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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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홍왜에서 동남쪽으로 이십여리 떨어진 가야하의 작은 물줄기를 따라 장군님께서 위증민이와 함께 천천히 걸어오고계시였다. 장군님의 너덧발자국뒤에는 말고삐들을 잡은 최춘국이와 조왈남이 따라오고있었다.

때는 력사적인 다홍왜회의가 막을 내린 다음날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요영구로 돌아오고계시였다. 떠날 때는 여러 사람이 동행하였으나 오실 때는 위증민이와 단출히 길을 걷게 되시였다.

나머지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저마끔 호위병들을 달고 떠나가버렸다. 떠났다기보다 실은 도주자의 꼴이 되고만것이다. 회의에서 유난히 피대를 돋구며 장군님께 도전해나섰던 순시원 종치훈은 동만땅을 돌아다니느라 동상을 입은 발을 치료하겠다고 다홍왜에 떨어졌다. 반《민생단》투쟁의 미친바람이 일단 숨을 거두게 된 이상 그의 순시라는것도 할 일을 다하고만것이다.

2월 24일부터 3월 3일에 걸쳐 진행된 다홍왜회의는 판가리 론전을 벌렸던 피비린 전투였다. 소위 리론가로, 실천가로 명망이 있던 그들의 모든 지혜, 모든 지식, 모든 열정과 전술이 다 발휘되였다. 회의는 실로 놀라운 높이의 차원에서 백열전을 이루고 지혜와 견문, 리론과 실천, 원칙과 의지, 견인성과 불굴성 그리고 인간의 품격과 수양정도까지를 죄다 발가놓고 해부한 사생결단의 판가리였다.

여기서는 극단의 경우에 론전의 승패만이 아니라 주장자의 운명까지도 위협을 당할수 있는 팽배된 공기가 통나무의자를 빼곡이 들여다놓은 좁은 귀틀집방안을 납덩이처럼 짓누르고있었다.

불행에 처한 사람들의 난감한 운명까지를 짊어지시고 혁명의 원칙을 고수하고 납득시켜나가야 하는 장군님에게는 신변의 위험이 언제나 가까이 도사리고있었다.

그러나 결국 장군님의 완전무결한 승리로 회의는 막을 내리였다. 회의의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객관적인 립장을 지켜 발언도 적게 하고 자신의 의향이나 감정도 될수록이면 깊이 묻어두면서 자연스레 로출되는 회의의 결과를 지켜보려고 애썼던 위증민은 장군님의 주장으로 승리한 이 마당에서 서글프고 미안한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깊이 얼어붙은 가야하의 얼음장밑에서는 그래도 물흐르는 소리가 조잘조잘 울려났다. 오늘은 별로 따스하고 잠풍한 날이다. 이런 날에는 아낙네들이 얼음을 까고 둘러앉아 빨래방치를 두드리며 세상의 희한한 소식들을 주고받기에 알맞춤한것이다. 이제 머지 않아 다홍왜회의의 소식도 입살이 센 이 북방땅 아낙네들의 입에서 경탄과 조소를 불러일으키면서 째지는듯 한 웃음소리와 함께 세상에 울려갈것이다.

위증민은 다시한번 미안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어찌하여 동만땅의 이름있는 혁명간부들이 김일성동지의 론리와 결단성앞에 산산이 부서져나갈 주장과 리론을 휘두르며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압박하고 짓눌렀는가?

이 동만땅의 산야에 아깝게 뿌려진 혁명가들의 피의 대가를 어떠한 대가로 치를수 있으며 어떠한 처벌로 그 과오를 평정할수가 있겠는가? 엄청난 상실은 엄청난 상실 그대로 력사에 기록될것이며 다시 반복되여서는 안될 이 비사는 공산주의운동력사에 엄정한 교훈으로 남아있을것이라고 김일성동지는 론단하시였다. 그 순간의 김일성동지의 눈에는 번뜩이는 눈물조차 어리여있었지. 그것은 한 민족의 지도자가 겪고있는 울분인동시에 진정한 공산주의자로서 통감하는 슬픔이였다. 그러나 이 거대한 심장의 소유자인 혁명가는 조중인민의 영원한 단결을 위해서 함께 손잡고 싸울것을 회의의 선언처럼 높이 웨치시지 않았던가?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게 틔여있었다. 저렇게 높고 깨끗한 하늘만을 본다면 문득 가을하늘이라고 착각할수도 있을것이다.

