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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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안동수는 가슴을 저며내는듯한 아픔을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꽃니에게 어서 노래를 하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던 녀인의 행복에 겨운 아릿다운 모습이 선히 떠올랐다. 스물다섯살이라면 안해와 같은 나이이다. 앞길이 구만리같은 그가… 이제 딸과 함께 남편에게 가서 행복하게 살아야 할 그가 이 무슨 변이란말인가. 남편에게 간다고 그리도 기뻐하던 그 녀자가…

《그 녀자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꽃니 아버지를 불렀소.》

보안서원의 목메인 소리…

그가 하는 젖은 소리가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다. 가쁜숨을 몰아쉬면서 애타게 남편을 찾는 녀인의 목소리.

《여보, 꽃니 아버지… 난… 난… 아니… 여러분, 난 이러면… 안되는데… 꽃니 아버지가 기다리는데… 날 좀… 난 죽으면 안되는데… 꽃니 아버지가… 날…》

꽃니 어머니가 일어서려고 자꾸만 움직거리다가 끝내 도로 눕는다.

《엄마! 엄마야!》

정신을 차리자마자 엄마에게 달라붙는 꽃니…

《엄마야, 왜 이러니… 난 무서워… 엄마야, 이러지마…》

《꽃니야… 아버지한테… 아버지한테… 이 애를… 꼭 아버지한테…》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녀인이 꽃니의 손을 더듬어찾더니 가냘픈 미소를 짓는다.

《꽃니야, 너만이라도… 아버지한테… 가거라. …》

끝내 녀인은 그 마지막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엄마야! 엄마야! 이러지마, 엄마야.》

꽃니가 울면서 안타까이 잡아흔들었지만 녀인은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

보안서원은 후-하고 긴숨을 내그었다. 기가 막힌듯 한참이나 말없이 앉아있다가 더 추억하기가 괴로운듯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안동수는 무딘 칼로 가슴을 허벼내는것만 같았다. 저 꽃니는 또 어떻게 하면 좋은가?

《참, 동무이름은 뭐요? 동무에 대해서는 어디에 련락도 못했소. 누이동생도 동무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모르더구만. 이 애는 동무를 안초산이라고 하는데 증명서엔 쏘련이름이 있더구만.》

안동수는 알릴락말락 고개를 끄덕였다.

《난 지금 조국에 나와 일을 하자고 쏘련에서 나오는 길이요. 길림에서 14년전에 헤여졌던 이 애를 찾았지.》

《그렇소?》

보안서원의 눈이 커졌다.

《무슨 일을 하자는거요? 어디 말구어놓은 자리가 있소?》

안동수는 도리머리를 했다. 불쑥 박영욱이가 《빨리 나가야 한자리씩 차지할수 있다.》고 하던 말이 생각나 쓰거운 미소를 지었다.

《난 원래 소학교교원을 했으면 했는데… 그런 맞춤한 자리가 없다면… 아무 일이나 하자는거요. 조국에 나와서야 어떻게 꼭 하고싶은 일만 하겠소.》

《그렇소?》

보안서원은 놀란 눈길로 안동수를 쳐다보다가 더운 침을 꿀떡 삼켰다.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동무, 우리와 함께 일해보지 않겠소. 여기서 말이요.》

《여기서?》

안동수는 뜻밖의 말에 그를 쳐다보다가 쓸쓸히 웃었다.

《글쎄… 그건 좀 생각을 해보아야겠구만.》

보안서원은 의자를 바싹 침대에 가져다대고 앉았다.

《난 동무가 마음에 드오. 듬직하고 용감하고… 보안서엔 동무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함께 일해봅시다. 어떻소, 응?》

그는 보안서원의 솔직하고도 틀없는 말에 마음이 끌렸으나 왜서인지 선뜻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자기가 다시 총을 잡는다는것은 생각도 못해보았기때문이였다.

《놈들이 계속 이렇게 못되게 구오?》

《그렇소. 옛 제도를 되찾자는거지. 원쑤들은 피를 물고 날뛰고있소. 렬차안에서도 보지 않았소. 남조선엔 지금 미군이 틀고앉아 이 땅을 통채로 삼켜보려고 별의별 음모를 다 꾸미고있소. 38°선에선 매일과 같이 남조선괴뢰들이 북침소동을 일으키고… 총포소리가 멎을 날이 없소. 어떻소. 교원도 좋지만… 총을 잡는게 난 더 중하다고 보오. 우리 장군님께서 피로써 찾아주신 조국인데 이젠 우리가 지켜야 할게 아니겠소. 이 조국을 다시 잃을수야 없지 않소.》

안동수는 그의 말이 가슴을 쿵 치는것을 느끼며 큰숨을 내쉬였다.

《사실 내 여기 군의 보안서장이요. 동무문제를 한번 상정시켜봅시다.

증명서를 보니 안 울라지미르라고 되여있던데 맞소?》

안동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1920년 8월 6일생, 훈춘현 룡정시 천도구에서 출생, 안해는 정 이리나, 1922년생, 따슈껜뜨주 니쥬네 치르치크구역 부죤늬명칭 꼴호즈…》

서장은 기억력이 좋았다. 안동수의 증명서내용을 다 꿰들고있었다.

