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2 장
19
(1)
섣달 그믐날 밤 원화마을의 본촌에서 사는 김덕준아바이는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늬바람이 밤늦도록 윙- 윙- 울부짖으며 집뜨락에 눈가루를 날라왔다.
도깨비의 장난질인듯 온통 흔들어대고 두드리는 귀아픈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처마에 덧댄 양철채양이 벌컥거리고 눈가루가 휘뿌리여지는 창문의 틈새에서는 피리부는것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김덕준아바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게 무슨 바람질이야.》 하고 두덜댔다.
《눈보라가 이는군.》
눈보라가 일면 소외양간, 돼지우리, 닭장에 눈가루가 쓸어들것이다. 그는 솜옷을 입고 털모자를 쓰면서 마당으로 나갔다. 소잔등에 덕석을 씌워주고 돼지한테는 벼짚을 더 깔아준 다음 가마니들을 가져다가 바람을 막아주었다.
새벽녘이 되자 바람은 지친듯 즘즘해졌으며 그리하여 이 집 뜨락에서 도깨비의 음악이 그때야 멎었다. 마을에도 정적이 깃들었다.
김덕준아바이는 새벽에 찾아온 두벌잠을 편안하게 잘수 있었다.
밤잠을 설치여 새벽잠에 깊이 빠져들었으나 날이 푸름푸름 밝아올무렵이 되자 다른 날과 다름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우선 대통에 말리워 썬 잎담배를 다져넣고 성냥을 켜 불을 붙이였다. 잎담배는 갑산에서 살고있는 먼 친척이 보내오는 독초였다. 친척은 정상적으로 잎담배를 소포로 부쳐왔다. 아바이가 아무리 고급담배라 해도 가치담배는 피우지 않는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의사들이 독초가 몸에 해롭다고 하면 그것에 인이 박힌 그는 《이 독초덕에 내가 아직 살아있네.》 하고 반박하군 했다.
그는 대통을 물고서 연기를 풀썩풀썩 날리면서 밖에 나가려고 다시 부엌으로 내려섰다.
어느새 먼저 일어났는지 로친이 소여물가마에 불을 때고있었다. 흰김이 오르고 구수한 여물냄새가 부엌안에 떠돌았다.
부엌문을 연 그는 마치 쓸어나가는 흰김에 밀리운듯 토방에 나섰다. 쿡 찌르는 랭기에 코안이 찡해났다. 입안에서도 흰김이 파란 담배연기와 함께 뿜어나왔다. 희미해져가는 새별이 떠있는 검푸른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깨끗했다. 동녘하늘이 붉으레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맵짠 아침이였으나 기분이 들떴다.
오랜 경험에 의하면 눈보라가 멎은 이튿날은 맑은 하늘에서 해볕이 따뜻하게 쏟아져내리고 날씨가 푸근해진다.
오늘은 설날 아침이다. 날씨도 새해 첫날을 알아주는듯 별로 상쾌했다.
김덕준아바이는 올해에 예순여덟살이 된다. 이 고장에 그보다 나이가 많은 로인들이 더러 있었지만 덕준아바이를 마을의 웃사람으로 여기고있다.
그것은 그가 사회활동을 오래했고 유식하기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건강이 좋아 마을일에 삐치지 않는데가 없으며 중요하게는 자기는 손해를 보더라도 좋은것은 양보하고 스스로 힘든 일을 맡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입히기때문이다.
마을일에 발벗고 나서는 그를 토지개혁때 농촌위원회 위원으로 선거한것이 우연치 않다. 마을사람들에게 지주놈의 토지를 빼앗아 골고루 나누어주는 일에 나선 그는 매 논배미와 밭들을 다 밟아보고 지력이 좋고 나쁨을 일일이 가늠해보고서 공평하게 나누어주었다. 자기가 분여받은 토지는 제일 나쁜 땅이였다. 그는 그 땅을 걸구느라 부식토를 지게로 져날라다 폈으며 풀을 베여다 인분과 돼지배설물 등을 섞어 썩이여가지고 논과 밭에 냈다. 그리하여 그 나쁜 땅이 옥토로 되였다. 그해 마을에서 수확을 제일 많이 거두었다.
리인민위원회 서기장이던 그가 놈들의 일시적강점시기에 당원들과 열성농민들을 데리고 흑룡산까지 후퇴해갔다가 인민군대의 재진격에 따라 마을에
돌아오니 마흔명이 넘는 동네사람들이 놈들에게 학살당했다. 그중에서 마을의 첫 세포
김덕준은 세포
바로 이런 김덕준이에게 은혜로운 손길이 와닿았다.
