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4 장

6

(3)

 

나에게 고향에 대해 눈물겨운 표상을 안겨준것은 소학교졸업반때였어요.

그때 우리 학교에 리택준이란선생이 새로 왔는데 그 선생은 바이올린을 잘 탔어요. 어느날 우리 교실에 들어오신 그 선생은 《학생동무들은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살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온 이주민의 아들딸들입니다. 학생동무들은 절대로 고향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시고는 노래를 배워주셨어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선생은 천천히 가사를 불러주더니 바이올린으로 타기 시작했어요. 그 가슴을 흔드는 선률… 떨리는 목소리…

난 기가 막혔어요. 고향에 대한 표상조차 없는 내가 아닌가요.

남들은 고향에서 놀던 때라도 있었지만 난 젖먹이때 강보에 싸여 아버지등에 업힌채 고향을 떠났다니 고향땅은 한발자국도 내 발로 걸어보지 못한 불쌍한 이주민의 딸이 아닌가요. 빼앗긴 땅, 빼앗긴 조국… 가볼수도 없는 그리운 곳.

설음이 북받쳤어요. 목이 메여올랐어요.

바이올린을 타는 선생님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것을 본 나는 그만 가슴이 쩡해와서 견딜수 없었어요. 눈굽이 쓰려나고 눈물이 왈칵 솟아올라 난 참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리며 흑-흐윽- 하고 울음을 삼켰어요.

종내 교실 여기저기에서 울음이 터져나왔어요.

고향을 떠나던 일을 생각하며 우리 녀학생들은 다 엉엉 소리내여 울었고 남학생들도 코를 훌쩍거리며 주먹으로 눈굽을 문대군 했어요.

그 선생은 저녁마다 우리 조선인부락 꼴호즈앞마당에서 사람들에게 바이올린을 타주군 했어요.

《봉선화》, 《눈물젖은 두만강》, 《반월가》…

내가 고향에 대하여, 조국에 대하여 더욱 생각을 깊이하게 된것은 원동의 씨즈니중학교에 다닐 때였어요. 그때 우리 학교강당에서는 여러 중학교 학생들이 제각기 자기가 창작한 시들을 가지고나와 랑송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자작시발표모임이 있었는데 1등을 한 뽀뽀고중학교 학생의 시가 바로 조국에 대한것이 아니겠어요.

조국이여 나의 조국이여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늘로 올랐느냐 땅에 묻혔느냐

대답해주려마 조국이여!

 

아, 조국이여

네 진정 넋이라도 있다면

네 진정 혼백이라도 남아있다면

조용히 내 옷깃에 스며들어

울분의 이 심장을 다독여주려마

 

가슴이 쩡 울리는 시였어요. 눈시울이 자꾸만 젖어올랐어요.

옆에 앉았던 음악선생이 나보고 어서 나가 꽃다발을 주라고 등을 떠밀더군요.

시를 제일 잘 쓴 학생에게 우리 학교에서 노래 잘하는 학생이 꽃다발을 주는게 의미가 깊다면서…

내가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설음을 더 뼈아프게 새기게 된것은 중앙아시아로 이주할 때였어요.

그때 왜놈들의 간계로 집단이주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가을을 하던 밀밭머리에 낫자루를 깔고앉아 담배만 풀풀 피우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학교마당에서 그 소식을 들은 우리 녀학생들도 이제는 헤여져야 한다는 기막힌 현실앞에 억이 막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지요.

원동변강으로부터 대륙을 횡단하는 유개렬차, 음울한 하늘가에 꽤액- 하고 목메이게 울리던 기적소리, 짚을 깐 유개화차에 빼곡이 앉아 흘러가는 씨비리초원을 멍하니 쳐다보던 어른들… 고국산천은 점점 더 멀어지고 끝없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낯선 대지, 낯선 밀림, 낯선 들판… 이국에서 또 이국으로 가야 하는 불쌍한 우리 민족… 힘없는 민족…

우리 이주민들이 여러날의 고생끝에 이른 곳은 우즈베끼스딴의 따슈껜뜨주였지요.

