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4 장

6

(1)

 

안동수가 려단장의 집을 나섰을 때에는 밤이 이슥해서였다.

멀리까지 따라나온 류경수는 좀 바재이는듯싶더니 감개한 어조로 이렇게 말해주는것이였다.

《사실 오늘 좌석은 우리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거요.》

《예?》

안동수는 놀라서 우뚝 멈춰서며 류경수를 돌아보았다.

류경수는 감심한 어조로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처자도 없이 동생과 외롭게 새해를 맞는 부려단장동무를 꼭 집에 데려다가 함께 즐기라고 하시였소. 하루밤 함께 보내면서 동무해주라고…》

안동수는 갑자기 눈굽이 시큰해졌다. 목안에 알싸한것이 고여올랐다.

장군님께서는 그럼 이 양력설도… 이 구실도 못하는 전사가 뭐라고 장군님께선…

안동수가 더 말을 못하자 류경수가 젖은 음성으로 계속했다.

장군님께서는 지난해에는 정숙동무가 있어서 마음놓았었는데 올해에는… 정숙동무가 없는 집에 동무를 데려오면 오히려 더 가슴이 아파할거라면서…》

안동수는 멍하니 류경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눈굽이 따가와져서 황급히 고개를 외로 꺾었다.

《어쩌면 장군님께서는… 장군님께서는…

류경수가 와락 안동수의 손을 잡았다.

《우리 장군님은 바로 이런분이시오. 장군님께서는 동무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말라고 하시였지만… 우리가 어떤분을 모시고있는가를 잘 알아야겠기에…》

안동수는 류경수의 손을 덧잡아쥐였다. 불덩이같이 달아오른 손이였다. 크나큰 격정의 파도가 가슴을 쾅쾅 두드려서 무슨 말을 할수가 없었다. 한참 그러고있다가야 불물같이 뜨거운것을 삼키며 고개를 숙이였다.

《사랑과 믿음은 하늘같이 큰데… 구실을 못해서…》

《료해사업때문에 그러오?》

《면목이 없습니다. 기쁨을 드리지는 못할망정 저때문에 또 마음쓰시게 하였으니…》

안동수는 가슴이 저려옴을 느끼며 나직이 한숨을 내그었다.

괴로왔다.

류경수가 안동수의 덧잡아쥔 손에 힘을 주며 불같은 어조로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장군님의 신임과 기대를 언제나 잊지 말고 새해에 일을 더 잘합시다.》

안동수는 류경수와 헤여졌다. 지휘부로 향했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으며 우우 소리를 지른다. 발끝에서는 빠그극빠그극 눈밟히는 소리가 났다.

문득 김정숙녀사의 해빛처럼 환히 웃으시는 모습이 우렷이 안겨왔다.

지난해 1월 1일 저택에서 맞아주시던 상냥하고도 친근하신 그 모습… 눈뿌리가 인두에 지지운듯 따가와지더니 눈물이 글썽하니 고여오른다. 그날의 일이 어제일처럼 또다시 눈앞에 떠오른다. 안동수는 침실로 가야 쉽게 잠들것 같지 못해 대동강쪽으로 향했다.

 

×

 

1년전인 1949년 1월 1일 오전, 안동수는 신문사 일군들과 기자, 편집원모두를 집에 들여보내여 가족들과 함께 양력설을 즐기게 조직사업을 하고는 곧장 애육원으로 갔다.

꽃니를 만나 새해를 축복해주려는것이였다.

애육원에 찾아간 그는 먼저 애육원원장을 만났다.

《이젠 그 애걱정은 안해도 되겠어요. 노래도 웃음도 모두 되찾았어요. 장군님과 녀사께서 지난해에도 몇번이나 찾아오시여 부모없는 애들을 모두 나라의 훌륭한 역군으로 키우자고 하시면서 얼마나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는지 모른답니다.

아이, 마침 저기 꽃니가 오는군요.

꽃니어린이, 아저씨가 오셨어요. 어서 와서 아저씨께 노래를 불러드리자요.》

한달음에 달려온 꽃니는 나풀나풀 춤을 추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 애가 너무 귀여워 꼭 껴안고 한껏 애무해준 안동수는 사돈집에 찾아가 금덕이를 만나보았다.

금덕이와 갈라져 생활하기 시작한것은 여기 평양에 올라와 《조선인민군》신문 책임주필사업을 시작했을 때였다.

어느날 일을 보러 서평양쪽에 있는 부대에 나갔다오던 안동수는 뜻밖에도 가루개장마당에서 나오는 금덕이와 마주치게 되였다. 안동수는 의아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너 여기에 무얼하러 왔댔니?》

금덕은 손에 든것을 뒤로 감추며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줄 몰라했다.

날마다. 저녁마다 다른데 정신을 팔지 말고 공부에 전심하라 타이르던이 오빠의 말이 생각나는듯…

《그건 뭐냐, 손에 든거…》

안동수가 엄하게 묻자 금덕은 고개를 푹 숙이며 뒤에 감추었던것을 내보였다. 그것은 뜻밖에도 손바닥만한 잉어였다.

