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6 회)

제 11 장

2

(2)

 

장군님께서는 문가로 다가가는 한흥권을 불러세우시였다.

《나한테 보고할 문제가 이게 다요, 이밖에 다른걸 이야기할것은 없소?》

《저…》

한흥권은 약간 얼굴을 붉히고 머뭇거리면서 자꾸 창문밖을 내다보았다.

《진옥이 소식은 알아보지 못했소? 우리가 동만으로 나갈 때 주보중동지에게 진옥이일을 부탁하고 나갔는데 무슨 이야기는 없었소? 왜 거기 대해서는 이렇다저렇다 말이 없소.》

장군님, 사실은 저… 문밖에 진옥동무가 와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요?》

너무도 갑자기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렇게 불쑥 해버리는 한흥권의 말에 장군님께서는 깜짝 놀라시였다.

《진옥이가 와있다니 그게 사실이요?》

《예.》

《그런데는 어째서 이제야 그 말을 하는거요?》

그렇게 속을 태우고 마음속으로 많이 울기도 했던 그 한흥권이가 정작 진옥이를 찾아놓고는 이렇게 심드렁해지는것 같은 모양이 장군님께는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생각되시였다.

《참 한흥권이라는 사람이 답답하기도 하오. 진옥이가 어떻게 나타난 사람이게 그렇게 배포유한 대답을 하오. 어서 들어오라고 하오. 어서…》

장군님께서는 기다리지 못하시고 출입문을 향해 몇걸음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러더니 그만 벽을 짚고 서버리시였다. 한걸음도 발을 뗄수 없으시였다.

온몸으로부터는 맥이 빠지고 가슴속에는 기쁨인지 시름인지 알수 없는 목메이는 생각이 한가득 고이시였다.

《그새 진옥동무가 어떻게 살아있었는가? 어디서 누구의 구원을 받았다오? 어디서…》

장군님, 지난해 팔도하자에서 우리 동무들이 밤중에 빠져나가는 풍마차를 붙잡은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마차에 녕안의 독립운동자인 백송로와 그의 딸이 타고있었는데 주인은 딸을 상해의 친지에게 보내려고 마차를 달려가던중에 갈가에 쓰러져있는 진옥이를 발견하고 집에 데려다 그의 생명을 건져냈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백송로와 그의 딸이 유격대를 믿고 따를만큼 사상개변이 되여 딸은 진옥이를 따라 주보중유격부대로 가고 로인은 녕안지구의 독립운동자들을 묶어세우려고 녕안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진옥이와 함께 현경이라는 그 처녀가 장군님을 찾아왔습니다.》

《아, 일이 그렇게 되였댔구만. 동무의 말을 듣고는 진옥이 겪은 그 막대한 고생과 눈물겨운 사연들을 백분지 하나도 알수 없지만 상상으로는 그것을 짐작하고도 남겠소. 진옥이, 우리 진옥동무가 살아있을뿐아니라 유격대를 피해 밤도주를 한 민족주의자를 혁명의 길에 손잡아 내세웠단말이요. 어떤가 보오. 우리 사람들이 바로 이런 혁명가들이란말이요.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어디가나 이렇소!》

장군님께서는 문을 열어젖히시며 큰소리로 부르시였다.

《진옥동무, 진옥이 어디 있나?》

문밖에서 그리운 장군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들먹이고있던 진옥이가 장군님앞으로 뛰여오다가 무엇에 걸채여 엎어졌다. 장군님께시는 마주 달려나가 진옥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였다.

《진옥동무, 어디 보자구. 동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게 꿈인지 생신지 알수 없소. 이게 꿈이면 어떻게 하는가? 꿈이면…》

진옥이의 두손을 잡고계신 장군님의 몸은 흥분과 격정으로 하여 우드드 떨리시였다.

《어쩌면 진옥이가 그렇게 갈수가 있겠소? 진옥이때문에 타든 가슴속의 재를 긁어낸다면 지금도 까맣게 묻어날것 같소. 동무네 한쌍은 어쩌면 성미도 그렇게 어슷비슷하오. 진옥이 혼자몸으로 살아왔어도 내게는 이 세상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터인데 오랜 독립운동자인 백로인 부녀를 혁명의 길에 함께 손잡고왔으니 나는 원정부대의 이름으로 감사를 주어야 하겠소.》

《장군님!》

진옥이는 그처럼 그립고 꿈속에서도 잊지 뭇하던 장군님을 뵈웠으나 제대로 인사말 한마디 드리지 못하고 방울방울 눈물만 떨어뜨렸다. 아마 진옥이가 제대로 입을 벌리고 말을 하게 되자면 가슴속에 아득히 동을 쌓고 들어앉은 형언 못할 눈물의 호수를 강물로 흘려야 할것이였다. 그렇지 않고야 그가 어찌 생생한 정신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지난일을 더듬을수 있으랴.

