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 회)

제 1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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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력사적사변으로 진동하고있었던 요영구땅에는 전란의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닥쳐왔다. 례년에 없이 쏟아져내리는 눈석임물을 기슭이 넘쳐나도록 번창하게 싣고 밤이나 낮이나 쉼없이 흘러내린 가야하는 장마전야의 한창 가물철인 지금에도 강바닥의 징검돌을 뛰여넘으며 사품쳐흘렀다.

그토록 지난 겨울은 무섭게 쏟아져내린 눈이 산야를 두텁게 뒤덮고있었으며 땅속깊이 스며든 물이 마를줄 모르고 가야하기슭을 넘쳐나게 만들었다.

그 무서운 혹한과 강설의 계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며 싸웠던가?

한생을 살아도 겪지 못할 사변들을 사람들은 한해 겨울에 겪었다. 희생은 얼마였고 슬픔은 얼마였던가? 사람들의 눈에서 쏟아진 눈물, 그들의 가슴에서 흐르던 피, 그 모두를 합치고 쏟뜨린다면 가야하에 넘쳐나는 물보다도 많으리라.

그러나 사람들은 죽지 않고 혁명은 주저앉지 않았으며 닥쳐올 록음의 계절과 같이 모든것이 푸르렀다.

지난해 《9청데》기념행사를 벌렸던 부락앞의 공지에 두번째로 북만으로 진군하는 원정대오가 정렬해있었다. 1차북만원정때보다 늘어난 대오였다. 그새 엄청난 시련이 있었고 가슴아픈 상실도 많았으나 심각한 교훈으로 강해지고 혁명적지향으로 뜨거워진 대오였다.

원정부대는 왕청지구에서 뽑힌 6개중대가 주력을 이루고 여기에 청년의용군중대, 훈춘지구의 2개중대 그리고 독립대대의 일부가 포함되여있었다.

김택근소대장이 지휘하는 왕청 2중대에는 오성숙, 송혜정이 들어가 있었고 차일진이와 가까이 지내던 출판소의 리한상은 3중대에, 혜정의 동생인 혜옥은 청년의용군중대에 속하였다.

이들 한사람한사람의 운명을 놓고 말할 때 그들은 모두가 수난에 찬 가시덤불길을 걸어 혁명대오에 들어섰으며 역시 간고한 그 길우에서 혁명과 인생을 배우고 세상을 넓게 내다보면서 력사의 이 지점에 이르렀다.

지나간 나날의 고생은 이루 헤아릴수 없었다. 송혜정이 치른 곡경에 대해서는 간단하게는 이야기 못할것이다.

한 인간의 신상에, 너무도 애젊은 꽃나이 처녀에게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는 이렇듯 모진 수난의 소낙비가 쏟아질수 있을가? 혜정은 이따금 자기의 가슴속에서 가야하의 물소리보다 더 높이 울리며 흘러가는 메아리를 듣는다. 처녀의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추억은 결코 조용한 음향이 아니였다.

그것은 폭풍같은 메아리, 천길나락으로 굴러내리는 폭포수의 장엄한 진동이였다.

혜정은 그야말로 보슬비가 아니라 대줄기같은 소낙비를 들쓰며 살았고 멀리서 울리는 우뢰소리가 아니라 머리우에서 쪼각이 나딩구는 천둥번개를 맞으며 살았다.

자기가 한달 남짓한 기간 병상에 누워있는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은 홀로 적구에서 찬바람 찬눈을 맞아가며 간고한 싸움의 길을 가고 또 갔다.

얼마나 멀고 얼마나 힘든 길이였으랴.

아무리 힘든 고생도 동무가 있으면 나은법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동무가 없었다. 원쑤들이 그에게서 동지들을 뺏아간것이다.

혜정이, 자기가 그 일을 알았던들 지팽이를 짚고 따라서서라도 동무해주었을것을…

그는 적구에서 제손으로 때식을 끓여먹을줄도 몰랐고 제손으로 불을 피워 언몸을 녹일 생각도 못했으며 배가 고프면 허리띠를 조이고 지치면 정신이 들 때까지 눈우에 그대로 쓰러져있어야 하는 그리고 그것이 곧 휴식으로 되였던 무서운 싸움의 길을 걸어갔다.

혜정은 때없이 그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없이 사랑하는 사람의 그 모습을 그려본다. 그러면 하염없는 눈물이 두볼을 타고 주르르 소리없이 쏟아져내린다. 소리를 내여 흐느끼던 그 아픔의 시절도 멀리 지나갔다. 이제는 소리없이 마음속으로 울어야 하고 소리없이 눈물을 떨어뜨려야 하는 그런 시절이 찾아온것 같았다.

혜정은 십년은 더 나이든 녀성같이 되여버렸다. 그의 눈매를 보면 분명히 남편과 아이들을 가진 어머니였다.

고생을 알고 수난을 알고 번민이며 우울이며 슬픔까지 죄다 알고 죄다 참을줄 알며 그래야 할 의무조차 속속들이 알고있는 어머니의 그 눈이 혜정에게 있었다.

누가 사람에게서 죽은 정이 하루에 천리를 물러간다 하였는가?

혜정에게는 예전에 천리밖의 일처럼 생각하고 뿌옇게 느껴지던 일까지도 그것이 리유천이와 관계되는 일이라면 날마다 마음속 가까이로 달음쳐오는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미처 가시여지지 못한 사랑일가? 아니, 영원히 가시여질수 없는 사랑일것이였다.

