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3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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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군님께서는 솟구쳐오르는 오열을 씹어삼키며 넋을 잃으신듯 숨을 거둔 사랑하는 전사의 모습을 끝없이 내려다보고계시였다.

가슴우에서 흘러떨어진 두손은 마른 잔디우에 조용히 내던져져있었다. 한쪽 손에는 장갑이 벗겨져있고 다른쪽 손엔 절반쯤 걸쳐져있는 장갑이 손바닥밑에 구겨져있었다. 천교령전투에서 부상당한 팔에는 발이 굵은 아마천붕대가 감겨져있었다. 상처부위로부터 부동하기 시작한 팔이 어깨근방에 이르러서는 옷이 찢어질 지경으로 퉁퉁 부어있었다.

(얼마나 저려났을것인가?…)

장군님께서는 상처의 아픔을 누르고 다홍왜로 숨차게 달려왔을 리유천을 생각하시였다. 이제는 상처의 아픔을 느낄수가 없다. 모든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였다. 한 인간이 고민하고 슬퍼하고 아픔에 시달리던 그 모든것은 이미 추억으로만 존재하였다. 눈앞에 고요히 누워있는 이 젊은이는 벌써 과거의 리유천이였다. 장군님께서 내여주신 군복을 입고 군모를 쓰고 발에도 새 지하족을 신고 하얀 행전까지 두른 이 젊은 유격대원은 이미 과거의 리유천이였다. 장군님앞에는 모든것이 시신으로 굳어졌고 지난날의 환영으로만 존재하는 사랑하는 전사가 누워있을뿐이였다.

《리유천동무, 아, 유천이!…》

장군님께서는 무릎을 꿇으신채 두손에 잔디를 움켜잡으시고 오열을 터치시였다.

바람이 우수수 불어오자 머리우에서 마른 솔잎들과 눈가루들이 흘러떨어졌다.

반드시 죽지 말아야 할 그런 인간이 숨을 거둔것이였다.

그가 다홍왜의 소식이라도 알고 갔다면?… 아, 그렇게만 했어도 장군님의 가슴속에 쌓이는 억울함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졌을지도 모른다.

장군님께서는 검은 너구리털모자가 조금 벗겨져 차돌같이 하얀 이마가 유난히도 뚜렷한 리유천의 얼굴을 보고 또 보시였다. 이제는 리유천의 일로 걱정하고 괴로와하며 잠못 이루실 일이 다시는 없을것이다. 너무나 많은 부담이 장군님으로부터 떠나갔다.

장군님께서는 부락에서 사라진 리유천을 기다리며 잠못 이루시고 애타하시던 그런 밤이 더는 없을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그러자 그 밤들이 무척 사무치게 그리우시였다. 지나간 고생은 너무나도 큰 행복이였다. 아, 유천이!… 소리없는 눈물이 옷자락을 적시며 떨어져내리였다.

한흥권은 흑흑 눈물을 삼키며 모닥불을 피웠다. 장군님께서 쉬이 일어나실 형편이 아니였다.

위증민은 길게 주둥이를 드리우고 서있는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장군님을 위로해드리고 그이의 슬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기에는 그의 가슴속을 흐르는 생각이 너무도 심각하였다.

한 전사의 희생을 두고 이렇게 목메이는 슬픔에 잠기는 장군님이 그에게는 너무도 뜻밖이였던것이다. 이미 숨을 거둔 전사는 유격대의 큰 지휘관도 아니고 명성을 떨친 비범한 혁명가도 아니며 유격구마을에서 흔히 보는 보통 유격대원이였다.

평범한 한 유격대원의 보통죽음이 김일성동지께 저렇듯 비통한 슬픔을 자아내고있을진대 혁명의 피어린 길우에 걸음걸음 쓰러진 전우들이 모두가 저렇듯 장군의 가슴을 허비고 눈물을 자아내며 갔을것이 아닌가?…

그러자 위증민에게는 장군님께서 열여섯명의 대원만을 데리시고 로야령을 넘어 유격구로 돌아오신 류례없이 간고했던 피어린 북만원정의 길도 장군님의 눈물로 이어졌을것 같은 느낌과 그 눈물에 얼어서도 젊으신 장군의 안색에 푸름푸름한 고난의 자국들이 나타나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에 대한 이렇듯 커다란 사랑을 지니고계시는 장군님을 리해하고 보면 반《민생단》투쟁의 좌경적후과로 하여 빚어진 근거지의 참사는 얼마나 그이의 가슴을 아프게 허볐을것이며 수만사람들의 운명을 한몸에 안으시고 다홍왜회의 연단에 나서신 그이의 심정은 또 얼마나 아프고 처절했을것인가?

지금에 와서 보면 위증민은 한몸에 들씌워지는 신변의 위험도 마다하시고 불사의 넋이 되여 용감히 싸우신 김일성동지의 그 무서운 돌진력과 혁명의 원칙성에는 이렇듯 뜨거운 인간애의 무서운 힘이 고임돌로 받쳐져있었다는 생각이 놀랍게 안겨오는것이였다.

위증민은 이제 앞으로 김일성동지를 회상하게 되면 한 병사의 죽음앞에서 이토록 목메여 흐느끼는 장군을 회상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위증민은 이미전에도 김일성동지의 명성을 들어 알고있었고 동만땅에 내려와서는 장군님과 가깝게 면대해보고 존경과 공경심을 품었으나 그이의 진실한 참모습은 오늘에야 똑똑히 새겨보는것 같았다.

