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9 회)
제 1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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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전투와 행군속에 줄곧 이어졌던 1935년은 어느덧 지나가고 1936년이 다가왔다.
액목, 녕안, 돈화일대에서 활동하고있던 항일무장부대들은 장군님의 통일적인 지휘밑에 적에 대한 강력한 타격전을 벌려
이 지대의 《토벌》무력들을 산산이 짓부시고 쏘만 몽만국경에 집결된 관동군의 배후를 크게 위협하였다.
이리하여 일제는 파쑈군부두목의 한놈인 륙군상 하야시를 만주에 파견하는 소동까지 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액목현의 서남쪽에 자리잡고있는 타요자에서 국제공산당으로 갔던 위증민이 소자지하밀영으로 돌아와
장군님을 기다리고있다는 련락을 받으시였다.
그것은 1936년 2월초의 어느날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동만의 왕청, 훈춘일대와 목릉 림구지구에 나가있는 한흥권, 최춘국에게 소자지하밀영으로 돌아오라는
련락을 띄우고 멀리 남만에 나가 련대를 지휘하고있는 백선일에게도 통신원을 보내시였다.
장군님께서 타요지를 떠나 칠백리행군길을 다그쳐 소자지하밀영에 당도하신것은 2월중순경이였다.
2월이면 북만땅은 한창 눈오는 계절이다. 더구나 로야령에서 불어내리는 찬바람과 경박호에서 밀려드는 습기찬 대류가 부딪치는 소자지하밀영일대는
어디라없이 깊은 눈이 쌓여있었다.
밀영으로 들어가는 좁은 발구길은 사흘건너로 쏟아지는 눈때문에 미처 다져질 사이가 없었다.
장군님께서 밀영으로 들어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위증민은 급한김에 발구를 타고 떠났다가 눈에 길이 막혀 도중에 버려두고
김택근이와 함께 이십리가까운 길을 다그쳐나가 장군님을 맞이하였다.
지난해 동만땅에서 장군님과 헤여진 후로 꼭 여덟달만에 상봉하는 위증민이였다. 그는 이전에 동만땅에서 입고있었던
누런단추가 달린 회색외투대신에 안에 털을 받치고 겹으로 누벼지은 기다란 풀색외투를 입고 머리에는 채양이 짧고 운두가 높게 만든 검은 기병모자를
썼으며 다리에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있었다.
그리하여 장군님께서는 김택근이보다 한발 앞서 허둥지둥 달려오는 위증민을 첫눈에 알아보지 못하시였다.
《김일성동지, 안녕하십니까? 이게 진정 얼마만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위증민의 약간 거쉰듯한 목소리를 들으시고야 그의 얼굴을 알아보시였다.
《위증민동지. 먼길에 수고가 많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위증민이 내여미는 손을 힘주어 잡으시고 귀덮개가 너펄거리는 기병모자밑으로 유난히 파리하게 드러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모양이군요. 얼굴에 병색이 완연합니다.》
《김일성동지, 그러지 않아도 나는 김일성동지앞에
사과의 말을 하려던 참인데 병에 대한 걱정부터 해주시니 말하기가 좀 쉬워졌습니다. 동만에서 그처럼 복잡한 사태를 목격하고 떠나간 사람이 지금까지
종무소식이였으니 모두들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병때문에 모스크바에서 몇달간 치료를 하다나니 이 지경이 되였습니다.》
《괜찮습니다. 불가피한 일이 없이야 그럴리 있겠습니까? 이제라도 몸만 건강하면 됩니다.》
장군님께서는 부드러운 얼굴에 은근한 미소를 띠우시고 말씀하시였다.
위증민은 다시한번 사과의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모스크바에서 병원문밖을 나설 때도 미안한 생각을 가졌지만 원동국지부에 들려서는 한결 더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거기 동무들의 말을
들으니 한달이 멀다 하게 사람을 보내여 알아보군했다더군요.》
《글쎄요. 우리는 놈들과 싸움을 할래기 거기까지 머리를 돌릴 사이가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통신원을 보냈던가보지요?》
《예, 주로 숙반공작위원회에서 사람이 오군했답니다. 그러니 김일성동지와는 아무 련계가
없이 통신원을 보냈던게로군요.》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띠우신채 위증민의 등을 떠미시며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위증민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김일성동지, 이번에 진행된 국제공산당 제7차대회에서는 반파쑈인민전선을 결성할데 대한
문제가 토의되였습니다. 윤병도동무를 통해 대회의 소식을 들으셨겠지요?》
《윤병도동무를 통해서도 들었고 〈공산국제〉에 실린 대회의 보도도 읽었습니다. 지금 세계적규모에서 파쑈국가들이 련합을 지향하고있는 조건에서
각국의 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이 반파쑈인민전선을 결성하는것은 미룰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동방에서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의 반일공동투쟁과 반일부대들과의 련합전선운동은 국제반파쑈민주력량의 통일단결에 커다란 기여로 된다고 말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김일성동지.》
위증민은 대뜸 흥분하며 열기띤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이번에 국제공산당서기국에서는 국제당에서 반파쑈인민전선문제를 오늘에 와서 제기하고있는데 동방에서는 김일성동지에
의해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의 반일공동투쟁과 반일부대들과의 련합전선운동이 빛나는 해결을 보고있다고 일치한 견해를 표명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당기관지 〈공산국제〉에 조선인민의 항일무장투쟁을 소개한 글이 특집되였습니다. 그 잡지 한권을 내가 가지고 왔습니다.》
위증민은 외투주머니속에 말아넣어가지고온 잡지를 장군님께 드렸다.
