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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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눈동자를 보고는 자기에 대해 무슨 반감이나 불만같은것을 품고있다고 생각지도 못할 지경이였다.

그래서 백하일은 이상야릇한 느낌으로 김택근이 뽑아든 시꺼먼 총구를 다시 쳐다보았다.

《김택근동무.》

백하일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백정놈, 네 입에서 동무라는 말이 순순히 나오는가?》

김택근은 절컥하고 권총의 격철을 뒤로 젖혔다.

《동무, 정신이 있는가. 누구한테 대고 함부로 권총의 격철을 젖혀?》

백하일은 몸에 배이고 습관된 거친 목소리로 고래고래 웨쳤다.

《누구한테 대고 그러느냐구, 가또의 밀정을 향해 그러는거다. 라주경찰서 위생계순사를 해먹던 놈을 네가 잘 알지? 네놈의 그 끄나불을… 장군님께서 혜정동무를 찾아오라고 부디 우리를 보내시지 않았더라면 아까운 녀성혁명가가 네놈의 마수에 걸려 목숨을 잃었을것이다. 무슨 소린지 알겠는가?》

백하일의 네모난 주걱턱은 험상궂게 이그러졌다.

자기가 혜정이를 수색하라고 보낸 《토벌대》가 결국 그 위생계순사놈과 함께 유격대원들의 손에 끝장이 나고만 모양이다. 불안한 예감은 헛된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공간속으로 죽음이 날라온 속삭임이였다.

그때 자기가 좀더 똑똑히 사태를 분별하고 미리 도망을 쳤더라면…

그는 밖으로 지척지척 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시원한 바깥공기가 그리워졌다.

《쏘라. 나는 반항없이 죽을테다. 어서 쏘라!》 백하일은 김택근이 아니라 달구지에 앉아있는 송혜정을 향해 미친듯 부르짖었다.

《아니다. 네놈은 여기서 죽이지 않으련다. 인민의 준엄한 심판대우에서 목을 매달고 억울하게 희생된 동지들의 피값을 받아낼테다. 쉽게 죽을 생각을 말라!》

송혜정은 덤비지도 않고 똑똑한 말소리로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송혜정은 서뿔리 흥분할수가 없었다.

이놈들의 손에서 어지간한 고생을 치른 혜정이가 아니다. 자기 한몸에 들씌워진 그 처절한 고생우에 사랑하는 사람의 신상에까지 미친 그 모략의 검은 손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서뿔리 흥분할수 없는것이다. 랭철한 리성으로 따지고 생각하고 모든것을 세세히 돌이켜야 한다.

혜정은 너무도 끔찍한 피의 수난을 겪었다.

그 알지 못할 숯구이막로인의 어두운 방안에서 처음으로 눈을 뜨고 세상을 보았을 때 자기의 머리맡에 꿈결마냥 놓여있던 눈에 익은 배낭과 자기의 저고리 안주머니에 써놓고간 리유천의 글발을 보면서 가슴타는 안타까움과 사무쳐오는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다 다시 의식을 잃고 한밤을 지냈던 그날의 일도 따지고보면 다 이 백하일이때문에 빚어진 비극이였다.

그 엄청난 번민과 무서운 고통의 칼바람을 줄곧 몰고와 사람의 가슴에서 피를 말리던 악의 화신이 어쩌면 이렇게도 보잘것 없는 꺽두룩한 사내일가?

몸에 걸치고있는것조차 제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왜놈 헌병장교의 낡은 장화와 군복저고리며 승마바지가 고작인 꼭두각시같은 이따위가 그토록 귀중한 혁명의 뜰안에 복닥먼지를 퍼날리다니?… 혜정은 마치 지겨운 악몽속에서 깨여난듯 자꾸 어리둥절해지는 눈으로 백하일의 모양다리없는 거동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이자에게 정말 어떠한 신념이 있고 목적이 있고 지향이 있었길래 아무나 쉽게 오지 못하는 혁명의 품을 찾아왔다가 여기서 똑똑한 인생을 살아갈 생각을 못하고 이 신성하고 고귀한 세계에 저항해나설 생각을 했을가?

애당초 혁명을 말아먹으려고 독을 품고 달려들었던 부르죠아의 씨종자인가? 아니면 혁명의 시련속에서 견디여내지 못하고 적에게 투항해버린 가련한 인간일가? 이렇든 저렇든 혜정에게는 쓸쓸하고 구슬프게 여겨지는 추한 인간의 몰골이 아닐수 없었다.

《나를 그냥 조롱할터인가? 쏘라. 쏘라. 어째서 못쏘는가!》

백하일은 머리통을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벌써 자존심이고 뭐고 죄다 던져버린 미친 인간의 발광이였다.

더는 이 세상에 살아배길수 없다는 절망적인 공포, 자기가 저지른 죄악의 무게만한 그런 고통과 시달림이 기다리고있다는 무서운 의식이 단말마적 몸부림을 빚어낸것이였다.

《정말 못쏠터인가? 정말…》

백하일은 세번째로 소리를 지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최후의 발악을 해서라도 기어이 살아야 하겠다는 생의 강력한 의식을 감수하였다.

그는 재빨리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에 백하일은 자기도 모르게 온몸뚱이가 공중으로 푸들쩍하고 뛰여오르다가 떨어지는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뒤늦게 혜정의 총구에서 어떤 섬광과도 같은것이 번쩍하고 빛나던것을 상기하였다.

총은 혜정이가 쏜것이였다.

백하일의 몸은 각일각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러자 유격구의 마을이 천천히 돌아가면서 어떤 미끄러운 경사면에 집이며 행길이며 잎떨어진 나무들이며가 다닥다닥 붙어있는것 같이 쳐다보였다.

《네가 나를 쏘았지, 그렇지만 나도 사람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목을, 돌아오는 길목을… 순순히는 물러서지 않을터이니…》

백하일은 제정신이 아닌 소리를 중얼중얼하면서 뒤걸음치다가 행길의 눈을 밀어버린 컴컴한 퇴수도랑으로 철썩하고 굴러들었다.

《소대장동지, 저놈이 방금 무슨 말을 했어요? 분명 사람을 보내서 돌아오는 길목을 어떻게 한다는 소리를 중얼거리다 꼬꾸라졌어요. 돌아오는 길목을 어쩐다는게 뭐예요?》

《뭐, 이놈이 그런 소리를 했는가?》

《예, 틀림없어요. 혹시 이자가 무엄하게도 장군님께서 돌아오시는 길목에 어떤 놈들을 보냈다는 소리가 아닐가요?》

어려운 적후투쟁의 나날에 남달리 고생을 쌓아가며 키를 자래우고 안광을 틔운 혜정의 사고는 민감하였다.

《옳소, 그 소리가 틀림없소. 아, 이 악착한 놈이 뒈지는 순간에도 순순히는 안간다는건가?》

김택근은 손에 쥔 총을 싸창갑에 넣을 사이도 없이 줄지어 령을 내리고있는 천교령전투대오를 향해 숨차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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