장군님의 눈가에서도 이슬이 방울져 떨어지시였다. 한흥권은 그저 큰숨만 후후 내쉬면서 이쪽저쪽으로 향방없이 왔다갔다하였다.

《현경이가 어디 있소. 현경이… 우리 진옥동무를 구원했을뿐만아니라 혁명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한 현경이를 범상하게는 맞이하지 못할터인데…》

장군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진옥이의 뒤에서 손을 마주잡고 어쩔바를 몰라하던 현경이가 나는듯이 달려왔다.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유격대원 백현경 인사를 올립니다.》

현경은 장군님앞에 거수경례를 올리고 쟁쟁한 목소리로 인사를 드렸다.

키며 몸매며 얼굴의 생김새마저 어쩌면 진옥이와 그리도 흡사할가싶을 지경으로 아릿답고 똑똑해보이는 처녀의 밝은 모습은 장군님의 심정을 더더구나 기쁘게 하였다.

《벌써 이렇게도 의젓한 유격대원이 되였는가? 아버지는 녕안읍에 올라가 독립운동자들을 묶어세우는 혁명운동을 하고계신다지?》

장군님, 수십년세월을 뜻없이 방황하면서 늙어오신 우리 아버님이 이제야 밝은 태양을 본듯한 환희를 안고 장군님따라 혁명의 길에 나설 결심을 가지였습니다. 아버님은 상해에 있는 친지분들을 향해서도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에 큰 경륜을 남기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혁명을 령도하고계시니 모두 장군님따라 인생을 달리 살 각오들을 품고 이리로 오라는 편지를 날리고있습니다.》

《기쁘오. 아버님이 말년에라도 공산주의자들과 손잡고 조국광복의 대업을 이룩할 성전에 나섰다고하니.》

장군님께서는 진정 얼마나 기쁘신지 알수 없으시였다. 한쪽에는 지금껏 찾지 못해 그처럼 마음을 태우시던 진옥이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희망과 포부와 격동적인 환희를 안고 혁명의 길에 뛰여든 현경이가 있었다. 그들의 손을 량쪽에 갈라잡으시고 앞을 내다보시는 장군님의 안광은 흐리여 사람도 숲도 하늘도 모두 뿌연 안개속에 휘감긴것 같으시였다.

《거기 지나가는 동무가 누구요?》

장군님께서는 나무숲을 헤가르며 총총히 옮겨짚는 발자국소리를 들으시고 소리쳐 물으시였다.

《오성숙입니다.》

장군님의 물으심에 발걸음을 멈추고 대답을 올리는 오성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성숙동무란말이요, 정말 잘 왔소. 여기 누가 와있는지 보라구. 보이오? 누가 와있소? 응. 누가 와있나?》

장군님, 모르겠습니다. 모두 등을 돌리고있어서 알수 없습니다.》

《진옥이가 와있소. 진옥동무가 와있단말이요.》

《예, 누가 와있다구요, 장군님, 누구들이 와있습니까?》

《진옥동무가 와있다니까.… 강진옥동무가 돌아왔단말이요.》

《어마나!》

오성숙은 세발자국을 이어 내딛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였다. 오성숙이를 향해 달려가던 강진옥이도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다시금 못견디게 어깨를 떨었다.

장군님께서는 눈을 슴벅이시며 발길이 닿는대로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한흥권동무, 오늘이 며칠이요?》

장군님, 오늘이 바로 1935년 7월 21일입니다.》

《7월 21일… 지도를 펴놓고 이도하자와 삼도하자사이의 골짜기에 동그라미를 치고 오늘의 날자를 적어넣소.》

한흥권은 무어라고 대답을 올렸으면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물고 서있었다.

《왜놈의 큰 〈토벌대〉하나를 족쳤다 해도 이렇게는 기쁠수 없는거요. 주저말고 날자를 적어넣소. 이날은 우리모두가 소중히 기억하고 두고두고 회상해야 할거요. 차일진동무가 살아있다면 이런 날을 잊지 않고 다 적어두었을거요.》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