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1 장
2
(1)
강철포신을 버쩍 추켜든 땅크는 와르릉와르릉 지축을 울리며 울긋불긋 단풍이 무르녹는 산굽이를 전속으로 에돌았다.
(흥, 내가 뭐 덤베북청이라구?)
조종간을 꽉 틀어쥔 전기련은 두툼한 입술을 꾹 깨물고 운전부에 바위처럼 틀고앉아
(이번엔… 본때를 보일테다. 이 전기련에 대한 관점이 확 달라지게…)
저 앞굽인돌이에 까만 치마에 흰적삼을 입은 웬 처녀가 나타났지만 전기련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글어글한 두눈을 뚝 부릅뜨고 무한궤도가 누벼나갈 앞길을 긴장해서 살폈다. 주먹만한 돌 한개, 저가락만한 마른나무토막 한개도 놓치지 않는다.
(다시는 이 전기련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못하게 할테다.)
이번 훈련은 려단이 생겨 두번째로 진행하는 장거리고단운전훈련이다. 경사지극복훈련과 결부된 이런 운전훈련은 첫 땅크부대인 땅크교도련대가 조직될 때부터 운전기술을 배워온 구대원운전수들 아니, 이젠 어엿한 땅크지휘관들이 된 제1세 운전수들도 여간 힘들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입대한지 여섯달도 채 안된 전기련이네들이 장거리고단운전을 하는것만도 대단하다면서 경사지극복훈련은 도리머리를 했다. 힘든것은 사실이다. 전기련은 전번 훈련때 경사지에서 순간정지시켰던 땅크를 다시 전진시키는 훈련을 하다가 땅크가 갑자기 후진하는 바람에 덤볐다치면서 그만 발동까지 죽이고말았었다. 그리하여 훈련지도 내려왔던 려단참모장에게서 호된 추궁을 받았다. 그때 중대장에게서 전기련에 대해 알아보던 려단참모장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허허허, 진짜 북청태생이란말이지. 북청내기들은 속이지 못하겠구만. 어딜가나 나타난단말이요. 덤베북청이라… 그래도 어쨌든 그 동무야 전문학교출신이 아니요. 한심하오. 언제 가야 제구실을 하겠는지…》
전기련은 그 말을 전해들은 순간 얼굴이 숯불처럼 타오르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내가 왜 제구실을 못한단말인가.)
상처입은 자존심이 가슴밑창에서 무섭게 꿈틀거렸다. 굴뚝처럼 일어서는 반발심을 누를수가 없었다.
학교때는 그래도 제노라하던 이 전기련이가 아닌가.
그날 저녁 자유시간에 기술강당에서 땅크의 기술적원리들을 꾸준히 탐구하면서야 그는 경사면에서 운전할 때는 무거운 땅크가 후진하지 않을 정도로 발동기의 능력을 유지해가지고있다가 전진해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런데 자기는 땅크를 완전히 정지시켰다가 전진하려했던것이다. 이렇게 되면 땅크가 전진할수 있는 추진력을 가지게 되기까지 순간은 자체중량에 의하여 후진하게 되는것이다.
그때부터 전기련은 악을 쓰고 공부하고 훈련을 했었다.
려단참모장에게까지 잘못 보인걸 생각하면 속이 부걱거려 견딜수가 없었다.
(아니, 다시는 그렇게 안될것이다. 그때는 경사지훈련이 처음이여서 당황했댔지 이번에는… 어림도 없다.)
전기련은 힘있게 연유공급답판을 밟았다. 무한궤도는 검붉은 진흙땅을 물어뜯으며 더욱 맹렬히 전진했다. 와릉와릉하는 철갑의 진동은 온몸에 전률할만치 질주의 쾌감을 주었다.
시창앞으로 까만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은 그 녀자가 점점 가까이 비쳐들었다.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자그마한 개울가에서 손을 씻는지 다리쉼을 하는지 잠시 쪼그리고앉았다가 일어서서 가슴팍으로 흘러내렸던 외태머리를 슬쩍 어깨뒤로 넘긴다. 앞에서 와르릉거리며 달려오는 땅크를 농촌달구지만큼이나 여기는듯 대수롭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맞받아 걸어온다.
기련은 왜서인지 심술같은것이 속에서 꿈틀거리는것을 느끼며 흠- 하고 코소리를 냈다.
