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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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가 애수에 잠겨 고향땅과 작별하는데 웬 처녀가 머리수건을 흔들며 달려왔다. 숨을 할딱거리며 달려온 처녀는 덕준아바이의 딸 혜영이였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활동적인 혜영은 미순이보다 나이가 한살 우이고 키도 좀 컸지만 두 처녀는 원화리에서 제일 가까운 동무였다.

(인사는 이미 다 했는데 무슨 일일가?)

혜영은 자기가 가지고 나온 보꾸레미를 미순이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평양에 가서 풀어봐.》

《응 알았어.》

그들은 서로의 손을 꼭 쥐고 말없이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미순은 고향을 이렇게 떠났다.

순안역앞에서 달구지가 섰다. 미순이가 내릴 차비를 하는데 누군가의 억센 손이 그를 부축해주었다.

놀랍게도 그는 뜨락또르운전수 최동익이였다.

미순은 집을 나서기에 앞서 새벽 일찌기 뜨락또르운전수들의 숙소에 작별인사를 하려고 찾아갔었다. 그간에 운전수들의 합숙은 물론 나이많은 운전수인 채재식이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지었으며 차고를 건설했다.

작업소에서 《아떼즈》 대신 배정해준 《천리마》호를 타고 동익이와 창원이는 성수가 나서 차를 몰았다.

창원이는 일에서도 차관리에서도 모범인 운전수가 되겠다고 장담하기까지 했다.

미순이는 《농촌에 파견된 로동계급》과 아주 친숙해졌었다. 그래 특별히 따로 인사를 하려고 찾아갔는데 작업조장 최동익은 보이지 않았다.

그를 만나지 못하고 가는것이 몹시 서운했다.

암적에 온 운전수 동익을 맨 먼저 만났고 그의 사람됨됨을 알면서 친숙해졌으며 친오빠처럼 무랍없는 사이가 된 미순이였다. 지내볼수록 정이 깊어지는 동익을 만나지 않고 어떻게 떠날수 있으랴.

하지만 운전수들이 동익동무는 볼 일이 있다면서 읍에 갔다고 말하였다.

그 동익이가 역전에 나타났다.

《아이, 깜짝이야!》

미순이는 손벽을 치며 좋아했다.

《어떻게 역에 나와있어요?》

동익은 빙그레 웃으며 트렁크를 들었다.

《군상업관리소에 일이 있어 왔다가 마침 미순동무가 오늘 떠난다는 생각이 들어 역에 나와 기다리고있었소.》

《고마워요!》

미순이는 생긋이 웃었다.

《인사를 하려고 운전수들한테 들렸댔는데 동익동무가 없어서 몹시 서운했댔어요.》

미순이는 치수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마을로 돌려보낸 다음 동익과 함께 역사로 향했다.

역홈에 나서기가 바쁘게 렬차가 들어왔다. 증기기관차는 먼길에 지친듯 흰김을 쉭-쉭- 내뿜으며 멈추어섰다.

《작별인사를 할 사이도 없군.》

동익은 렬차가 서서히 역구내를 떠날 때까지 서있다가 손을 흔들었다.

《성공을 바라오.》

… 평양역에 도착한 미순이는 렬차에서 내리는 수많은 려객들과 웅장하게 일떠선 역사를 보며 수도에 왔다는 감을 어쩌지 못해 저절로 탄성이 나갔다.

(아! 평양!)

원화마을이 여기서 백리안팎이니 평양걸음이 처음은 아니였다.

고급중학교시절에 견학을 왔었다. 당시는 복구건설이 한창이여서 어디가나 기중기들이 물동을 물고 빙- 돌아갔고 아빠트들이 숲처럼 일떠섰으며 벽돌과 세멘트, 모래를 실은 화물차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고있었다.

그때는 건설의 세찬 동음으로 평양이 들끓었다. 지금도 물론 건설은 계속되고있다.

몇년되지 않은 사이에 줄지어선 아빠트의 창문들이 번쩍이고있었으며 뻗어나간 아스팔트도로들에 뻐스와 승용차들이 끊임없이 흘러간다.

버드나무들이 실가지를 드리우고있는 인도로에 시민들이 차고넘친다.