《동무에 대한 신분내용을 확인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오. 동무에 대해 보증해줄만한 사람은 있겠지?》

안동수는 마른기침을 한번 하고나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보다 먼저 나온 사람들이 있는데… 제일 잘 알 사람은 박영욱이란 사람이요. 따슈껜뜨에서 구역당선전부 지도원을 하던 사람인데… 원래 함께 나오기로 되여있었소. 지금 북조선공산당 조직부장을 하는 허가이동지에게 물어보면 그의 행처를 알수 있을거요. 같은 구역당 출신들이니까 련계가 있을거요.》

《알겠소. 그럼 치료를 잘 받소.》

보안서장은 그의 손을 굳게 잡아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보안서장은 그날로 평양에 전화를 걸었던것 같습니다. 두루두루해서 끝내 박영욱부장을 만났는데 뜻밖에도 그는 나를 보증하기 힘들어하더라는겁니다.

<그 울라지미르가 왜 그렇게 늦게야 따슈껜뜨를 떠났는지 알수가 없단말이요. 아버지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걸 누가 믿겠소. 그지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더구나 간첩놈들과 한자리에 앉아있었고 음식까지 사다 함께 나누어먹었다는데… 계급성이 없단말이요. 혹시 또 모르지, 간첩들은 흔히 자기가 로출될 위험이 조성되거나 자기를 위장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동료를 죽이는것도 서슴지 않는데… 난 사실 그 사람과 깊은 교제는 없었소.>라고 했다는겁니다.

물론 그 모든것은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박영욱부장의 립장에서 볼 때 내가 자기네와 동행을 하지 않은것이 무슨 딴 목적도 있는것이 아니였는지 하는 의심이 있을수 있고 다음엔 간첩놈들과 한자리에 있었다니 저를 믿고 보증하기가 께름했던것 같습니다.

보안서장도 저를 보고 <내가 너무 제 욕심만 부린것 같소. 가서 박영욱동지를 만나 앞일을 잘 토론해보오.>라고 하더군요. …전 그때 벌써 일이 잘 안되고있다는것을 짐작하였습니다.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사람이 남에게서 자기를 보증받지 못한다는것을 알았을 때처럼 불쾌하고 서글프고 괴로운 일이 없다는걸 통절하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언제 그런것을 생각하고있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꽃니 어머니 장례식이 있었던것입니다.

꽃니는 엄마를 찾으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관속에 자기 엄마가 누워있다고는 도저히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 그 애를 꼭 껴안고 피눈물을 삼키며 장례식장에 서있었습니다.

꽃니는 그 곱던 목청이 다 쉬여버렸습니다. 얼마나 애절하게 엄마를 불렀던지 모여섰던 사람들이 다 울었습니다. 엄마를 안장할 때는 묘혈속에 뛰여들어 관을 잡아뜯으며 엄마를 깨워달라고 발버둥질을 쳤습니다. 겨우 그 애를 안아내왔습니다. 저는 그 애를 맡아안고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무진애를 다 써야 했습니다.

꽃니는 그때부터 저에게서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북청에서 온 마을세포위원장은 자기네가 데려다 키우겠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 울면서 저의 가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렬차에서 잠간 사귄것밖에 다른 인연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저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애는 계속 울면서 엄마를 찾았고 아버지한테 가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그 애 어머니도… 죽으면서도 그걸 바랐고 그 애도 너무 떼를 쓰고… 저의 누이동생도 자기의 어린시절이 생각났는지 자꾸 데려가자고 해서 저는 꽃니를 데리고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데리고가서 그 애 아버지를 찾아주고… 그 애 아버지가 군관생활을 하느라 애를 키우기 불편해하면… 당분간은 제가 데려다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병이 나으면 안해도 곧 조국으로 올터이니… 우리 집에서 능히 키울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귀엽고 똑똑해서… 그 애를 놓고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데리고 떠났지요.

평양에 온 저는 금덕이와 그 애를 려관에 떨궈두고 곧장 박영욱부장을 찾아갔습니다. 박영욱부장은 왜 늦었는가, 오다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또 꼬치꼬치 캐묻더니 허가이부위원장에게로 데리고갔습니다.

전 허부위원장과 담화를 할 때 38경비대에 입대할수 있게 해달라고 제기했습니다. 총을 들고 조국을 지키겠다고 말입니다. 부위원장은 저의 가정환경이며 경력을 묻더니 려관에 가서 소식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당청사에서 나온 저는 들끓는 평양거리를 돌아보고싶었지만 려관에서 애타게 기다릴 금덕이와 꽃니생각에 인차 돌아왔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창가에서 기다리던 꽃니는 제가 문을 열자마자 달려와 안기더니 파들파들 떨면서 우는것이였습니다.

<아저씨, 나도 같이 갈래. 여기 있기 무서워.> 하면서… 금덕이가 하는 말이 아무리 자기가 달래여도 그저 울기만 하더랍니다. 그때부터 전 금덕이와 꽃니를 데리고 평양시내를 돌고 또 돌았습니다. 모란봉에도 올라가보고 대동강에도 가보고… 어디서나 사람들은 활기에 넘쳐있었고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그런데 꽃니는…

꽃니는 자다가도 엄마를 찾으며 울군 했습니다. 노래 잘하고 웃기 잘하던 애가 노래도 웃음도 다 잊어버리고 울기만 하는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터지는것만 같았습니다. 당장이라도 38°선으로 달려나가 원쑤를 갚아주고싶었습니다.

허부위원장에게서는 사흘이 가고 나흘이 가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후에야 알게 되였지만 역시 박영욱이가 보증 못하겠다고 한 그 경력때문에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결심을 못 내리고있었던것입니다.

안타까왔습니다. 몇번이고 찾아가 경비대로 나가 보통병사로 싸우게 해달라고 들이댔지만 매번 기다리라는 말뿐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점심무렵에 얼굴이 약간 길쑴하고 이마가 보기 좋게 벗어지기 시작한 나이지숙한 사람이 려관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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