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2 장

1

(1)

 

미군사고문단 마이클대좌의 특별지시로 보름동안 38°선일대를 《순방》한 황대걸은 호박쓰고 돼지우리에 들어가는 격이 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군용찌프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그의 안주머니에는 두개의 증명서가 있었다. 하나는 미군사고문단통역의 증명서이고 다른 하나는 미극동군사령부에서 발급한 특별검열관의 증명서였다. 이 두번째 증명서는 이번처럼 마이클의 지시가 있을 때에만 사용하게 되여있었다.

아래입술을 꾹 깨물고 묵묵히 앞만 쏘아보며 차를 몰아가는 그의 모루처럼 네모진 얼굴에는 짙은 고뇌의 그림자가 덮여있었다.

그의 이번 걸음의 목적은 서쪽으로는 옹진, 벽성으로부터 동쪽으로는 양양까지 38°선연선의 매 부대들에 나가 현재 진행중인 공격작전들을 현지에서 료해하여보고 북벌군사작전계획이 과연 승산이 있는가를 타진하는것이였다. 《국군》의 매 사단, 련대, 대대에까지 미군사고문들이 득실득실한데 《국군》 대령에 불과한 자기가 군사고문단장인 윌리암 로버트준장이 직접 책임지고 작성한 그 전쟁계획의 승산여부를 타진한다는것자체가 금시 쳐들린 시퍼런 작두날밑에 가는 목을 들이대는것만치나 우둔하고 몸서리치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자기의 직속상관인 마이클의 특별지시라 집행 아니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마이클이 무엇때문에 이런 지시를 주었는지, 자기의 이 걸음이 무엇때문에 필요한지 딱히 알수는 없지만 어쨌든 마이클이 자기대신 이 황대걸이를 그 작두날밑에 밀어넣으려 하는것만은 틀림없었다.

물론 마이클이 미극동군사령부 정보국과 국무성에 든든한 줄이 있고 미행정부의 대조선정책작성에도 일정하게 관여하고있다는것을 모르는바는 아니지만 이러나저러나간에 상대는 《국군》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로회하고도 음흉하고 조폭스럽기 그지없는 미군사고문단 단장이였다.

만일 단장인 로버트가 자기의 이 《순방》내막을 안다면 가차없이 그 작두날끝의 발디디개를 썩뚝 내리누를것이다. 황대걸은 후유- 하고 휘파람소리가 나도록 한숨을 내쉬였다.

귀전에는 지금도 로버트가 군사고문성원들과 《국군》고위장성들앞에서 북벌군사작전계획을 설명하던 그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지릉지릉 울리고있었다.

《… 우리 군사작전의 특징은 38°선 전전선에서 동시에 전면공격을 하면서 그와 배합하여 동서해안에… (이때 그는 키를 넘는 하얀 지시봉으로 벽에 걸린 1대 100만 조선전도에서 동서해안의 서천과 상남리를 가리켰다.) 이렇게 상륙하여 북반부의 허리를 자르고 일거에 평양과 원산계선을 점령한 다음 압록강, 두만강계선으로 공격성과를 확대하는것이요.》

처음 로버트의 어조는 로회한 군사작전가답게 낮고 딱딱하고 차거웠었다. 그러나 자기의 계획에 자기도 모르게 도취되는듯 점점 목소리가 열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를 위하여 주타격을 서부에, 보조타격을 동부에 지향하고 1제대로 2개 군단, 예비대로 4개 보병사단을 할당하였습니다.

국군 1, 3, 5보병사단과 4개의 독립보병련대 및 증강부대들로 편성된 1군단은 기본공격집단으로서 주타격을 금천-사리원-평양방향에, 보조타격을 옹진-사리원방향에 지향시키고 서해안의 서천에 상륙하여 내륙방향으로 공격하는 해상륙전대와의 배합밑에 평양방향으로 공격하게 됩니다.

6, 7, 8보병사단과 1개 독립보병련대 및 증강부대들로 편성된 2군단은…》

로버트는 긴 지시봉으로 조선전도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줄을 쭉쭉 그었다. 그러는 그의 행동은 마치 합창대앞에 선 지휘자처럼 률동적이였다.

군사고문들도 《국군》장성들도 황대걸이도 황홀한 눈길로 그의 지시봉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 지시봉이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비행기가 날고 장갑차가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질주하고 보병들이 와와 함성높이 달려갔다. 로버트는 문득 자기가 흥분했다는것을 깨달은듯 다시 실무적인 어조로 되돌아갔다.

《이 북벌을 위한 모든 지상작전과 해상작전은 올해 여름 즉 1949년 7~8월경에 미극동공군의 지원속에 수행됩니다. 이 작전계획은 45년도 38°선이 생겨난 그때 대통령각하의 지시로 세운것으로서 오늘까지 끊임없이 수정보충되여왔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진행한 38°선전역에서의 공격작전들은 철저히 이 작전의 일환이였고 그 준비였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해온 그 군사적공격의 목적은 38°선이북의 전술적거점들을 하나하나 확보하기 위한 무장공격을 끊임없이 진행하면서 실전능력을 높이고 공격이 성공하는 경우 그곳을 지탱점으로 하여 공격성과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북벌군사작전계획을 실현하자는것이였습니다.》

황대걸은 자기의 입이 파리가 날아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헹하니 벌어진것을 알지 못했다. 산발적으로 우발적인 일로 하여 때없이 일어나군 한듯한 그 모든 무장충돌이 이런 구체적이고도 면밀한 타산밑에 계획되고 진행된 국부전쟁이였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것이다.

출발은 확실히 황대걸을 매혹시켰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출발은 그렇게 화려했지만 지금쯤 전조선땅을 타고앉았어야 할 《국군》이 아직까지도 앉은뱅이처럼 그저 그렇게 출발선에서만 매삼치고있는것이였다. 전면공격도 해보고 특공대도 들이밀어보고 총포사격도 들이대군 하였지만 바위에 대고 썩은 닭알 던지듯 이북은 끄떡이 없었다. 1보병사단이 맡은 장풍, 개성, 금천, 연안, 청단, 벽성, 옹진지역은 물론이고 7보병사단이 맡은 련천과 철원지역, 6보병사단이 맡은 화천, 양구, 린제, 8보병사단이 맡은 태백산줄기의 동쪽 양양지역… 그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로버트가 자신있게 선포한 7~8월도 지나고 이젠 10월이 되였는데 아직도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38°선의 앉은자리에서 처참하게 얻어맞기만하고있으니 언제 진짜전쟁을 한다는것인가.

한달전 로버트는 채병덕륙군참모총장에게 전화로 《국군》의 전투능력에 대한 실망감을 로골적으로 드러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지금껏 얼마나 많은 힘을 기울였소. 우리가 넘겨준 무장장비만 해도 얼마요? 올해에만도 10만 5천정의 미국제보총과 카빈총, 4만정의 일본제보총에 2 000여정의 기관총, 2 000문이상의 포, 5 000대이상의 차량… 함선과 비행기는 또 얼마고 탄약과 포탄은 또 몇천만발이요? 우리 군사고문들이 훈련은 또 얼마나 품들여주었고… 정말 실망하게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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