농촌마을에서 온 처녀 미순이는 그 고장에서는 그래도 그중 눈이 트이고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대도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얼떨떨해져서 정신을 수습할수가 없었다. 이 대도시에서는 미순이가 모래알 같은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고향마을에서는 집을 나서기만 하면 만나는 사람들이 다 잘 아는 사람들이고 이웃이였다. 그래서 다정하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숱한 사람들이 오고가지만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다 처음보는 사람들이며 누구도 촌에서 온 처녀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수도, 재더미속에서 다시 솟아난 아름다운 평양이다. 이러한 격정이 다른 모든 감정을 누르고 미순이의 가슴을 부풀게 했다.

《평양에 가면 이모네집부터 찾아가거라.》 하며 어머니는 이모네집 주소를 대주었었다.

이모네가 7층 아빠트에 이사를 했기때문에 어머니도 그렇고 미순이도 이모네집이 어디 있는지 편지에 쓴 주소로만 알고있었다.

미순이는 지나가는 점잖고 나이듬직하게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주소가 적힌 종이를 펼쳐보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고 물었다.

농촌사람들은 아무리 잘 차려입고 도시에 나타나도 볕에 탄 얼굴과 흙물이 배인 손 그리고 어색해서 몸둘바를 몰라하는 몸가짐에서 촌에서 왔다는것이 대뜸 알린다.

길가던 점잖은 사람은 종이 쪽지를 받아들고 미순이를 향해 너그럽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촌에서 왔소?》

미순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입속으로 《예.》 하고 대답했다. 처녀는 부끄러웠던것이다.

미순이는 그 사람이 대준대로 계속 길을 물으며 이모네 집을 가까스로 찾아갔다.

백화점에서 상품인수원을 하는 이모와 기계공업성에서 사무를 보는 이모부는 다 직장에 나가 일하고 중학생인 사촌녀동생이 마침 있었다.

이모네 집은 살림방이 둘이고 부엌, 세면장, 위생실이 있었으며 베란다로 나가면 거리가 내다보였다. 가구들이 그쯘하고 장판이 알른거리는 방안에는 해빛이 쏟아져들어왔다. 창턱의 화분들에는 빨간 꽃들이 활짝 피여있었다.

미순이가 사는 농촌집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 하긴 여기는 수도의 중심부이다. 제일 낮은 곳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뛰여들었다.

여기서 처녀는 공부를 해야 하고 도시생활에 젖어들어야 한다.

문득 역전에서 도움을 받았던 점잖아보이는 사람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부끄럽기만 했는데 그 너그럽게 웃던 모습과 《촌에서 왔소?》 하고 물어보던 일이 다시 상기되면서 미순이는 모욕감을 느꼈다.

처녀는 우선 겉모습에서부터 촌티를 벗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모사촌녀동생과 같이 목욕을 하고나니 농촌길에 풍기는 먼지를 털어버린듯 상쾌하고 거뿐했다.

목욕을 하고 이모네집에 돌아온 미순이는 혜영이가 준 보따리를 풀었다. 놀랍게도 흰 광목천에 함박꽃을 수놓은 네모방정한 방석이 나타났다.

《아니 이 애가!》

미순이는 혜영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즉시적으로 행동하는 혜영이, 속에 꿍져드는 일이 없고 개방적이며 활동적인 그를 사람들은 《더펄이》라고 불렀다. 또한 눈이 검고 크다고 하여 《왕눈》이라고도 놀려댔는데 그 《더펄이》가 이처럼 속이 깊은줄 몰랐다.

함박꽃까지 수놓는 세심하고 녀성다운 성품을 지니고있다는것이 미순으로서는 놀랍기도 했다.

《혜영아, 고맙다.》

미순이는 꽃방석을 들어 볼에 가져다댔다. 고향동무의 따뜻한 정이 가슴에 흘러들었다.

저녁에 이모가 들어왔다. 이모는 언니인 미순이의 어머니하고는 달리 매우 다감하고 곱게 생겼다.

가족, 친척들은 미순이가 이모를 닮았다고 했다.

이모는 미순이가 들고온 트렁크를 열어보고는 혀를 찼다.

《기차라, 굉장히 챙겨넣었구나. 너의 어머니가 이것들을 준비하느라고 혼이 났겠다.》

《작업반과 동무들이 도와주었어요.》

《원 고맙기도 하구나.》

이모와 조카가 오래간만에 마주 앉아서 이야기가 끝없는데 이모부가 퇴근해 와서야 숨을 돌리였다.

기계공업성에서 과장을 한다는 이모부는 미순이가 가져온 도수높은 곡주를 마시며 위엄있게 한마디 하였다.

《학교기숙사에 들어가지 말고 여기서 다니려무나.》

미순이는 그저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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