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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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토리때문에 말썽이 좀 생긴것 같다. 그래서 아마 처녀는 토론을 끝내고 결의를 다질 때 알곡도 많이 내고 도토리도 많이 따서 지방산업공장에 보내주겠다고 한것이리라.

《그런 관료주의가 어디 있소? 농민들에게는 아무렇게나 지시해도 된다는거요?》

김일성동지께서 노하시여 말씀하시였다.

처녀관리위원장은 자기때문에 자기네 군인민위원회가 말을 듣게 되였다는 생각에서 미안하고 부끄러워 어쩔줄 몰랐다.

수상님, 군 농촌경리부에 부장 한명에 지도원동지들도 많지 않은데 우리 조합이 멀리 떨어져있어서 일일이 토론하기가 힘듭니다. 지도원동지들은 다 사람들이 좋습니다.》

처녀가 변명을 하는 바람에 휴계실에 웃음이 터졌다.

그이께서도 웃으시였다.

《평남도당위원장동무, 처녀관리위원장이 군을 망신시켰다고 군사람들이 압력을 가하면 안되겠소.》

피창린이 대답을 드리였다.

《압력을 가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결함을 고치도록 대책하겠습니다.》

휴식에 이어 회의가 계속 되였는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순녀관리위원장을 주석단에 앉혀주시였다.

회의에서는 군인민위원회가 협동조합들의 계획작성과 매 영농공정에 대한 지도사업에서 형식주의, 관료주의를 없애고 실속있게 하며 일군들의 능력을 높일데 대하여 강조되였다.

 

×

 

농업대회이후 피창린은 상촌리의 최순녀에게 《도토리처녀관리위원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도토리생산계획때문에 애를 태웠으나 어쨌든 그것을 많이 생산하여 지방산업공장의 술생산에 보탬을 주었고 또 키가 작고 야무진 처녀관리위원장에게 그런 별명이 어울리기도 하였다.

어느 기회에 피창린은 김일성동지의 겹쌓인 피로를 덜어드리려는 마음에서 그 《도토리처녀관리위원장》이야기를 꺼냈다.

《참 이악하고 실천력이 강한 처녀관리위원장입니다. 제가 얼마전에 그 상촌협동조합에 갔다왔는데 정말 감동되였습니다. 사방이 칼날같은 산들로 둘러막히였는데 이 불리한 조건을 역전시켜 갖가지 산열매, 산나물들을 벌어들이고있습니다. 특이한것은 삭도를 놓고 거름을 나르는것이였습니다.》

《삭도를 놨소? 그거 대단하구만.》

수령님께서는 농업대회에서 토론하던 몸매작은 처녀관리위원장을 그려보시며 미소를 금치 못하시였다.

《원래 삭도는 없었는데 농업대회에 참가하고 돌아가서 군당위원장에게 제기했다고 합니다. 도당위원회에서는 군당위원장에게 최순녀동무의 비판을 접수하고 협동조합들을 실속있게 지도할뿐 아니라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주었습니다. 그때문인지 아니면 처녀관리위원장이 수상동지의 치하를 받은것이 자랑스럽고 기특해서인지 군에서는 순녀동무의 제기를 받아들이고 삭도를 놓아주었습니다. 순녀동무는 올해에 강냉이를 정당 3톤을 내겠다고 장담하였습니다. 흙갈이작업을 삭도화해서 땅을 걸구는데 3톤 할것 같습니다.》

《그 경험을 산골군들에서 일반화해야 하겠소.》

수령님께서는 기뻐하시였다.

이렇게 모든 조합들에서 작업을 기계화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면 이런것이 바로 예비이고 알곡을 중수할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겠는가.

