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4 장
7
(2)
속이 떨려왔다. 언제인가 35련대 지휘부에도 그런 전화를 했다더니 이젠 나한테까지?…
이거 문화부려단장동무가 무사치 못하겠구나 하는 불안이 욱 밀려들었다.
리영복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송수화기를 무겁게 내려놓았다. 마음좋고 쾌활하고 락천적인 문화부려단장, 그 무엇에도 주눅이 들지 않고 우스개소리로 대원들의 힘을 북돋아주며 언제나 병사들속에 사는 정치일군…
자기가 집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충고해주면서 지나가던 길에 들려 나무까지 패준 인정많은 그였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말로 나돌게 될줄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문화부려단장에게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길것 같았다.
그를 도와줄 방도가 없을가.
리영복은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나왔다. 이렇다할 방책은 없으면서도 가까이 다가온 작전직일관에게 문화부려단장이 어데 있는지 모르는가고 물었다.
《공병대대에 갔습니다. 합창련습하는걸 좀 봐주고오겠다고 하면서… 좀전에…》
작전직일관은 지휘부 왼쪽 공병대대병실쪽을 가리켰다.
사위는 벌써 어둑어둑한데 그쪽에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리영복은 기가 막혀 물끄러미 그쪽을 쳐다보았다. 자기 문제가 경각에 달했는데 합창지도라니…
리영복은 마른침을 애써 삼키고 공병대대로 향했다. 어떻게 하든 안동수를 도와주고싶었다. 좀 자중해서 이번 료해사업을 무난히 치르게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고싶었다.
공병대대 건국실에는 병사들이 줄맞춰서서 합창대를 이루고있었다.
그앞에서는 안동수가 기타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
창조와 로력으로 피끓는 인민들아
찬란한 인민조국 길이길이 받드세
조선아 조선아 영원무궁 만만세
《보시오. 이 노래에서는 새 나라의 주인된 인민들의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노래하고있소. 때문에 이 노래는 우아하면서도 부드럽고 폭넓게, 숭엄하게 불러야 하오. 자, 다시한번 시- 작!》
합창대가 그의 지휘에 따라 노래를 시작했다.
반만년 오랜 력사…
《가만!》
안동수가 오른손을 들어 노래를 제지시켰다.
《반만년… 이 <반>에서부터 입을 크게 벌려야 하오. 이 배에 힘을 주고… 다시- 시- 작!》
반만년 오랜 력사…
《가만, 가만!》
안동수가 또다시 노래를 중지시켰다. 그리고는 《맨 뒤줄에서 두번째- 오, 그렇지, 태복동무!》 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그게 무슨 노래하는 자세요.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입을 오무라뜨리구 <번먼년 오랜 력사-> 이게 뭐요?》
안동수가 입을 오무리며 흉내를 내자 와- 하고 병사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태복이라는 중사가 손바닥으로 뒤덜미를 슬슬 문대며 어줍게 웃었다.
《자, 입을 한번 한껏 벌려보오. 아-》
《아-》
태복이가 따라하자 안동수가 다시 소리쳤다.
《좀 더 크게- 이 주먹이 들어간다 할 정도로…》
《아-》
《아-》
모두들 따라하다가 와그르르 웃었다.
《부려단장동지, 암만 크게 벌려두 주먹은 안들어갑니다.》
《누가 주먹을 들이밀라고 했소? 이 주먹이 들어간다 할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라고 했지. 그래야 노래가 거칠데없이 우렁차게 나온단 말이요.
이 노래는 민족의
반만년 오랜 력사…
합창대의 노래소리가 확실히 좀전보다 우렁차진듯싶다.
그러나 안동수는 마음에 안드는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또 한번 오른손으로 허공을 획 갈랐다.
《안되겠소. 동무넨 입벌리는 련습부터 해야겠소. 그 련습을 다 한 다음에 내 다시 오겠소.》
안동수가 돌아서려 하자 병사들속에서 와- 하는 소리가 났다. 서넛이 뛰여나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아아… 부려단장동지, 가지 마십시오. 오늘은 오신김에 노래지도를 좀 해주십시오. 입벌리는 련습은 우리끼리 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안동수가 우정 뻐기는듯 한마디 했다.
《아 이러면 안되겠는데… 공짜루 배워준단 말이요?》
《아 부려단장동지, 이거…》
한 전사가 그제야 생각나는듯 호주머니에서 하얀 종이로 싼것을 꺼냈다.
그것을 받아 펼쳐본 안동수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하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보시오. 사탕이요. 사탕 두알. 하하하.》
그러자 병사들도 와하하하고 병실이 떠나갈듯 들썩하게 웃었다.
《에- 사탕 두알에… 할수없이 져야겠군. 자, 두알인데 다같이 나누어 먹을수도 없구… 아무래도 내가 뢰물을 받았으니 내가 먹어야지?》
《부려단장동지가 잡수십시오.》
병사들이 웃으며 목소리를 합쳐 권한다.
《다음 한알은 어떻게 한다?》
《그것도 잡수십시오.》
또다시 우렁찬 목소리.
《에이, 그러면야 안되지. 이건 내가 뢰물받은것이니 처리권은 나한테 있어. 에-이 한알은 입을 제일 작게 벌리는 이 태복동무한테 주자구. 힘을 내서 크게 벌리라구 말이요.》
《좋습니다.》
와- 또다시 터져오르는 웃음소리…
영복은 병사들과 함께 시름없이 밝게 웃는 안동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쩐지 병사들속에서 저렇게 우스개소리를 하며 허물없이 마음껏 웃는 부려단장이 부럽기까지 했다. 늘 부대에 나와 산다고는 하지만 자기에게는 누가 저렇게 호주머니에 넣고다니던 사탕알까지 허물없이 쥐여주는 병사가 있었던가.
얼굴이 뜨거워올랐다.
하면서도 저런 부려단장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저 부려단장은 지금 자기의 운명에 그늘이 드리우고있다는것을 알기나 할가.
리영복은 창밖에 서서 한참이나 안동수를 지켜보며 서있었다.
저런 사람을 반쏘분자로 몰다니… 박영욱의 말은 과연 얼마나 심각했던가.
저 부려단장은 그것을 알고있을가.
알수도 있다. 아니, 모를리가 없다.
지금 온 려단에 뛰뛰한 말이 떠도는데 저렇게 늘 병사들속에서 사는 그가 왜 모르겠는가.
그러면서도 얼굴에 한점 그늘도 없이 락천적으로 웃으며 변함없이 자기의 사업을 자기 식대로 해나가고있다.
문화부려단장의 일은 과연 어떻게 될가.
리영복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