전쟁이 멎자 원화마을 농민들은
관리
딸 혜영이가 《아버지, 이제는 좀 쉬라요. 사람들이 지내 열성부린다고 할거예요.》 하고 《충고》를 했으나 듣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하고 아바이는 오히려 더 열성을 냈다.
아바이는 조합소와 집의 집짐승들을 기르면서도 거의 매일 관리위원회에 나갔고 리규성이의 일을 이것저것 거들어주었으며 조언도 주군 했다.
그가 오랜 실농군으로서, 경험자로서 젊은 관리
최동익이가 뜨락또르를 몰고 원화리에 처음 왔을 때 관리위원회마당에서 김덕준아바이의 충고를 듣고있는 리규성이를 본것이 그 한 장면이였다.
리규성이는 차츰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바이의 잔소리가 싫었다.
그래서 아바이에게 무슨 일감을 주어 바삐 지내도록 하면 잔소리할 짬이 없을것이라는 생각에서 소를 먹이는 한편으로 뜨락또르운전수들을 도와 기계화사업을 방조하도록 하였다.
김덕준아바이라고 잔소리하기가 좋겠는가. 그는 기계화사업의 《고문》이 되자 성수가 났다.
그는 주로 자재보장과 부속품을 해결하는 일을 하였는데 운전수들은 아바이를 대단히 존경했다.
한번은 군자재상사에 부속때문에 갔다와서 성을 냈다.
《개판이야! 군인민위원회는 뜨락또르를 상관하지 않는다는구만.
농기계작업소 소속이래. 그럼 농기계작업소는 어디 소속인가. 도에 속해있다네.
제길, 내가 도에까지 가야 하는가? 거기서도 해결 못하면 농업성에 가야 하겠지?!》
《농업성에서도 해결받지 못하면요?》
창원이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럼 할수 있나? 내가 창원이를 데리고 기양에 또 가는수밖에!》
실지로 그는 창원이에게 배낭을 지워가지고 기양기계공장에 한번 갔었다. 그래서 긴요한 부분품을 해결해왔는데 맥이 진했으리라 생각했던 아바이는 오히려 더 성수가 나서 펄펄했다.
리규성관리
(하긴 아바이의 잔소리가 그른데는 없어. 아바이의 잔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때가 좋은 때일수 있어. 우리 조합의 옛 세포
리규성은
김덕준아바이가 싸리비자루로 토방과 마당의 구석구석에 쌓인 눈가루를 쓸어냈다. 다음 바람에 벗겨진 헛간의 이영을 손질하고 넘어진 땔나무단을 흙담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황소가 여물을 먹는 사이에 소의 뒤등과 옆구리의 털을 빗질해주는데 혜영이가 문을 열고 아침식사를 하자고 청했다.
세면을 하고 아래방에 들어가 식구들과 같이 둥글상에 둘러앉았다. 혜영이가 술잔에 술을 부으며 설인사를 했다.
《아버지, 새해에도 건강하여 오래오래 앉아계십시오.》
혜영이는 더펄더펄해도 부모들을 모시는데서 세심하고 정성다하는 딸이였다.
《오냐, 고맙다.》
덕준은 부어준 술을 딱 한모금만 마시였다. 로친도 술잔을 권했다.
《령감님, 새해에도 건강하시우.》
《로친도 건강을 잘 돌보우. 이럴 때 아들, 며느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좀 섭섭하구먼.
그래도 아들 못지 않는 혜영이가 옆에 있으니 허허…》
그의 아들은 최전연에서 군관으로 복무하고있다. 그렇기때문에 온 가족이 모이는 일은 드물었다.
덕준은 로친이 부어준 술도 마시는 흉내만 내고 그만두었다.
명절날이나 생일날에는 어김없이 조합의 일군들과 마을사람들이 찾아오기때문에 손님들을 맞이하려면 술을 좀 적게 마셔야 했던것이다.
설인사를 하려고 먼저 찾아온 사람들은 관리
리규성의 아버지는 당원이고 모범농민이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놈들에게 잡혀 학살당했다. 어머니도 석암저수지가 미군비행기의 폭격으로 파괴되면서 생긴 물란리에 잘못되였다. 사품치는 물에 집과 함께 떠내려가 시신도 찾지 못했다. 어머니의 고무신 한짝만이 모래속에 묻혀있었던 집터에 이르러 원쑤놈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리규성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며칠동안 밥도 먹지 않고 《아, 내 그 원쑤놈들을 왜 더 죽이지 못했을가. 가슴이 터지는구나!》 하고 몸부림치는 규성이를 김덕준은 가슴에 껴안고 같이 울었다.
두해가 지나 녀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