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3 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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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을 슬쩍 올려밀면 금시 파란 물이 들듯 구름 한점없는 푸르른 가을하늘높이 하얀 배구공이 씽 날아올랐다.

순간 《와!》하는 함성이 터져올랐다.

지금 대대지휘부앞마당에서는 1중대와 3중대간의 배구경기가 한창이다. 와-하는 함성, 북소리, 꽹과리소리… 응원하는 열기가 또한 보통이 아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일요일만 되면 여기 대대에서는 무조건 체육경기를 한다고 한다. 빨래며 리발이며 목욕 같은 위생사업은 오후에 조직하고… 전번 련대에서 진행한 대대별경기에서 망꼬리를 차지한 다음부터 대대장은 체육훈련에 결사적으로 달라붙었다고 한다. 축구며 배구와 같은 구기종목은 물론 포탄상자메고달리기를 비롯한 모든 종목에서도 련대 아니, 려단적으로 단연 첫자리에 올려세우고야말겠다는것이다. 군대란 이기고봐야 한다는것이다.

《1중대 이겨라, 전진하는 1중대!》

《아, 땅크장동지, 강타하십시오. 강타!》

《와!》

《이겨라, 3중대. 이겨라, 이겨라.》

둥둥둥, 챙챙챙-

《한세곤이, 까라, 까. 잘한다. 잘해.》

《세곤동지 제일이다.》

안동수는 하얀 속옷들이 땀에 화락하니 젖어가지고 치렬한 경기를 벌리는 병사들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려단에 짐을 풀어놓은 이튿날부터 실태료해를 하기 위해 구분대들을 돌고있는 그였다.

《저 한세곤이라는 동무가 배구를 괜찮게 하는것 같구만.》

안동수의 옆에 서서 긴장한 낯빛으로 그의 기색을 살피던 문화부대대장 방철호는 그제야 찌글서 웃었다.

《예. 3중대 312호운전수인데… 학교다닐 때부터 체육을 즐겨했답니다. 주먹도 세고…》

방철호는 배구장쪽에 눈길을 보냈다. 엊그제 중대별합창경연을 조직했을 때는 뒤구석만 찾던 그가 오늘 배구경기에서는 판을 치고 돌아간다. 짧게 깎은 그의 머리엔 먼지가 뽀얗게 올랐고 기름할사한 얼굴은 온통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였다. 그는 마치 경기를 자기가 운영하기나 하듯 혼자 사기가 나 왝왝 소리치면서 뽈이 조금만 뜨면 번개같이 날아올라 상대편진지에 강타를 했다. 그 뽈은 어김없이 빈구석이나 1중대선수의 손끝을 스치며 밖으로 튀여나간다. 그럴 때마다 환성은 더욱 커졌다.

《한세곤동무는 어디 출신이요?》

《함경남도 정평사람입니다. 신상고급중학교 다니다가 올해 4월에 입대하였습니다.》

《이쪽에… 얼굴이 좀 나부죽한 동무는 누구요? 3번위치에 있는 동무…》

《한세곤동무네 땅크포장입니다. 고현빈이라구… 홍원출신입니다. 학교는 소학교밖에 졸업 못했습니다.》

《음…》

와- 또다시 환성이 터져올랐다.

한쪽에서는 륙상경기가 시작된것이다.

안동수는 경기하는 병사들을 한참 바라보며 매 사람들에 대해 하나하나 물어보다가 생각난듯 방철호를 돌아보았다.

《참, 방철호동무는 박영욱선전부장을 어떻게 잘 아오?》

방철호는 눈을 내리깔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좀…》

《왜? 말 못할 사정이면 그만두고…》

《아니, 그런건 아닙니다.》

방철호는 뒤더수기를 긁적이며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버지가 한때 홍범도의 독립군이였는데 원동에 가있을 때 한 쏘련사람을 구원해준 모양입니다. 울라지보스또크에서 당일군을 하던 사람인데 아무르강기슭에 있는 마을에 볼일이 있어 가다가 승냥이떼를 만났다는것 같습니다. 그때마침 우리 아버지가 지나가다가 승냥이 한놈을 쏴갈겼는데… 그래서 승냥이들은 도망치고 그 사람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답니다. 그때부터 몇년간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와 가까이 형제처럼 다녔는데 아버지가 열병에 걸려 숨지면서 평양에 두고온 저희들을 무척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때 평양에는 앓는 어머니와 저 둘뿐이였습니다. 그 사람은 의리가 있는 사람이였던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서 알았던 칠성문아래 우리 집을 잊지 않고있다가 박영욱선전부장이 조국으로 나올 때 좀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던 모양입니다. 자기대신 잘 돌봐달라고…》

《그 사람은 지금 무얼 한다오?》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큰 간부를 한다고 합니다. 따슈껜뜨에 지도사업을 내려왔다가 박영욱선전부장이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알고 원동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던 모양입니다. 박영욱부장은 조국에 나오면서 그 사람하고 전화련계를 하였다고 합니다. 자기가 책임지고 잘 돌봐주겠다면서… 조국에 나온 선전부장은 우리 집에도 찾아왔댔다고 합니다. 평양학원에 가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여기 문화부대대장으로 배치되여올 때도 찾아왔댔습니다.》

《최근에도 만난적이 있소?》

《예. 며칠전에도… 건국실때문에…》

안동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서 동무를 잘 도와주라고 했군.》

안동수는 어쩐지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박영욱이가 자기를 보증하지 못하겠다고 했던것때문이 아니였다. 박영욱이가 방철호를 가까이하는것도 바로 그 쏘련당의 간부를 업기 위한 목적이라는것이 너무도 뻔했기때문이였다.