《처녀관리위원장이 대회에서 토론했지만 이 조합은 협동경리를 다각화한것이 특징입니다. 가서 눈으로 직접 보니 감동이 더 컸습니다. 강냉이, 기장, 감자 하여튼 작물이 없는것 없고 배추, 무우, 호박, 오이 등 남새들과 과일들, 산열매, 산나물, 골짜기를 흐르는 내물에서 잡아내는 산천어…》

피창린이 무엇을 더 꼽아야 할지 몰라 말이 막히자 그이께서 튕겨주시였다.

《축산도 잘하고있겠지.》

《예, 염소와 양이 유명합니다. 염소한테서는 젖을 짜고 양한테서는 털을 깎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살결이 뽀얗고 녀성들은 양털목도리를 두르고 다닙니다. 교통이 불편해서 들어오고 나가는것이 적으니까 문화수준이 낮은것은 있지만 먹고사는 걱정은 없습니다. 대처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군일군들도 이따금 얼굴을 내밀고 수매원들이나 산삼캐는 사람들, 사냥군들이 간혹 들리는 고장이여서 제가 군당위원장과 같이 나타나니까 무슨 대단한 대감이나 온것처럼 대체 도당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구경하려고 모여들어 둘러싸는데 저야 키가 작지 뭐 보잘것 있습니까? 하여튼 혼이 났습니다.》

그이께서는 즐겁게 웃으시였다.

수령님께서 흥겨워하시자 피창린은 성수가 났다.

《마을사람들의 인심이 참 고왔습니다. 저는 원래 어디 가서든 식사대접을 받지 않는데 그 사람들의 인정을 마다할수 없어 자그마한 조합식당에 들려 염소젖도 마시고 찰강냉이지짐도 맛보았습니다.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으니까 식당을 보는 아주머니는 닭치는 일을 겸하고있는데 이 식당에서는 손님들에게서 식비를 받는 법이 없습니다.》

《흰쌀밥대접을 받았소?》

뜻밖의 물으심에 피창린은 어리둥절했다.

《기장밥을 먹었습니다.》

그이께서 생각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 산골사람들이 먹고사는 걱정이 없다니 얼마나 좋소. 그러나 도당위원장동무도 말했지만… 가만, 뜨락또르는 없겠지? 우리는 아직 산골까지는 주지 못하고있으니까.》

《예, 뜨락또르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산골에 알맞는 소형뜨락또르를 만들 계획이요. …

동무도 외진 산골이니 문명에서 뒤떨어졌다고 했는데 기계도 삭도뿐이고 집들도 동기와집이 좀 있을뿐 대개가 초가일것이요. 더구나 입고다니는 옷들이 변변치 못할건 뻔하고… 아이들이 흰쌀밥구경을 못하고있겠지.》

저으기 들떴던 피창린의 얼굴이 금시 붉어졌다. 궁벽한 산골에서 잡곡밥이나마 배불리 먹으며 부업을 많이 해서 수입이 높으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더우기는 삭도를 놓기까지 한것에 감동을 금치 못하면서 그만하면 이제는 되였다고 보았다. 수령님처럼 그들의 살림집, 옷차림, 식사의 질에 대하여서는 별로 낯을 돌리지 않았다.

그를 보시며 김일성동지께서 위안하시듯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렇지만 그 처녀관리위원장이 일을 잘해서 궁벽한 산골인데도 배불리 먹고 산다니 기쁜 일이요. 동무의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가 다 거쁜해지오. 물론 만족하기는 아직 이르지. 사실 우리 인민이 바라는것은 크지 않소. 옛날 못살던 때에는 〈초가삼간 집을 짓고〉 사는것이였소. 로동당시대에 와서는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사는것이 리상이요. 우리가 이 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하는것이고 알곡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투쟁하는것이요. 우리는 아직 나라의 식량문제를 다 풀지 못했소.》

그이의 절절하신 말씀이 피창린의 가슴을 쳤다.

《오늘 피창린동무에게서 좋은 이야기를 들었소, 고맙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깊은 생각에 잠기신듯 창문너머 푸른 하늘을 정겹게 바라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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