혜정은 이따금 리유천이를 생각하듯이 그렇게 간절히 정처없이 떠나버린 호검로인을 생각하였다.

세상에 그처럼 친근하고 정이 쏠리는 미더운 부모가 있을수 있었던가?

식량운반대가 낟알을 싣고 돌아오면 작은 잔치라도 치르고 혜정이를 집에 데려가겠노라 그처럼 초조하게 설레던 로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백하일 그놈을 혜정의 손으로 죽이기를 얼마나 잘한 일이였는가? 강시중의 행처는 지금까지 알수가 없었다. 주소를 알수 없는 곳에서 장군님께 속죄의 편지를 보내왔다는 사실이 유격구마을에 알려져있을뿐이였다.

력사의 퇴적들은 그렇게 가버리는 법이다. 아무리 버티고 날치여도 끝내는 가버리고마는 그들의 단말마적 몸부림이였어도 자기들 혼자로는 가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자아내고야 드디여 성스러운 이 땅에서 떠나간것이다. 이리하여 이것은 돌이킬수 없는 피의 수난으로, 가슴아픈 력사의 교훈으로 사람들의 의식에 뿌리박혔으며 먼 후날에도 자주자주 이날을 돌이키지 않을수 없는 사무치는 이야기를 누구의 가슴에나 남겼던것이다.

이제 원정부대가 다시 녕안땅에 이르면 강진옥의 소식을 다시 들을수도 있지 않을가? 혹시 그러한 기적이 원정부대를 기다리고있지나 않는지?…

한흥권의 가슴속에서 쉽사리 스러지지 않고 은근히 머리를 쳐드는 그 희망은 그대로 장군님의 마음속에 등불인양 살아있었다. 부락사람들은 공지가 미여지게 밀려나와 원정부대를 바래우고있었다. 부대의 출발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근거지인민들을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눈가에는 말 못할 깊은 정회가 어려있었다.

이제 근거지인민들과 헤여져 북만으로 가시게 된다는 석별의 정때문만은 아니다. 지나온 나날의 가지가지 눈물겨운 회억때문만도 아니였다.

이제 유격대가 떠나면 근거지인민들은 이 정다운 혁명의 품을 떠나 적구로 내려가야 하는것이다. 얼마나 정들이고 삶의 울장을 깊이 박았던 피로 걸군 이 땅에서 떠나가야 하는것인가? 이 땅을 바라고 간도의 수천리밖에서,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조국땅에서도 찾아왔던 인민들이 아닌가? 이곳에서 아들을 묻고 혹은 딸을 묻고 남편과 안해를 잃으며 근거지를 지키고 혁명을 도와나선 의로운 인민들…

그들과 헤여져야 하시는 장군님의 심정은 이를데없이 고통스러우시였다. 그러나 조성된 정세는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여 혁명을 줄기차게 앙양시켜나갈것을 요구하고있는것이다.

인민들은 장군님의 이 뜻을 조국광복을 앞당기는 대업으로 생각하고 열렬히 지지해나섰다. 어찌 그 길에 동요가 없고 주저가 없고 난관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인민들은 장군님의 뜻을 지지하였으며 자기들앞에 부닥칠 생활상의 난관이나 고생을 미래에 대한 승리의 확신으로 바꿔나갈 결심들을 하였다.

이리하여 장군님께서는 오늘 두번째로 북만땅으로 가신다. 북만땅을 지나서는 백두산지구로, 조국으로 나갈것이다.

오늘은 1935년 6월 하순의 맑게 개인 여름날이였다. 떠나는 유격대와 바래우는 인민들사이에 눈물겨운 석별이 끝나자 장군님께서는 다시한번 군중속을 더듬으시였다.

반드시 이자리에 있어야 할 호검로인이 오늘까지도 나타나지 않은것이였다.

정말 이제 어디 가면 그처럼 혁명에 열성인 호검로인을 다시한번 만나볼수 있을가?

근거지부락을 떠나는 이 시각까지 로인을 기다리며 아침저녁으로 아궁에 빈불만 때시던 장군님이시였다.

이제는 그 아궁에 빈불이라도 지펴줄 사람이 누가 있을것인가?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눈을 슴벅이시며 부대의 옆으로 따라걸으시였다.

인민들은 와- 하고 원정부대를 따라나갔다. 송혜정의 어머니는 다 큰 맏딸에 대한 걱정보다 아직 철이 덜든 막내딸 혜옥이 걱정으로 가슴이 탔다.

《이애, 장군님께 너무 걱정일랑 끼치지 말아라. 어른싸게 처신하거라!》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은 인민들의 환호성속에 삼켜버리고말았다. 혜옥은 어머니의 당부를 듣지 못하였다. 혜옥이같이 어린 대원들이 원정부대에는 수두룩하였다. 그러나 념려마시라. 언젠가 위중민이 생각하듯이 장군님께는 준비된 병사가 따로 없는것이다. 평범한 인민이 곧 장군님에게는 병사로 되는것이다.

《원정부대여, 장군님 모시고 부디 잘 가시라. 장군님 모시고 어서 조국으로 와다오. 인민은 어디서나 장군님을 기다리며 꿋꿋이 살아갈것이다!》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이 사무친 호소는 그대로 만세와 환호로 변하여 유격구의 산발을 오래오래 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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