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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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날 저녁 동익은 밤교대작업을 나오면서 영준반장이 왜 그렇게 나올가 하고 곰곰히 생각했다.

영준반장의 태도를 보아 토지정리를 하면 논밭갈이와 운반작업료에 토지정리를 해주는 작업료까지 작업반에서 물어야 하니까 그 부담과 함께 분배탈 돈이 푹 적어질 걱정 그리고 갑자기 땅이 불어나면 로력이 더 모자라기때문에 토지정리를 달가와하지 않는것 같았다. 이렇게 타산이 밝고 새것을 달가와하지 않는것은 바로 농민들의 보수성으로부터 오는것일것이다.

(수상님께서는 우리 뜨락또르운전수들이 농촌기술혁명의 기수가 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는데 우린 지금 맡겨진 일에만 전심할뿐이고 토지정리와 새땅개간은 이제 겨우 계획을 세웠을뿐이다. 그리고 농기계공장들에서 보내주는 영농기재들은 실정에 잘 맞지 않는데 우리 뜨락또르운전수들이 그것을 개조하거나 수확기, 탈곡기 같은것들도 만들기 위한 연구도 하지 못하고있다.

특히 오늘 영준반장에게서 본바와 같이 토지정리와 새땅찾기를 대하고있는 보수성, 소소유자적근성을 퇴치하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은 생각도 못하고있다.)

동익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뜨락또르에 올라 논갈이를 하게 된 논벌을 향해 큰길로 달리고있는데 웬 녀자가 갑자기 앞에 뛰여들어 손으로 전조등빛을 가리우며 소리쳤다.

《서라요!》

《제길 이건 뭐야?》

동익은 화를 내며 차를 급히 세웠다.

《누구요? 무슨 일이요?》

그는 불빛을 피해 어둠속으로 들어서는 녀자에게 소리쳤다.

《접니다. 김혜영이예요.》하며 혜영이가 다가왔다.

《혜영동무구만. 그런데 왜 그러오?》

《좀 타자요. 차안에 들어가 말할게요. 어서 손을 잡아줘요.》

혜영이가 손을 한껏 내밀었다. 혜영이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동익은 처녀를 물릴칠수 없으며 그의 요구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손을 잡아 이끌었다.

처녀의 손은 크고 단단했다. 처녀는 동익의 손에 이끌려 나는듯이 차안으로 뛰여들어왔다. 그리고 열기 띤 크고 검은 눈으로 동익을 쳐다보며 해쭉 웃었다.

《빨리 용무를 말하고 내리오.》

동익은 처녀의 큰눈을 피하며 우정 무뚝뚝하게 독촉했다.

《숨이나 좀 돌리고 말하자요. 왜 내가 차에 오른게 싫어요?》

《운전사들이 제일 싫어하는게 뭔줄 아오? 야밤에 녀자가 차앞에 뛰여드는거요.》

혜영은 여전히 동익이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말했다.

《사실은 어두워지기전에 와서 기다렸는데 무슨 회의가 있었나요? 난 도루 가버릴가 했댔어요. 그렇지만 아버지의 지시가 있기때문에 그냥 기다리다보니 야밤이 된거예요.》

동익이 역시 여전히 처녀의 눈길을 피하며 뚝해서 물었다.

《아버지의 지시라는건 뭐요?》

《동무가 나를 달가와하지 않고 뚝해있으니 말하기 어렵군요.

기계화반의 〈고문〉인 저의 아버지 지시는 다음과 같애요. 들어요?》

《듣소.》

《나를 좀 돌아보면 안되겠어요.》

동익은 할수 없이 웃고 말았다.

《혜영동무를 보고 〈더펄이〉 라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만.》

혜영은 호호 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너무 요란하게 웃누만. 밤인데…》

《뜨락또르동음때문에 일없어요. 단지 지내 길바닥에 오래 서있는것 같은데 앞으로 전진하자요.》

동익은 뜨락또르를 전진시켰다.