위증민은 햇솜같이 부드럽게 땅우에 깔린 눈을 등어리에 깔고 누워보고싶었다. 하다못해 이 눈우에 외투를 깔고 다리쉼이라도 하면 어떨가? 그는 회의를 치르느라 어지간히 지치기도 했었다. 독한 담배연기는 얼마나 들여마셨는가?

장군님께서는 가야하기슭에서 북쪽으로 아지를 친 조그마한 개울을 따라 묵은 갈들이 우거진 등판으로 들어가시였다. 여기는 북하마탕마을의 남쪽이다. 가야하를 따라 그냥 나가면 적의 《토벌대》가 있는 쌍하진이 나지는것이다. 쌍하진과 북하마탕사이의 산과 등판을 지나고 가야하를 건너 묘령을 넘으면 요영구땅이 나진다.

묘령에서 천교령(삼차구)은 멀지 않다. 천교령전투에 나간 동무들은 어찌 되였을가?

장군님께서는 여느때없이 전투의 소식이 기다려지고 대원들이 그리워지시였다.

많은 사람들이 《민생단》의 허물을 쓰고 전투에 나가지 않았는가? 그러니 자기 한몸의 위험도 돌보지 않고 불비속을 헤쳐나갔을것이다. 누구보다 다홍왜소식을 안타까이 기다리고있을 그 동무들이 모두 무사해야 할텐데…

설렁이는 갈밭속으로 들어서자 말들은 불안하게 투레질을 하였다. 바람없는 잠풍한 날씨인대도 갈밭은 굼실굼실 설레이고있었다.

위증민은 시장기도 느끼고 좀 지치기도 하였으므로 다홍왜에서 꾸려가지고 온 주먹밥으로 요기를 하면서 다리쉼이라도 하고싶었다.

김일성동지, 여기서 좀 쉬여가면 어떻겠습니까?》

《글쎄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마음놓고 쉴곳이 못됩니다. 주변은 산이 좁은 등판에 맞다들렸는데 이런곳에서 적들과 조우하면 쉽게 몸을 감추기가 어렵겠습니다.》

다시금 뒤따르던 말들이 투레질을 하였다. 전령병은 말의 주둥이를 어루만지며 귀밑을 다독이고있었으나 예민한 짐승은 무엇에 불안을 느꼈는지 발로 언땅을 찍어당겼다.

위증민은 주의를 두리번거렸다. 우거진 갈숲은 천고의 정적을 품은듯 바람에 굼실거리는 설레임소리만을 조용히 울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몇걸음 앞장서시여 무릎까지 빠지는 생눈을 헤치고 나가시였다. 여기는 쌍하진과 백초구, 천교령의 적들이 무시로 싸다니는곳이다. 동서로 한마장가량 누워있는 등판을 지나면 가야하의 서쪽 산줄기들을 타고 수림속으로 몸을 감출수 있다.

한동안 모두 조심스레 갈밭을 헤치고 나갔다. 인적기라고는 어디서나 느껴볼수가 없었다. 말들도 진정하고 뚜걱뚜걱 발통소리만을 가락맞게 울리고있었다. 갈밭이 조금 성글어지는 저쪽기슭에 이삭을 잘라간 조짚낟가리들이 있고 그앞으로 발구길이 패여있었다.

일행은 갈밭을 나와 산속으로 구부러져들어간 발구길에 접어들었다. 그 순간 아주 가까이에서 땅 하는 총소리가 울리더니 뒤이어 세찬 총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놀란 말들은 앞발을 쳐들고 고패미를 치다가 그중의 한필이 앞다리를 깔고 눈속에 쓰러졌다.

장군님께서는 싸창을 뽑아드시고 발구길너머 언덕저편의 갈밭속에 엎드려있는 적들을 향해 대응사격을 하시였다. 위증민이와 최춘국은 장군님과 조금 떨어진 발구길에 엎드려 총을 쏘고 조왈남은 쓰러진 말의 옆에서 맞총질을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매우 불리한 장소에서 적과 맞다들었다는것을 인차 간파하시였다. 적은 머리수도 많고 기관총까지 가지고있었으므로 쉽사리 포위환을 좁혀 다가올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쪽은 인원도 적고 밋밋한 등판에서 몸을 감출곳도 없었다.

장군님께시는 최춘국이더러 위증민동지를 조짚낟가리뒤로 은페시키고 그의 신변을 지켜주라고 명령하시였다. 최춘국은 위증민을 데리고 배밀이로 눈속을 기여갔다.

이쪽에서 사격이 뜸해지자 적들은 한결 더 기세를 돋구고 무어라고 고래고래 웨쳐대면서 한놈두놈 언덕너머에서 뛰여나왔다.

