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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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락부, 2층으로 된 문화주택, 기와집들과 살구나무들이 차창밖으로 흘러 지나갔다.

《저 집은 뭐요?》

본촌을 막 지나치려 하는데 농업상이 농가도 아니고 창고같지도 않은 크지 않는 집을 가리켰다.

《철공소입니다.》

《가보기요.》

차에서 먼저 내린 리규성이 철공소의 문을 열고 안에 대고 무엇이라고 말하자 쇠를 두드리던 망치소리가 멎었다.

한룡택이 열려진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어둑시군한데서 도가니속의 뻘건 불길이 날름거리고 어린 청년이 풍구질을 하고있었다. 나이 지숙한 농민이 집게와 벌겋게 단 쇠붙이를 모루우에 놓은채로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모루앞에는 상체를 훌렁 벗은 청년이 땀이 번지르르하고 근육이 툭툭 불거진 가슴과 팔을 드러낸채 망치를 드리우고 서있었다.

《수고들을 합니다. 무엇을 벼리고있소?》

농업상의 물음에 고무앞치마를 입은 털보가 번들거리는 땀을 씻으며 굵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낫을 벼리지요.》

리규성이 벼가을을 앞두고 밤낮없이 낫을 벼리고있다고 보태였다.

《이거 식기전에 두드려야 하겠기에… 미안하웨다.》

그는 한룡택에게 량해를 구한 다음 망치를 드리우고 선 장사같은 청년에게 두드리라고 지시했다. 청년이 망치를 휘두르고 늙은이는 거의 모양이 잡혀가는 낫가락을 먹인다.

그 소리가 귀아프기도 하고 그대로 서서 구경하기도 뭣해서 농업상은 단내와 숯이 타는 연기가 꽉 차 숨이 막힐듯한 철공소안에서 나왔다.

《소농기구공장에서 만들어 보내주지 않소?》

한룡택이 마당에 나와 물었다.

《만들어 내려보내줍니다. 그렇지만 우리 손에 익지 않아서 다시 두드리든가 자체로 만들어씁니다.》

《호미도 그렇소?》

《예.》

《삽은?》

《삽이야, 뭐… 강질이 좀…》

리규성이는 좋다는 말은 하지 않고 결함만 지적하는것 같아 어물어물했다.

《품이 들더라도 자체로 철공소나 야장간을 꾸리고 농민들의 손에 익게 만들어 쓰는것이 좋겠구만. … 저쪽 넓은 논벌로 나가봅시다.》

룡택은 승용차로 향하였다.

본촌을 지나 보통강상류인 암적강을 끼고있는 논벌을 오른쪽으로 보며 달리였다.

암적마을뒤의 언덕길을 올라 넓게 펼쳐진 논벌가운데로 난 길을 한동안 계속 달리였다. 밭일을 하는데 로력을 집중하고있기때문에 논에는 조합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논벌을 지나 산탁에 있는 마을앞에 이르렀다. 리소재지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이 마을은 조합들이 통합되면서 원화협동조합에 속한 작업반이였다. 리의 한구석이여서 리규성이도 잘 다니지 않는다.

허줄한 농가가 눈에 뜨이였다.

농업상이 차를 세웠다. 오막살이같은 초가의 토방우에서 공기돌을 우로 던졌다가 손등에 받으며 공기놀이를 하고있던 처녀아이가 이마에 드리운 머리칼사이로 호기심어린 까만눈을 반짝이며 승용차에서 내린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당에 매놓은 누런개가 껑충껑충 뛰며 짖어댔다.

개짖는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고 람루한 옷을 입고있는 소녀와 오막살이를 더 보고싶은 생각이 없어진 한룡택은 그만 돌아서고말았다.

리규성이가 그 농가의 어려운 형편과 그 리유에 대하여 구구하게 설명했다.

세대주는 앓아 누워있고 아이들은 많은데 아낙네 혼자 벌어서 환자도 치료하고 아이들도 먹이고 입힌다는 사정이였다.

따라다니는 부국장이 《저런 집들은 조합에서 좀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소?》 하고 질책 비슷하게 말했다.

《도와주고있습니다.》

리규성이 불그레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농업상은 아무런 말도 없이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승용차가 되돌아 벼가 꽉 들어찬 논벌의 달구지길로 달리는데 갑자기 농업상이 흠칫하며 운전사에게 지시했다.

《차를 세우오.》

차가 섰다. 암적마을 뒤쪽이였다.

빨간 리봉이 달린 농립모를 쓰고 검은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올린 처녀가 논에서 뽑은 돌피를 한줌 쥐고 마주오다가 승용차를 피하여 도랑을 건너뛰여 논두렁에 올라섰다. 그 모양이 한룡택의 눈에 들어 차를 세우라고 했던것이다.

아릿다운 농촌처녀가 치마를 펄럭이며 도랑을 깡충 뛰여넘는 모습이 한룡택의 눈에 황홀하게 비끼였다. 자연미가 넘치는 처녀의 모습에서는 무척 생신한 활기가 느껴졌다.

리규성이는 처녀가 3작업반장의 딸 미순임을 알아보았다.