안동수는 문화부려단장으로 임명받고 청사를 나설 때 현관에서 박영욱을 만났었다. 박영욱은 안동수의 손을 잡아흔들며 얼마만이냐면서 반색을 했다.

《울라지미르동무, 정말 반갑소. <조선인민군>신문 책임주필을 한다지? 얼마나 큰일을 맡았소. 아무렴, 우리 따슈껜뜨출신이 약하오? 허허허. 난 동무가 나에 대해 의견이 많으리라 생각하오. 동무가 처음 조국에 왔을 때 동무에 대해 선뜻 보증을 못했댔으니깐… 1년이나 더 있다가… 그것도 가족을 버리고 혼자 온데다가 간첩놈들과 한자리에 있었댔다니… 어찌겠소. 안면이 있다고 계급적원칙까지 저버릴수야 없지 않소.》

안동수는 그때의 일이 떠올라 입이 쓰거웠지만 박영욱이 이렇게 솔직하게 터놓는바람에 씁쓸히 웃었다.

《그럴수도 있었겠지요. 알겠습니다. 다 지나간 일인데…》

《참, 동무의 가정은 아직 따슈껜뜨에 있다지? 동무 부인이 고생하겠구만. 자식이 둘이던가?》

《셋입니다.》

《셋이면 정말 고생하겠구만. 알겠소. 걱정마오. 내 따슈껜뜨에 있는 구역당친구들에게 부탁해봅시다. 좀 잘 돌봐달라고… 이젠 쏘련과 대외관계가 이루어졌기때문에 우편통신이 빨리 될거요.》

《고맙습니다.》

안동수는 그의 말이 너무 길어지는것 같아 인차 자리를 뜨려고 몸을 돌렸다.

《가만, 울라지미르동무… 동무네 가족 주소가 뭐드라?》

안동수는 그가 뻔히 알고있으면서도 이렇게 묻는것이 어쩐지 불쾌했다.

《주소는 그전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이젠 울라지미르가 아니라 안동수입니다.》

《안동수?》

박영욱의 눈이 대뜸에 커졌다.

《그건 언제 고쳤소?》

《우리 장군님께서 친히 지어주시였습니다.》

《그래? 그것 참 영광이로군. 축하하오.》

박영욱은 다시한번 안동수의 손을 꽉 잡더니 은근한 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책임주필동무, 내 한가지 부탁을 좀 합시다. 인민군신문에 대서특필할 동무가 한사람 있는데… 땅크부대 문화부대대장을 하는 방철호라는 동무요. 그 동무가 일을 잘한다더구만. 지금은 건국실을 꾸리느라 열성이 높은데… 좀 내세워주기요. 인민군적인 모범이 되게…》

안동수는 땅크부대 문화부대대장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 동무가 그렇게 일을 잘한답니까? 알겠습니다. 내 당장 가서 만나보지요.》

왜서인지 박영욱은 당장 가서 만나보겠다는 말에 당황해하였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만나보고… 기사를 쓸 때는 나하구 좀 토론하기요. 사실은… 건국실이랑… 지금 한창 꾸리는중이라오. … 내 구체적인 방향은 주었소. 그대로 꾸리면 전군의 본보기가 될수 있소. 그러니… 취재해서 기사를 쓰오. 그게 발표될 때까지면… 건국실이 완성될거란말이요.》

안동수는 그의 말에 어이없어하다가 이렇게 찍어 말했다.

《전 지금 신문주필이 아닙니다. 땅크려단 문화부려단장으로 임명받았습니다.》

《뭐요?》

박영욱의 눈이 대뜸에 화등잔만해졌다.

《그게 사실이요?》

《그렇습니다.》

박영욱은 뻥뻥해서 안동수를 쳐다보다가 급기야 활짝 웃었다.

《그거 더 잘됐구만. 반갑소. 부대에 가면 그 방철호동무를 잘 도와주오. 내 친동생같은 동무요.》

이렇게 신신당부하는 박영욱의 말을 들으며 안동수는 방철호가 어떤 동무일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작 만나보니 사람이 솔직하고 열정이 있는 동무였다. 마음에 쏙 들었다. 박영욱은 박영욱이고 방철호는 방철호인것이다.

《지금 건국실은 어느정도 꾸려놓았소? 박영욱선전부장의 기대가 크던데…》

《예. 며칠전에 만났을 때 건국실을 어떻게 꾸리라고 그가 구체적으로 대주었습니다.》

《한번 가봅시다.》

《아직… 지금 한창 벽체미장을 하는중입니다.》

안동수는 웃었다. 박영욱이가 대서특필해달라던 말이 떠올랐던것이다. 미장도 채 하지 못한걸 놓고 소개라니…

《한번 잘 꾸려보오. 본보기가 될수 있게…》

《알았습니다.》

안동수는 박영욱에 대한 실망감이 다시 머리를 드는것을 느끼며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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