이르는 곳마다에 펼쳐진 갈밭과 습지, 잡초무성한 황무지… 꺼궁꺼궁하고 갈밭에서 울리는 꿩들의 처량한 울음소리…

우리는 바라크같은 집에 몇세대씩 거처를 정하고 살림을 펴기 시작했지요. 억척같이 습지에 배수로를 내고 집을 짓고 터밭을 일구고… 그때 쏘련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이 정말 생활력이 강하다고 혀를 내둘렀지요. 생활이 좀 안착되자 난 니쥬네 치르치크구역쏘베트에서 운영하는 학교 7학년에 입학했어요.

이때부터는 우리가 로씨야식이름을 쓰게 되였지요.

이듬해 봄 우리 학교에서는 일요일을 계기로 치르치크강기슭에 자리잡은 어느한 야산에 등산놀이를 갔댔어요. 그곳은 크지 않은 강을 낀 자그마한 산이였지만 그래도 치르치크구역일대에서는 유일하게 사방의 풍치를 전망할수 있는 곳이였어요.

한낮이 가까와올 때까지 녀동무들과 함께 꽃을 뜯고 포충망을 휘둘러 곤충도 잡으며 동식물채집에 여념이 없던 나는 어디선가 바위등너머에서 들려오는 시랑송소리에 귀를 강구었어요. 조국에 대한 시여서 감정이 쩌릿해옴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바위등을 에돌아가니 상급반학생들 수십명이 모여앉은 장소에서 한 학생이 격정에 넘쳐 시를 읊고있었어요.

옆에서 소곤소곤하는 말이 저 학생은 며칠전 원동에서 새로 이사온 학생인데 상급학년에서 공부하게 되였다는것이였어요. 그가 시도 잘 쓰고 노래도 잘할뿐아니라 남달리 활달하고 결패있고 우습강스럽게 놀기를 잘한다기에 호기심이 나서 학생들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던 나는 깜짝 놀랐어요.

어글어글한 눈매, 높이 올려친 머리…

그가 읊는 우렁우렁 울리는 자작시가 내 마음을 흔들었어요.

 

내가 태여나 태줄을 끊은 곳은

조국땅이 아니였다.

내가 태여나 처음본것도

조국의 하늘이 아니였다.

내 태여나 처음으로 마신것은

낯설은 이국의 공기

내 첫걸음을 뗀 곳도 이국의 낯선 땅

조국이여 너는 어디에 있기에

조선사람이 분명한 내가

이처럼 이국의 낯선 땅에서

목메여 너를 불러야만 하는가

 

나는 그만 눈물이 쿡 솟았어요. 이국땅에 와서 고생하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그만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말았어요.

시는 계속 내 마음의 금선을 울리며 마디마디 아프게 흘러들었어요.

 

조국이여 너는 정녕 어디에 있기에

너의 불쌍한 아들딸 이렇게 정처없이 먼곳에 오도록

어찌하여 버림받고 눈물흘리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말 한마디도 없느냐 나의 조국아…

너에게 그런 힘마저 없다면…

 

네 아들딸들 안아줄 그런 힘조차 없다면…

아- 그래도 나는 부른다

조국아… 힘 없어도 그대는 나의 조국…

목메여 부른다 조국아 나의 조선아-

 

시가 끝났어요. 난 언제 어떻게 앞으로 나가 들고있던 장미꽃송이를 당신에게 주었는지 생각이 안나요.

원동에서 얼핏 한번 만났던 당신이지만 멀리 따슈껜뜨에서 다시 만난, 같은 이주민이라는 공통감과 조국에 대한 열렬한 감정이 그렇게 하도록 내 심장을 부추긴것 같았어요.

그때 우리는 치르치크강변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며 서로 통성을 했었지요. 난 그제서야 당신이 어렸을 때부터 병약한 아버지를 부양하며 궂은일, 마른일 가림없이 도맡아하면서 고생을 해온다는 눈물겨운 사연도 알게 되였지요.

그래서 당신의 가슴속에 조국에 대한 사랑이 그토록 깊이깊이 새겨졌다는것을…

안동수는 가슴이 아릿해왔다. 그처럼 조국을 그리워하는 안해였다.

우리는 과연 언제면 함께 모여살게 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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