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4 장

5

(1)

 

《아니, 려단장동지, 저녁이 다 되였는데 갑자기 어디로 가자는겁니까?》

오전에 새해를 맞는 공병중대에 가서 양력설을 축하해주고 오후에는 금덕이한테 갔다와서 위대한 장군님의 신년사관철을 위한 정치사업계획을 검토해보던 안동수는 류경수려단장이 들어와 다짜고짜로 함께 가자고 이끄는 바람에 의아해서 일어났다.

《글쎄 빨리 가기요. 오늘 아침 새해 첫 명령을 받았는데 수행해야지.》

류경수가 별로 수선을 떨며 자꾸 독촉했다.

《명령은 또 누구에게서 받았단 말입니까. 지금껏 함께 있으면서도 그런 말이 없더니…》

안동수가 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건 이제 가면 알게 되오. 자, 가기요.》

안동수는 고개를 기웃한채 그를 따라나왔다. 부대정문을 나서서 사택마을쪽으로 향하자 안동수는 류경수를 돌아보았다.

《혹시 집으로 가자는게 아닙니까?》

류경수가 히죽이 웃었다.

《오늘 아침에 우리 순희동무가 명령을 하더구만. 저녁에 동생을 데려오라구… 세배두 할줄 모르는 동생이라구… 남들은 시동생이 그렇게 곱다는데 언제 고와해줄 기회도 안 준다는거요, 허허허.》

안동수는 걸음을 멈추며 난처해서 두손을 펼쳐보였다.

《아니, 그런걸 이제 말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난 아무런 준비도 안했는데…》

안동수가 민망한 눈길로 바라보자 류경수는 껄껄 웃었다.

《준비는 무슨 준비, 홀아비가… 가서 먹어주기만 하면 되는거지. 누이동생도 함께 가면 좋겠는데 아까 운전사를 보냈더니 뭐, 자기네 학급동무들끼리 모여 무슨 신년회를 한다던지…》

《아까 낮에 금덕이한테 가보니 그런 말을 하더군요.》

안동수는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새해 첫날을 우리가 적적하게 보낼가봐 이처럼 왼심을 쓰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눈굽이 뜨거워올랐다.

문득 작년 양력설을 장군님댁에서 쇠던 일이 떠올랐다.

어쩌면 항일투사들은 이렇게 모두 장군님을 닮았을가, 날씨가 갑자기 차지던 그 잊지 못할 새벽에 걸어오신 전화, 《어련하겠지만…》 하시던 말씀, 정찰중대 아궁이에서 직일병과 함께 불을 때던 려단장…

《사실 내 부려단장동무가 임명되여오던 날 밤청대를 한번 멋있게 하려댔는데 그 땅크가 구르는 바람에 개판이 되였거던. … 장군님께 그 말씀을 드렸더니 어찌나 아쉬워하시던지…》

《아니, 장군님께 그런 말씀까지 드렸단말입니까?》

안동수가 놀라서 쳐다보자 류경수는 오히려 그게 더 놀랍다는듯 눈을 치떴다.

《아니, 그런걸 말씀드리지 않구 어떤걸 말씀드리겠소? 장군님께서는 우리 전사들이 그렇게 밤청대를 했다거나 씨름을 했다거나 만시름을 놓고 땀흘리며 한잠 푹 잤다거나 하는걸 제일 좋아하신단 말이요.

장군님께서는 다음가을엔 잊지 말고 꼭 밤청대를 해주라고 하시더군.

이역땅에서만 생활해온 부려단장동무가 그런 일을 언제 해봤겠소. 하시면서… 이제 올해 가을엔 본때있게 합시다. 가족들도 다 모여서 말이요. 제수는 언제 데려다 인사시킬 작정이요?》

안동수는 멋적게 웃었다.

《아버지 돌제나 지내구는 데려오려고 합니다.》

《몇달 안 남았구만. 지난해 3월에 돌아가셨다고 했지. 가만… 그럼 집부터 빨리 지어야겠다. 그래야 제수님의 절을 떳떳한 마음으로 받지, 허허허.》

이러는사이에 어느덧 려단장의 집에 도착했다. 나무판자로 허리노리높이로 두른 울타리너머에서 돼지가 꿀꿀거렸다.

마당에 들어서자 부엌문이 활짝 열리며 얼굴이 갸름하고 몸매가 그리 크지 않은 황순희가 하얀 앞치마를 두른채 반색을 하며 달려나왔다.

《부려단장동지, 새해를 축하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황순희는 안동수가 미처 인사를 할새도 없이 팔소매를 잡고 방으로 이끌었다.

인사할 기회를 놓쳐버린 안동수는 어이가 없어 허허허 웃으며 그에게 끌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둥그런 상우에 벌써 명절음식들이 가득 차려져있었다.

《어서 상앞에 나앉으세요. 차린건 별로 없어두…》

안동수는 이렇게 된바에는 진짜동생노릇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음-》 하고 마른기침을 톺았다. 그는 음식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작정 류경수에게 형수님과 함께 웃목에 나란히 앉으라고 독촉했다.

《빨리 좀 앉아주십시오. 내 진짜세배를 하겠습니다.》

류경수가 한손을 내저으며 껄껄거리였다.

《됐소, 됐소. 세배는 무슨 세배… 우리야 벌써 사무실에서 새해인사를 나누지 않았소. 아까 그 소린 롱말이고…》

《아,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집에 들어와서야 우리 조선식인사가 있어야지요. 더구나 형수님께는 아직 인사를 못하지 않았습니까. 자, 어서요. 자, 형님은 여기에… 그리고 형수님은 여기에…》

안동수는 류경수와 황순희를 방웃목에 끌어다 나란히 앉혀놓고는 짐짓 매우 정중한 자세로 그들앞에 나섰다.

《좀 늦은감이 있지만… 새해인사를 받아주십시오. 새해에도 건강하여 복많이 받고 이해에도 아들이든 딸이든 또릿또릿한 조카 한명을 또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안동수는 정색해서 인사말을 하고는 구들바닥에 넙적 엎드리며 코가 바닥에 닿도록 큰절을 하였다. 그 거동이 얼마나 우스운지 류경수와 황순희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황순희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고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었다.

그러거나말거나 안동수는 정색한채 제가 먼저 밥상앞에 다가앉으며 상우에 차려놓은 음식그릇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이거 오늘 절을 깍듯이 했는데 그 값을 받겠는지 모르겠다.》

류경수가 웃음을 참으며 음식상에 마주앉았다.

《절값으로 뭘 줄가. 어지간히 수고했는데 연필 한자루 줄가?》

《내가 뭐 소학교학생이라구 그런걸 받겠습니까. … 내 절값은 형편없이 비쌉니다.》

《허, 이거 괜히 절을 받았군. 별로 강짜루 절을 한다 했더니, 허허허…》

류경수가 황순희를 돌아보며 웃자 황순희가 나서며 안동수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 값이야 아무래도 내가 내야지요.》

안동수는 도리머리를 했다.

《절값이야 두분이 다 내야지요, 허허허. 난 그 값을 받기전엔 이 집을 안 떠납니다. 허허허…》

그들은 유쾌하게 웃으며 음식들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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