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2 장

2

(1)

 

마이클은 군사고문단청사에 없었다. 《비둘기집》에 가있는 모양이다. 인왕산 남쪽골짜기 솔숲에 자리잡고있는 《비둘기집》에는 주인인 마이클의 호출이 있어야만 갈수 있다.

일제시기 어느 고관대작이 별장으로 지어놓고 자기 정부를 데려다 살게 하였다던 이 2층짜리 크지 않은 석조건물에서 마이클이 무엇을 하는지, 이 집에 누구누구가 있는지는 황대걸이도 모른다.

마이클은 군사고문단에서 특이한 지위에 있다. 그는 군사고문이 아니라 정보부문을 총괄하는 말하자면 정보고문이라 할수 있다.

미군첩보기관인 《조선련락사무소》(KLO)에도 그의 사무실이 따로 있고 《한국 륙군정보부》와 특무대도 그와 종적인 련계를 가지고있다.

북조선의 정치, 군사, 경제, 문화, 외교에 관한 정보는 물론 《한국》내의 모든 정보들 지어 일반 사병들로부터 군고위장성들, 장관들, 국회의원, 리승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움직임과 동향자료들이 그의 책상우에 놓이군 한다. 마이클은 그 정보자료들을 분석하고 추려서 그 가치와 성격에 따라 일부는 고문단단장 로버트와 무쵸대사에게 직접 보고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자료들은 미극동사령부 정보국과 미중앙정보국에 전송하여 국방성과 국무성에서 대조선정책을 작성하는데 리용하도록 한다.

때문에 소속관계는 마이클이 로버트의 부하로 되여있지만 로버트는 그에 대하여 함부로 간섭을 못하고 그가 무슨 일을 하건 모르는척 하고있는것이다.

황대걸은 《비둘기집》에 전화를 걸었다. 녀관리원이 전화를 받는데 마이클이 지금 어떤 손님과 면담중이여서 전화를 바꿀수 없다고 했다.

황대걸은 골살을 찌프렸다. 그 손님이라는것이 어느 계집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면담》이 얼마나 시간을 끌지 알수 없다. 40대에 들어선 마이클이 한창나이여서인지 주색을 남달리 좋아한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황대걸은 잠시 어쩔가 망설이다가 자기가 돌아왔다는것을 알리라고 하고는 정문을 나왔다.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거리량옆엔 각종 네온장식등들이 번쩍번쩍 켜지기 시작했다.

《마돈나》요 《비너스》요 《파랑새》요 하는 현란한 간판들을 이마에 내건 카페며 다방이며 캬바레들에서는 《코스모스탄식》, 《신라의 달밤》따위의 낡은 레코드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기타며 색스폰이며 하는것들이 풍작풍작 뚜른뜨르- 하고 말세기적인 리듬과 발광적인 소리를 지르며 돈있는자들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현대문명》을 자랑하는 그 불빛들밑으로는 또 하루 고달픈 인생살이에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의 무리가 미여질듯 흘러가고 거리 한복판으로는 《현대문명》을 따라잡으려는듯 승용차며 군용찌프차며 스리쿼타, 오토바이 같은것들이 미친듯이 달려가고달려온다.

황대걸은 《서라벌호텔》이라고 쓴 네온장식등이 번쩍거리는 문앞에 서서 잠시 서성거리다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스적스적 걸음을 옮겨놓았다. 동대문경찰서 옆골목을 빠져들어가 크지 않은 단층기와집 대문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대문에는 주먹만한 넙적한 자물쇠가 매달려 빤히 올려다보고있었다.

황대걸은 갑자기 돼지열물같은것이 욱 치밀어오르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이건 또 어디에 갔어?》

38°선을 《순방》하면서 전화를 걸 때마다 언제한번 제대로 받아본적이 없는 계집이였다. 한때 흥행악단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하는 그는 로출증에 걸린 년처럼 어깨며 가슴이며 허벅다리며를 드러내보이기 좋아하는 《신녀성》이였다. 그가 바흐며 베토벤이며 슈베르트며 리스트에 대해 력설할 때에는 마치도 세계음악의 거장이라도 되는듯싶다.

하지만 정작 피아노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빌어먹을… 그 주제에 무슨 음악을 한답시구…》

황대걸은 화가 나서 호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내려다가 빈집에 들어가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기도 싫어 픽 돌아서고말았다. 그 어디건 들려 취하도록 마시고싶은것을 혹시 집에서 그가 기다리지 않을가 해서 그냥 왔더니…

어쩐지 《비둘기집》에서 마이클이 면담을 한다던 그 손님이 바로 그년이 아닐지 알수가 없다. 지난해 생일파티때 초청받아왔던 마이클이 피아노를 치는 자기 처 송려애를 음탕한 눈길로 쳐다보던 모습이 떠올라 그는 또다시 골살을 찌프렸다. 쏘파에 앉아 찔금찔금 커피를 마시며 송려애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 파란 눈동자… 이따금 푸들푸들 떨던 유들유들한 허연 볼따귀… 그앞에서는 마구 분을 쥐여바른듯 뽀얀 얼굴에 애교있는 웃음을 담고 역시 하얀 살을 드러낸 어깨를 물결처럼 흔들면서 그 녀자가 춤이라도 추는듯 률동적으로 피아노를 치고있었다. 풍만한 앞가슴, 잘룩한 허리, 터쳐놓은 치마사이로 허옇게 드러난 허벅다리…

소위 남자를 다룰줄 안다는 《현대풍녀자》…

지금도 마이클이든 누구든 어느 사내앞에서 몸을 꼬고있을지도 모른다.