(이 처녀가 정말 아버지가 보내서 왔을가?

요전처럼 나를 골탕먹게 하려고 온건 아닐가? 제길 된탕을 겪게 됐군.)

바로 가을걷이에 들어가기전 조합이 쉬는 날에 혜영이가 동익이를 찾아왔었다. 혜영은 동익을 합숙밖으로 불러내더니 눈을 내리깔고 신발코숭이로 땅을 허비며 갑자르다가 말했다.

《저녁에 순안에 영화구경가지 않겠어요?》

처녀로부터 뜻밖의 청을 받은 동익은 당황했다. 저녁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것은 아니였고 영화를 보는것도 싫지 않았지만 그는 당황해져서 얼른 대답을 못했다.

(이 처녀가 왜 같이 영화보러 가자는것일가?

여기에 무슨 심중한 의미가 있는것일가. 아니면 그저 단순하게 머리에 떠오른 무슨 착상때문일가? …

처녀쪽에서 이런 요청을 먼저하는것은 쉽지 않은데?)

《싫어요?》

큰눈으로 동익의 표정을 살피며 이번에도 단마디로 대답을 요구하였다. 동익은 대답해야 했다.

그래 얼결에 《갑시다.》 하고 대답했다.

《암적다리에서 몇시에 만날가요?》

처녀는 숨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글쎄…》

《어두워지면 곧 나와요.》

그리고 혜영이는 돌아섰다.

처녀로부터 뜻밖의 청을 기습적으로 받고 얼떨떨해진 동익은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허구픈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 참, 농촌처녀들은 아주 수집어하든가 반대로 아주 대담하고 소란스럽다고 하던데…

어쨌든 재미있는 처녀군! 까짓거 여우귀신한테 홀리운 셈치고 한번 갔다와야지.)

동익은 일찌기 저녁밥을 먹고 순안으로 가자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암적강다리에 나가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날이 어슬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약속한 시간보다 약간 당겨왔었다.

그러므로 여유를 가지고 기다렸다.

그런데 혜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오고 건너가는 길손들이 그를 보면서 지나갔다.

《옳지, 이제야 오는군.》

어두워오는 다리 저쪽에서 녀자가 오고있었다.

《나를 불러놓고는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거요.》

이런 소리가 막 입에서 나가려는 찰나에 동익은 실망하고 말았다. 그 녀자는 혜영이가 아니였다.

날이 아주 어두워졌다.

순안읍에서는 불빛이 반짝이고 암적마을에서는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익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는가?)

그러다가 동익은 문득 이 처녀가 나를 골려주려고 영화소리를 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잡쳤다.

(내가 속았구나. 그게 장난으로 나를 이 다리우에 불러낸것도 모르고…)

그는 잔뜩 독이 올라 혜영이가 살고있는 본촌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달려가서는 어쩐단 말인가. 깔깔거리며 좋아할 《더펄이》를 한대 쥐여박으려는가? …

그는 멈추어섰다.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수도 있는것이다.

어쨌든 불쾌했고 속에 치미는것이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합숙으로 돌아왔다.

자면서 기분나쁜 꿈을 꾼 동익은 동틀무렵에 일어나 차고로 갔다. 뜨락또르에 기름을 주고 걸레로 닦으며 한동안 분주히 돌아가는데 혜영이가 나타났다.

처녀는 동익을 만나려고 본촌에서 일찌기 떠난것 같았다.

(옳지, 변명하려고 오는구나.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보자.)

처녀를 띄여보며 동익이가 벼르었다.

《동익운전수동무, 밤새 편안했어요?》

혜영이는 다가오며 곱지 않은 말로 인사를 했다.

《아, 혜영동무요? 덕분에 잘잤소.

동무도 나를 암적다리로 꼬여내구 깨고소해서 잘 잤겠지?》

동익이도 가시돋힌 소리로 내쏘았다.

