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1 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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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조국으로 나가자. 빨리 나가서 새 조선을 건설하는데 이 작은 힘이나마 깡그리 바치자.

아까데미야 간부들의 허락을 받는데 한달이상의 시일이 걸렸다.…

뻐스는 어느덧 시내를 벗어났다.

교외길에 나서자 좌우로는 무연한 목화밭이 펼쳐졌다. 마치 흰구름이 밭에 내려앉은듯 아니, 흰눈이 뒤덮인듯싶다.… 다음엔 포도밭… 푸른 포도잎사귀들사이로 연보라빛으로 무르익은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짙은 향기를 풍긴다. 다음엔 논벌이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들이 바람에 설렁거린다. 다음엔 남새밭… 눈물도 있고 슬픔도 괴로움도 기쁨도 희망도 있었던 이 땅이다. 망국노의 설음을 뼈아프게 새기며 억척스레 황무지를 일구고 논밭을 만들어 곡식을 가꾸어온 우리 조선사람들… 곡식낟가리와 함께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산같이 덧쌓아온 이 따슈껜뜨를 래일이면 영영 떠나게 되는것이다.

저 멀리 푸른 하늘가로수리개 한마리가 훨훨 날아간다.

이제 가면 아버지, 어머니는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안해는, 아이들은… 조국으로 가는 길에 동생 금덕이도 꼭 찾아야지… 온 가족이 함께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면 저절로 가슴이 울렁거린다.

저 멀리 마을이 바라보였다.

꼴호즈앞 큰길에서 내린 그는 곧장 집으로 갈가 하다가 몇걸음 더 걷더라도 안해가 일하는 꼴호즈 회계실에 들렸다가기로 마음먹었다. 저리 꼴호즈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들어오게 한시라도 빨리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한것이다.

그는 무우밭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안해가 있을 사무실로 향했다. 잊을수 없는 추억이 깃든 길이였다.

총각때 꼴호즈 회계원처녀를 만나려 가슴울렁이며 걷던 길… 동그스름한 얼굴에 생글생글 웃음을 담고 마중나오던 눈이 좀 작을사 한 쌍태머리처녀… 사랑을 고백하던 그밤도 이 길로 가서 회계실에서 열심히 주산을 놓는 그를 창문을 톡톡 두드려 불러냈었지. 밤이 깊었는데 웬일일가 해서 따라나오던 처녀, 달밝은 밤, 사랑을 고백하던 저 오리나무숲…

그때 일이 새삼스레 떠올라 빙그레 웃으며 꼴호즈사무실쪽으로 가던 그는 뒤쪽에서 찾는 소리에 우뚝 멈춰섰다.

《애아버지가 아니세요?》

너무도 귀익은 녀성의 목소리.

그는 고개를 획 돌렸다.

아닌게아니라 그렇게도 그립던 안해가 병원쪽골목길을 에돌아 총총히 달려오고있었다.

그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며 몇걸음 마주 걸어갔다.

《당신이로구만. 그새 잘있었소?》

안해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달려오기만 했다. 트렁크를 발치에 놓고 서서 미소를 지으며 안해를 쳐다보던 그는 점점 눈을 크게 떴다. 왜서인지 안해의 얼굴이 울상이 되여있는것 같았기때문이였다. 호흡이 불안스레 빨라지고 심장이 들뛰기 시작했다.

《여보!》 울음섞인 안해의 부름소리… 갑자기 숨이 꺽 막혔다. 불길한 예감이 파편쪼각처럼 날아들어 가슴에 박혔다.

안해는 허둥지둥 달려오던 걸음으로 가슴에 콱 안겨들었다. 안기자마자 종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여보, 이를 어쩌면 좋아요. 아버님이아버님이 …》

아버님?》

그는 몸을 흠칫 떨었다. 다급히 안해의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 가슴에서 떼내였다.

《아버지가 어떻게 되셨소, 응?》

아버님이 아버님이 …》

말을 자꾸 더듬는 안해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여있었다.

아버님이… 정신을… 갑자기… 아침에… 쓰러져서… 아직까지…》

그는 심장이 툴렁 떨어져내리는것만 같았다. 피가 발끝으로 다 새여나간듯 눈앞이 아뜩해졌다.

《의사들은 뭐라고 하오? 약은 무얼 쓰고…》

《따냐선생이 지금 집에 와있어요. 병원에 가서 약들을 더 가져오라고 해서 왔다가는 길이예요. 중풍에 걸린것 같은데…》

《갑시다.》

그는 황황히 집으로 향했다.

안해가 트렁크를 들고 총총히 따라오며 증상을 알려주었다.

오늘 아침 진지상을 들고 문턱을 넘어서는데 손자를 무릎우에 앉히고 《애야, 오늘 네 아버지가 온다는구나. 그러면 우리도 인차 조국으로 가야지, 응?》하며 좋아서 웃던 아버지가 아이를 안은채 갑자기 모로 쓰러지더라는것이다. 그때부터는 아예 정신을 못 차린다고 했다.

그는 억이 막혔다. 그렇게도 고생만 해온 아버지가 귀국을 앞둔 이 시각에 쓰러지다니…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말인가. 너무 흥분했던탓인가? 그럴수도 있었다. 부상당했던 머리가 때없이 아파나군하는데다가 혈압까지 높아 늘 고생하던 아버지였다.

그는 어떻게 집에 도착하고 어떻게 집문을 열어제꼈는지 자신도 몰랐다.…

 

《그때 아버지의 병세는 매우 위독했습니다. 좀처럼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전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아버지의 병구완을 위해 뛰여다녀야 했습니다. 결국 박 안드레이 아니, 박영욱지도원과의 약속을 지킬수가 없었지요.》

책상건너 맞은편에는 김일이 앉아 신중해서 말을 듣고있었다. 머리를 바투 올리깎고 군복을 단정히 입은 김일은 앞에 펼쳐놓은 사업수첩에 글 한자 쓰지도 않았다.

그는 이 담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처음엔 문화훈련국장으로서 인민군신문사에 사업을 료해하거나 지도사업으로 내려온줄로만 알았었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인민군신문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물으면서 책임주필로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들이 어떤것인가 하나하나 료해하더니 뜻밖에도 사생활문제 더우기는 박영욱이와의 문제에로 넘어간것이다.

안동수는 박영욱이때문에 자기 문제가 복잡해져 조국으로 나온 직후 그처럼 고충을 겪게 되였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박영욱이가 이 안동수를 보증할수 없다고 했기때문이였다.

지금 박영욱은 중앙당에서 부장을 하고있다.

그는 아직도 이 안동수를 탐탁치 않게 보고있는것 같다. 따슈껜뜨에서 조국으로 함께 떠나자고 할 때에는 자기가 다 책임질것 같이 말하더니…

그렇다면 이 담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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