황대걸은 열물같이 쓰거운것을 뱉아버리며 걱실걱실 걷다가 또다시 우뚝서버렸다. 저앞에 까만 택시가 스르륵 굴러와 멎었던것이다.

《저건 또 뭐야, 혹시… 그년이?》

눈을 뚝 부릅뜨고 보는데 택시에서는 뜻밖에도 개화장이 먼저 나와 땅을 짚었다. 이어 회색바지에 역시 회색구두가 내리고 동시에 중절모를 쓴 머리가 차문밖으로 나왔다. 아버지 황병태였다.

《아니, 아버지가 어떻게?…》

《어딜 가던 길이냐?》

《예. 그저 잠간…》

황대걸은 카페에 가기는 다 틀렸다고 생각하며 쩝쩝 입을 다셨다. 아버지가 무엇때문에 왔는지 짐작이 갔던것이다.

《바쁘지 않으면 좀 들어가자꾸나. 집에는 뉘 없느냐?》

《예. 집사람이 어딜 좀 가놔서…》

《차라리 잘됐다. 내 조용히 알아볼게 있어서 왔다.》

짐작한 그대로였다.

방안은 언제부터 비여놓았댔는지 별로 썰렁해보였다. 곰팡이냄새마저 나는듯싶다.

황대걸은 속에서 홍두깨같은것이 불끈거리는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아버지의 모자를 받아 옷장에 걸었다.

《그래 38°선까지 나갔댔다니 이젠 잘 알겠구나. 도대체 북벌은 언제 시작할것 같으냐?》

황병태는 쏘파에 앉자마자 장안에서 술잔과 술병을 꺼내는 아들을 쳐다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황대걸은 술잔 두개와 락화생을 담은 접시와 위스키병을 들고들어오며 씁쓸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안주가 변변치 못해서…》

《됐다. 난 술을 마시러 온게 아니다. 그런데…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매일처럼 북벌한다, 북진통일한다 떠들면서 왜 이렇게 질질 끄는거냐.》

황대걸은 아버지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저 북에 두고온 100리옥토벌때문에 끙끙 속을 앓다가 금년 2월 리승만이 《이북5도청 (북의 5개 도에 설치한다는 행정기관-도청)》을 조직할 때 도지사로 임명받은 후부터는 더더욱 북벌이 빨리 시작되기를 학수고대하고있는 황병태였다.

황대걸은 아버지의 술잔에 술을 치며 한숨쉬듯 말했다.

《아직 성공한다는 담보가 서지 않아 그러는것 같습니다.》

《담보가 서지 않다니. 그건 또 무슨 가을뻐꾸기같은 소리냐?》

황병태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다가 우뚝 멈추고 대걸이를 치떠보았다.

황대걸은 씁쓸히 웃으며 자기 잔에도 술을 따랐다.

그를 멍하니 쳐다보던 황병태는 흠- 하고 코소리를 내며 짱소리가 나게 술잔을 탁에 내려놓았다. 술 몇방울이 넘쳐나 탁자우에 흘러내렸다. 황병태는 와락와락 옷자락을 헤치고 안주머니에서 신문접은것을 꺼내 아들의 눈앞에 내흔들었다.

《그럼 이건 뭐냐, 이건 우리 국부께서 유피통신사 부사장이라는 죠세프 죤슨씨와 한 담화내용이다. 여기에 뭐라고 썼는지 넌 보지 못했느냐. <난 우리들이 3일이내에 평양을 점령할수 있다고 확신하고있다. …> 자, 이래두?…》

황병태는 입이 써서 쩝쩝거렸다. 리승만의 저런 정신병자같은 넉두리를 그대로 믿고있는 아버지가 가련했다. 아버지의 조급증을 부채질하는것은 리승만뿐이 아니였다.

국방부장관 신성모는 지난 7월(1949. 7. 17.) 《대한청년단》인천사단 《훈련시범대회》에서 《우리 국군은 대통령의 명령만 기다리고있으며 어느때라도 명령만 있으면 이북의 평양, 원산까지라도 1일내에 완전히 점령할 자신과 실력이 있다.》고 확신있게 장담했다.

국무총리 리범석도 《학도호국단》결성식에서 《학도제군… 이북으로 총진군하자!》고 입에서 침방울을 튕기며 고아댔다.

그래 그들은 지금도 38°선에서 매일과 같이 무얼 좀 어째보려다가는 도리여 무참하게 두드려맞고 숱한 사상자만 내고있는 이 실태를 모르고있단말인가. 북벌에 미쳐버려 38°선전역에 죽어넘어진 그 《국군》시체들이 다 공산군으로 보이기라도 한단말인가.

황대걸은 로버트의 북벌군사작전계획이 당장은 승산이 없다는것을 이번 《순방》과정에 절실히 깨달았다. 안타깝고 괴로운 일이지만 자인할수밖에 없는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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