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6 회)
제 11 장
2
(2)
《나한테 보고할 문제가 이게 다요, 이밖에 다른걸 이야기할것은 없소?》
《저…》
한흥권은 약간 얼굴을 붉히고 머뭇거리면서 자꾸 창문밖을 내다보았다.
《진옥이 소식은 알아보지 못했소? 우리가 동만으로 나갈 때 주보중동지에게 진옥이일을 부탁하고 나갔는데 무슨 이야기는 없었소? 왜 거기 대해서는 이렇다저렇다 말이 없소.》
《
《뭐? 그게 무슨 소리요?》
너무도 갑자기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렇게 불쑥 해버리는 한흥권의 말에
《진옥이가 와있다니 그게 사실이요?》
《예.》
《그런데는 어째서 이제야 그 말을 하는거요?》
그렇게 속을 태우고 마음속으로 많이 울기도 했던 그 한흥권이가 정작 진옥이를 찾아놓고는 이렇게 심드렁해지는것 같은 모양이
《참 한흥권이라는 사람이 답답하기도 하오. 진옥이가 어떻게 나타난 사람이게 그렇게 배포유한 대답을 하오. 어서 들어오라고 하오. 어서…》
온몸으로부터는 맥이 빠지고 가슴속에는 기쁨인지 시름인지 알수 없는 목메이는 생각이 한가득 고이시였다.
《그새 진옥동무가 어떻게 살아있었는가? 어디서 누구의 구원을 받았다오? 어디서…》
《
《아, 일이 그렇게 되였댔구만. 동무의 말을 듣고는 진옥이 겪은 그 막대한 고생과 눈물겨운 사연들을 백분지 하나도 알수 없지만 상상으로는 그것을 짐작하고도 남겠소. 진옥이, 우리 진옥동무가 살아있을뿐아니라 유격대를 피해 밤도주를 한 민족주의자를 혁명의 길에 손잡아 내세웠단말이요. 어떤가 보오. 우리 사람들이 바로 이런 혁명가들이란말이요.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어디가나 이렇소!》
《진옥동무, 진옥이 어디 있나?》
문밖에서 그리운
《진옥동무, 어디 보자구. 동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게 꿈인지 생신지 알수 없소. 이게 꿈이면 어떻게 하는가? 꿈이면…》
진옥이의 두손을 잡고계신
《어쩌면 진옥이가 그렇게 갈수가 있겠소? 진옥이때문에 타든 가슴속의 재를 긁어낸다면 지금도 까맣게 묻어날것 같소. 동무네 한쌍은 어쩌면 성미도 그렇게 어슷비슷하오. 진옥이 혼자몸으로 살아왔어도 내게는 이 세상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터인데 오랜 독립운동자인 백로인 부녀를 혁명의 길에 함께 손잡고왔으니 나는 원정부대의 이름으로 감사를 주어야 하겠소.》
《장군님!》
진옥이는 그처럼 그립고 꿈속에서도 잊지 뭇하던
《현경이가 어디 있소. 현경이… 우리 진옥동무를 구원했을뿐만아니라 혁명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한 현경이를 범상하게는 맞이하지 못할터인데…》
《
현경은
키며 몸매며 얼굴의 생김새마저 어쩌면 진옥이와 그리도 흡사할가싶을 지경으로 아릿답고 똑똑해보이는 처녀의 밝은 모습은
《벌써 이렇게도 의젓한 유격대원이 되였는가? 아버지는 녕안읍에 올라가 독립운동자들을 묶어세우는 혁명운동을 하고계신다지?》
《
《기쁘오.
《거기 지나가는 동무가 누구요?》
《오성숙입니다.》
《오성숙동무란말이요, 정말 잘 왔소. 여기 누가 와있는지 보라구. 보이오? 누가 와있소? 응. 누가 와있나?》
《
《진옥이가 와있소. 진옥동무가 와있단말이요.》
《예, 누가 와있다구요,
《진옥동무가 와있다니까.… 강진옥동무가 돌아왔단말이요.》
《어마나!》
오성숙은 세발자국을 이어 내딛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였다. 오성숙이를 향해 달려가던 강진옥이도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다시금 못견디게 어깨를 떨었다.
《한흥권동무, 오늘이 며칠이요?》
《
《7월 21일… 지도를 펴놓고 이도하자와 삼도하자사이의 골짜기에 동그라미를 치고 오늘의 날자를 적어넣소.》
한흥권은 무어라고 대답을 올렸으면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물고 서있었다.
《왜놈의 큰 〈토벌대〉하나를 족쳤다 해도 이렇게는 기쁠수 없는거요. 주저말고 날자를 적어넣소. 이날은 우리모두가 소중히 기억하고 두고두고 회상해야 할거요. 차일진동무가 살아있다면 이런 날을 잊지 않고 다 적어두었을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