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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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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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한결 수그러들었다.

모든 여름철 영농공정이 마감단계에 들어섰다. 논에서는 물관리공들이 자루가 긴 삽을 들고 벼들이 누렇게 익은 논배미들사이의 두렁길을 다니며 논물을 조절하고있다.

논판에 들어가 돌피를 잡는 녀인들의 머리수건이 들바람에 한들거린다.

조합원들은 대개가 밭작물가꾸기에 달라붙었다. 가을을 앞둔 농촌의 높아진 하늘은 파랗고 알곡이 익고있는 들은 황금빛이다.

농업상은 승용차좌석에 깊숙이 앉아서 가을풍경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를 농업기술국의 젊은 부국장이 동행하고있었다. 계획한대로 협동조합들을 몇개 돌아보는 길인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가난한 조합과 이름이 난 큰 조합, 중간급의 조합을 적당히 섞어 선택했다.

여기에 원화협동조합도 속했다. 이 조합이 수령님의 여러차례에 걸치는 현지지도를 받으면서 가난한 조합으로부터 잘사는 조합으로 되였다는 말을 들었기때문이다.

이곳 조합을 잘 알고있는 부국장이 관리위원회마당에 차를 세우도록 하고 먼저 내려 사무실을 찾아갔다.

중절모를 쓰고 회색닫긴옷을 입은 룡택은 차에서 천천히 내려 뒤짐을 지고 수수한 관리위원회 사무실과는 대조되게 덩실하게 지은 구락부를 바라보았다.

관리위원회는 다른 농가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지붕에 기와를 올린것이 유표했다.

부국장이 관리위원회의 문을 열고 《농업상동지가 오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급히 마당으로 두사람이 달려나왔다. 키가 늘씬하고 몸매가 균형잡힌 젊은 사람은 관리위원장 리규성이였고 그보다 키가 좀더 크고 뼈마디가 굵으며 볼이 훌쭉한 사람은 조합초급당위원장이였다.

한룡택은 그들의 인사에 머리를 끄덕여 답례하고는 《누가 관리위원장이요?》 하고 물었다.

《제가 관리위원장입니다.》

리규성이 대답하고 옆에 서있는 사람을 소개했다.

《조합초급당위원장입니다.》

한룡택은 옆에 선 사람에게 얼핏 눈길을 주었을뿐 더는 그를 상관하지 않았다.

《볕이 따가운데 안으로 들어갑시다.》

관리위원장이 권고했다.

《그 안은 선선하오?》

농업상은 들어가고싶지 않다는것을 이렇게 나타냈다.

《관리위원회가 초라하오. 농촌이라 해서 공무를 보는 사무실을 농가처럼 지어야 할가?》

수상님께서 관리위원회를 크게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관리위원회 건물을 크게 짓고 틀을 차리면 농민들이 어려워하여 잘 찾아오지 않고 찾아와서도 할 말을 제대로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상은 눈길을 떨구고 듣기만 할뿐 더 다른 말이 없었다.

부국장이 느티나무의 그늘로 상을 안내하여 갔다. 그늘속에서 그는 하얀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와 목덜미의 땀을 씻었다.

《벼가 어떻소?》

그는 운무가 뿌옇게 낀 들을 가리켰다.

《비가 오고 날씨가 자주 흐려서 해비침률이 높지 못했지만 수정이 괜찮게 되고 벼알이 잘 여물었습니다.

한이삭에 보통 120알이상 됩니다.》

한룡택은 그것이 의심쩍은듯 피뜩 관리위원장을 쳐다보고나서 계속 물었다.

《내가 좀 들은데 의하면 조합을 조직하기 전에는 풀죽도 겨우 먹었고 조합을 무은 초기에도 시련을 많이 겪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어떻소?》

그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할 때 이 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관리위원장이 대답했다.

《예, 우리가 너무 못살아서 대여곡을 받기도 했고 현물세를 몇번씩 면제받았습니다.

그후에도 수상님께서 배려를 거듭 돌려주시고 조합을 어떻게 운영하고 농사를 어떻게 짓겠는가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결과로 현재는 부자가 됐습니다.

알곡분배만 해도 호당 평균 근 3톤씩 돌아가고 현물세, 관개사용료, 비료값 같은것을 물고도 여유가 있습니다.》

농업상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렇단말이지.》

그는 《부자가 됐다.》는 말의 개념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옛지주처럼 산다는 뜻은 아닐게고 지난시기 풀죽이나 먹고 살던 이 사람들의 경우 세끼 밥을, 그것도 백미밥을 먹는 정도면 그렇게 말할수 있을것이다.

우리 농민들은 가난하게 살아왔기에 오늘의 초보적이라고 말할수 있는 생활처지의 개선에도 만족하고있는것이다.

그렇지만 로동자, 사무원들에 비하면 얼마나 뒤떨어져있는가. 앞섰다고 하는 로동자, 사무원들의 생활도 빵과 빠다, 우유와 고기를 먹는 선진국들의 수준에 비하면 또 얼마나 뒤떨어져있고…

《조합에 뜨락또르가 모두 몇대요?》

그가 관리위원장에게 물었다.

《두댑니다.》

《자동차는 있소?》

《한대 있습니다.》

《파종기는 있소?》

《이제 받아옵니다.》

《탈곡기는?》

《있습니다. 족답기가 열두대 있습니다.》

《발로 디디는것 말이지?》

《예.》

12월전원회의(1959년)에서는 기계화를 농촌기술혁명의 선차적과업으로 제시했다.

이제 가보면 구체적으로 알겠지만 종합적기계화가 실현된 쏘련에서는 기계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며 기계로 수확하고 탈곡하여 기계로 낟알을 실어 나른다.

우리는 아직 거의나 소로 땅을 갈고 농민들이 손으로 씨를 뿌린다. 또한 허리를 구부리고 김을 매며 낫으로 가을을 하고 족답기로 탈곡한다.

그러므로 농촌경리의 기계화를 선차적과제로 내세운것은 옳다.

이 협동조합만 보더라도 400정보가 넘는 경작지에 뜨락또르가 2대뿐이며 그것의 작업령역도 논밭갈이와 운반작업에 머무르고있지 않는가! 이것이 오늘의 농촌현실이다.

한룡택은 자기의 어깨에 실리는 무거운 짐을 인식하면서 막연하고 지어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 중공업이 급속히 발전하고있으며 나라는 사회주의공업화에로 줄달음치고있지만 아직은 농촌기계화를 완전히 실현할만 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농촌의 전야들에 언제면 기계들을 충분히 보내오며 그 기계들로 일할수 있겠는가. …

《관리위원장동무, 조합을 돌아보기오. 차에 타오.》

룡택은 관리위원장만을 차에 태우고 그가 안내하는대로 우선 야산인 경우재의 언덕길을 넘어 림촌마을에 이르렀다.

차에서 내린 리규성이 전쟁시기에 수령님께서 이 마을에 오시여 농민들과 하루를 같이 지냈다고 설명하여 주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 봄날에 수령님께서 농민들과 같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시였던 포전을 논으로 풀고 매해 그날에 모내기를 시작하면서 수령님을 추억한다고 한다.

《원래는 여기 논이 없었는데 전후에 논들을 풀고 야산에 과수원을 조성하였습니다.

지금 초가집이 대부분인데 차츰 기와를 올린 문화주택을 지으려고 조합전망계획에 반영하였습니다.》

룡택은 뒤짐을 지고 서서 리규성의 설명을 묵묵히 들었다.

그들은 승용차를 돌려 관리위원회가 있는 소재지마을인 본촌의 앞길을 되짚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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