잡지는 중문으로 인쇄된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잡지의 갈피를 번져보시고 뒤따르는 김택근에게 넘겨주시였다.
눈덮인 수림속에는 약한 바람이 일고있었다. 높은 나무의 상가지들에서 흩어져내린 눈가루가 은빛으로 반짝거리며 수림속의 공간을 부드럽게
에워싸고있었다.
위증민은 가죽장갑을 벗어 한쪽손에 말아쥐고 피로가 어린 눈두덩을 조용히 마싸지하고나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김일성동지, 내가 이번에 소자지하밀영에 도착하고보니 김일성동지께서
각지 항일무장부대들의 지휘관들을 불렀다더군요. 그 동무들에게 직접 내가 다홍왜회의와 요영구회의에서 제기되였던 문제들에 대한 국제공산당의 견해를
말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장군님께서는 자못 신중해지신 눈길로 위증민을 살펴보시였다.
《이번 국제공산당에서는 말입니다.》
위증민은 장군님과 함께 눈속으로 천천히 발을 내짚으며 조용조용 말을 이었다.
《동만땅의 전역에서 벌어진 반〈민생단〉투쟁의 극좌적이며 배타주의적인 오유를 비판하고 김일성동지의
립장과 주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습니다. 나는 국제공산당의 위임을 받고 김일성동지께
반〈민생단〉투쟁이 아주 잘못되였으며 조선혁명가들에 대한 배타주의자들의 박해가 극좌적인 오유를 산생하고 조중인민의 혁명적단결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는 국제공산당의 견해를 정식으로 전달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위증민이도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숨이 차오름을 그는 느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군님의 심중에서 터져오를
쓰라린 상념과 눈물겨운 추억이며 몸부림쳐지는 의분을 생각하였다. 얼마나 모진 고뇌와 동란을 겪으시고 오늘의 소식을 접하시는
김일성동지인가?
위증민은 어쩔수없이 지기의 마음속을 휘여잡고있는 련민의 정을 안고 장군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수림우에 펼쳐진 먼 하늘가 그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계시였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온화하며
그윽하게도 느껴지는 장군님의 눈빛을 일별하고난 위증민은 그렇게도 침착하고 부드러우신 표정에 자못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위증민동지, 이제는 모두 지나간 일입니다. 나는 국제공산당에서 반〈민생단〉투쟁문제를 놓고 우리의 견해와 다른 립장을 말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국제공산당의 결론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지도 않았지요. 국제공산주의운동은 지금까지 수십년간에 걸치는 자기의 투쟁력사에서
온갖 좌우경적기회주의자들과 반혁명의 공격을 상시적으로 받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요새를 굳건히 지켜냈으며 날마다 더욱더 강력한 혁명가들의
대오를 결속하고있습니다. 지구의 동반구에서 발생한 이 하나의 동란도 그것대로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태를 빚어내기는 하였지만 자기의 력사와 존엄을
안고 전진해온 우리 혁명을 소멸할수 없다는 신심이 언제나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소자지하밀영에서 무장투쟁을 국내와 국경지대로 확대하며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과 당창건준비를 계속해나갈 로선적인 문제를 제시하고는 지체없이 국경지대로 진출하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일성동지, 그러지 않아도 나는 김일성동지가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고 믿었습니다. 조선혁명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조선사람이며 조선혁명을 놓고 그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없다는 김일성동지의
견해를 나는 이미부터 알고있었던겁니다. 그런데 조선사람이 조선혁명을 해야 한다는 중요한 문제가 시급히 해결을 보아야 할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조선인민혁명군을 따로 편성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수 없는데 이것은 어떻게 풀어나가렵니까? 국제공산당에서는 만주에서 활동하는 조중항일무장부대를
조선인부대와 중국인부대로 갈라 편성하고 활동하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하고있습니다.》
《그래요?》
장군님께서는 그것만은 의외인듯 사못 어리둥절해하시였다.
위증민은 서글픈듯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조선사람들로 항일무장부대를 따로 조직하는 문제는 조선혁명가들의 눈물겨운 소원이 아니였습니까? 순수한 조선혁명군대를 가지고싶은 갈망은
만주땅에 살고있는 모든 조선사람들의 한결같은 심정일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그것만은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장군님의 말씀은 조용하였지만 그이의 눈가에는 힘이 넘치는 밝은 빛이 번뜩이시였다. 그 밝은
빛발은 감히 그 누구도 건드릴수 없는 당당한 조선사람의 권리이며 절절한 지향이기도 하다는것을 강력하게 표현하고있는듯싶었다.
위증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렇게 복잡하고 갈피를 잡을수 없는 문제로 얽히여 피의 동란을 빚어내기까지 하던 문제는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고마는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자 가슴속은 불시에 허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