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1 장

3

(1)

 

밤이 깊어가고있었다. 와르릉와르릉 하늘땅을 뒤흔드는 요란한 땅크발동기소리와 땅크정비장에서 무한궤도의 련결못을 때려 박는 쩡쩡하는 함마질소리, 운동장에서 대렬훈련을 지휘하는 호각소리, 《앞으로 갓!》 《우로 돌아 갓!》하는 쩌렁쩌렁한 구령소리, 척척척 지축을 울리는 병사들의 발걸음소리들이 언제 있었던가싶게 사위는 고즈넉한 정적속에 잠겨들었다. 저 사동산뒤를 감돌아흐르는 대동강의 물소리마저도 들려오는듯싶다. 씨륵씨르륵거리던 씩새리소리도 잠잠해졌다. 풀벌레들도 다 잠든듯싶은 이 밤…

안동수는 침실 책상에 마주앉아 편지를 쓰고있었다. 멀리 쏘련의 따슈껜뜨에 있는 안해에게 보낼 편지였다. 결혼을 하기 전 따슈껜뜨사범대학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집에서 오붓한 생활을 해본 날이 별반 없는 안동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는 안해에게 편지를 쓰는것으로 정을 더 두터이하군 해왔었다. 부부일심이라고 무슨 일이 생기면 안해에게부터 알리고싶은것이 그의 심정이였다.

지금도 편지를 쓰노라니 눈앞에는 줄곧 생글생글 웃는 안해의 동그스름한 얼굴이 얼른거린다.

부죤늬명칭 꼴호즈에서 회계원으로 일하는 안해는 매일처럼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목화밭이며 포도밭이며 남새밭과 양방목지까지 돌아보군하느라 늘 얼굴이 해볕에 감실감실 타군 했었다. 쌍태머리를 갈기처럼 날리며 양들을 방목하는 드넓은 초원으로 밤색가라말을 타고 질주하는 처녀때의 그 모습은 장쾌하기도 하고 황홀해보이기도 했었다. 사랑을 속삭이던 꼴호즈앞의 오리나무숲, 자기도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내려다보던 놋양푼같이 둥근달, 잊을수 없는 결혼식날의 그 말방울소리… 쏘도전쟁이 일어나 전선으로 떠나던 날 따슈껜뜨역에서 안겨주던 한송이의 빨간 장미꽃, 갓 태여난 젖먹이 첫딸을 안고 손저어 바래주던 그 모습, 전선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가슴에 안겨들던 눈물젖은 그 얼굴…

다시 시작된 대학생활, 아까데미야생활… 그사이 안해는 벌써 세 아이를 가진 현숙한 녀인으로 되였다.

토요일저녁마다 집으로 가면 막내딸을 품에 안고 맏딸과 아들애를 앞세우고 마중나오던 그 모습.

《애들아, 아빠 오신다. 어서 인사드려라.》

네살잡이 맏딸은 《아빠.》하며 뽀르르 달려오지만 두살잡이 아들은 마음만 앞서서 두팔을 내뻗친채 뒤척뒤척거린다.

안동수는 아들애가 넘어질가 걱정되여 얼른 달려가 반갑게 안아올린다.

《우리 아들님이 그새 또 컸구나.》

그러자 자기를 안아주지 않고 동생만 안아주는것이 시샘이 나서 맏딸이 입을 삐죽거린다.

《아빤 그 애만 고와해. 그 애만 안아주구…》

《허허허, 우리 맏이가 심술이 났구나. 너야 큰애가 아니냐.》

안동수는 딸애의 오동통한 볼을 꼭 눌러주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는 맏딸도 같이 안아올린다. 높이 추켜들며 행복에 겨운 어조로 소리친다.

《난 너희들이 다 곱단다.》

깔깔깔 명랑하게 터뜨리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

아, 이들이 이제 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하랴.

아버지가 이 소식을 아신다면 땅속에서도 춤을 추실것이다.

안해는 기쁨을 참지 못해 편지를 들고 친정집으로 달려갈것이다. 호랑이로 소문난 아버지에게, 한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을 못해 머리를 앓으며 눈치를 보던 엄한 아버지에게 이제는 행복에 넘친 어조로 자랑을 할것이다.

