜영이가 동익의 뜨락또르를 길가의 도랑창에 처박았다. 앞바퀴축이 부러져나갔다.

일은 이렇게 된것이였다. 아침에 동익이가 논으로 나가려고 뜨락또르에 시동을 거는데 혜영이가 나타났다.

《모내기선수, 논에 나가지 않소?》

동익이가 물었다. 혜영이는 모내기속도가 빨라 향옥이라는 처녀와 함께 《재봉침》이라고 불리웠다.

《나가요.》

혜영은 빨간 리봉을 단 농립모를 매만지며 방글방글 웃었다.

《그런데 여긴 왜 왔소?》

《뜨락또르를 타고 나가려구요. 정확히 말하면 뜨락또르를 몰고 나가려구요.》

《어느 뜨락또르를?》

혜영은 동익의 뜨락또르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을 달았다.

《아직 고장퇴치 같은건 못해도 단독으로 몰고 주행하는건 자신있어요. 요전에 나한테 한번 맡겼던적이 있지요?

물론 동익동무가 만약을 생각해서 옆에 지켜앉아있긴 했지만.》

말이 길어지자 동익은 귀찮아하며 손을 저었다.

《됐소, 됐소. 같이 타고 논으로 나가기오.》

《나한테 운전을 맡기지요?》

《맡기겠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성가시게 굴테니까.

그러나 물론 내가 옆에서 지키는 조건에서요.》

《좋아요. 고맙습니다. 조장동지! 호호…》

이렇게 해서 혜영이가 운전하며 같이 논을 향해 큰길을 달려갔다. 혜영이의 운전솜씨가 괜찮았다.

동익은 그간 짬짬이 시간을 내여 배워주었는데 이처럼 자신있게 운전하니 처녀가 기특했다.

《괜찮아.》

그러자 혜영은 속도를 냈다. 뜨락또르는 이른 아침의 싸늘한 대기를 가르며 씽씽 달리였다.

위구심을 느낀 동익이가 《혜영이 속도를 늦추라구.》 하고 충고를 주었으나 혜영이는 듣지 않았다.

《일없어요. 자신있어요.》

성수가 난 혜영은 속도를 더 냈다.

바로 그때 소달구지가 마주 오고있었다. 소달구지와 어기자면 속도를 죽여야 하는데 면허증을 탄 운전수가 아니고 겨우 주행이나 할줄 아는 혜영이는 당황해서 속도를 죽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속기를 더 밟으며 차를 옆으로 몰아댔다.

동익이가 《아- 아-》소리치며 조향륜을 덮쳤지만 때는 늦었다.

한순간을 놓쳤다. 뜨락또르는 길옆의 도랑창에 코를 박고 심하게 기울어졌다.

그들 둘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아픔을 느낄수 없었다. 수치심, 창피스러움, 후회…

사람들이 모여들고 김덕준이 나타나서 야단을 치는데 영준반장과 리규성관리위원장도 달려왔다. 동익의 터진 이마에 리진료소 준의가 붕대를 감아주었다.

동익은 도랑창에 박혀 숨죽은 차옆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혜영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에 혜영이는 마을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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