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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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뜨락또르를 구경하려고 모여든 동네사람들과 아이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호기심이 가득찬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느라고 동익은 한동안 땀을 뺐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작업반장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동네어른들과 아이들이 흩어져가고 작업반선전실에서 소여물가마에 불을 때는 로인도 동익에게 안에 들어가 쉬라는 말을 하고는 집으로 가버렸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추워났으며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농가의 굴뚝들에서 연기가 사라져가고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 밥상을 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익은 너무도 쓸쓸하고 허전하여 고향집 생각이 났다.

이때 어떤 고운 처녀가 동익을 할깃할깃 쳐다보며 지나갔다.

《처녀동무!》

토방에 걸터앉아있던 동익이가 일어서며 찾았다. 그러자 처녀는 《어마나!》하고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왜 놀라오? 내가 사람같아보이지 않소?》

서글픈 어조로 물었다.

《아이참, 캄캄한데 웅크리고있다가 갑자기 소리치니까… 이 뜨락또르를 몰고왔어요?》

예상외로 처녀는 활달했다.

《그렇소. 그런데 여기 작업반장동무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소? 그를 좀 데려다주오.》

처녀는 머밋머밋하더니 《글쎄 어디 갔을가? …》하고 혼자소리처럼 말하며 어둠속으로 녹아버리듯 사라졌다. 반장을 찾아오겠다는건지 어찌겠다는건지 알수 없었다.

하여튼 좀더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추위를 느낀 그는 작업반선전실로 들어갔다. 소여물을 끓이고있어 방안이 더웠다.

그는 전등불을 켠 후 방구석에 딩구는 목침을 주어다 베고 따뜻한 아래목에 누웠다. 누워서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유명한 협동조합에 고정배치되여간다고 그 고장에 정을 주고 마음을 주고 힘껏 일하리라 굳은 결의를 부푸는 가슴에 품고 왔건만 그리고 창원이의 일로 랭대받을수 있다고 각오도 하였지만 현실은 너무 랭혹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렇게도 박정할수 있을가, 창원이가 아무리 인상을 잡쳐놓았다고 하지만 내야 그가 아니지 않는가, 창원이가 받아야 할 박대를 왜 내가 받아야 하는가, 좀더 기다려보고 작업반장이 그래도 오지 않으면 뜨락또르에 발동을 걸고 작업소로 올라가버리자. …

이렇게 마음을 모질게 먹으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있던 동익은 문득 아버지생각이 치밀었다.

최동익은 학교를 마치고 한뉘 땅을 뚜지며 살아온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사를 짓고있었다. 어느날 그가 사는 마을에 뜨락또르가 나타났다. 그것이 퉁탕거리며 논을 갈아업는것을 구경하는 농민들이 들에 하얗게 모여들어 야, 야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동익의 아버지는 《쇠소》가 논갈이를 하는것을 희한해서 바라보았다. 그 《쇠소》가 점심시간이 되자 일에 지친듯 관리위원회마당에 들어서서 발동을 죽였다.

그러자 집으로 달려간 동익이 아버지는 소꼴을 한단 가져다 《쇠소》앞에 먹으라고 놔주었다. 사람들이 그 《쇠소》는 꼴을 먹지 않는다고 하며 하하 웃어댔다.

그 모양을 본 관리위원장이 성을 냈다.

《왜들 웃는거요? 최령감네가 해방전에 소가 없어 령감자신이 바줄을 어깨에 걸고 가대기를 끌며 밭을 갈던 일을 모두 잊었소?

장딴지가 뒤집히고 어깨에 썩살이 박히도록 소처럼 가대기를 끌었단 말이요. 해방이 되자 최령감은 소부터 사다맸소.

이런 사람이니까 마을에 생전 처음 보는 뜨락또르가 나타났으니 너무 희한하고 반가와서 이 〈쇠소〉도 꼴을 먹는가 한거요. 그런데 웃는단 말이요. 나는 눈물이 나는데…》

아버지는 어색해하고 마을사람들은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집으로 돌아온 동익의 아버지는 담배를 련달아 피우다가 말했다.

《그것 참, 놀랍구나. 희한하단 말이야.》 하더니 동익이를 데리고 관리위원장을 찾아갔다.

《관리위원장, 소원이니 내 둘째아들이 〈쇠소〉를 몰고 밭을 갈게 해달라구.》

관리위원장은 선선히 응하고 운전수양성소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자 동익을 추천해보냈다.

동익이를 떠나보내면서 아버지는 짤막한 훈시를 했다.

《소도 없어 고생하던 일을 잊지 말아라.》

그 일을 동익이 어찌 잊으랴. 바줄을 어깨에 걸고 상체가 땅에 닿을듯 고개를 숙인채 헐떡이며 이랑을 째나가던 아버지, 목에는 퍼런 피줄이 살아나고 비오듯 하는 땀은 턱에서 뚝뚝 떨어졌지만 맨발로 한걸음한걸음 척박한 땅을 힘겹게 짚으며 나갔다.

보잡이는 열네살난 동익의 형이 하였다. 그저 적당한 깊이를 보장하며 가대기날을 땅에 대주면 되였으나 그것도 어린 소년에게는 힘에 겨워 비틀거렸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힘들어할가봐 때로 얕게 날을 대기도 했다. 그러면 대뜸 성난 아버지의 얼굴이 뒤를 돌아본다.

그럴 때마다 형은 고개를 푹 떨구고 가대기날을 다시 깊이댄다. 아직 어린 동익이는 쇠스랑으로 아버지와 형이 갈아번진 흙을 부스러뜨리는 일을 했다.

