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3 장
4
(2)
갑자기 문을 똑똑똑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안동수는 처음엔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나 해서 눈을 껌벅이며 팔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어두워서 몇시인지 알수가 없다.
또다시 아까보다는 문을 더 세차게 두드리며 찾는 소리… 《문화부려단장동지, 부려단장동지!》
안동수는 화닥닥 뛰쳐일어났다.
《무슨 일이요. 어서 들어오시오.》
안동수는 불부터 켜고 얼핏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 30분이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찬바람과 함께 직일관완장을 두른 작전참모가 뛰여들었다.
《문화부려단장동지,
《뭐,
뜻밖이였다.
안동수는 부랴부랴 군복을 입고 단추를 채우며 사무실로 달려갔다.
교환대를 찾아 전화를 돌리라고 했다. 이제
《
송수화기를 두손으로 받쳐든 안동수는 정중히 말씀드렸다.
다음순간
《자는데 깨워서 안됐소. 려단장동무를 찾으니 집에도 안 들어오고 또 사무실에도 없다기에 부려단장동무를 찾았소.》
《
안동수는 목메여 이렇게 부르기만 했다. 하면서도 려단장이 어디로 갔을가 하는 의문을 금할수 없었다.
《어련하겠지만 철이 바뀌는 때이니 전사들을 잘 돌봐주어야겠소. 이젠 침실들에 불도 때야 할게요. 다시말하지만 우리 귀중한 전사들이 단 한명이라도 감기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오.》
《
안동수는 불시에 불물같은것이 입안에 가득차올라 더 말을 못했다.
감기는 철이 바뀌면서 흔히 걸릴수 있는 병이다.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들의 감기에 대해서는 그닥 큰 걱정을 안한다.
그러나 우리
멀리 외지에 나가있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심정인들 이보다 더하랴싶었다.
안동수는 송수화기를 받쳐든채 격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수그리고말았다.
인민군전사 한사람한사람을 그토록 아끼시는
우리는 날씨가 추워진다고 무우나 배추를 비롯한 남새가 어는것이나 걱정했지 전사들의 잠자리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하지 않았는가.
안동수는 전사들의 생활에 무관심했던
말로는 전사들속에 들어가 그들의 애로를 풀어준다고 하면서도
안동수는 자책으로 가슴이 미여지는듯 아팠다.
안동수는 송수화기를 놓기 바쁘게 발전자돌리개를 맹렬히 돌리기 시작했다. 각 련대지휘부들에 전화를 걸어
바람은 좀 잦아든것 같았지만 대신 날씨는 더 맵짜졌다.
안동수는 먼저 가까운곳에 자리잡은 공병대대의 한 중대침실에 들어가보았다. 아닌게아니라 썰렁했다. 모포를 머리우에까지 올려쓰고 꼬부리고 자는 군인들을 아픈 눈길로 둘러보던 안동수는 즉시 중대지휘부 침실로 가서 중대장과 문화부중대장을 깨웠다.
다음은 통신중대…
그는
안동수는 두주먹을 꽉 부르쥐였다. 찬바람을 맞받아 걸었다.
정찰중대에 갔을 때 안동수는 또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 뜻밖에도 류경수려단장이 정찰중대 직일병과 함께 움푹 패인 화구간에 앉아 침실아궁에 막 불을 지피고있었기때문이였다.
안동수는 갑자기 무엇인가 뇌리를 세차게 후려치는것을 느끼며 이윽토록 그를 쳐다보았다. 혹시 전화내용을 알고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문득
그랬다. 류경수려단장은
안동수는 류경수려단장이 자기보다 너무도 아득한 높이에 서있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려단장동지!》
류경수는 아궁에서 피끗 고개를 돌렸다. 아궁에서 비쳐나오는 불빛에 그의 얼굴은 온통 벌겋게 익은것만 같다.
