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4 장

6

(6)

 

안동수는 눈이 깔린 밤길을 자책에 잠겨 걷고 또 걸었다. 윙윙 머리우에선 전선줄이 울어댄다. 눈바람이 자꾸만 옷자락을 잡아뜯는다. 찬눈가루들을 얼굴에 쥐여뿌린다. 하지만 안동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가슴이 미여지는듯하다.

그토록 사랑과 믿음을 받으면서도 보답 못하는 이 미천한 전사이다.

문득 이번에는 지난해 3월초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사무실에 앉아 한참 신문편집안을 검토하고있는데 뜻밖에도 녀사께서 전화를 걸어오시였다.

신중한 어조였다.

《오늘 신문을 보고 생각되는것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어요.》

안동수는 긴장해짐을 느끼며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문제가 제기되였습니까?》

《대외보도때문이예요. 왜 우리가 대외보도를 하면서 <쏘조>라는 표현을 썼습니까?》

경애하는 장군님의 력사적인 쏘련방문에 대한 보도였다.

안동수는 미처 말씀을 드릴수가 없었다.

녀사께서는 신중한 어조로 또박또박 찍어서 말씀하시였다.

《잘못되였습니다. <쏘조> 는 쏘련사람들이 보도할 때 그렇게 씁니다. 우리가 보도할 때에는 <조쏘>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제는 당당한 자주독립국가입니다. 우리 인민은 존엄높은 인민입니다.》

안동수는 얼굴이 화끈했다.

녀사님, 제가 미처 그런데까지는 생각못했습니다.》

《문필가들은 자기가 쓰는 표현 하나, 단어 하나에도 민족의 존엄이 깃든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녀사님, 제 꼭 명심하겠습니다.》

민족의 존엄, 조선사람의 자존심…

갑자기 눈물이 쿡 솟구쳐올랐다.

룡정에서 원동으로, 원동에서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넘어 따슈껜뜨로… 망국민의 설음을 안고 피눈물을 뿌리며 걸어온 길지 않은 인생행로가 망막을 허비며 안겨들었다.

짓밟힌 존엄, 총에 맞아죽고 칼에 찔려 죽어도 하소할 곳 없었던 식민지노예살이로 우리 민족은 그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였던가. 조국을 빼앗기니 모든것을 다 빼앗기고 짓밟혔었다. 이름마저도 바꿔야 했다. 우리 민족이 통채로 력사의 무덤속에 들어가느냐 마느냐 하던 그 엄혹한 시기였다. 하지만 바로 그 조국을 되찾기 위해, 민족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위대한 장군님께서와 항일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 만주광야를 주름잡으며 피어린 길을 헤쳐오시였다. 모진 풍파 다 헤치시며 내 조국을 찾아주시였다. 조선사람의 긍지와 존엄을 되찾아주시였다.

다시금 녀사의 말씀이 가슴을 쾅쾅 울린다.

《우리도 이제는 당당한 자주독립국가입니다. 우리 인민은 존엄높은 인민입니다.》

안동수는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녀사께서 얼마나 서운하시고 안타까우셨으면 이렇게 전화까지 걸으시였겠는가. 그토록 상냥하시고 친절하시고 다정하신 녀사께서 얼마나 분하시였으면 그렇게 엄하게 말씀하셨겠는가.

안동수는 송수화기를 으스러져라 꽉 틀어쥐였다.

녀사님, 제 한생토록 그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그의 심장이 웨치는 소리였다.

그때부터 그렇게, 그렇게 살려고 애써왔었다.

하지만 안동수는 끝내 그이께 이렇다 할 기쁨을 드릴수가 없었다. 9월의 그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던 상실의 아픔… 출장지에서 그 소식을 들은 안동수는 산에 올라가 먼 모란봉쪽을 바라보며 몸부림을 쳤다. 눈물을 좔좔 흘리며 꺼칠한 소나무보굿을 마구 잡아뜯었다. 그이께 아픔과 괴로움을 끼친채 보내드렸으니 이 죄를 무엇으로 씻는단 말인가. 이제 안해와 아들딸이 오면 모두 데리고 녀사를 찾아가 그처럼 상냥하시고 인자하신분께 《녀사님, 조선사람의 긍지도 존엄도 없이 남의 나라 이름을 가지고 얼치기로 살아온 저희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조선사람의 얼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녀사께서 이름을 좀 지어주십시오.》 하고 무랍없이 청을 드리려 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길줄이야…

그 설날 안해와 아이들의 이름을 들으시며 《이리나, 리빠, 윅또르, 클라라…》 하고 나직이 외우고 또 외워보시던 녀사의 모습이 눈물속에 우렷이 떠올랐다. 나라를 빼앗긴탓에, 남의 나라에 가 사는탓에 이름마저 다른 나라식으로 지어야 했던 수난당한 민족의 아픔을 그 조용하신 음성속에 가슴아프게 새기고 또 새겨보시던 녀사이시였다.

