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1 장

13

 

의자에 앉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업상과 당중앙위원회 부장에게 실무적인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사회주의농촌건설의 진로에 대해서 현재로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 길을 어떻게 개척해나가겠는가 하는것은 오직 실천과정을 통해서만이 탐구될것이고 증명될것입니다.

당면한 실천적문제로 넘어갑시다. 올해를 잘 총화지읍시다. 올해에 우리 농민들은 농업생산에서 커다란 비약을 이룩하였습니다. 농업성에서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올해에 전국적으로 380만톤이상의 알곡을 생산할것이 예견되고있습니다. 이것은 1956년에 비해 30프로이상 장성하는것으로 우리 나라 력사에서 전례없는 다수확으로 될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성과는 우리 당의 농업정책이 옳았고 당의 령도를 받들고 청산리의 모범을 따라 농업일군들과 농업근로자들이 애국심과 헌신적열의를 발휘한 결과라고 평가하시였다.

인차 평안남도의 시, 군당위원장, 인민위원장협의회에서 래년에 올해보다 알곡 100만톤을 더 증수하는 문제를 토의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그이께서는 먼저 동무들과 이야기해보려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먼저 올해에 농촌경리에서 달성한 성과를 분석하시면서 구체적인 실례를 드시였다.

청산리에 나가셨을 때 그곳에서는 논벼가 정보당 평균 5톤이 날것으로 예견하고있다. 일부 포전들에서는 9톤까지 내다보고있었다. 안주군 룡흥협동조합과 문덕군 룡오, 니서(당시)협동조합들도 정보당 평균 4톤을 내다보고있다.

그이께서는 결함에 대해서도 지적하시였다.

아직 논벼와 강냉이의 수확고가 전반적으로 높지 못하다. 두엄을 논밭에 더 낼수 있다. 화학비료도 적게 들어갔다. 농경지를 확장하는 사업이 굼뜨게 진행되고있다. 척박한 토지를 개량하고 토지리용률을 높이며 선진영농기술을 받아들이는 사업은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기계화비중을 높이는 문제는 9월에 내각 상무회의에서 비판되였지만 농기계생산이 저조하고 뜨락또르는 논밭갈이와 운반작업밖에 하지 않고있다. 룡오나 니서협동조합에서는 상당한 면적의 논에 건직파를 했는데 이런 작업이야 기계화할수 있지 않는가. …

한룡택이가 생각하였다.

(이처럼 락후한 상태에서 농업생산을 장성시키기 위해 기술혁명, 문화혁명과 함께 사상혁명을 한다는것은 간고하고 지속적인 투쟁을 요구한다. 그런데 한해사이에 알곡 100만톤증수와 같은 비약적인 전진을 이룩할수 있겠는가? 그러한 기적이 창조되겠는가?)

그의 머리속에서는 동요가 떠나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 래년에 알곡 100만톤을 증산해야 할 필요성과 그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우리는 한해에 380만톤의 알곡을 가지면 먹고살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 살수는 없고 가축먹이, 공업원료, 종자, 농민식량을 내놓아야 합니다. 게다가 인구는 해마다 늘어납니다. 우리가 래년에 알곡을 지금보다 100만톤만 더 생산하면 다른 나라에서 사오지 않아도 되고 여유를 조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해에 알곡 100만톤증수운동을 벌리자고 하는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알곡 100만톤을 증산할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의 사업방법이 개선되고 조합관리운영수준이 높아졌으며 농촌경리의 기계화수준이 높아졌다. 농촌에 비료도 많이 보내줄수 있다. 이번 시비년도에는 지난 시비년도에 비해 비료를 두배로 보내주려고 한다.

중요한것은 장성하는 우리의 위력한 중공업이 농촌경리의 수리화, 기계화, 전기화, 화학화를 힘있게 담보하고있는것이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의 4년동안에 공업총생산액은 3. 5배로 늘어날것을 예견하고있다. 이 얼마나 억센 강철의 힘인가!

《농업상동무가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을 돌아보고 와서 그 나라들의 발전된 공업과 문화에 대하여 말했는데 우리 나라는 뒤떨어졌기때문에 남이 한걸음 걸을 때 열걸음, 백걸음 걸어 하루속히 선진국대렬에 들어서며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향유해야 합니다.》

그이의 깊은 뜻을 새긴 김만금은 《래년에 농촌경리에서 알곡 100만톤을 증수하는것을 총적인 목표로 정하고 투쟁하는것은 현실발전의 요구를 반영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했다.

《농업상동무는 어떻소?》

한룡택이에게 물으시였다.

《래년에 알곡 100만t 증수는 기적과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상동지의 용단에 공감하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방향에서 래년의 알곡생산계획을 세우겠습니다.》

《성에서 광범하고 실속있는 토의를 하시오.》

《알았습니다.》

이것으로 협의는 끝났다.

집무실을 나서서 청사마당에 서있는 승용차에 오르기 전에 농업상에게 부장이 좀 할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의아해하는 한룡택을 한옆으로 데리고 갔다.

《상동무, 거 뭐요. 수상동지앞에서! 오죽했으면 내가 끼여들었겠소?》

한룡택이 뻣뻣하게 서서 물었다.

《뭘 말이요?》

《쏘련의 농촌경리의 기계화수준이 상상했던것 이상이라느니, 농촌집들이 어떻다는니 하는 소리를 무엇에 필요해서 장황하게 말했소?》

《그게 뭐 잘못됐소?》

《잘못됐다기보다 그렇게 요란하게 묘사할 필요가 없었단 말이요. 상동무는 우리와 대비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자연히 대비하게 되는게 아니요? 그래서 얻자는게 뭐요?》

한룡택은 뒤짐을 지고 턱을 쳐들었다.

《나는 동무가 이상하오. 어째 그러오?

우리 농촌경리의 기계화가 아직 그들에게 멀리 뒤떨어져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거요?

동무는 솔직한것을 두려워하는구만. 위선적인데가 있소.》

김만금은 가뜩이나 불기우리한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더 붉어졌다.

《동무는 언제 가면 큰 나라에 대한 숭배심을 버리겠소? 큰 나라를 자랑하기가 그렇게도 좋소?》

《선진국의 발전상을 숭배하고 말하는것이 뭐가 나쁘오? 그래 쏘련제 전기면도기를 써보니 어떻습데?》

《물론 선진국의 발전된 기술과 물질문화생활을 동경하는것을 나쁘다고 할수 없소. 문제는 우리가 뒤떨어졌다 해서 남을 부러워하고 그들이 하는것을 다 옳다고 하면서 자기자신을 스스로 창피해하고 천시하는 허무주의에 빠지는데 있소.》

한룡택은 그를 쏘아보며 침울하게 말했다.

《나는 동무의 그 선언이 공식적인것이 아니기를 바라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김만금의 견해요.》

《동무는 지내 독선적이요.》

《동무는 지내 틀을 차리오.》

《틀을 차리지 않고 지도할수 있는가?》

이렇게 열이 올라서 끝없는 언쟁을 하는데 누군가 청사안에서 달려나왔다.

《조용하시오, 동무들! 정신들이 나간게 아니요? 어디서 이렇게 떠드는거요?》

김만금과 한룡택은 황급히 자기들의 승용차가 있는데로 헤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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