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4 장

6

(2)

 

금덕이는 새해 첫날이지만 웃방에서 앉은뱅이책상에 마주앉아 공부를 하고있었다. 사돈집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금덕이와 함께 점심을 하고서야 안동수는 자리를 일었다.

《새해에도 앓지 말고 공부를 잘하거라.》

안동수는 헤여지기 서운해하는 금덕이에게 가지고갔던 고급학습장과 만년필을 안겨주고 신문사로 돌아왔다. 금덕이가 공부하고있는 모습을 보고 와서인지 한결 마음이 거뿐했다.

신문사에 돌아오니 청사는 빈집처럼 조용했다.

다들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양력설을 즐기고있을것이다.

문득 집에서는 이 새해 첫날을 어떻게 맞고있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떠나 벌써 두번째로 맞는 양력설이다.

아버지, 어머니와 안해, 귀여운 아들, 딸들…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 못견디게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안동수는 책상서랍을 열고 안해의 편지들을 꺼내들었다.

봉투에 쓴 동글동글한 안해의 낯익은 필체에서 야릇하고도 애틋한 정이 풍겨오는것을 느끼며 속지를 펼쳐들었다.

안해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가슴 그들먹하게 새힘을 얻게 되군 하는 안동수였다.

어느덧 마음속에서는 정다운 안해의 목소리가 노래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

당신이 조국땅에 도착하여 보내온 첫 편지를 받았어요.

누이동생 금덕이를 찾아 평양으로 데려갔다는 그 편지를 읽으며 아버님과 어머님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

당신은 이제 조국에 가면 소학교교원이 되여 어린아이들의 순진하고도 깨끗한 넋에 조국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깊이깊이 새겨주겠다고 그리도 소원하더니… 군복을 입고 조국을 지킬 정치군사간부들을 키워내는 평양학원 교원이 되였군요. 그것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직접 임명해주시였다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예요. …

난 당신의 편지를 몇번이나 읽어보았는지 몰라요.

오늘도 꼴호즈의 양방목지에 일을 보러 나갔다가 풀판에 앉아 또 당신의 편지를 꺼내들었댔어요. 그 눈물이 나는 누이동생의 일도 그리고 꽃니의 불행에 대한 일도… 읽고 또 읽노라니 당신이 왜 군복을 다시 입을 결심을 하게 되였는지 가슴저리게 안겨왔어요. 그래요, 옳게 결심하셨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조국을 지켜야지요. 우리가 얼마나 눈물겹게 그려보군하던 조국이예요.

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우리가 원동에서 살 때 난 강가에 물고기를 잡겠다고 나간 오빠들을 따라나선적이 있었어요. 다섯살때인가, 여섯살때인가.

들판에는 파란 풀이 깔려있는데 다문다문 노란 들꽃이 피여 바람에 하느적이고있었어요.

난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들꽃을 꺾었어요. 물고기를 잡아 풀꿰미에 꿰고있는 맏오빠에게 꽃을 내보였어요.

《오빠, 이 꽃이 참 곱지? 이건 무슨 꽃일가?》

오빠는 나를 돌아보더니 싱긋 웃었어요.

《그건 민들레꽃이란다.》

《민들레꽃? 야, 나 이 꽃 아빠, 엄마에게 갖다줄래. 아빠두 엄마두 이렇게 고운 꽃은 못 보았을거야.》

오빠는 코웃음을 쳤어요.

《피, 왜 못보았다구 그래. 우리 고향 회령에두 맨천 꽃인데. 거기두 민들레는 많아. 그뿐인줄 알아? 백살구꽃은 또 얼마나 고운지 몰라. 지금쯤은 온 마을에 백살구꽃이 하얗게 피였을거야. 우리 집에두 얼마나 큰 살구나무가 있었댔는지 아니? 저 아가위나무보다 더 크댔어.》

나는 오빠가 가리키는 저 앞산기슭의 큰 아가위나무를 눈이 올롱해서 쳐다보았어요.

《백살구나무? 그거 어떤거나?》

《어떤거?》

오빠는 눈이 둥그래서 나를 돌아보았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눈을 껌벅껌벅하다가 내가 들고있는 민들레꽃을 가리켰어요.

