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 회)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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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영구에서는 누구나없이 다홍왜소식을 기다리고있었다. 이처럼 가슴을 조이고 땀을 흘리게 하는 일이 세상에 다시 있을수 있을가? 이즈음 백하일은 매일같이 강시중의 편지를 받고있었다.

강시중의 편지는 그다음날에도 련속 들이닥쳤다.

강시중의 입에서는 차츰 험해지는 소리가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발언이라고 별반 안하던 김일성동지께서 드디여 론박을 가하기 시작했다는것이다.

백하일은 눈이 히뜩히뜩 뒤집어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론박을 시작하다니?…》 그는 강시중이가 미농지에다 깨알같이 박아쓴 장군님의 론거들을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다.

백하일은 일이 벌써 거지반은 뒤집어지고있다고 생각하였다.

강시중의 편지에서 쓴것처럼 회의의 분위기가 그 지경으로 저상되여간다면 그걸 역전시킬 사람이 진짜로 있을수 없다.

백하일은 한모양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긴장과 숨가쁨을 느꼈다.

그런데 어째서 혜정이를 찾으러간 숙반대원들에게서는 며칠째 아무 소식이 없는가? 그 녀자를 잡았다든지 죽였다든지 가부간 결판이 있어야 할것이 아닌가?

혜정이의 거처를 수색하는 일에 《토벌대》도 동원되였을것인데 거기서도 뻐꾹소리 한마디 없다.

백하일은 정말이지 안달아났다.

그 라주경찰서 순사질을 해먹던 놈은 정보만 꼬박꼬박 물어가고 속시원한 결과를 전해주는건 한가지도 없다.

이제 송혜정이가 무사히 근거지에 돌아오고 천교령전투가 승리해서 수감자들이 부락에 들어서고 거기에 다홍왜에서 승리한 소식까지 날아오면 자기의 운명은 그것으로 끝장나리라는것을 백하일은 곰곰히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즈음 백하일은 거의 잠이라고 자보는 때가 없이 상시로 눈에 불을 켜고 문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그것만을 날카롭게 주시하고있었다.

그러던중에 어느날 다홍왜에서 뛰여온 숙반대원이 강시중이가 회의가 끝나기 바쁘게 도망쳤다는 끔찍한 소식을 알려왔다.

게다가 그 사람은 오는 도중에 천교령에 나간 유격대가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하였다.

백하일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여 장군님께서 돌아오실 길목에 《토벌대》를 파견해달라는 암호전문을 썼다.

그리고 숙반대원에게 이 편지가 혁명의 중대사를 론하는 중요한 통보이므로 근거지밖의 어디 어디로 가져가라는 지시를 주었다.

백하일의 정체를 알수 없었던 숙반대원은 그것이 혁명과 관련되는 일이거니 생각하고 암호전문을 받아들자 말잔등에 채찍을 얹었다.

숙반대원을 보내고난 백하일은 일이 아주 글러지는 경우에 도망갈 준비로 부랴부랴 짐짝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행길로 사람들이 달려가는 소리가 일어났다. 백하일은 창문을 활 밀어제끼고 밖을 내다보았다.

《우리 군대가 승리하고 돌아와요.》

《무수평에 나갔던 혜정동무도 돌아온대요.》

중구난방 떠드는 음향속에서 이런 소리가 똑똑히 날아왔다.

백하일은 덥석 창문턱을 움켜잡았다.

혜정이가 기어이 살아돌아온단말인가?… 그렇다면 혜정이의 수색에 동원되였을 《토벌대》는 어찌됐단말인가?

기어이 녀자가 돌아온단말인가?

혹시 라주경찰서 위생계순사가 김택근에게 붙잡혀 모든 내막을 불지 않았을가?… 예감은 너무도 똑똑하고 불안하게 가슴을 찌르고들었다. 분명 그런 사건이 일어났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단순한 예감이 아니라 사실로 빚어진 어떤 끔찍한 사변처럼 골수를 쿡쿡 쑤셔대고있었다.

백하일은 창문을 닫아놓고 아무렇게나 책상우에 올라앉아 가슴을 후들후들 떨었다.

어쩐지 너무도 다급하게 살아온것 같은 자기의 한생이 돌이켜졌다.

누구를 위해 그랬든 아무튼 자기는 언제 한번 발편잠을 자보지 못하고 한생을 장거리경기에 나선 어떤 운동선수와도 같이 내내 헐떡거리며 뛰고 또 뛰였다. 어떤자가 앞을 막아서면 악을 써서 뒤떨구고 남보다 앞선 눈치가 보이면 좀 숨을 늦추면서라도 어쨌든 한생을 뛰고 또 뛰였다.

이만한 노력과 정력과 열성을 기울였다면 학자도 되고 자본가도 되였을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 자기의 몸뚱이에 매달려있는것이 무엇이란말인가?

어떤 헌병놈이 신다가 벗어던진 가죽장화, 그러루한 놈의 몸에 걸쳐졌던 군복저고리, 엉치가 번들번들해진 승마바지, 그다음엔 허벅다리에도 늘여차고 저고리 안주머니에도 깊숙이 간직한 두자루의 권총, 백하일의 심사는 끝없이 서글프고 울적해졌다.

이 근거지를 무사히 떠난다 해야 자기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버림받은 인간이 되여 졸지에 거지꼴이 되고말것이다.

백하일은 이렇게 되는 자기를 묵인할수 없었다. 비록 가또의 밀정질을 해먹기는 했어도 아직 자기의 존재를 그렇게 낮추어보고싶지 않은 자존심과 자신을 도고히 장식하고싶은 몸부림이 온 육신과 뼈마디에 생생히 살아 꿈틀거리고있었다.

갑자기 문이 홱 열렸다.

백하일은 후닥닥 뛰여일어났다. 문가에는 손에 권총을 뽑아든 김택근이 증오에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백하일, 어서 네발로 걸어나와 저 말달구지에 누가 앉아있는지 보아라.》

백하일은 하늘땅이 기우뚱거리는 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문가에 바투 다가와 서있는 말달구지우에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혜정이가 앉아있었다.

밀랍같이 창백하고 해쓱하게 여윈 얼굴… 그러나 생기에 넘쳐 반짝이는 맑은 눈동자에는 얼마나 그윽하고 탐스러워보이는 생의 줄기찬 흐름이 뛰놀고있는가?

근거지를 떠날 때의 솜저고리 그대로를 입고 수건으로 가볍게 목을 감싸 모든것이 편안하고 여유있고 순조로와보이는 그 혜정이가 별로 움직이지 않는 조용한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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