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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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화협동조합은 본촌과 림촌을 망라한 농호 80여세대의 크지 않은 조합이였는데 리단위로 통합되면서 여러개의 부락을 망라한 큰 규모의 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관리위원회가 자리잡고있는 마을을 본촌이라고 했다.
본촌은 경우재라고 부르는 야산을 등지고있는데 그 재너머에 림촌마을이 있다. 여기 척박한 사질토의 땅에서 강냉이, 밀보리, 기장, 조와 밭벼를 심어먹으며 농민들이 가난하게 살았다. 경우재에는 소나무, 참나무, 오리나무, 아카시아나무, 분지나무 등이 무성했다.
이렇듯 못살던 조합이
지나간 이 이야기는 동익이가 후날 이전 관리
과수원이 덮인 야산을 등지고 덩실하게 서있는 구락부(후에 문화회관으로 개칭하였다.)와 2층 8세대의 산뜻한 문화주택이며 단층기와집들, 아이들의 노래소리 흘러나오는 탁아유치원, 곧추 뻗은 길가에 즐비하게 심은 살구나무, 보통강의 상류인 암적강에서 마을앞까지 이르는 넓은 논벌, 그 논벌을 스치며 불어오는 부드러우면서도 아직 쌀쌀한 봄바람은 뜨락또르를 세우고 뛰여내리는 동익의 기계기름이 밴 얼굴을 시원하게 어루만지였다.
관리위원회마당에 체격이 그쯘한 젊은 사람이 작업모를 쓰고 누빈솜옷의 앞섶을 헤친채 어떤 로인과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로인은 허리가 꼿꼿하고 얼굴이 편안하게 생겼다. 아버지벌이 될듯한 늙은이의 말을 들어주면서 간단간단히 머리를 끄덕이는것으로 보아 마주한
사람이 보통조합원같지 않았다. 혹시 관리
동익은 장갑을 벗으며 그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젊은 사람은 머리를 돌려 한번 쳐다보았을뿐 하던 이야기에 열중하였다.
동익이 겸손하게 물었다.
《여기 관리
《내가 관리
바쁜 사람에게 《길을 좀 물읍시다.》하는 청탁을 했을 때의 인상이였다.
동익은 나무라지 않았다. 창원이에 대한 나쁜 감정이 깊이 박혔으리라. 이러한 랭대를 이미 각오한 동익이다.
《내가 이 조합에 고정배치되여온 뜨락또르운전수입니다. 재식동무네 차고가 어디 있습니까?》
관리
《전화를 받았소. 그런데 이 뜨락또르가 낯이 있구만. 전번에 우리 조합에 왔던 그 뜨락또르가 아니요?》
《예, 그렇습니다.》
《그때 왔던 운전수도 함께 오오?》
창원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것을 안 동익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예, 함께 배치받았습니다.》
관리
《암적으로 가시오.》
《암적으로요?》
《동무가 온 길을 되돌아가서 다리를 지나 강기슭으로 좀더 가면 되오.》
관리
《아바이의 의견을 좀 연구해봅시다.》
그는 동익에게 다시 얼굴을 돌려보는 일도 없이 관리위원회쪽으로 돌아섰다.
동익이는 관리
뜨락또르를 향해 걸어가는데 관리위원장과 마주했던 로인이 따라왔다.
《이보, 운전수! 우리한테로 아주 왔나?》
마음이 후더분해보이는 아바이가 이처럼 따뜻하게 물었으나 동익은 이내 기분이 돌아서지 않았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3년간입니다.》
《3년간이면 길지. 그간 우리와 한집안처럼 지내자구.》
(한집안? 글쎄 언제까지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지내야 하겠는지?…)
동익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 아바이가 관리
《저 사람을 리해하라구. 전쟁때 군대에 나가 싸우면서 거칠어졌다네. 도처에서 미국놈들과 〈치안대〉놈들에게 학살당한 사람들과 어린이들을 보면서 심장이 얼어붙었던 사람이야.
미국놈새끼들을 수태 죽였지.
그래 이기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놈들에게 피살되고 어머니도 미국놈비행기들의 폭격으로 석암저수지가 터져 물난리가 났을 때 집과 함께 떠내려갔다는 슬픈 소식이 기다리고있었네.
며칠동안 밥도 먹지 않고 얼굴이 거멓게 죽어다니는데 그때 조합관리
하지만 전쟁에서 시련을 겪어온 병사라 마침내 피를 녹이고 그 복수의 피를 조합일에 열성껏 쏟아부었네.
지금은 과격하고 칼날같은 성격이 많이 죽었지만 그래도 좀 남아있어! 허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익은 생각이 깊어졌다.
《암적에 재식동무네 차고가 있습니까?》
《지금 차고는 본촌에 있네.》
《그러면 우리를 그와 갈라놓는건가요? 창원이가 암적에서 일하다가 쫓겨갔다던데 거기 가서 내가 그의 잘못을 씻으라는건가요?》
《아니야, 관리
동익은 공연히 분격했던 자기를 부끄럽게 생각했다.
《아바이, 잘 알았습니다. 제가 그런 내속은 모르고…》
동익이 한결 누구러지며 이전 관리
《저는 그럼 암적으로 가겠습니다.》
《자리를 든든히 잡게. 나하구 같이 갈가? 내가 안내하지.》
관리
《괜찮습니다. 방금 지나왔으니 그 마을위치를 제 알수 있습니다.》
최동익은 비로소 속에 피멍을 간직하고있는 관리
암적에서도 그를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다. 개들도 사납게 짖어댔다. 개들은 각양각색인데 누르끼리한 털에 주둥이만 새까만 뻔뻔스러운 상통을 한 놈, 거밋한 털이 턱주가리로 돌아가서 마치 구레나릇처럼 보이는 놈, 하여튼 온 동네개들이 다 뜨락또르의 뒤를 쫒아오며 짖어대는데 짖어대는것도 컹컹 우렁차게 짖는가 하면 우는소리같은것을 내기도 했고 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이발만 드러내고 죽일듯 윽벼르기도 했다.
동익은 뜨락또르를 언덕아래에 있는 작업반선전실 앞마당에 세웠다. 토방에 앉아있다가 뜨락또르가 들어서는 바람에 놀라 일어선 로인이 한동안 입을 하 벌리고 바라보았다. 그 로인이 발동을 죽인 뜨락또르에서 내려오는 동익이를 먼저 맞아주었다.
《우리 암적에 오는 뜨락또르웨까?》
《예. 그렇습니다.》
장갑을 벗으며 동익이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 고장에 처음 오는데 미안한대로 작업반장을 좀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로인이 어디론가 갔다가 키가 크고 갱핏한 50대의 농민과 같이 왔다. 창원이가 말한 반고수머리인데 척 보기에도 고집스레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익이가 먼저 자기 소개를 했다. 그리고 관리
반장은 뜨락또르를 바라보더니 씨뿌둥해서 한마디 했다.
《그 뜨락또르군.》
동익은 못들은척하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숙소를 어디다 정할가요.》 하고 물었다.
《좌우간 날이 어두워오니까 여기 들어가있소.》
작업반장은 작업반선전실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어디론가 급히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