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 회)

제 10 장

9

(2)

 

장군님께서는 평상우에 놓인 자그마한 수첩을 쳐드시였다. 거기에는 회의에서 론술한 사람들의 발언요점들이 간단하게 적혀있었다. 장군님께서 수첩뚜껑을 조용히 두드리시며 말씀을 시작하시자 사람들의 얼굴은 다시한번 경이의 표정으로 굳어졌다.

《지금 이자리에 앉아있는 거의 모든 동지들이 조선혁명가들의 민족해방구호를 〈공산국제〉에 모순되는 〈민생단〉구호로 규탄하였습니다.

동지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제국주의자들에게 조국을 강탈당한 식민지약소국가 혁명가들의 민족해방위업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동지들이 말하고있는 〈공산국제〉의 로선은 매개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분파행동을 하지 않고 하나로 굳게 통일단결되여 자기 나라 혁명을 더 잘 하게 하자는것이지 그들의 활동을 그 어떤 지역적범위에 한정시켜 비끄러매두자는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조국을 해방하고 민족을 해방하는것은 매개 나라 공산주의자들에게 지워진 국제적분공이기때문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조국과 민족이 겪는 고통을 누구보다도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그 비운을 가시기 위해 투쟁의 길에 나선 애국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구의 어느 경도, 어느 위도에 있으나 항상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며 겨레의 해방, 부모형제 자매들의 해방을 두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막을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진리입니다. 이 성스러운 감정을 민족주의라는 말로 감히 모독할수 있겠습니까.》

몇사람이 마른 기침을 깇었다. 방안은 기척없이 조용하였다. 여러날을 두고 그렇듯 불꽃튀는 론쟁을 벌려온 회의장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한심할 지경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시여 두터운 통나무가름대를 건너지르고 기름종이를 바른 투박한 창문을 젖히시였다. 창문으로부터 시원한 바람과 함께 송림속의 싱그러운 향기가 풍겨왔다. 한낮의 볕을 받은 처마끝에서는 후둑후둑 락수물이 떨어져내리고 멀지 않은 숲속에서 딱따구리의 나무쫏는 소리가 딱딱 하고 들려왔다.

그리고 또 어디선가 가야하기슭에 나앉아 빨래를 두드려대는 물방치소리가 날아왔다. 사방 산으로 둘러막히고 남쪽으로만 넓지 않은 버덕이 트인 잠풍한 다홍왜골안에서 내다보면 벌써 봄이 다가오는듯 한 환각이 일어난다. 여기서 좁은 창문을 통해 비쳐드는 하늘도 서기가 어린듯이 뽀얗고 나무잎새도 신록이 짙어가는듯 검푸르게 떠올랐다.

장군님께서는 창문턱에 한손을 짚으시고 회의장을 둘러보시며 유정한 추억에라도 잠기신듯 생각깊으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아득한 태고의 인간들에게도 애국주의는 감정으로 존재하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가운데서 가장 귀중하고 본질적인 감정으로서 조국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감정을 지닐 권리를 가지게 되는겁니다.

그래 이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간직할수 있는 보편적인 지향이 아닙니까? 이 지향이 공산주의자의것으로 될 때 그것은 백배로 강해집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자의 구국열은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고 훌륭한 조국애로 되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강도일제에게 짓밟힌 나라를 해방하기 위해 누구에게도 빼앗길수 없는 응당한 민족적권리인 조국해방구호를 들었다고 하여 〈민생단〉으로 몰려 처참한 희생을 당하고있습니다.》

장군님의 목소리는 드디여 단호한 음조로 방안을 울리였다.

그이께서는 가볍게 부르쥔 주먹으로 평상모서리를 울려가시면서 통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이 회의에 참가하고있는 많은 동지들이 조선혁명가들이 추켜들고있는 민족해방구호가 조중 두 나라 혁명가들의 혈연적단결에 장애를 노는듯이 말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론조는 방금전에도 울려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과 맞지 않는 해석이며 그릇된 판단입니다. 지금까지 간도땅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진행해온 반일반만투쟁력사가 이것을 웅변으로 실증해주고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을 시작한 첫날부터 중국의 인민들,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과 굳게 손을 잡고 서로 돕고 지지하면서 공동의 원쑤 일제와 중국의 반동군벌들을 반대하여 줄기차게 투쟁해왔습니다. 세계공산주의운동력사에는 조선인민과 중국인민처럼 그렇듯 혈연적인 뉴대를 가지고 민족적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위업을 위한 투쟁에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를 그렇듯 숭고한 높이에서 그처럼 훌륭히 구현한 실례가 없습니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동녕현성전투에서 이미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의 산모범을 창조해놓았습니다. 지난해말과 금년초에는 북만의 림해설원에서 주보중부대와 련합하여 도처에서 적을 치고 장차 그곳에서 새로운 큰 유격전선을 형성할수 있는 정치군사적기틀을 마련해놓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피도 많이 흘렸고 아까운 전우들도 많이 잃었습니다.