(이러한 장군에게는 총멘 병사가 따로 없는것이다. 평범한 보통사람도 곧 병사로 되는것이다!)

위증민은 이제 두번째로 북만땅을 거쳐 조국으로 진군하시는 김일성동지의 두리에 얼마나 많은 혁명가들이 생겨나 리유천이 그이를 호위하듯이 장군을 호위할것인가를 생각하였으며 지금은 비록 일제의 군화밑에 짓밟혀있는 조선이건만 머지 않은 앞날에 장군의 손에서 광복의 새아침을 맞게 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벌써 날은 어두웠다. 장군님께서는 닥쳐온 산중의 어둠도 감촉하지 못하신듯 두무릎을 박고 주저앉으신 그 모양으로 사랑하는 전사의 이름만을 외우시며 꺼질듯한 슬픔속에 잠겨계시였다.

모닥불은 소리없이 타고있었다. 목메여 흐느끼시는 장군님의 그림자가 맞은편 산악을 덮고있었다. 세상은 장군님의 슬픔으로 캄캄히 어두워진듯하였다.

력사적인 다홍왜회의가 있은 뒤 약 스무날이 지나 요영구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는 장군님께서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여기서는 다홍왜회의이후의 반《민생단》투쟁정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 투쟁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에 기초하여 앞으로 반《민생단》투쟁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을 다시금 밝히시였다. 회의는 여러날에 걸쳐 진행되였다.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은 다홍왜회의에서 한풀 꺾이긴 하였으나 요영구에서도 자기들의 야심을 숨김없이 드러내였다.

그러나 장군님의 사리정연한 론리와 철의 의지앞에 견뎌배길수가 없었다.

결국 반《민생단》투쟁을 혼란에로 이끌어감으로써 혁명력량의 통일과 단결을 약화시키며 유격구해산을 반대하고 《근거지사수》를 주장하여 조선혁명발전을 가로막으려는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에게 결정적타격으로 되였다.

출판소의 리한상과 아동국장 박현숙은 다홍왜회의가 끝나고 백하일이 처단되자 지체없이 감옥에서 풀려나왔으나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요영구회의가 끝나서야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여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장군님께서는 회의에서 론의된 문제들을 국제당에 통보하기 위하여 요영구에서 정치사업을 하고있던 윤병도를 국제당에 파견하시였다. 그와 함께 위증민이도 동만의 복잡한 사태를 국제당에 알리고 결론을 받아야 하겠다는 결심으로 국제당으로 떠났다.

복잡한 론의들이 끝나고 국제당으로 사람들도 떠나갔으나 결코 이것으로 모든것이 예전대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반《민생단》투쟁의 혼란속에서 어혈이 들고 버성겨진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의 지향속에 묶어세우며 예전과 같은 충천하는 혁명적기세를 북돋울수 있을것인가? 이것은 그대로 장군님의 마음속에 쉽사리 가실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있었다.

이날 유격대원들이 훈련도 하고 운동경기도 하는 부락앞의 공지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밀려들었다.

연단도 연탁도 없는 야외의 공지에서 다만 군중들을 한눈으로 굽어볼수 있는 나무동가리에 올라서시여 장군님께서는 눈물겹고도 고무적인 짤막한 연설을 하시였다.

《동지들, 많은 혁명가들이 우리곁을 떠나갔습니다. 력사가 있고 추억을 간직한 그런 동지들, 남달리 혁명에 공헌한 그런 동지들이 떠나간것입니다. 미칠하고 쓸모있게 자라난 산판의 나무들이 벌목부의 도끼날을 먼저 받듯이 혁명의 바람받이에서 시련의 눈비를 들쓰던 사람들이 굽이쳐온 세월의 동란도 남먼저 겪었습니다. 이 몇해동안 유격대를 압살하려는 적의 미친듯한 〈토벌〉공세를 겪으면서도 이같은 상실이 없었습니다. 천신만고로 쌓아올린 혁명의 큰 집이 사방에서 지붕을 헐리우고 서까래를 뽑히우고 산자를 뜯기우고있는것입니다.》

군중속에서는 조용히 흐느낌소리가 일어났다. 유격대원들도 모두가 눈물을 머금고 장군님을 우러르고있었다. 장군님의 눈시울도 사뭇 붉어지시였다.

《그러나 수난은 결코 이 요영구땅에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소왕청, 왕우구, 삼도만, 다홍왜, 진창 유격구역들에서도 피의 수난을 피할길이 없었습니다. 언제면 혁명의 상실로 뒤범벅이 된 이 동란이 물러가고 랑만에 넘치는 생활이 회복될것인가? 그날을 앞당겨올 혁명의 원동력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혁명동지들에 대한 굳센 믿음에서 찾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거인도 헤쳐내지 못한 준엄한 시련속을 뚫고가고있습니다. 그러니 겪어온 시련보다 더 준엄하고 힘겨운 동란이 얼마든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마음의 기둥으로 간직하고 일어서야 할것은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이며 동지들에 대한 굳센 믿음입니다.

믿음, 이 억세인 믿음밖에는 우리에게 다른 수단이 없습니다. 혁명동지들에 대한 믿음을 초석으로 하여 우리 혁명이 시작되고 그 믿음을 자양분으로 하여 우리 혁명이 키돋움을 했으며 그 믿음을 시금석으로 하여 혁명의 난국도 헤쳐나갈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목소리가 갈리시여 그이상 말씀을 잇대이지 못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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