《내가 동무를 꼬여냈다구요? 동무가 암적다리로 나오긴 나왔댔어요? 그럼 왜 나를 기다리다가 영화관으로 오지 않았댔어요?

나는 관리위원장의 심부름으로 읍에 갔다가 좀 늦어져서 다리에는 가지 못하고 영화관에서 기다렸단 말이예요. 그런데 나타나지 않았지요?》

동익은 앞바퀴우에서 흘쩍 뛰여내렸다.

《약속은 암적다리가 아니였소?》

《거기에 늦어서 못갔다지 않아요.

동무는 인정도 정열도 없어요. 남자가!》

(이게 이런 도깨비같은 처녀였구나.)

동익은 소리내여 웃었다.

《이건 참 희극이로군, 자 내가 잘못했소. 잘못했단 말이요.

동무가 영화관에서 기다린다는것을 알고 찾아갔어야 하는건데, 그래 난 정열이 없는 남자요.

그러니 나와는 더 상대하지 마오. 나같은 놈을 믿어준것만 해도 과남하오.》

뜻밖에 혜영이도 샐쭉 웃었다.

이 비정상적인 사건으로 하여 그들은 오히려 가까워졌다. 동익은 혜영이가 더펄거리긴 해도 사실 그 어떤 악의가 없는 순진한 처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지금 동익은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며 이 처녀가 또 무슨 일거리를 만들가 하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헤영이가 정색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운전수들의 생활을 돌보아주던 미순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조건에서 날보고 미순이가 하던 일을 맡아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선뜻 응했답니다.》

동익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고맙소. 하지만 혜영동무, 우리는 동무의 보살핌을 받지 않아도 되오. 밤에까지 운전칸에 같이 앉아있어야 할 필요는 더욱 없지요.》

동익은 차를 세웠다.

《안됐소만 내려야 할것 같소. 녀자가 옆에 앉으면 일이 잘 안되오. 어서 내리오.》

혜영은 동익을 흘겨보았다.

《음- 뚝바우.》

《허… 아무렇게나 불러도 좋소.》

《동무가 싫다해도 나는 내리지 않겠어요.》

혜영의 큰눈이 번쩍번쩍했다.

《운전수들의 생활을 돌봐주는것이 싫다면 그건 그만두자요.

하지만 나는 뜨락또르운전수들한테서, 특히는 동익동무한테서 뜨락또르운전기술을 배우려고 해요.

듣자니 녀자뜨락또르운전수도 있다지요. 그러니 이거야 막지 못하겠지요.》

동익은 화가 치밀었지만 이 제기를 반대할수 없었다.

(된통에 들었어, 제길!)

그는 속으로 두덜대며 뜨락또르를 전진시켜 길에서 벗어나 논벌에 들어섰다. 논뚝을 넘을 때 차가 몹시 기울어지며 혜영이가 그에게로 쏠리였다.

처녀의 동실한 어깨와 팔굽이 와서 부딪치는 말큰한 충격에 동익은 얼굴이 벌개졌다.

《엄마!》 하며 혜영은 깔깔댔다.

동익은 화끈 달아올랐다. 당황해진 그는 결심을 달리했다.

(이 《더펄이》를 태우고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오늘 밤뿐아니라 다른 날에도 운전기술을 이렇게 하고는 배워줄수 없고 일도 못한다. 일하면서는 안돼!)

그는 혜영이에게 무뚝뚝하게 명령했다.

《혜영동무, 내리오.》

혜영은 그를 새삼스레 쳐다보았다.

《아니 왜요?》

《내리라지 않소!》

《그럼 운전배우는건?》

《그건 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하자구. 내 말을 알아들었소?》

《좋아요. 내리겠어요. 그리구 아버지한테 일러바치겠어요.》

《마음대루.》

혜영은 차에서 내리더니 동익이한테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동익은 웃음을 참으며 논갈이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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