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1 장

3

(6)

 

그 애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광명이 왔다. 얼마나 좋은가. 우리 조국에 새 아침이 왔다

 

나가자 앞으로 삼천만동포여

앞으로 나가자 민주조선 만만세

 

목을 빼들고 관자노리에 피줄이 일어서도록 목청을 돋구는 그 애를 보자 불현듯 맏딸애가 생각났다. 우리 애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그 애도 노래를 배웠을가? 아버지 병구완하느라 아까데미야에서 돌아온 후 언제한번 오붓하게 한가정이 모여앉아본적이 없었다는 아쉬움이 뇌리를 친다. 아버지의 병이 경각에 달했는데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할수가 없었었다.

작별의 역두.

안해는 맏딸과 아들애를 앞세운채 젖먹이 막내딸을 안고 역홈에까지 따라나왔었다.

네살잡이 맏딸은 제 엄마의 치마자락을 잡고 왼손 두번째 집게손가락을 입에 넣은채 겁에 질린 눈길로 아버지를 올려다보고있었다. 두살잡이 아들애는 사탕을 입에 문채 해족해족 웃고있었다.

안동수는 빨리 차에 오르라는 구내방송의 독촉소리를 들으며 안해의 어깨를 꽉 잡고 불같이 말했다.

《고생이 많을게요. 아이가 셋씩 달린데다 아버지, 어머니병구완까지 해야 하니…》

안해의 그 고운 오목눈에 갑자기 눈물이 핑그르 고여올랐다.

《저야 그래도 제집에서 사는데 뭐래요. 난 그저 당신이 걱정이예요. 그 먼길을 동무도 없이… 더구나 전혀 생소한곳에 어떻게 혼자 가서…》

따슈껜뜨에서 조국까지 가자면 까자흐스딴을 경유하여 알마아따, 노보씨비르스크… 이르꾸쯔크, 치따… 기차로 쉬임없이 달려도 보름이 더 걸린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갔는데… 당신은 혼자… 때식두 끓이구 빨래두 해야 하구…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닐텐데…》

《거기에 합숙이 있겠지. 빨래야 붉은군대에 나가서 뚝 뗀것이고, 허허허… 아버지나 잘 모셔주오.》

또 한번 기적소리가 나더니 렬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보, 차가 떠나요.》

안해의 울먹이면서도 다급하게 울리는 목소리…

안동수는 엄마품에서 쌔근쌔근 자고있는 막내딸의 통통한 볼을 살짝 건드렸다.

《얘야, 아버지가 떠나신다. 얘야.》

안해가 아이를 깨우려고 안타까이 들추었으나 애기는 눈을 깜박깜박하다가 도로 스르르 감더니 또 엄마품에 이마를 쿡 박았다.

《허, 우리 막내가 되겐 곤했군, 놔두오.》

그는 맏딸과 아들애를 내려다보다가 한품에 와락 안아올렸다.

《애들아, 앓지 말고… 엄마말 잘 들어야 한다. 응?》

애들은 대답없이 고개만 까딱인다.

그는 웃으며 애들의 볼에 입을 맞춰주고는 발치에 놓았던 트렁크와 배낭을 량손에 갈라쥐고 달리는 렬차의 승강대에 뛰여가 올랐다.

《안녕히 가세요!》

안해가 한손을 쳐들며 젖은 소리로 웨쳤다. 그의 갸름한 량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안동수는 목이 꽉 메여와 눈을 슴벅이며 손을 흔들었다.

《잘있소.》

《가면 인차 편지하세요.》

《알겠소.》

안해가 막내딸의 한손을 잡아 추켜들고 흔들어주었다. 맏딸과 아들애도 엄마치마폭을 잡은채 손을 들어 까딱까딱 흔들어준다. 그들이 뭐라고 웨쳤지만 렬차가 일으키는 바람과 렬차바퀴소리로 해서 무슨 말인지 가려들을수가 없다. …

또다시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그는 소녀애를 쳐다보았다. 소녀애는 무릎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깊숙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있었다.

그는 게를 탁자우에 놓고 힘껏 박수를 치다가 두팔을 벌리며 애를 불렀다. 너무 귀여워 담쏙 그러안고 한껏 애무해주고싶었다.

《애야, 이리 오너라. 어디 좀 안아보자, 어서.》

애가 아장아장 걸어왔다. 그는 애를 안아 무릎에 앉혔다.

《이름이 뭐나요?》

《꽃니예요. 정꽃니…》

《꽃니? 이름이 참 곱구나. 정말 너야말로 한송이 고운 꽃이다.… 꽃니는 어디서 사나요?》

《북청에서 살아요, 북청군 신창리…》

《북청군 신창리… 똑똑하구만요. 아버진 뭘 하나요?》

《머슴군…》

《뭐?》

사람들이 의아해서 눈들을 크게 떴다. 그 애 어머니가 당황해하며 눈을 곱게 치떴다.

《꽃니야, 너 그게 무슨 말이냐. 바른대로 말해야지.》

《해해해, 아버지가 그러잖았나. 아버진 대대로 머슴군이였다구…》

안동수는 소리내여 웃으며 꽃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꽃니가 정말 용쿠만요. 지금은 아버지가 뭘 하나요?》

《군대에 갔어요. 38경비대… 총잡구 나쁜놈들과 싸운대요. 우리가 잘사는걸 배아파하는 놈들이 있대요. 아빠는 그래서 나랑 엄마랑 잘살게 지켜주겠다구 갔대요. 엄마야, 맞지, 잉?》

사람들이 또다시 박수를 치며 꽃니를 칭찬했다.

《정말 애가 똑똑하구만… 애를 참 잘 키웠수다.》

《속엔 령감이 들어앉았수다레.》

《그애가 이제 이름난 가수가 되겠수다.》

안동수는 마치 자기가 칭찬받는듯 흐뭇해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순간 그는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는것을 느꼈다. 할머니옆에 앉은 사나이의 눈길이 피뜩 살기를 띠는것을 보았던것이다. 그 사나이는 인차 눈길을 외로 돌렸다. 차창밖으로 게껍질을 획획 내던진다. 까만 가죽잠바에 진곤색골덴바지를 입은 그는 기름한 얼굴에 어딘가 초조해하는 빛을 담고있는것 같았다. 안동수는 자기도 모르게 옆에 앉은 사나이를 돌아보았다. 함께 온 사람이라는 짐작이 갔기때문이였다. 키가 꺽두룩한 그 사나이는 언제 벌써 게를 다 먹었는지 까만 중절모로 얼굴을 푹내리 가리우고는 끄덕끄덕 졸고있었다.

안동수는 불길한 예감이 피뜩 뇌리를 스쳐지나가는것을 느꼈다. 옆에서 또 사람들이 떠들썩하며 꽃니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동수는 그 소리들을 듣자 여기가 다른 그 어디도 아닌 그처럼 그리던 조국땅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며 바람이 구름을 밀고가듯 불길한 예감을 썩썩 밀어내는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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