동지들, 그래 이것이 민족주의이고 이것이 〈간도조선자치〉의 변종입니까? 그래 이것이 과연 조중인민의 공동의 리익을 위한것이 아니며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가 아니란말입니까?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을 하려는 응당한 자주적권리를 짓밟고 〈민생단〉으로 몰면서 조선혁명의 운명을 롱락하려드는 사람들은 진실한 공산주의자도 아니며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자도 아닙니다. 이들은 배타주의적경향을 가진 사람들이며 종파사대주의자들입니다.》

분노와 의분에 사무치신 장군님의 격동된 말씀이 방안을 진동하였다.

동만땅을 메주밟듯 돌아친 종치훈은 귀밑까지 벌개진 얼굴을 가슴노리에 수그리고있었으며 강시중은 불쑥 솟아오른 어깨틈사리에 머리를 틀어박고있었다.

만장은 일제히 숨을 죽이고 머리를 떨어뜨렸다. 한민족, 한겨레에 들씌운 재난의 무서운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이 이들중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 장본인을 찾으시려는듯 열기가 번쩍이는 눈길로 한사람한사람의 얼굴을 똑똑히 여겨보시였다.

《당신들이 리성을 가진 혁명가라면 침착히 생각해보시오. 만약 동만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80~90프로가 〈민생단〉이라면 그들이 3~4년동안 유격근거지에서 엄동설한에 집도 없이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먹을것도 먹지 못하고 무엇하려 참았단말입니까? 놈들에게 부모형제를 잃고 자식들을 잃으면서도 무엇하려고 이 근거지를 떠나지 않았단말입니까. 이거야 삼척동자도 능히 알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만일 80~90프로가 〈민생단〉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회의를 할수 있겠습니까? 다홍왜주위에서 호위를 하고있는 유격대의 80~90프로는 고사하고 그 십분의 하나인 8~9프로만 〈민생단〉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자리에서 마음을 놓고 회의할수도 쉴수도 없을것입니다.

우리는 〈민생단〉에 몰린 희생된 동무들에게서 〈민생단〉에 몰려 죽더라도 적앞에는 투항하지 않는다는 순결한 정신을 수없이 찾아볼수 있었습니다. 〈민생단〉에 몰려 희생되면서도 〈조선독립 만세!〉, 〈조중인민의 혁명승리 만세!〉를 웨치는것을 동지들도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처창즈일대에서 구국군과의 사업을 하고있던 김일환동지는 〈민생단〉혐의에 걸려 체포되여가기 전에 안해와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였습니다. …나는 체포되면 죽을것이다. 나는 〈민생단〉에 들수도 없고 또 들려고 생각해본적도 없다. 그러나 혁명가의 절개를 끝까지 지키다가 여기서 〈민생단〉으로 몰려 죽는것이 오히려 당당할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살기를 원하고 적에게 투항하여 변절한다면 혁명에 더 큰 손실을 줄수 있기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혁명을 배반한 나의 죄악은 천추만대에 씻을수 없게 될것이다. …동지들, 그래 이런 사람들이 과연 〈민생단〉이란말입니까?》

위증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뜩이나 건강치 못한 몸에 긴장한 회의를 겪느라고 그의 얼굴은 병인과 같이 해쓱하고 눈언저리는 움푹 꺼져들어갔다.

김일성동지, 듣는 사람의 가슴이 이렇게 괴로운데 그 사변과 비극을 몸소 겪으신 동지의 심정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중국혁명가들은 중국혁명에 기여하신 김일성동지의 커다란 공적을 잊지 못하고있습니다. 진상은 차차 밝혀지게 될것이며 혁명은 응당한 과오에 대한 추궁을 하게 될것입니다.》

《물론 그래야지요. 그러나 몇사람의 진상을 밝히기보다 력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과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사이에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나라 공산주의자들, 모든 민족의 혁명가들사이에 견지되고 지켜져야 할 원칙적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함께 하는 민족들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동란은 공산주의운동력사에 다시는 반복되여서는 안되며 참다운 혈연적뉴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증민동지, 이것은 결코 지구의 동반구에서 우연하게 빚어진 사태가 아닙니다.》

위증민은 무슨 말을 할수 없었다. 말을 하려니 너무도 가슴이 뻐근해졌다.

김일성동지께서 조선혁명과 중국혁명,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중국공산주의자들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세계적규모에서 프로레타리아트의 완전한 해방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국제적인 동맹을 결성하지 않을수 없는 현시대적조건에서 리론상으로나 실천상으로 반드시 제기되지 않을수 없는 중대한 문제에 깊이 류의하고 계신다는것을 알았다.

그것은 동만땅에서 겪고있는 조선혁명가들의 수난을 뛰여넘어 진정한 공산주의자의 의무와 사명에 대한 깊은 사색이였으므로 위증민은 심각하게 모든것을 생각하지 않고는 쉽사리 그 말씀에 자기의 견해를 내놓을수 없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