《이건 웬거냐?》

《오빠가… 오빠가 입맛이 없어하길래… 생선국을 끓여드리려구…》

안동수는 불시에 코안이 매워올랐다. 민망한 눈길로 금덕이를 쳐다보았다.

요사이 고뿔이 들어 밥그릇을 축내지 못하자 그렇게 식사를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고 눈물이 글썽해서 안타까와하더니 오늘 이렇게 잉어를 살 생각을 한 모양이다. 만년필을 사라고 준 돈으로 돌려쓴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서나 이 오빠를 위해주려고 무진애를 다 쓰는 금덕이였다. 군복을 빨고 목달개를 빨아 달아주고 밥상에 찬 한가지라도 더 놓아주지 못해 속상해하고… 지금껏 혈육의 정이란걸 모르고 자란 동생이라 친오빠에게 자기의 정성을 깡그리 쏟아붓고있는것이다.

안동수는 자기가 금덕이한테 너무 부담이 되고있다는것을 새삼스레느꼈다. 근심걱정 모르고 한창 배워야 할 애가 나때문에… 안동수는 천천히 도리머리를 했다.

그날 안동수는 시간을 내여 사돈네 집에 가서 의논을 하고 저녁에 금덕이와 마주앉았다.

금덕이는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 같아 몹시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오래동안 눈치밥을 먹으며 머슴살이를 해온 금덕이라 상대의 얼굴표정 하나에도 앞일을 내다보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안동수는 이제부터 사돈네 집에 가살면서 학교에 다니라는 말을 차마 할수가 없었다.

혈육의 정을 난생처음 체험해보는 금덕이에게 어떻게 또 갈라져살자는 말을 할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금덕의 앞날을 위해서는 말을 해야 했다.

안동수는 음- 하고 마른기침을 한번 하고는 용기를 내여 입을 열었다.

《금덕아, 난 이제부터 네가 사돈네 집에 가서 살면서 공부했으면 한다.》

《예?》

금덕의 가뜩이나 큰 눈이 더 커졌다.

《사돈과도 토론이 있었다. 네가 전적으로 공부에 전심을 할수 있게…》

안동수는 금덕이의 눈을 차마 마주볼수가 없었다.

금덕이가 떨리는 소리로 애처롭게 물었다.

《내가… 내가… 무얼 잘못한게 있나요?》

안동수는 완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다. 한창 공부에 열중해야 할 네가 나때문에 너무 시간을 떼워서 그런다. 너에게 너무 부담이 되여서 그래.》

《오빤… 내가… 부담스럽나요?》

《그런게 아니란데… 그건…》

갑자기 금덕이가 《오빠!》하며 품에 안겨들었다. 몸을 떨면서 애절하게 하소했다.

《오빠, 날 보내지 말아줘요. 내 오빠말 정말 잘 들을게요. 난 다른데 가기 싫어요. 밤을 밝히면서도 공부를 잘할테니 우리 함께 있자요.》

별안간 안동수는 눈뿌리가 인두로 지지우는듯 뜨끈했다. 저절로 눈물이 쿡 솟구쳤다. 아- 만나서 1년도 채 안된 내동생… 오죽이나 정이 그리웠으면 이러랴싶었다.

안동수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꼭 그러안았다. 자꾸만 목이 메여올랐다. 이제 겨우 몸이 추서기 시작한 동생이다. 헤여지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안동수는 나약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다잡았다.

동생의 앞날을 위해 감정을 눌러야 했다. 선생의 말을 들으면 동생은 총명해서 모래판에 물이 스며내리듯 배워주는대로 다 소화시킨다고 한다. 이런 그가 이 오빠의 뒤시중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면… 아니, 그렇게는 할수 없다. 우리 금덕이도 이제는 한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나라에 한몫하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 지난날 머슴살며 천대받던 그만큼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한다.

《금덕아, 난 네 심정을 잘 안다. 하지만 배우는건 시간이 지나가면 다야. 난 네가 그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공부에 열중하길 바라서 그러는거다. 많이 배워서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되여야 해. 이 오빠만 받들어주는게 아니라 나라를 받드는 사람이 되여야 해.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나라를 받들면 우리 나라가 더욱 힘이 커질것이 아니냐. 나라는 누구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 개개가 모두 합쳐져서 이루어지는거야. 나라가 힘이 약해지면 또 원쑤놈들에게 먹히우고 우린 또 노예살이를 해야 한다는걸 명심하구 배우고 또 배워야 해. 알겠니?》

금덕이는 오빠의 말을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흑- 흐윽 흐느껴울면서도 보짐을 쌌다. 그것이 더 눈물이 났다. 그를 데리고 모란봉기슭에 있는 사돈집으로 가면서 안동수는 금덕이 몰래 몇번이나 눈물을 삼켰었다.

그때부터 금덕이는 사돈네 집에서 살며 공부하고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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