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서 장

잠들수 없는 령혼들

(2)

 

그 사람은 머리에 총탄을 맞아 온통 피투성이인데 강계포수를 쳐다보는듯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죽었다. 그 마지막순간에도 또 무슨 말을 하댔는지 모른다.

《령감님, 우리가 왜 이렇게 맥없이 죽어야 하우? 우리 대장님이야 저 홍범도총대장도 무시 못하던 로장이 아니시우. 대장님이 늘 말하지 않았수. 총대장은 원동에 들어가서 독립운동을 하자고 하는데 자기는 그걸 반대한다구… 여기서 왜놈들과 싸우자구… 저렇게 적은 인원으로 싸다니는 놈들부터 치구… 그래서 좋은 총이랑 뺏어가지구 더 많은 놈들을 치자구…

그런데 이게 뭐요. 도제 기관총 하나때문에 이 숱한 사람이… 그처럼 사기도 높던 우리 부대가…》

안덕삼은 또다시 왈칵 솟구쳐오르는 피덩어리같은것을 애써 삼켰다.

총다루기에서는 제노라하던 사람들까지 이렇게 맥없이 쓰러지다니, 아침까지만 해도 롱을 하면서 웃고떠들던 이 사람들이…

안덕삼은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듯한 아픔을 느끼며 그들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또 비척비척 걸었다.

길옆 보라빛들국화 한송이가 바람에 나붓기는 누런 풀밭에 또 눈을 감지 못하고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성균관 급사로 있으면서 글을 익혔다는, 독립군에서는 그래도 제일 유식하다는 사람이였다.

그는 언제인가 《춘생문사건》(미제가 조선왕궁을 습격한 사건)에 대한 기사를 써서 《황성신문》에 투고하여 장지연사장의 눈에까지 들었댔다고 했었다.

그는 서울교외의 자그마한 사립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3. 1운동때 일제놈에게 사랑하는 안해를 잃고 독립군으로 들어왔다고 했었다.

그는 정말 모르는것이 없는것 같았다.

《리준선생이 만국평화회의장까지 찾아가 우리 나라가 독립국가라는, 저 <을사5조약>이라는게 완전히 날강도문건이라는걸 인정받자고하였지만…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오죽했으면 회의장에서 스스로 배를 갈랐겠소. 그런 청원이나 누구의 인정을 받는다거나… 그런 식으로는 독립을 못해요.

난 안중근선생의 방법이 오히려 마음에 들어요. 안중근선생은 이또 히로부미를 격살했구 환갑이 넘은 강우규로인은 사이또총독의 면전에 폭탄을 던지구…

그렇게 한놈씩이라도 죽여야 해요.

그래서 나도 이렇게 독립군에 들어온게 아니겠소.

그런 큰사람들은 왜놈우두머리들을 죽이구 나같은건 졸개놈들을 죽이구… 우리 2천만동포가 너두나두 떨쳐나 한두놈씩만 죽여두 왜놈들을 다 죽일게 아니겠소.》

그 말에는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게 되면 나라가 독립될것 같았었다.

《단군성왕때부터 5천년을 이어온 우리 나라가 글쎄 이게 뭐요. 단군때랑 고구려, 발해때랑 그렇게도 강했던 우리 나라가 글쎄 저 섬나라 쪽발이놈들한테까지 먹히우다니 이게 어디 될말이요. 그래서야 안되지요. 우리 물고뜯고서라도 한두놈씩만이라도 잡아죽이잔 말이요.》

하지만 그처럼 뻔한 리치를 안고있는 사람도 이렇게 낯선 이국의 황야에 한을 품고 쓰러졌다. 그 왜놈졸개 한놈 죽이지 못한채…

안덕삼은 피눈물을 삼키며 그의 눈을 감겨주고 가까스로 자리를 일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가슴을 안고 몇걸음 더 걷다가 또 우뚝 서버렸다.

한마을에서 같이 온 친구의 시체를 본것이다.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던 날 나라를 독립하러 간다고 안해가 그처럼 정성들여 차려준 주안상을 마주하고 앉았던 일이 불쑥 떠올랐다. 그때 벌렁벌렁 밥상옆으로 기여오는 애기를 번쩍 들어 무릎우에 앉히고 자기 술잔을 그 앵두같은 입에 기울여주며 껄껄거리던 친구…

《이녀석아, 네 아버진 나라를 독립시키려 먼길을 간단다. 너 지금은 낯을 찡그리구 도리질을 하지만 네가 진짜 술맛을 알 때엔 이 아버지네들이 나라를 독립시킬지도 몰라. 허허허. 그땐 초산이 네가 나한테 술을 권해야 돼. 알겠니?》

아버지들이 달게 마시는 《물》이라 자기도 한번 맛보자고 기여왔다가 술 한모금에 혼쌀이 나서 우는 애기의 기저귀엉덩짝을 두드리며 그리도 좋아라 웃던 친구.

안덕삼은 와락 무너져내리며 친구를 부둥켜안았다.

몸부림을 치면서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너까지 이렇게 가면 난 이젠 어쩌란말이냐. 그렇게도 큰뜻을 품고 집을 떠나왔던 우리가… 이렇게 모든게 끝났단말인가.

아, 아- 분하구나, 원통하구나.

기관총도 하나 없이…

우리 나라는 왜 이렇게도 힘이 없느냐. 왜, 왜… 저런 같지도 않은 쪽발이들한테… 이렇게 망하다니… 아, 조선아, 조선아…》

바람이 불어왔다. 우수수 새초숲이 설레였다.

노을이 스러지고있었다. 벌써 어둠이 깃들고있었다.

안덕삼은 화승총에 의지하고 일어서서 피눈물이 뚝뚝 듣는 눈길로 쓰러진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이들을 다 어찌하면 좋단말인가.

우우 바람소리가 점점 세차졌다. 그것은 마치도 눈을 감지 못하고 쓰러진 독립군대원들의 령혼들이 몸부림치는 소리같았다.

이제 밤이 오고 그 밤이 깊어가도 저 령혼들은 잠을 자지 못할것이다. 그 밤이 수백수천번 다시 와도 한을 품고 쓰러진 이들의 령혼들은 절대로 잠들지 못할것이다.

허탈감에 빠진 안덕삼은 찬바람부는 언덕우에 얼나간 사람처럼 우두머니 서서 세찬 마가을바람에 너덜너덜해진 옷자락을 흩날리며 오래도록 움직일념을 못했다.

어둠은 점점 더 짙어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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