《좀 쉬고 하자.》

아버지는 자신이 힘들어서보다 보탑을 잡고 비틀거리며 따라오는 목이 가느다란 맏아들을 생각해서 한숨 돌리려는것이였다.

샘물터에 가서 아버지, 형, 동익의 순서로 엎드려 물을 마셨다. 그리고 앉아서 가슴들을 헤치고 봄바람을 맞았다.

해가 기울면 집으로 내려온다. 녹초가 되여 걸을 맥조차 없다.

불시에 아버지가 주저앉으며 장딴지를 두손으로 붙잡았다. 경련이 일었던것이다.

《장딴지가 뒤집힌다! -》 아버지의 음울한 비명이 골안을 울리였다. 두 아들이 달려들어 장딴지를 주물렀다.

해방이 되고 토지를 분여받아 그해 농사를 잘 지었다. 현물세를 내고도 쌀이 남자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말했다.

《무어니무어니해도 소부터 사야 하겠다.》

방울이 쩔렁거리는 황소를 장마당에서 사가지고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져서 집에 들어선 아버지는 《동철아! 동익아! 소다. 황소를 샀다!》 하고 웨치였다.

그날 온 가족이 소를 빙 둘러싸고 설음설음 엉켰던 가슴들을 쾅쾅 터치며 기쁨에 겨워 마음껏 울고 웃어보았다.

아버지가 가대기줄을 어깨에 걸고 끌던 일은 영원히 지나갔다.

황소가 보습을 끌었고 짐을 날랐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 《쇠소》가 마을에 나타났다.

《동익아, 너 〈쇠소〉를 봤니? 그게 하늘이 무너질것처럼 영각을 해대며 눈알을 부릅뜨고 논을 가는데 무섭게 해대더라.》

아버지는 그 《쇠소》가 너무도 희한하고 기특해서 소꼴을 가져다 놔주었던것이다. …

(아니다!) 하고 동익은 벌떡 일어나며 자신을 향해 속으로 웨쳤다.

(조합과 조합원들을 탓할수 없다. 관리위원회마당에서 만났던 관리위원장도 여기 반고수머리작업반장도 뜨락또르를 외면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다 아버지처럼 뜨락또르를 사랑하고있다. 잘못은 우리 운전수들에게 있다.)

동익은 더 나아가서 페물같다고 낡은 《아떼즈》를 탓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돌이켜보았다.

래일 새벽부터 논갈이를 시작하자! 이렇게 마음먹으니 정신적안정이 찾아들어 동익은 다시 목침을 베고 누웠다. 따뜻한 온돌에 몸이 녹으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잠결에도 코를 자극하는 구수한 된장국냄새에 놀라 눈을 떴다. 귀엽게 생긴 처녀의 맑은 눈이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처녀는 동익이가 눈을 뜨자 깜짝 놀라며 머리를 숙였다. 아까 보았던 그 처녀였다. 동익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김이 오르는 국과 밥이 챙겨져있는 키낮은 책상우를 군침을 삼키며 바라보았다. 잠이 채 깨지 않은 동익은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처녀는 숙인 이마너머로 동익을 흘끔흘끔 훔쳐보며 속살거리였다.

《저녁을 잡수세요. 그리구… 농기계작업소로 되돌아가세요.》

동익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건 무슨 소리요? 되돌아가라구? 왜?》

《왜냐구요?》 처녀는 원망스럽게 그를 쏘아보았다.

《우리는 지금 작년가을에 저 뜨락또르가 와서 망탕 갈아놓은 논을 다시 갈고있어요. 황소로 말이예요.

뜨락또르가 그렇게 망탕 갈아놓으면 그걸 바로잡는 품이 어떤지 동무가 알수 있어요?

동무도 운전수재세를 하며 그렇게 논을 갈아줄바에는 지금 돌아가는게 나아요.

필요없어요. 차라리 좀 힘들더라도 옛날처럼 소로 논을 가는것이 훨씬 편해요.

작업반장이 나더러 저녁밥을 해다주고는 보내라고 지시했어요.》

처녀의 비난이 얼마나 타당한가. 노여움에 쏘아보는 처녀의 까만눈은 매혹적이였다.

처녀야, 우리를 잘 때렸다. 그리고 작업소로 보내되 저녁밥을 해먹여 보내라고 한 작업반장도, 이렇게 구수한 된장국을 끓여가지고 온 처녀도 그 인간미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처녀동무, 그런데 작업반장은 왜 직접 오지 않고 동무를 통해 지시하오?》

《그걸 모르겠어요? 그래야 동무가 성이 나서 돌아갈것이라고 보기때문이예요.》

동익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게 정 소원이라면 돌아가겠소. 못 갈것도 없지, 가겠소.》

동익이가 이러며 움씰거리자 뜻밖에도 처녀의 얼굴에 실망의 그늘이 비끼는것이였다. 그러니 이 처녀가 실은? …

그렇다. 동익은 느꼈다.

새로 온 뜨락또르운전수는 작업반장과 조합원들을 실망시키지 말고 일해주기를 바라는것이다.

동익은 처녀를 떠보듯 다시 반복했다.

《가겠소. 그러되 저녁밥을 먹고 이 뜨뜻한데서 잠도 실컷 잔 다음 래일 아침에 가겠소.》

처녀는 배신당한듯 서글프게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가세요.》

처녀는 일어서더니 치마바람을 일구며 문께로 향했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가서 쾅 소리나게 닫았다. 동익은 그 꼴이 우스웠으나 웃지 않았다.

(처녀가 여돌찬게 정말 귀여운걸.)

하지만 그 처녀는 돌아가지 않고 한동안 뜨락또르주변을 맴돌았다.

얼마후 드렁드렁 뜨락또르의 동음소리와 같은 동익의 코고는 소리가 밖에까지 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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