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0 회)

제 1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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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지하밀영으로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한흥권, 최춘국은 장군님께서 도착하시기 하루전에 밀영에 와닿았으며 주보중과 왕이산이와 하연성은 그다음날에 남만에 나가있던 백선일은 이틀후에 부대를 이끌고 밀영에 나타났다. 이무렵에 조선인민혁명군의 국경연안진출을 앞두고 백두산지구에 나가있던 송명준이와 교하, 돈화방향과 안도, 화룡일대에 나가있던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도 밀영에 들어와있었다.

녕안읍에서는 백송로가 깊은 눈속을 간신히 헤치고 장군님을 뵈옵고저 밀영에 나타났다. 눈에 익은 풍마차에는 백송로의 절절한 편지를 받고 상해의 독립운동자들이 파견한 늙은이 한사람과 중년의 사나이가 함께 타고왔다.

실로 세상이 온통 달라지는것 같은 감격과 흥분이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파도처럼 출렁이는 가운데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강화발전을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임무를 토의하는 력사적인 남호두회의가 막을 올렸다.

이날은 간밤에 내린 눈이 나무가지들에 담뿍담뿍 내려앉아 수림속의 풍경을 유난히도 탐스럽게 장식하고있었던 1936년 2월 27일이였다.

가운데 통로를 내고 량쪽에 온돌을 놓은 귀틀막의 너렁청한 큰방에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지휘관들과 정치일군들이 참가하였다.

비록 통나무를 무어 만든 책상이기는 하지만 정중하게 모포를 씌우고 《조선혁명승리 만세!》라고 쓴 구호를 옆으로 길게 드리워놓은 주석단에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유난히 정기에 넘치는 안광을 갖추시고 회의참가자들을 마주 향해 앉아계시였다.

회의에는 위증민이며 주보중이도 참가하였다.

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몇밤을 뜬눈으로 밝히며 이 시각을 기다려온 사람들이였건만 그들의 얼굴에서는 피로나 지친 기색을 조금도 볼수 없었고 머리들을 높이 쳐들고 경건하게 장군님을 우러르고있는 빛나는 눈동자마다에는 억제 못할 흥분과 감격의 소용돌이가 굽이치고있었다.

《우리는 조선사람이다. 우리는 조선혁명을 한다. 우리는 조국으로 진출할 사람들이다!》

말없이 터져오르고있는 가슴속의 이 흥분은 그러지 않아도 숭엄하고 격동된 분위기로 가득차있는 방안의 공기를 더한층 후더운 열기로 달구고있었다.

지금 회의장안팎에 운집해선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짚어가며 그들의 마음속을 흐르고있는 눈물겨운 사연을 헤쳐놓는다면 넓고넓은 북만의 산야를 한벌 뒤덮고도 남음이 있을것이며 사람들의 가슴속에 슬픔으로, 원한으로, 울분으로 고이고 깊어진 비통한 눈물을 합치고 모은다면 경박호의 물보다도 더 많을것이였다.

어떻게 그 모진 시련과 고난의 바다를 헤치고 조선혁명의 기발을 하늘높이 추켜올리는 이 장엄한 력사의 기슭으로 그들이 걸어왔는가?

골짜기마다 죽음이 막아서고 걸음걸음 피와 눈물을 자아내는 고난의 바다를 헤치고 이리로 왔다. 누구든 한발자국도 쉽게는 내디디지 못하였다. 대오와 함께 오지 못한 사람들은 너무도 많았다.

회의장밖에는 아침일찍부터 모여온 유격대원들이 지휘부병실을 옹위하듯 질서있게 렬을 짓고 서있었다.

표정이며 몸가짐들이 모두 엄숙하고 진중해보이는 유격대지휘관들속에 몇명되지도 않아 더욱 유표하게 드러날수밖에 없는 송혜정이와 오성숙은 이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할 귀중한 사람들을 대신하고있다는 그것으로 하여 이곳에 오지 못한 수많은 혁명가들에 대한 아픈 추억과 성스러운 감정까지도 함께 지니고있는듯이 누구에게나 생각되였다.

그 녀성들은 모두 고개를 들고 경건하게 장군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단순한 슬픔이나 우울이 있을수 없었으며 간신히 억제하고 애써 누르며 참아가고있는 세찬 감격의 선풍이 깃들어있을뿐이였다.

회의장안팎의 격동적인 분위기를 한몸에 느끼시며 방안을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 격식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고 조용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동무들!》하고 첫마디를 떼시였다.