《저 처녀를 불러오시오.》

상이 운전사옆에 앉아있는 부국장에게 지시했다.

리규성은 미순이때문에 차를 세웠다는것을 알았다.

방금전에 구석진 마을의 허줄한 단칸초가집때문에 망신한 리규성이는 또 무슨 눈에 거슬리는것이 보이지 않나 걱정했다.

부국장이 차에서 내려 미순이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무엇이라고 말하자 미순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심을 내리고 다시 도랑을 깡충 건너뛰며 길에 나섰다.

그리고 벗은 발 그대로 조심조심 걸어왔다. 다가오는 미순이를 가까이에서 본 상은 몸을 흠칫 떨었다.

미순이의 모색이 왜놈들에게 학살당한 딸의 모습과 비슷했던것이다.

상이 처녀에게 《손에 쥔게 뭐요?》 하고 무척 다정하게 물었다.

농립모밑에서 발그레해진 얼굴에 수집음을 띄고 맨발이 창피한지 발가락들을 옴지락거리던 미순이가 《돌핍니다.》 하고 대답했다.

《호- 돌피잡이를 하댔나. 이름이 뭐요?》

《박미순입니다.》

《몇살이요?》

미순이는 머리를 숙이고 입속으로 뭐라고 했다. 리규성이가 21살이라고 알려주었다.

《나이가 좋군! 허허…》

그는 처녀에게 지금 조합에서 무슨 작업들을 하는가, 벼종자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조합의 논면적이 얼마이며 밭면적은 얼마인가 하는것들을 물어보았다.

처녀가 거침없이 대답을 하자 그는 기특한 처녀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처녀는 대답이 명백했고 인상도 좋았다.

한룡택은 가정형편과 지식정도를 물어보았다.

주눅이 들지 않고 모든 물음에 척척 대답하는 처녀는 당돌하고 똑똑해보였다. 이런 처녀를 잘만 키워주면 앞으로 큰일을 할수 있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처녀가 자기의 딸을 련상시켜 더욱 마음에 들었다. 한룡택은 문득 안해가 《양딸을 둘가요?》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미순이에게 건강하여 일을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원화리를 떠나갔다.

농업상이 떠나간 후 리규성은 초급당위원장과 그의 출현을 두고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업상이 새로 됐다더니 저런 령감이군.》

리규성의 말이였다.

《령감은 무슨, 지내 틀을 차리고 동작이 금뜨니까 늙어보이는거요. 》 하고 초급당위원장이 반박했다.

《내가 듣자니 중앙당에서 무슨 부장을 했다던데.》

《농업을 중시하는거네.》

지내 멀리, 지내 높은 곳에 있는 상은 그들과 리해관계가 별로 없었다. 가까이에 있으며 늘 접촉하는 군인민위원회 농촌경리부와의 사업상관계가 보다 현실적이였다.

사실 농업상이 내려와서 조합을 돌아보았다고는 하지만 그에게서 아무런 의견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 군인민위원회 교육부에서 조합초급당위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위원장동무, 좋은 일이 생겼소.》 하고 교육부장이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래일 3작업반장의 딸 박미순이를 데리고 나한테 오시오.》

미순이에게 무슨 좋은 일이 생겼는가? 초급당위원장은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동무네 조합에 농업상이 왔댔소?》

초급당위원장은 대뜸 좋은 일이라는것이 농업상과 련관된다고 짐작했다.

《왔댔습니다.》

《농업상이 미순이를 우연히 만나보게 되였는데 그 처녀가 농사물계에 밝고 똑똑하다고 하면서 평양에 있는 농업전문학교에 추천하는것이 좋겠다고 부탁했소. 추천만 하면 입학은 자기가 책임진다면서 새 학기가 당장이니까 빨리 해달라고 했소. 말은 부탁한다고 했지만 이건 지시나 같단 말이요. 알았소?》

《그것 참 잘되였습니다.》

《농업상은 미순이와 같이 전망성있는 청년들은 공부를 시켜 농업인재로 키워야 한다고 했소.》

임정주초급당위원장은 역시 우에서 넓게 보는 큰 일군의 안목과 판단력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조합에서는 미순이가 인물이 곱고 똑똑하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그를 공부시켜 장래의 농업인재로 발전시킬 생각까지는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랬는데 농업상은 미순이를 잠간 만나보고도 처녀의 남달리 뛰여난 점을 발견했다고 임정주는 리규성이에게 감동되여 말했다.

《우리 조합에서 학교공부가는 청년으로 미순이가 두번째요.》

리규성이 긍지감을 금치 못했다. 작년에 첫번째로 피살자가족인 명호가 농업학교에 갔었다.

명호는 공부를 마치면 조합으로 돌아와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짓는데 이바지하겠다고 결의하고 떠났었다.

《이렇게 공부간 청년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 우리 조합의 미래를 걸머질 밑천들이 되지 않겠소? 래년에 명호가 올거요.》

리규성이는 흡족해서 손을 비비기까지 했다.

이튿날 임정주는 미순이를 데리고 군인민위원회 교육부로 가서 전문학교 추천수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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