《아, 부려단장동무요? 어떻게 이 밤중에…》
류경수가 움쭉 몸을 일으켰다. 따라일어서는 직일병의 어깨를 눌러앉히였다.
《룡강친구, 잘있으라구. 영웅이 되자면 훈련을 더 잘해야 돼. 알겠나?》
《알았습니다.》
류경수는 움푹 파진 아궁앞에서 훌쩍 뛰여올라왔다.
《무슨 일이요?》
《려단장동지,
안동수는 목메인 소리로 자초지종을 알려주었다. 류경수는 감개한 표정으로 말을 듣다가 획 돌아섰다.
《일섭이, 들었나? 우리
《알았습니다.》
일섭이 물먹은 소리로 대답한다. 그도 다 들었던것이다.
류경수는 걸음을 옮기면서 젖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안동수는 눈을 슴벅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걷다가 불쑥 볼부은 소리를 했다.
《려단장동지는 사실 좀 너무합니다. 이렇게 오시려면 저한테 귀띔이라도 해주실게지… 난 뭐가 됩니까. 아까 무우더미에서 헤여질 때도 아무 말씀 없으시고는…》
《허허허, 용서하오. 사실 아까 무우더미를 덮고 돌아서서 가자니 병실들이 춥지 않겠는가 걱정이 들더란 말이요. 그래 여기 정찰중대에 와보니 아닌게아니라 병실이 서늘하더군. 모포를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쓰고 몸을 옹송그린채 잠을 자고있는 병사들을 보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란 말이요. 그래 불을 때야겠다고 생각했지. … 우선 불을 살궈놓고… 다른 중대들도 좀 알아보자고 했댔는데…
안동수는 얼굴이 화끈했다. 그가 전사들을 생각하며 여기 병실로 올 때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안동수는 류경수와 함께 나무단들을 더 날라왔다. 한참 불을 때다가 병실안에 들어가보니 제법 후끈후끈했다. 뜨거운 열이 방을 덥히기 시작하자 병사들은 어깨를 쭉 펴고 잠을 자고있었다. 네활개를 쭉 펴고 코까지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무엇이 이렇게 방을 뜨겁게 덥히고 무엇이 자기들의 온몸을 그렇게도 따스히 감싸주고있는지 의식하지 못한채 단잠을 자고있었다. 어머니품에 안겨 잠을 자는듯이,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빙긋빙긋 웃는 전사도 있었다.
이날 온 려단의 침실 아궁들에는 빠짐없이 지휘관들이 불을 때며 앉아있었다. 전사들은 네활개를 펴고 잠을 자고…
정찰중대병실을 나서며 류경수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물었다.
《35련대 1대대 건국실 말이요, 한번 가보았습니까?》
《예… 한창 벽체미장을 할 때 가보았는데… 시범이 될수 있게 잘 꾸리라고 했지요. 박영욱선전부장이 류달리 관심을 가지고있더군요. 문화부대대장과 직접적으로 얽힌 관계는 아니지만… 사연은 좀 있습니다.》
류경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동수는 그의 걸음에 발을 맞추어 걸으며 말을 이었다.
《며칠 안있어 동기훈련에 들어가겠는데… 참모부에서 훈련목표는 높게 세운것 같더군요. 우리 정치사업이 그에 따라 못 갈가봐 걱정입니다.》
류경수는 의외라는듯 안동수를 돌아보더니 몇발자국 말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불만어린 어조로 말했다.
《훈련목표는… 아직 낮습니다.》
《예?》
안동수는 뜻밖의 말에 놀라 주춤 걸음을 멈추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황급히 따라서며 말했다.
《참모장동무는… 우리 실정에선 너무 높다고 합니다.》
《우리 실정이기때문에 낮다는거지요. 우리가 지금 어떤 놈들과 맞서고있습니까. 미제는 100여차의 침략전쟁에서 단 한번도 패한적이 없다는 놈들이 아닙니까.》
갑자기 쩡-하고 가슴이 열리는듯 했다.