장군님의 손에는 연설문도 내용을 적어넣은 수첩도 들려있지 않았다. 수없는 전투와 행군을 이어나가며 짬짬이 적고 무르익히시였으며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과의 치렬한 투쟁속에서 견결히 굳히시고 유격구안에서도 유격구밖에서도 어디 가나 만나고 어디서나 듣게 되는 겨레의 비참한 모습과 삶을 구하는 애절한 목소리에서 미룰수 없는 혁명의 절실한 요구로 아프게 받아들이시며 한단계 더 높이 완성해놓으신 조선혁명의 주체적로선은 그이의 온몸과 온넋에 너무도 절절하게 너무도 속속들이 배여있었다.

그리하여 장군님께서는 만인주시의 엄숙한 회장에서 그토록 중대한 사변으로 력사에 남게 될 조국광복의 대강을 선언하시면서도 이미 써놓으신 원고의 도움을 필요치 않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시종 조용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국제국내정세를 분석하시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국경지대에로 진출시키며 투쟁무대를 점차 국내에로 확대할데 대한 조선혁명가들의 절실한 사명에 대해 말씀하시였다.

《매개 나라 공산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자기 나라 혁명을 잘해야 합니다. 자기 나라 혁명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은 세계혁명에도 충실할수 없으며 진정한 국제주의자로 될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관하게 견지하여온 원칙입니다.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의 첫시기부터 국내인민들과의 긴밀한 련계속에서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였으며 조선인민의 혁명력량을 자기 손으로 꾸준히 준비하여왔습니다. 우리는 또한 조선공산주의자들에게 부여된 이 응당한 권리를 유린하는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과의 투쟁도 비타협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그처럼 조용히 부드럽게 시작되였던 장군님의 목소리는 점차 열기를 띠고 격렬한 음조로 번져가시였다. 그리하여 회의장안팎을 빽빽이 둘러싸고있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은 전에없이 엄숙하고 비장하였으며 숨소리는 격하게 높아졌다.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에 대한 그 어떤 자그마한 오유나 훼방을 용허할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들은 조선혁명의 명맥을 끊으려고 달려들었던 저주롭고 타기할 무리들이였던것이다.

《지난 시기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은…》

격동적인 흥분으로 달아오른 장군님의 목소리는 고무줄처럼 팽팽히 헹기워진 방안의 공기를 헤가르며 힘차게 울려퍼졌다.

《반〈민생단〉투쟁을 극좌적으로 벌리면서 공산주의자들과 적암해분자들을 혼동하여 많은 애국자들을 박해함으로써 우리 혁명발전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적지 않은 반일대중을 혁명에서 리탈하게 하고 조중인민들간의 단결에 큰 지장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다홍왜회의와 요영구회의에서 조선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의 비맑스주의적이며 좌경맹동주의적인 립장과 견해를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함으로써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할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국제당에서도 반〈민생단〉투쟁의 극좌적이며 배타주의적인 오유를 비판하고 우리의 립장과 주장을 전폭적으로 지지찬동하였습니다. 또한 국제당에서는 우리가 내세운 일련의 로선상문제들 즉 조선사람은 무엇보다도 조선혁명을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는것, 조선인민혁명군은 압록강, 두만강연안으로 진출해야 한다는것과 같은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전적인 찬동을 표시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이 기회를 통하여 동무들에게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조선혁명에 전심전력하는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응당한 권리이며 숭고한 의무로 된다는것을 재삼 강조하는바입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 자리에서 뛰여일어나 《조선혁명승리 만세!》구호를 웨치며 얼싸안고 돌아갔다. 밖에서도 만세의 구호를 웨치고 환호를 올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늘땅을 진감시키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좀처럼 다음말씀을 이으실수 없었다. 사람들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 얼싸안고 부르짖는 그들의 격동된 목소리를 들으려니 자신께서도 자꾸 목메이시여 눈앞이 보이지 않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위증민이더러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위증민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가짐을 바로잡고 고개를 들었다. 그렇듯 불도가니마냥 타오르던 회의장안은 금시 물을 뿌린듯 고요해졌다.

장군님의 연설을 들으며 격동적인 흥분과 눈물겨운 회억에 북받쳐있던 사람들의 눈빛은 엄숙한 표정으로 굳어져있었다. 지나간 나날에 사무치는 추억들이 불현듯 떠올랐으며 그날에 당하였던 가지가지 모진 수난이 누구의 가슴에서나 머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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