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4 장
2
《상위동지! 중사 라영철 만날수 있습니까?》
방철호는 밥을 입에 넣은채 의아한 눈길로 거수경례를 하고 서있는 그를 치떠보았다. 중대대렬과 함께 방금전에 식사를 하고 나간 그가 다시 돌아와 문화부대대장이 한창 늦은 식사를 하는중인데도 만나자고 하는걸 보면 보통 급한 일이 아닌것 같았다.
방철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입안의것을 넘겼다.
《무슨 일이요?》
《문화부려단장동지가 건국실에서 찾습니다. 빨리 오시랍니다.》
《알겠소.》
라영철이 절도있게 경례를 하고 나가자 방철호는 까닭없이 심호흡을 한번 했다.
불쑥 언제인가 박영욱이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안 울라지미르동무가 동무네 문화부려단장으로 갔더구만. 그 동문 내가 따슈껜뜨에서 구역당사업을 할 때 사범대학을 나오고 붉은군대에 나갔댔소. 잘 아는 동무이지. 내 동무 이야기를 했소. 잘 도와줄게요.
방동무,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듯 사람은 첫출발을 잘해야 해. 시작부터 본때를 보이시오. 내가 하라는대로 꾸리기만 하면… 모두 눈이 뒤집힐게요. 이제 건국실에 대한 전군적인 방식상학을 하고 이름이 나기 시작하면… 두고보오, 그래 방철호가 문화부대대장을 오래 할것 같소? 동무네 문화부련대장두 아직 부재중이지?》하던 말이 귀전에서 웅웅거렸다.
방철호는 그때 자기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마왔지만 뒤말은 귀에 거슬리여 볼부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고말았었다.
《제 수준에서는 문화부대대장두 과남합니다.》
어쨌든 그 문화부려단장이 지금 대대건국실에 와서 자기를 부르고있는것이다. 전번에 만났을 때 박영욱부장이야기를 하며 한번 건국실을 잘 꾸려보라고 하던 말이 우연한것같지는 않았다. 방철호는 신심을 안고 식당문을 나섰다. 문화부려단장은 붉은군대에 나가 쏘도전쟁에도 참가했댔다니 건국실의 직관판들을 보면 감회도 깊을것이다. 그때 일을 추억하며 전투담을 이야기해줄지도 모른다.
방철호는 그 어떤 긍지와 자부심같은 감정을 안고 건국실문을 열었다.
벌씬 웃으며 문안에 들어서던 그는 갑자기 우뚝 굳어지고말았다.
건국실엔 대대장과 대대선전원을 비롯하여 몇몇 군관들이 후줄근해서 머리를 수그리고 서있는데 문화부려단장이 방철호를 보자마자 대뜸에 《동문 조선사람인가, 쏘련사람인가?》 하고 따져물었던것이다. 그것은 물음이 아니라 폭풍우를 예고하는 우뢰와 같은것이였다.
방철호는 뻥뻥해서 문화부려단장을 마주 쳐다보았다.
《저… 그건…》
안동수문화부려단장은 아직도 모르겠냐는듯 손을 들어 직관판을 가리켰다.
《저건 뭐요. 여기가 붉은군대 강실이요? 우리가 쏘련군대인가? 동무는 대대를 무얼로 만들자는거요?》
문화부려단장은 사정이라는게 없었다. 우렁우렁한, 건국실을 쩡쩡 울리는 그 큰 목소리가 운동장에 있는 대원들에게도 그대로 들리련만 도무지 체면을 봐주려 하지 않았다.
《말해보오, 여기 어디에 조선사람의 얼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동문 자기의 상식을 자랑하자는거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뚜지고 들어가고싶었다. 야속했다. 이렇게 문화부대대장을 묵사발 만들어놓으면 난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전사들앞에 나선단말인가. 전사들이 날 무얼로 보겠는가. 방철호는 볼이 부은채 직관판들에 시선을 주었다. 모스크바대격전, 꾸르스크전투… 《정의의 싸움》… 그래 저것이 나쁜건 또 무엇이란말인가. 붉은군대가 쏘도전쟁에서 어떻게 영용하게 싸워이겼는지 모두 따라배우면 좋으면 좋았지 나쁜게 뭐가 있는가.
《왜 대답을 못해, 무슨 의견이 있는가?》
방철호는 고집스레 입을 열었다.
《쏘련은
안동수는 한손으로 허공을 획 내리그었다.
《안되겠소. 혼맹이 쑥 빠진 사람이로구만. 눈은 있는데 동자가 없다더니…》
안동수는 더 말을 안하고 씽하니 대대지휘부로 가더니 어딘가 전화로 몇마디 하고는 대대지휘부 군관들을 다 모이게 했다.
《오늘부터 방철호동무는 일체 일을 전페하고 우리 나라 애국명장들과 력사에 대하여 공부하시오. 대학에 가서 교수선생에게서 배우든 력사학자들을 찾아가든 그건 상관 안하겠소. 그렇소. 직무수행정지요. 그사이 문화부대대장사업은 선전원동무가 대리하시오. 나두 자주 내려오겠소. 방철호동무는 배운것만큼 내가 내려을 때마다 와서 보고하시오.》
방철호는 낯에 검뎅이칠을 당하는듯한 수치와 모멸감을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참아냈다.
《다심》한 박영욱은 그날저녁 전화로 건국실이 어느정도 추진되였는가 알아보다가 무슨 기미를 눈치챘는지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했다.
《그래 직관판은 이미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소? 내가 준 자료들은 다 써넣었겠지?》
《예.》
《대답이 왜 그렇게 힘이 없소? 문화부려단장은 와서 보았소? 방식상학을 하겠다고 한것 같은데…》
《방식상학은 못할것 같습니다.》
《그건 왜?》
《직관판이 잘되지 못한것 같습니다.》
《직관판? 참 답답하구만… 직관판이야 재간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잘 만들어야지… 가만, 직관판은 내 잘 만들어다주겠소. 안동무가 내용은 뭐라고 안합데? 보고 좋아했겠지?》
《됐습니다. 직관판도 제가 후에 다 해결할테니 지금은 좀 자중하십시오.》
《여보,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동무가 우물우물하는새에 다른데서 더 좋은게 나타날수 있단 말이요. 좋은 자료랑 다 얻어다주었는데… 좋소, 내 안동무한테 말해보겠소.》
박영욱은 전화를 끊었다. 아마 문화부려단장에게 전화를 하려는 모양이였다.
그때 문화부려단장과 어떤 전화를 했는지 방철호는 알지 못했다. 다만 안동수문화부려단장 성미에 가만있지 않았을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가슴을 서늘하게 해주었다.
아닌게아니라 한시간후에 박영욱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방동무, 동무 왜 그렇게 주대가 없어? 처벌을 받았으면 받았다고 사실대로 말해야 할게 아닌가. 뭐, 직무수행정지처벌을 받았다구? 력사공부를 하라구 했다구? 그런 인격모욕이 어디에 있어? 그건 이 선전부장에 대한 삿대질이야. 치졸하거던. 한때 제 문제에 대해 내가 보증을 안 섰다고 그런 식으로 보복한단 말이지. 동무하구 내가 가까운 사이라구해서 사업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방철호는 듣다못해 퉁명스레 한마디했다.
《거기엔 개인감정이 섞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뭐요?》
《견해 인식에서의 차이이겠지요.》
《좋지 않아. 어쨌든 경향이 좋지 않단 말이요. 개인악감에서 그런것이 아니라면 이건 철저한 반쏘적감정의 발현이요. 두고보오, 가만있지 않겠소.》
박영욱은 탕! 하고 송수화기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