그 아픔을 가셔드릴새도 없이 신문보도기사를 잘못 내보내여 또 마음쓰시게 하고…

발밑에서는 여전히 빠드득빠드득 눈 밟히는 메마른 소리가 들려왔다.

안동수는 추위도 잊고 걷고 또 걸었다.

오늘 또 이렇게 문화부려단장사업을 제대로 못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걱정을 하시게 하였다는것을 안다면 녀사께서는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가.

우리 땅크려단에도 김정숙녀사의 뜨거운 사랑의 자취가 곳곳에 자욱자욱 어려있다.

땅크부대가 첫걸음마를 떼던 시기인 1948년 11월 14일 장군님을 모시고 부대에 오신 녀사께서는 땅크병들을 만나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고 전투력을 강화하여 유능한 기계화부대로 준비할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틀후인 11월 16일 또다시 부대에 찾아오시여 땅크병들의 병실을 돌아보시면서 규정과 교범의 요구대로 알뜰히 꾸릴데 대하여 친어머니심정으로 하나하나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나흘후인 11월 20일에도 부대에 오시여 군관가족들과 담화하시면서 군관가족들이 사회정치활동에 적극 참가하며 문맹퇴치사업을 힘있게 벌릴데 대하여 깨우쳐주시였다. 그 말씀을 받들고 군관가족들이 예술소조공연을 준비하였을 때에는 작년 2월 8일 몸소 부대에 나오시여 그 공연까지 보아주시였다. 우리 땅크부대에 그토록 자주 찾아오시며 각별한 관심을 돌려주시던 녀사이신데 이 안동수가 문화부려단장으로 임명되여 와서도 제구실을 못하고있다는것을 아신다면…

안동수는 가슴이 저려드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지금껏 문화부려단장으로 와서 한 일들을 하나하나 돌이켜보았다. 어느것 하나 내놓고 긍지롭게 말할만한것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이번 료해사업이 있게 된 동기만해도 그랬다.

건국실문제에 처음부터 관심을 돌렸더라면…

방철호를 처음 만났을 때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더라면 이런 일이 애초에 생겨나지부터 않았을것이다. 건국실을 꾸린다는것을 알았을 때, 박영욱이가 방철호에 대해 말을 했을 때 벌써 어떻게 꾸리려 하는가를 잘 알아보았어야 했다.

그러다나니 방철호가 쏘련에 대한 자료들만 건국실에 가득 채워놓도록 전혀 모르고있었다.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그러고도 방철호에게 그런 처벌을 주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처벌과도 같은것이였다. 내 문제는 앞으로 문화훈련국에 올라가 따로 총화를 받겠지만… 방철호도 응당… 가만… 혹시 내가 방철호에게 너무했던것은 아닐가.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할수 있지 않았을가. 박영욱이나 허가이에게도 너무 뻣뻣이 맞섰고…

아니, 아니다. 방철호에겐 좀 과한것 같지만… 따져보면 그런것만도 아니다. 그런 강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면 에누리를 하자고들수 있었다. 그런 좋지 못한 싹은 애초에 뿌리채 뽑아던져야 한다. 이 문제만은 바로 보았다.

박영욱에게도 옳게 처신했다. 그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때문이 아니였다. 오히려 그때문에 주저할번했었다.

나는 옳게 행동했다. 허가이 부위원장에게도… 우리 장군님이 어떤분이신가를 알려주는것, 우리 조선사람의 긍지와 존엄을 간직하게 하는것.

이것을 내놓고 무슨 정치사업이 필요하겠는가.

나의 잘못은 방철호에게서 그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미리 예방을 하지 못한것이다. 아래일군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잘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임명되여온지 얼마 안된다고 해서 회피할수 없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부대의 정치사업을 책임졌기때문이다.

그렇다. 총적인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내가 질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책임을 지고 안 지고 하는 문제만도 아니다.

더구나 《가족을 버렸다》느니, 《뒤가 어스크레하다》느니, 《참모장이 그래서 집에도 잘 안 들어간다》느니 하는 말까지 나돌았다는것을 우리 장군님께서 아시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가.

그처럼 믿고 아끼고 사랑하시는 이 전사가 그런 말까지 듣고있으니… 녀사께서 아시면 또 얼마나… 분했다. 울고싶었다.

이제 료해조가 내려오면 그 모든것이 다 밝혀지겠지만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할망정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쩡-하는 얼음터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푸르스름한 달빛아래 대동강둑이 길게 누워있다. 어느새 강변까지 온것이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자신도 몰랐다.

안동수는 차거운 강바람에 군복자락을 날리며 오래도록 서있었다.

강건너 저 멀리 녀사께서 계시는 모란봉쪽을 눈물을 머금고 바라보다가 두주먹을 꽉 움켜쥐였다. 홱 돌아서서 씨엉씨엉 지휘부를 향해 강바람을 맞받아 걸어갔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