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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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동수는 또 다른 편지를 펼쳐들었다.

… 여보, 공화국이 창건되였다는 당신의 편지를 받았어요. 우리는 그편지를 읽으며 모두 너무 감격해서 울었답니다.

저는 아버님께 당신의 편지를 보여드렸어요. 글씨가 작아 잘 읽지 못하는것 같아 큰소리로 읽어드리며 큼직큼직하게 편지우에 덧써드렸어요.

 《아버님,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답니다. 이젠 우리에게도 나라가 생겼어요. 이것이 우리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기발이랍니다.》하며 당신이 그려보낸 공화국기발을 보여드렸어요. 침상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고 내가 쓴 글과 공화국기발을 보던 아버님은 별안간 그 기발을 그린 종이를 와락 그러안았어요.

《이게 우리 나라로구나, 우리 나라야. 이젠 됐구나, 됐어…》 하고 속삭이듯 하시는데… 아버님의 그 굵은 주름이 얼기설기 얽힌 얼굴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어요.

한참이나 기발을 안으신채 눈을 감고 우시던 아버님께서 문득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며늘애야, 아무래도… 너도 조국에 가야겠다. 아애비가 장군님의 크나큰 신임으로 신문사책임자까지 한다는데 네가 가서 받들어주어야 할게 아니냐. 아애비가 나라를 위해 더 큰일을 하게 말이다.》

나는 그만 가슴이 뭉클하고 눈굽이 쓰려왔어요. 겨우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아버님, 우리 애아버지는… 아버님께서 병을 터시고 함께 나오길 바라고있어요. 여기 편지에도 그렇게 썼어요.》

아버님은 자꾸만 고개를 가로저으시였어요.

《난 이젠 안된다. 아무리 가고싶어도… 이젠 며늘애 너만이라도 조국에 나가서…》

아버님의 그 말씀을 받아들일수가 없었어요.

당신은 내 마음을 잘 아시겠지요.

아버님이 이 며느리를 얼마나 귀해하시고 사랑해주셨나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아버님이 원두밭지기를 하시던 때 일 말이예요. 밤에 날이 너무 무더워 우린 마당에 평상을 만들고 그우에 모기장을 치고 자군 했지요. 모기장안에선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자고 방안에선 아버님께서 어머님과 함께 주무시고… 아버님은 저녁마다 원두밭에서 돌아오시면 제일 잘 익은 참외를 모기장안으로 밀어넣어주시며 사랑어린 어조로 이렇게 속삭여주군하셨지요.

《며늘애야, 잘 익은거다. 시원하게 한개 먹고 자거라. …》

아, 그 정이 함뿍 담긴 목소리, 물큰 풍겨오는 참외향기… 옛날부터 시아버지 며느리란 말은 있지만 우리 아버님처럼 며느리를 사랑해주시는분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그런 아버님이 누워 앓고계시는데 내가 어떻게 곁을 떠날수가 있겠어요.

여보, 당신이 내 몫까지 해서 조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난 여기서 당신몫까지 아버님 병구완을 더 잘하고…

안동수는 가슴이 쩌릿해짐을 느끼며 편지를 책상우에 놓았다. 이윽토록 편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마음도 안해의 마음도 가슴뜨겁게 안겨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슴벅이였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보자고 독립군에 들어갔던 아버지였다. 왜놈《토벌》에 맞서싸우다가 부대가 전멸되자 너무도 원통해서 쓰러진 친구의 시체를 붙안고 몸부림치며 통곡을 하였다던 피끓는 목소리가 지금도 귀전을 울리는듯하다.

《아, 분하구나. 원통하구나. 우리 나라는 왜 이렇게도 힘이 없느냐. 왜, 왜? …》

원동에 있을 때 아버지는 돈만 조금 생기면 술을 마시였고 술만 마시면 이 아들을 붙안고 울군 했었다.

《네가 나때문에 고생하는구나, 이 변변치 못한 애비때문에…》

그럴 때면 안동수는 울먹울먹하며 이렇게 위로해주군 했다.

《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아버지는 나라를 찾자고 왜놈들과 싸우다가 이렇게 되지 않았나요.》

아버지는 눈물이 짓물린 얼굴로 도리머리를 하군 했다.

《그래. 나라를 찾자구 싸우다 이렇게 되였지. 누구나 다 싸웠어. 의병대, 독립군… 3. 1봉기땐 온 나라 백성들이 다 떨쳐나서 싸웠지만… 이기지 못했어. 그 쪽발이들한테 숱한 우리 조선사람들이… 총에 맞고 칼에 맞고… 말그대루 피바다를 이루었지만 종내 지고말았지. 우린 너무 약해. 너무 힘이 약해졌어. 그래서 나라를 빼앗기구… 이렇게 딸두 빼앗기구… 아, 이 불쌍한 안덕삼의 신세야!》

가슴을 쥐여뜯는 아버지의 주름깊은 얼굴로는 연물같은 진한 눈물이 좔좔 흘러내렸었다.

그때의 그 모습은 안동수의 심장한복판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깊이깊이 새겨졌다. …

그런 아버지가 새 나라가 섰다는것을 알고도 조국에 오지 못하고 이역땅에 누워있자니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안해는 또 어떻고…

안동수는 불덩어리같이 뜨거운것을 애써 넘겼다.

편지지를 꺼내놓고 안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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