웬간한 처녀들은 하늘땅을 뒤흔드는 땅크의 요란한 발동기소리와 땅거죽을 무섭게 물어뜯으며 흙밥을 맹렬히 뿌려던지는 무한궤도의 위력과 디젤유내가 섞인 시꺼먼 내굴을 뒤로 냅다 뿜어대며 돌진하는 무쇠철갑의 기세에 질겁하여 손으로 두귀를 막고 뒤로 돌아서든가 멀리 비껴서군 하지만 이 처녀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기때문이였다.
길옆으로 비켜서서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수심이 비낀듯한 단아한 표정으로 걸어온다. 땅크가 앞으로 막 육박해들어가는데도 눈섭 한오리 까딱 안하고 마주 쳐다본다.
(허, 그 처녀 꽤 용감한데? 자, 이래두?…)
시삐주름히 입술을 내밀며 그 처녀와 바투 어기치던 전기련은 슬쩍 그의 얼굴을 곁눈질하다가 대번에 황소처럼 눈을 흡떴다.
(아니, 이게 누구야. 서용숙이 아니야?)
약간 치뜬것처럼 보이는 반달모양의 까만 두눈, 상큼하니 솟은 코, 조그마하게 다물린 귀여운 입, 쭉 빠진 목…
서용숙이, 틀림없는 서용숙이다. 꿈에도 잊을수가 없던…
갑자기 가슴이 널뛰듯했다. 전기련은 급히 제동답판을 꽉 밟으며 자기도 모르게 두 조종간을 와락 잡아당겼다. 땅크가 급제동바람에 왈칵 곤두박히듯 멎자 전기련은 밖으로 나가려고 헤덤비며 몸을 불쑥 일으켰다. 그 녀자를 알아보는 순간 자기를 잊은것이다.
《운전수, 뭘해? 왜 세웠어?》
머리우에서 울리는 중대장의 벼락을 치는듯한 소리.
《저기… 저 용숙이가…》
《뭐야, 무슨 허튼 소릴해?》
《허튼소리라구요?》
전기련은 분개해서 고개를 휙 들며 손으로 시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기련은 격해서 웨치려다가 손을 든채 그대로 뚝 굳어지고말았다. 무엇인가 지끈 뇌리를 후려갈긴다. 기련은 《아-》하고 신음비슷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기가 지금 훈련중이라는것을 깨달은것이다. 전기련 자기를 도와주기 위해 중대장이 직접 이 땅크에 올라 지휘를 한다는것도 그제야 생각났다.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 아닙니다. 》
전기련은 황황히 연유공급답판을 밟으며 변속을 넣었다. 이발을 부서져라 악물며 조종간을 힘껏 내밀었다.
움씰 땅크가 전진하기 시작했다. 2단, 3단… 땅크는 몸부림치며 길바닥을 물어뜯었다.
전기련은 조종간을 틀어쥔채 후들후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시창밖을 쏘아보았다. 심장이 걷잡을수 없게 요동친다. 길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산골짝물도, 단풍든 노란 나무잎사귀들도, 피방울같이 빨간 찔광이 열매들도 자꾸만 서용숙의 얼굴로만 보인다.
전기련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안된다. 이게 어떤 훈련이라구… 이 전기련의 금새를 평가하는 훈련과도 같은데… 침착하자, 침착하자, 침착하자.…)
전기련은 마침내 자기를 되찾았다.
어떻게 하나 이번 경사지극복훈련에서 실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자기가 어떻게 앞길을 개척하는가에 따라 뒤를 따라오는 중대, 대대의 훈련성과가 달려있다고도 말할수 있다. 중대장이 왜 자기 땅크를 선두에 세웠는지 기련은 너무도 잘 알고있다. 전번 훈련때 실수했으니 이번에는 그 봉창을 하라는것이다. 그 믿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제 또…
전기련은 심호흡을 했다. 디젤유냄새, 모빌유냄새가 혼탁된 땅크특유의 탁한 공기가 페부깊이 흘러들었다. 마음이 좀 안정되는듯싶다. 울대뼈가 꿀꺽하고 오르내렸다. 이번 훈련만 성과적으로 치른다면…
《역시 전기련이가 달라…》
《전문학교까지 다닌 동무인데 어련하겠어?》
《학교땐 민청
모두들 이렇게 수군거리며 고개들을 끄덕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