《우리 애아버지가 글쎄 장군님의 신임으로 땅크려단 부려단장이 되였대요. 김일성장군님께서 직접 임명하시였대요. 집무실에 부르셔서… 글쎄 이름까지 지어주셨다지 않아요. 이 편지를 좀 보세요.》 하고는 랑랑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는다.

《이렇게 한동안 땅크부대에 가서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참, 내 언제부터 하나 물어보고싶었댔는데… 동무에게 다른 이름은 없소? 조선식이름 말이요.> 하고 물으시는것이였소. 내가 얼굴을 붉히면서 원래 어렸을때는 <안초산>이라고 불렀다고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안초산이라, 안 울라지미르, 안초산, 울라지미르, 안초산…> 하고 몇번 되뇌이시더니 <쏘련식이름도 조선식이름도 다 마음에 없구만.> 하시며 창가로 다가가시였소. 이윽토록 밖을 내다보시며 무엇인가 생각하시더니 <산에서 싸울 때 땅크려단장의 이름이 류삼손이였는데 평양을 지키는 일군이 되라는 뜻에서 류경수라 지어주었소. 예로부터 평양을 류경이라 불러왔소.

동무이름은 동수라고 지읍시다. 동녘 동, 지킬수. 우리 나라를 동쪽의 나라라고 부르지. 안동수, 조국을 지키는 일군이 되라는 뜻이요.어떻소?> 하시는것이 아니겠소. 여보, 내가 조국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당신은 잘 알지. 그런 나에게 조국을 안겨주시고 조국을 지키는 일군이 되라고 이름까지 지어주셨으니 어쩌면 그리도 내 마음을 다 담은 훌륭한 이름인지…

난 너무도 감격해서 차렷자세를 하며 목메여… 겨우 이렇게만 말씀드렸소.

<장군님, 좋습니다. 장군님 신임에… 꼭…>하고는…》

안해도 울먹울먹하며 편지를 더 읽지 못한다. 《호랑이》가시아버지가 한걸음 바투 나앉는다.

《어디 보자, 어디… 우리 사위가 김일성장군님께서 아시는 사람이 되였단말이지… 우리 사위가 제일이다. 제일이야.》

《에그, 언젠 뭐… 대학생이 색시부터 얻으려 한다구 찌글서해서 말도 안하더니…》

옆에서 가시어머니가 눈을 가볍게 흘기며 퉁을 놓자 가시아버지는 《무슨 소릴… 나야 우리 딸이 너무 고생할가봐 그랬던거지… 그 사람이 나빠서 그랬나?…》 하면서 편지를 받아읽는다.

그러는 그의 눈가에도 축축히 물기가 고인다.

《맞구나. 우리 사위가 그런 큰 믿음을 받아안았구나. 애야, 너도 어서 조국으로 나가야겠다. 빨리 나가 애아버지를 도와야지…》

《예… 이제 시아버님의 돐제나 지내구 봄이 되면…》

《그래, 어서 나가 뒤받침을 잘해주어라. 어허, 경사가 났구나. 우리 집안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아시는 인물이 나다니…》

가시 아버지는 너무 좋아 춤이라도 출듯싶다. 가시어머니는 어느새 문을 열고 나간다. 동네방네 사위자랑을 하러 나가는것이다. …

안동수는 편지를 더 쓸수가 없었다.

장군님을 만나뵙고 직접 임명을 받던 그때의 그 감격과 흥분이 되살아오르며 숨이 막 가빠졌다. 심장도 어방없이 커진듯 툭툭 힘차게 뛴다.

안동수는 만년필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정을 못하고 침실안을 거닐다가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서늘한 가을밤의 신선한 대기가 확 쓸어들었다.

안동수는 바람에 흩날리는 앞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신선한 공기를 페부깊이 한껏 들이켰다. 그래도 가슴은 막 달아오른다.

안동수는 뭇별들이 총총한 검푸른 밤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어떻게 되여 이런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게 되였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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