참모장은 《이발도 안 난 아이》요, 《한계점이요》하면서도, 즉 따라서지 못할줄 알면서도 목표는 높아야 하기에 높이 세웠다고 하지만 려단장은 그것도 낮다고 한다.
안동수
그러나 려단장은… 자기도 생각 못한 그 높이를 생각하고있었다.
《문화부려단장동무이기때문에 말하는데…지금 참모장동무는 쏘련군관학교에서 배운 리론대로 훈련강령을 만들고 2차세계대전시기 쏘련군대가 싸운 그 높이로 목표를 정했지만… 우리는 그들처럼 싸울수는 없습니다. 그런 현대전과 함께 빨찌산전법으로 싸우기 위한 훈련강령을 세워야 합니다. 아니, 우리 나라 조건에서는
유격전에 정규전…
자기도 모르게 류경수의 이 말들을 속으로 되뇌여보던 안동수는 갑자기 무엇인가 크낙한것이 흉벽을 쾅 치며 가슴 한복판에 바위처럼 묵직이 들어와앉는것을 느꼈다.
왜적과 싸워이긴 빨찌산전법!
안동수는 우뚝 그 자리에 서서 새삼스러운 눈길로 류경수를 쳐다보았다. 류경수는 확실히 생각하는 품이 달랐다. 사고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것이 오직 우리
그런데 나는…
안동수는 또다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이 려단장을 따르려면 정말 너무 멀었구나 하는 자책감이 가슴을 쳤다. 정치사업 역시 빨찌산식으로 해야 하리라는 생각이 섬광처럼 뇌리를 확 태웠다.
그렇다. 정치사업도 빨찌산식으로 해야 한다. 대원들속에 들어가 고락을 같이하면서 그들의 심장에 불을 달아야 한다. 김일동지랑 자주 말하지 않았던가, 산에서 싸울 때 지휘관들과 정치일군들은 늘 대원들과 한가마밥을 먹으면서 함께 생활하였다고… 그렇게 고락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하는 정치사업이여서 늘 심금을 울렸다고… 안동수는 자기가 지금껏 구분대들에 내려간다고는 하였지만 아직 수박겉핥기식에 불과했다는것을 가슴아프게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밑에 내려가 휘휘 유람식으로 돌아볼것이 아니라 그들과 잠도 함께 자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흉금을 터놓군 해야 그들의 속마음을 깊이 알수 있고 심금을 울리는 정치사업을 할수 있는것이다. 전기련에게 갔다가도 그렇게 담화나 몇마디 하고 인차 돌아설것이 아니라 그와 나란히 누워 잠이라도 잤더라면…
불쑥 30련대 3대대 선전원이 하던 말이 다시금 귀전에 울려왔다. 그 말을 생각하며 아까 잠자리에서 모대기던것이 순간에 명백하게, 일목료연하게 안겨왔다.
그래, 그분들처럼 늘 대원들과 고락을 함께 하자. 나부터
안동수는 심장이 부쩍 커지는듯한감을 느끼며 큰숨을 몰아쉬였다. 새로운 진리를 깨달은 가슴은 걷잡을수없이 쿵쿵 높뛰였다. 온몸이 달아오르고 머리가 거뜬해지고 모든것이 선명해졌다.
저 깜박이는 별들도, 솨 설레이는 가로수들도… 지어 옷자락을 잡아뜯는 마가을의 맵짠 바람도 정답게만 느껴졌다.
안동수는 급히 그를 따라걸으며 진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일깨워주셔서…》
《우리 언제나 이 세상 제일 강대하다는 미제와 맞서고있다는것을 잊지 맙시다.》
《알았습니다. 언제든 전쟁에 대처할수 있게… 사상동원을 시키겠습니다.》
당장은 35련대 1대대 건국실부터 나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려단장이 우연히 거기에 나가보았는가 묻지는 않았을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