장군님께서는 이대로 얼마동안 맞총질을 하고나면 총알이 떨어져 한결 더 난사를 겪게 될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적의 한쪽 옆구리를 들이쳐서 돌파구를 낼것을 결심하시고 최춘국이더러 자신께서 적의 사격을 유인하면 지체말고 위증민동지와 함께 산으로 오르라고 명령하시였다.

최춘국이 만유할 사이도 없이 장군님께서는 눈속을 달려가시며 적의 사격을 유인하시였다.

장군님의 주위에서는 우박치듯 날아오는 적탄이 눈을 팍팍 뒤집어놓았다.

참으로 위기일발의 이 순간 김택근의 통보를 받고 급히 달려온 한흥권중대장과 리유천이 적의 배후를 들이치기 시작하였다. 혼비백산한 적들은 유격대 다른 부대가 뒤에서 나타난줄 알고 사방으로 내뛰기 시작하였다. 몇십명 잘되는 놈들이였다. 전투는 혼전속에 들어갔다.

리유천은 그 혼전속에서도 장군님께로 쏠리는 적탄을 자기에게 유인하려고 눈우로 전신을 드러내고 달려갔다.

장군님,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적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한쪽팔에 총상을 입은 리유천이건만 눈우로 펄펄 몸을 날리면서 적을 향해 육박해 들어갔다. 그의 발밑에서 적의 기관총수가 쓰러졌다. 리유천은 적의 기관총을 빼앗아들고 도망치는 놈들을 쏴눕혔다. 그것은 실로 눈깜박할사이에 벌어진 일이였다.

어디서 이러한 용맹과 재빠른 돌진력이 생겨난것인가? 죽음을 무릅쓰고 뛰여든 그에게는 실로 천변만화의 기회가 생긴것이다. 그는 기관총을 받들어들고 장군님의 주위에 몰려든 적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적들속에서 날아온 총알이 리유천의 복부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의 손에서 맥없이 기관총이 떨어졌다.

《리유천동무, 어찌된 일인가?》

한흥권중대장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리유천은 눈속에 발을 묻고 맥없이 두팔을 드리운채 달려오는 중대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그의 얼굴은 우는듯도 웃는듯도 하였다.

장군님께서 언덕을 치달아올라 그에게 나타났을 때에는 한흥권의 품에 안긴 리유천이가 가쁜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입을 놀리고있었다.

그는 장군님을 찾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한흥권의 품에서 리유천을 반아안으시였다. 벌써 퍼렇게 멍이 들기 시작하는 입술에서는 뜨거운 한숨과 함께 애타게 장군님을 찾는 소리가 가늘게 새여나왔다.

《리유천이, 내가 왔소. 내가 왔단말이요. 어서 정신을 차리라구.》

혼몽해지는 의식속에서도 리유천은 장군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그는 맥없이 늘어뜨린 팔을 허우적이며 간신히 눈을 떴다.

리유천의 눈에서는 맑은 이슬이 천천히 고여오르더니 귀밑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장군님, 어디 상하신데는… 없으… 십니까?》

《없소, 없소.》

장군님께서는 목메인 음성으로 대답하시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시였다.

《나는 이렇게 성성한데 동무는 어째서 적탄을 맞고 쓰러졌소. 동무야 이렇게는 쓰러지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아니였는가 응. 유천이?》

리유천은 대답을 드리려고 애타게 목을 젓고있었으나 벌써 말이 입밖으로 새여나오지 못하였다. 입술은 억물린듯 푸름푸름해졌다. 눈녹은 물이 땀방울처럼 맺혀있는 꺼칠한 뺨에는 그늘이 비낀듯이 거밋거밋한 반점들이 돋아오르고 눈시울 주위에는 전에없던 잔주름이 생겨나고있었다.

허리를 굽히시고 리유천을 내려다보시는 장군님의 군복저고리 앞자락은 후들후들 떨렸다.

《한흥권동무, 급히 담가를 만드시오. 시간을 놓치지 말고 요영구에 들어가야겠소. 그러니 빨리 움직여주오. 동무들, 어서들 그래주오.》

장군님께서는 이를데없이 다급해하시였다. 최춘국이와 조왈남은 물론 위증민이까지 한흥권을 따라나서서 재빨리 담가를 만들었다.

담가의 앞채는 최춘국정치지도원과 한흥권중대장이 들고 뒤채는 조왈남과 함께 장군님께서 드시였다. 위증민은 전장에서 살아남은 말을 끌고 담가를 따라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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