《음- 크기는 그 꽃만 해. 아가위처럼 동글동글하구. 아가위는 시큼털털하지만 백살구는 시면서도 꿀처럼 달단다.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봄에는 하얀 백살구꽃이 쫙 피구 여름엔 그런 살구가 쫙 달리구… 정말 멋있었는데…》

오빠의 목소리가 갑자기 흐려졌어요. 웬일인가 해서 쳐다보니 오빠는 앞산너머 어딘가 멀리를 눈물이 그렁해서 쳐다보는것이였어요.

《오빠, 왜 그러나?》

오빠는 흠칫하며 나를 돌아보더니 손등으로 눈굽을 북- 훔쳤어요.

《응, 갑자기 고향생각이 나서 그래. 거긴 백살구도 많구 팔을천엔 물고기도 많구… 정말 한번만이라도 가보구싶구나.》

《그런데 우린 왜 여기 와서 사나. 이젠 고향에 못 가나? 이제라도 가면 안되나?》

정말 이상했어요. 그런 좋은 고향에서 왜 여기로 왔는지, 왜 고향에 가고싶어도 가지 못하는지… 알수가 없었어요. 백살구꽃이 그렇게도 아름답다는 내 고향 회령… 물고기떼가 욱실거린다는 맑은 팔을천… 야, 그런 고향에 가서 살면 얼마나 좋을가. 아빠, 엄마한테 조를테야, 고향에 가서 살자구… 오빠는 내 마음속을 다 들여다보기라도 한듯 퉁명스레 말했어요.

《고향엔 가지 못해. 거기엔 이젠 집두 없구 밭두 없어.》

나는 의아해서 오빠를 쳐다보았어요.

《오빤 방금 우리 집이 있다고 하잖았나. 저 아가위나무보다 더 큰 살구나무가 있는…》

《왜놈순사가 다 빼앗았단말이야. 지주놈하구 둘이 와서…》

나는 눈이 올롱해서 물었어요.

《그건 왜?》

오빠는 도리머리를 했어요.

《그건 나두 잘 몰라. 글쎄 하루는 뚱뚱보지주놈이 안경쟁이왜놈순사를 끌구와서 당장 집두 내놓구 밭두 내놓으라는거야. 거기는 다 그 천가라는 지주놈의 땅인데 허가없이 밭을 일구었다는거지. 아버지가 산기슭의 돌각담을 추어내고 밭을 일구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자 지주놈은 그 산이 자기네 선친들의 묘가 있는 선산이니 그 산도 산기슭도 다 자기네 땅이라는거야. 그 밭에서 나는 곡식도 자기네거구… 곡식이 잘되였으니 탐이 났던 모양이야. 지주놈은 문서장을 벌컥벌컥 뒤지더니 지금껏 꾸어다먹은 빚값이 여사여사하니 글쎄 집까지 내놓으라지 않겠니. 아버지가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는가구, 그럼 우린 어떻게 살라는건가구 따지고들자 지주놈은 너따위 거러지같은것들이 살든죽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구 막 지팽이를 휘두르더구나. 아버지는 억울하게 매를 맞다가 참지 못하고 지팽이를 와락 잡아 뚝 꺾어버렸어. 그러자 안경쟁이순사놈과 지주놈이 함께 달라붙어 아버지를 막 때리지 않겠니. 아버지는 화가 나서 놈들을 둘다 함께 멨다꽂았어. 아버진 힘이 장사였구… 마을사람들속에서두 호걸장수로 소문났댔으니깐…

그깟놈들은 그저 단숨에… 왜놈순사놈은 안경이 깨져달아나구 지주놈도 죽는다고 엄살을 부리더구나. 그게 화가 돼서 그만… 왜놈들이 우리 아버지를 잡아다 죽이려 한다는걸 알구 그밤으로 고향을 떠났어. 아버진 떠나면서 솜뭉치에 불을 달아 지붕이영우에 던지더구나. 집은 순간에 활활 불타오르구… 우린…》

나는 가슴이 막 떨렸어요. 분하기 그지없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고향에서 떠나왔구나. 그래서 그처럼 아름다운 고향에 다시 갈수도 없게 되였구나.

그때부터 어린 내 마음속에 고향에 대한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어요. 어른들이 두고온 고향에 대해 말할 때면 그 백살구꽃이 하얗게 핀다는 고향집의 살구나무를 그려보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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